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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열왕기하 2장 강해 물 근원을 맑게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09-14 00:00:00
조회수 : 3,508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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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장 강해 물 근원을 맑게

열왕기하 21-열왕기하 225

요절 열왕기하 2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청호나이스 정수기를 작년에 이층에 교회에 들여놓았습니다. 일층에도 올해 정수기를 들여놓았습니다. 이번 정수기는 역삼투압 방식으로 정수되어 물이 좋다고 합니다.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이 건강의 기본이 됩니다. 아프리카의 우간다는 정수되지 않은 강물을 마시고 고인 물을 먹는다고 합니다. 파키스탄도 식수가 많이 오염되었다고 합니다. 대부분 후진국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합니다. 우간다는 오염된 물로 많은 질병이 생기고 평균수명이 52세뿐이 안 된다고 합니다. 우간다에 의료 선교를 갈 때는 물을 꼭 가져가야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마시는 물뿐 아니라 영적으로 정수된 물을 마셔야합니다. 성경에서는 성령님을 물에 비유합니다. 이 시대도 각종 죄악이나 사상으로 교회에 흐르는 성령의 물이 오염되어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교회에서 성령의 물을 마신 많은 생명들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물근원을 맑게 하여 성령의 물이 흐르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길갈로 간 엘리야)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엘리야는 450명의 바알 선지자를 죽이고도 이스라엘에 변화가 없자 깊은 낙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남았다고 하소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낙심하는 엘리야에게 엘리사 한 사람을 후계자로 세우라고 방향을 주셨습니다. 이제 엘리야는 이 세상에서 삶의 끝 날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려 데려가시고자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엘리야도 알고 다른 선지자 생도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에녹 이후 엘리야가 두 번째 휴거를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주님을 위해서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고난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휴거를 통해서 엘리야를 위로해주시고자 하였습니다.

 

(길갈에서 엘리야를 떠나지 않는 엘리사)

 

2,3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그 때 엘리야와 엘리사는 길갈에 있었습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에 처음 할례를 한 곳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고 길갈에 열두 돌을 세웠습니다. 여호수아는 길갈을 베이스 캠프로 하여 가나안 정복을 하였습니다. 길갈은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자신 혼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벧엘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벧엘은 야곱이 신앙을 출발한 곳입니다. 첫사랑이 있는 곳이요 사명이 있는 곳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완전히 변화 된 곳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벧엘로 인도하여 그가 첫사랑을 회복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자신이 바뀌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벧엘로 가기 전에 엘리사를 떼어놓고자 합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가는 길이 고난의 길이므로 엘리사에게 그 고난의 길을 각오하기를 원했습니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엘리야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두고 결코 엘리야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어찌하든지 엘리야를 따라 벧엘로 가서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였습니다. 그만큼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를 사랑했습니다. 엘리야를 신뢰하고 겸손히 배우고자하였습니다. 이런 엘리사의 굳은 의지를 보고 엘리야는 엘리사와 함께 벧엘로 함께 갔습니다. 벧엘에는 선지학교가 있었습니다. 벧엘에 가자 그곳에 있는 예언자 무리도 엘리야가 하늘에 올라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엘리야가 하늘에 오르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엘리야를 따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엘리사만이 엘리야를 따르고자 하였습니다. 예언자 무리가 엘리사에게로 와서 오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가실 것을 알고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엘리사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벧엘에서 엘리야를 떠나지 않는 엘리사)

 

4-5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엘리야는 이번엔 여호와께서 자신을 두 번째로 여리고로 보내시니 엘리사에게 이제 그만 여기 벧엘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여리고는 이스라엘이 합심하여 끝까지 순종함으로 청복한 가나안의 첫성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혼자만 잘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합심동역하여 해야 합니다. 순종하되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여리고로 데리고 가서 여리고의 하나님을 가르치고자 하였습니다. 끝까지 순종하여 합심 동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자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이번에도 나는 여리고로 가고자 하는데 너는 벧엘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처음에 벧엘로 오는 길은 따랐지만 두 번째 여리고로 가는 길도 따를 것인가 시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엘리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엘리야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두고 결코 엘리야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스승을 따르는데는 어떤 고난이라도 달게 받고자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왕과 왕비 이세벨에게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고난을 받았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그런 고난의 길도 가기를 원하였습니다. 엘리야를 따라가서 여리고의 하나님을 베우고자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엘리야는 엘리사의 굳은 의지에 어쩔 수 없이 엘리야는 여리고까지 엘리사를 데리고 갔습니다. 여리고에는 벧엘과 마찬가지로 선지학교가 있었습니다. 여리고에 도착하자 거기 있는 예언자의 무리가 엘리사에게 나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하늘로 엘리야를 데려가실 것을 아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엘리사는 알고 있으니 그들에게 그만 잠잠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여리고에서 엘리야를 떠나지 않는 엘리사)

 

6-8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엘리야는 세 번째로 엘리사에게 여호와께서 자신을 요단으로 보내시니 그만 헤어지자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네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나를 끝까지 따르겠느냐는 시험입니다.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 번까지 떼어놓고자 하여도 떨어지지 않고자하는 곧은 의지가 있는지 확인하였습니다. 요단의 하나님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세 번째로 간 요단강은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인 언약궤를 앞세우고 건너간 강입니다. 제사장이 죽음을 각오하고 요단강물에 발을 디뎠을 때 강물이 멈춘 곳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가 앞으로 많은 장애물을 만날 때 그것을 죽음을 각오하는 모험으로 극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죽음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이번에도 엘리사는 여호와의 사심과 엘리야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여 엘리야를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떨어지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의 강한 소원을 받아서 그를 데리고 요단으로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예언자 무리 50명도 이들을 따라가서 멀리서 그 둘을 바라보았습니다. 엘리야가 벧엘, 여리고, 요단에 갔을 때도 거기 있던 제자들은 오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실 것을 알고 엘리사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엘리야를 좇지 않고 엘리사만이 엘리야를 끝까지 따랐습니다. 엘리사만이 강력한 영적인 소원으로 스승인 엘리야를 좇았습니다. 그럴 때 엘리사만이 엘리야를 통해 영적인 능력을 물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강한 영적인 소원이 있는 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말아 가지고 요단강의 물을 치자 물이 이리저리 갈라졌습니다. 성령께서 엘리야와 능력으로 함께 하였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마른 땅위로 요단강을 건너갔습니다.

 

(나오미를 떠나지 않는 룻)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르는 모습은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끝까지 따르는 모습과 유사합니다. 나오미는 남편도 잃고 두 명의 아들도 잃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두 명의 며느리 오르바와 룻에게 각자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두 명의 며느리 오르바와 룻은 소리 높여 울면서 어머니와 함께 돌아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두 번째로 며느리들을 만류하였습니다. 시어머니를 따라가야 두 며느리는 청춘과부로 늙어죽어서 소망이 없으니 돌아가라고 설득하였습니다. 제발 너희 잇속을 차리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며느리 오르바는 시어머니의 설득을 받아들여 울면서 자기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끝까지 따랐습니다. 나오미는 세 번째로 룻을 설득합니다. 동서 오르바도 돌아갔으니 너도 하나님을 떠나서 너희 신에게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러자 룻이 말합니다. 룻기 일장 16,17절입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얼마나 간곡한 말입니까? 룻이 이렇게 세 번이나 분명히 말하는 것을 보고 나오미는 떠나라는 말을 그쳤습니다. 룻이 이렇게 끝까지 시어머니와 그의 하나님을 따랐을 때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룻기라고 여자로서 자기 이름을 성경에 처음 기록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에스더가 두 번째의 사람입니다. 그를 통하여 메시야가 태어났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룻은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며 메시야의 족보에 올라갔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서 엘리야의 능력을 받고 두 배나 큰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스승의 능력을 받으려면 어떤 고난이라도 스승과 함께 해야합니다. 엘리야는 선배의 역사를 겸손히 배우기를 원하였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계승해야합니다.

예수님도 겸손히 세례요한을 계승하여 세례 받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도 모세를 따를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사울이나 다윗도 사무엘이 받은 성령을 받아 계승했습니다. 성령님은 겸손히 배우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르호보암은 자신의 새끼 손가락이 아버지 솔로몬의 허리보다 굵다고 아버지 앞에서 교만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성령을 계승하지 못하여 분열왕국의 첫왕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나라가 분열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우리 모임에도 끝까지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정말 별 이득이 없는 곳에 구원의 은혜에 기초하여 남은 분들이 귀한 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성령을 충만히 주셔서 귀하게 축복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을 구하는 엘리사)

 

9절을 보십시오.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엘리야는 엘리사가 자신을 끝까지 따르는 것을 보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성령께서 엘리야에게 하시는 역사가 두 배나 자신에게 있게 해달라고 구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능력의 선지자입니다. 그가 기도하자 삼년 육개월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기도하자 비가 왔습니다.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살랐습니다.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자 과부의 집에 있는 기름과 떡이 한 없이 생겨났습니다.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기도 하였습니다. 불을 내려 대적자를 죽이기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이런 엘리야의 능력의 근원이 성령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능력의 근원인 성령을 구하였습니다. 그는 선지학교의 명의 이전을 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생활을 보장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메시지 원고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후계자로 직책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엘리사는 오직 엘리야와 함께 일하신 성령을 구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능력의 근원이 성령에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시대에서 엘리사의 시대로 사람은 바뀝니다. 그러나 엘리야에게 임한 성령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엘리야가 훌륭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 속에 있는 성령님이 훌륭한 것입니다. 방법이나 스킬보다 성령님이 중요합니다. 지식보다는 성령이 중요합니다. 스승의 속에 있는 성령을 받아야합니다. 내가 중심이 되지 않고 성령이 중심이 되는 역사를 이루어야합니다. 엘리사는 성령의 역사를 계승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하나님께로 올려지기 전에 꼭 그 성령의 능력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자기 스스로 성령의 능력을 받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산에 올라가 밤새 소나무 뿌리를 뽑으며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목자 엘리야를 통해서 엘리야의 성령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통한 성령의 역사의 두 배나 자신이 이루고 싶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엘리야처럼 자신도 하나님의 역사에 귀히 쓰임 받고 싶었습니다.

엘리사는 갑절의 능력을 구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다섯 번의 이적을 행했으나 엘라사는 열 번의 이적을 행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우리 어떤 소원을 갖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 입을 크게 열라 채우리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소원을 받으시고 큰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보다 큰 일을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에수님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님보다 더 넓은 지역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성령을 받은 엘리사)

 

10-11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엘리사의 소원을 들은 엘리야는 그가 어려운 것을 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에게 성령을 주시는 것은 엘리야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가시는 것을 보면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하늘에 올라가는 것은 죽음도 극복하는 가장 큰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런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을 볼 때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려면 성령 충만한 사람 속에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를 배워야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임에 가는 것이 좋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길을 걸어갈 때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려지게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바람을 타고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에 올라간 것은 가장 큰 성령의 역사입니다. 엘리야 후에 더욱 큰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들려올라간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부활승천하는 모습을 볼 때 성령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까?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랐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야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여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야합니다.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어떤 고난의 길이라도 따라가야 합니다.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해야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각각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먼데 있는 사람 곧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고 하십니다. 행전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엘리사는 엘리야를 배우고자하는 영적 소원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간절히 영적 소원을 갖고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성령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엘리사가 받은 것보다 갑절의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부활을 알고자 그 고난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는 어찌하든지 예수님의 고난을 받고자 몸부림쳤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흔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난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는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에수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을 알고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울에게 성령을 충만히 주시고 크신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 엘리야)

 

12절을 보십시오.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엘리사는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을 타고 승천한 것을 보았습니다. 엘리사는 승천하는 엘리야를 보고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스승인 엘리야가 하늘로 올려지자 엘리야를 소리 높여 불렀습니다.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불렀습니다. 엘리사는 목자 엘리야를 영적인 아버지로 여겼습니다. 엘리야가 자신을 해산의 수고한 아버지로 생각하였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사장과 비서의 관계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로서 깊은 사랑의 관계성이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지키는 병기였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죄와 싸웠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이스라엘을 지키는 일과 상관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믿음으로 죄와 싸웠을 때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을 지켜주셨습니다. 불말과 불병거를 동원하여 지켜주셨습니다.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죄입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명이 있으면 멸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의인 열명이 소돔과 고모라를 지키는 병거와 마병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죄와 사단과 싸움입니다. 엘리야는 믿음으로 살았을 때 그는 이스라엘을 지키는 병거와 마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받으시고 불말과 불병거로 지켜주셨습니다. 엘리사는 더 이상 엘리야가 보이지 않게 되자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었습니다. 그는 옷을 찢어서 슬픔을 표현하였습니다.

 

(요단강 물을 가른 엘리사)

 

13,14절입니다.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엘리사는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가지고 요단 강으로 돌아왔습니다. 엘리야의 겉옷으로 물을 치며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를 부르짖어 찾았습니다. 지금까지 엘리야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이제 자신의 하나님이 되어 자신과 함께 하시기를 바랐습니다. 엘리야가 했던 것과 같이 옷으로 물을 치자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엘리야 때보다 두 배나 깊게 갈라졌습니다. 엘리사의 바람대로 그도 엘리야와 같이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미국 켈로포니아 엘까미노에 있는 존백선교사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음으로 제자양성을 시작하였습니다.

 

(엘리사에게 경배하는 제자들)

 

15절을 보십시오.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엘리사가 요단 강을 건너는 것을 본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를 보자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무른 것이 보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엘리사 앞에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였습니다. 그들은 엘리사의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들은 엘리사를 엘리야를 잇는 목자요 선지자로 인정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승천을 확신한 엘리사)

 

16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감한 사람 오십 명이 있으니 청하건대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선지자의 제자들은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승천했음을 믿지 못했습니다.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이나 골짜기에 던졌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믿음도 부족하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부족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실수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실수하셔서 어느 산이나 골짜기에 떨어뜨렸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절대성이 없을 때 그들은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엘리사는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했음을 알고 그들에게 엘리야를 찾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올라간 엘리야를 찾지 못한 사람들)

 

17,18절을 보십시오. “무리가 그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그들이 오십 명을 보냈더니 사흘 동안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그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선지자의 제자 무리가 엘리사에게 부끄럽도록 간절히 엘리야을 찾아보자가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어쩔 수 없이 엘리야를 찾으러 보내라고 허락하였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엘리야를 찾지 못하고 엘리사에게 찾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엘리야는 분명히 하늘로 올라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가지 말라고 한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그들을 책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뒤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함을 배웁니다. 그렇지 않을 때 믿음 없이 행동하고 헛수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물이 나쁜 여리고)

 

19절을 보십시오.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성령을 받고 처음 한 일이 나옵니다. 그 후에 엘리사가 여리고 성에 머물 때 일입니다. 그 성읍 사람들이 찾아와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좋지 않아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하소연 하였습니다.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는 것은 다른 성경에서는 아이를 임신하여도 물이 좋지 않아 유산을 많이 한다고도 번역하였습니다. 그곳은 물근원이 좋지 않았습니다. 검룡소는 한강물의 근원지입니다. 검룡소가 오염되면 한강물이 다 오염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인 엘리사가 물근원을 맑게 해달라고 나아왔습니다. 이것을 볼 때 물근원이 좋지 않은 것은 그 성읍 사람들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물근원이 흐리면 아이가 자라지 못하고 동물이 자라지 못하고 식물이 자라지 못합니다.

 

(물 근원을 맑게 한 엘리사)

 

20,21절을 보십시오.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엘리사는 그들의 문제를 보고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금을 물의 근원으로 가서 그 가운데 던졌습니다. 소금이 물에 생명을 주었습니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물은 성령님을 비유합니다. 성령의 물이 깨끗해야합니다. 바알숭배로 이스라엘의 물근원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바알은 물질주의입니다. 물질주의로 오염 되었습니다. 아세라로 오염되었습니다. 아세라는 다신의 음란 문화입니다. 음란문화로 이스라엘이 오염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물이 좋지 않으면 열매가 떨어집니다. 성령의 역사는 물근원을 바꾸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물근원을 바꾸기 위해서 소금을 던졌습니다. 소금은 물근원을 깨끗하게 합니다. 소금은 흐르는 물을 바꿉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너희는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진리의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죄사함을 받을 때 물근원이 깨끗해집니다.

우리의 부정한 것을 물로 씻어낼 때 우리는 깨끗해집니다. 물근원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잠언 기자는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 말씀하십니다. 잠언 423절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마음에서 성령의 강물이 흐르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근원이 깨끗하게 바뀌게 됩니다. 요한복음 737,38절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마음에서 성령의 물이 흐릅니다. 성령의 물이 흐르면 생명이 살아납니다.

에스겔서 37장에 보면 성령의 강물이 흐르는 곳에 풀이 자라고 꽃이 핍니다. 고기가 자라고 온갖 새와 짐승이 몰려옵니다. 성령의 강물이 흐를 때 우리에게 유산이 치료되고 생명의 열매를 맺습니다. 제자양성의 열매가 틈실하게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생명이 살아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생명이 자라다가 유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복음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복음이 혼합주의가 되었습니다. 번영신학이나 기복주의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표적신앙이나 은사중심으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인본주의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음란문화와 물질주의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율법주의로 오염되었습니다. 우리는 순수하게 예수님 중심이 되어야합니다. 십자가 중심이 되어야합니다. 진리의 말씀 앞에서 나의 죄를 발견해야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인본주의를 회개해야합니다. 불신을 회개해야합니다. 교만을 회개해야합니다. 자기 사랑을 회개해야합니다.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아야합니다. 그러면 깨끗한 성령의 물이 흐르게 됩니다. 우리 마음과 교회에 성령님의 깨끗한 물이 흐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엘리사를 조롱하는 아이들)

 

23절을 보십시오.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여리고에서 벧엘로 올라갈 때 일입니다.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엘리사를 조롱하였습니다.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이것을 볼 때 엘리사는 대머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상 숭배에 빠져서 하나님의 사람을 업신여기고 무시하였습니다. 이것은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행동이었습니다. 또한 올라가라는 말은 엘리야의 승천을 불경스럽게 표현한 것으로, 이것 역시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물근원을 막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아이들은 열두 살이나 열세살 정도로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이들이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262122절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를 짐승을 통해서 징벌함으로 회개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물 근원을 오염시키는 자에 대한 저주)

 

24,25절을 보십시오.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엘리사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그들을 저주하였습니다. 물근원을 막고자 하는 자들을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셔서 수풀에서 나온 암콤 두 마리를 사용하셔서 아이들 중의 42명이나 찢겨 죽이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을 무시하거나 하나님을 조롱하는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이고 하나님께 심판받는 것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죄는 성령을 모독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받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한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어린 아이들을 성령을 모독하는 불신과 교만을 심판하는 본 보기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도록 도우셨습니다. 엘리사는 그 후에 갈멜 산으로 갔다가 사마리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갈멜 산은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한 장소이기도 하고 엘리사가 영적인 훈련을 받기 위해서 한동안 머무른 장소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볼 때 우리가 진정 구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먼저 성령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천 십이 년 성령의 강물이 흐르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의 물을 맑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순수 복음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발견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 피로 죄사함을 받아야합니다. 부정한 것을 물로 씻어내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령의 물을 맑게 하였으면 성령을 존중히 여기고 경외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천안 ubf에서 성령의 강물이 맑게 흐르게 해야합니다. 각 개인마다 각 가정마다 성령의 강물이 일급수로 흐르게 해야 합니다. 성령의 정수기를 달아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병든 자를 치료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아멘

열왕기하 2장 강해 물 근원을 맑게

열왕기하 21-열왕기하 225

요절 열왕기하 2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열왕기하 2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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