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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미모데후서 4장 강해 이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06-26 00:00:00
조회수 : 3,090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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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4장 강해 이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디모데후서 46-디모데후서 422

요절 디모데후서 47절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보면 마지막 가슴이 뭉쿨한 대사가 나옵니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나 진짜 힘들었거든예아버지가 헤어지면서 월남하는 주인공 덕수에게 가족을 부탁합니다. 덕수는 아버지가 부탁한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서독 광부로도 가기도 하고 월남에 파병군인으로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동생들이 자립한 후에 마지막 아버지에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예수님을 만날 때도 나 살았지요?” 이런 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지금까지 디모데에게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가르쳤습니다. 이제 그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간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덕수처럼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바울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죽음을 앞 두고 잘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바울은 떠날 시각이 가까웠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이제 사도 바울은 최후의 명령을 한 후에 최후의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가을이고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순교합니다. 도마에서 닭의 목을 치듯이 도끼로 바울의 목을 내려 칠 것입니다. 바울은 그 끝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순교의 날이 다가온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두려움과 불안과 연민에 시달리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떠날 기약이 다가왔다고 합니다. 떠날 기약은 원어에 3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떠날 기약은 멍에를 벗는 날을 의미합니다. 소에게 멍에를 메우고 하루 종일 일합니다. 저녁이 되면 보습쟁기를 풀어놓습니다. 모든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멍에를 벗고 자유를 얻습니다. 그처럼 육체에서 자유를 얻는 날이 가까이 왔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의미는 천막 끈을 푼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여기서 살던 장막을 떠나서 더 좋은 장막으로 가는 것입니다. 육체의 장막을 벗고 썩지 않는 새로운 몸을 덧입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밧줄을 푼다는 의미입니다. 배를 밧줄에 매어놓고 정박했다가 육지의 끈을 풉니다. 그 후에 배는 망망대해를 향하여 떠납니다. 영원한 나라로 가는 배를 타고 떠난다는 의미입니다. 새 목표를 향하고 소망을 향하고 안식을 향하는 길입니다. 이제는 쉬러 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전제와 같이 벌써 부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전제란 로마사람에게는 제물 위에 술을 붓는 제사를 말합니다. 유대인에게는 양을 죽여서 그 붉은 피를 제단에 쏟아 붓는 것입니다. 내 생애의 끝 순서로 순교를 하는 것이 남았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당할 순교의 피를 하나님의 제단에 최후로 부어 드리는 제사로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그에게 있는 모든 것, 그의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그의 장래 등 모든 것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렸습니다. 이제는 그의 마지막 생명의 피 한 방울까지도 그의 제단에 부음으로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이는 모든 성도들이 취하여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모든 미물들은 자신의 죽을 날을 압니다. 코끼리도 죽으려면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갑니다. 어떤 분은 죽기 전 86세까지 낚시를 하였습니다. 전날까지 낚시를 하고 모든 식구를 불러놓고 오늘은 내가 갈 것 같다고 합니다. 오늘은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본인이 기도하고 회개하고 누웠습니다. 아주 편안하게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분은 장례식 대신에 거지 잔치를 일주일하라고 하였습니다. 천막을 쳐놓고 온 면에 있는 거지를 모아서 잔치를 하였습니다. 축제를 하였습니다. 이분이 곽선희 목사의 할아버지입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한 사람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쳤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자신을 전쟁에서 싸우는 군인에 비유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사람들과 치고 받고 싸우는 것은 악한 싸움입니다. 죄와 사탄과 싸우는 것이 선한 싸움입니다. 그는 죄와 싸우고 사단과 싸웠습니다. 그는 불신과 교만과 탐욕과 싸우며 믿음의 중심을 지켰습니다.

그는 생사를 건 군인과 같이 싸웠습니다. 생명보다 더 높은 가치인 사명을 위해서 싸웁니다. 군인은 사명을 위해서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위해서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돌에 맞아 죽을 뻔하고 뱀에 물려 죽을 뻔 하고 파선하는 배에서 죽을 뻔하였습니다. 때로는 내면의 죄로 인하여 죽을 뻔하였습니다. 불신과 교만과 탐욕이 그를 공격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위험 속에서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싸움을 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죽기를 각오하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도 필생즉사요 필사즉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때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바울은 또한 자신을 마라톤 선수에 비유합니다. 아덴에서는 올림픽 경기가 시작합니다. 그들은 운동경기를 많이 보았습니다. 경기에는 경기의 목적이 있습니다. 국가대표축구 선수가 나라의 명예를 위해서 공을 찹니다. 국가의 경제적 효과도 많이 생깁니다.

달리는 사람은 뛰는 목표가 있어야합니다. 내가 뛰는 코스가 눈에 선해야 합니다. 뛰다 말고 어디로 가야 하나요? 하면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나의 인생의 코스가 분명해야 합니다.

나는 운동경기와 같이 여기까지 도달하는데 잘 달려왔다고 합니다. 외길 인생을 산 사람이 성공한 사람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십 년을 해야 무엇을 아는 것 같다고 합니다. 많은 경험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가는 길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합니다.

운동경기자는 한 번 뛴 후에 코스를 바꾸지 않습니다. 중도탈락 하면 금메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금메달을 바라보며 뛰어갑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을 기대하며 뛰어갔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을 바라며 달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며 뛰어야합니다. 우리의 수고가 하나님 나라의 상급으로 주어집니다. 현실에서도 하나님의 상급을 은혜로 주십니다.

운동경기를 할 때는 규칙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규칙을 어기면 실격입니다. 남에게 전도하고 버림 받는 것이 실격입니다. 자동차 운전할 때는 교통법규를 지켜야 합니다.

운동경기를 하는 자마다 절제하고 훈련해야합니다 경기 전에 훈련해야합니다. 권투선수들이나 역기 선수가 한 번 시합하기 위해서 몇 년을 수고합니다. 역기 하나를 들기 위해서 많은 훈련을 합니다. 한번 들려고 십년을 훈련합니다. 먹고 싶은 것 먹지 못하고 반복하여 훈련합니다.

금메달을 딴 양학선은 도마에서 단 4초의 경기를 위해서 몇 만 번을 반복하여 연습하였습니다. 그 시간만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절제가 일상화되어야합니다. 경기자는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시기질투해서도 안 됩니다. 다른 사람 실수하기만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자력으로는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실수해야 이긴다는 말입니다.

경기 할 때는 구름같은 허다한 증인이 있습니다. 주위에 성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위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이 술집으로 가면 안 된다고 걱정합니다.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수만 명이 경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성원하며 존경하며 사랑하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인생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말합니다. 그는 승리의 골인 지점까지 쉬지 않고 전 구간을 믿음의 경주를 완주했습니다. 마라톤은 하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중심을 지켰습니다. 그의 시작은 죄악 되었지만 끝은 위대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믿음의 중심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가기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에게 시작보다 중요한 것은 끝입니다.

가룟유다나 사울왕은 시작은 좋았으나 끝이 나빴습니다. 사도바울이나 세리 마태는 유대인의 조상 유다는 시작은 좇지 않았으나 끝은 좋았습니다.

바울은 믿음을 지켰다고 말합니다. 믿음을 버리면 순교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그가 믿음을 버리면 감옥에서 나갑니다. 그러나 믿음을 위해서 생명을 버렸습니다. 그는 순교의 상황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죽음이 무서워서 신앙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정도를 지켰습니다. 믿음을 지켜서 순교를 선택합니다. 그는 순교자입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돈보다 명예보다 생명보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장광우 목사는 군대에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내무반의 중대 왕고참이 너 군대 가면 죽어!” 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죽겠습니다.” 하고 군대에 갔습니다. 그는 죽을 만큼 맞아서 맹장이 터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군종병이 되었습니다. 그는 군대에서 전역한 후에 교회에 갔지만 댄서로 환영 받지 못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먹고사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는 예전에 나이트클럽 DJ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어느날 다시 피를 흘리며 고통을 당합니다. 그는 다시 기도하고 믿음의 길을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춤추는 교회음악가(ccd)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탄은 우리에게 고난을 통하여 또는 유혹을 통하여 믿음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우리는 이런 방해를 이기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가야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이제 후로는 다 끝났다는 말입니다. 걱정거리가 없습니다. 이제는 면류관만 있습니다. 마지막에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승리와 영광이 있습니다.

운동 경기에서 일등하면 요즘에는 금메달을 줍니다. 당시는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줍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셨음을 확신했습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 자신에게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바울은 힘들 때 메인 스타디움에서 환호하는 믿음의 선배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주실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승리의 면류관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 앞에 가서 나 잘 했지요!” 라고 고백할 날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안아주시고 고생했다!” 위로해주실 날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는 영광의 면류관을 보자 고난을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의 면류관이 자신뿐만 아니라 믿음의 중심을 지키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도 준비되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면류관은 바울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승점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남은 때가 중요합니다. 낙오자가 되지 말고 실격자가 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마지막에 면류관이 보이고 그리스도가 보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의의 면류관을 써야 하겠습니다.

 

(누가만 바울과 함께 있습니다.)

 

9-12절을 보십시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바울은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이들 중에는 믿음을 버리고 바울을 괴롭힌 자도 있고 바울을 기쁘게 한 자도 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일일이 다 기억하고 디모데에게 부탁했습니다. 여기에는 옥중에 있는 바울의 깊은 고독과 슬픔, 그리고 기쁨과 은혜가 대조되어 나타납니다.

바울은 주치의 누가와 함께 고독한 병상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그의 고향 데살로니가로 떠나갔습니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충성된 디도는 달마디아로 떠났습니다.

누가만이 바울과 함께 있었습니다. 누가는 끝까지 사도 바울과 함께 십자가를 졌습니다. 누가는 바울의 주치의로 바울과 함께한 선교사요, 역사가요, 문필가였습니다. 이렇게 바울과 함께 한 사람이 성경 66권 중에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두 권의 책을 쓸 수 있습니다.

바울은 외로움 속에서 디모데에게 속히 나에게 오라고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통하여 힘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만으로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고난 중에 주위에 함께 있는 동역자들이 힘을 줍니다. 디모데는 외로운 바울에게 좋은 동역자였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디모데전후서가 편지가 성경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마가는 1차 선교여행 때 도망을 가서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회개하고 복음 역사에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마가는 바나바와 베드로와 바울의 영향으로 위대한 마가복음을 썼습니다. 이렇게 바울과 고난을 받으며 마지막을 함께 한 사람들이 위대한 누가복음 사도행전, 마가복음을 집필하였습니다. 함께 한 디모에게 쓴 두 편의 편지가 성경이 되었습니다. 주의 종과 예수님의 고난에 끝까지 참여한 자들이 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바울은 두기고를 에베소에 보내서 에베소 교회를 돕도록 하였습니다.

 

(주께서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바울은 디모데가 오는 길에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두고 온 외투를 가져오라 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 겨울을 감옥에서 나고 있습니다. 옥중에서 추웠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입을 것이 이것뿐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고 청빈한 생활을 했습니다.

또 가죽에 쓴 책, 곧 성경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옥중에서 순교를 앞둔 절박한 시기에도 성경 읽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복음 역사를 방해한 구리장색 알렉산더를 경계시켰습니다. 바울은 알렉산더를 떠나 미워하고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원수를 갚아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법정에서 일차로 변명할 때 다 바울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홀로 십자가를 지실 때 모두가 떠난 것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로 생각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동기가 잘못되어 다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처음 가졌던 동기를 그대로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사랑받고 세속적인 욕망으로 교회에 왔다가 헌신하는 사람으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바꾸어져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하려고 나왔다가 예수님을 믿고 장가도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 동기는 순수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동기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을 따른 사람들이 동기변화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이 핍박당하는 것을 봅니다. 바울이 순교상황에 이른 것을 봅니다. 바울을 따르던 사람이 다 바울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우리나라도 민족 운동의 일환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을 개화교인이라고 합니다. 큰 핍박이 있으면서 개화교인은 다 사라지고 순수한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요즘도 그렇습니다. 이 목적 저 목적으로 나오다가 어려우면 다 떠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고 섭하다고 하면서 떠납니다. 그렇게 떠나면 신앙이 값싼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떠난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바울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제자들을 이해하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바울도 이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혹시 문제가 있지 않았나 반성합니다. 지신에게 허물을 돌립니다.

바울은 아직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있습니다. 허물을 돌리면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병들면 처음 믿음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떠난 사람들은 믿음이 어린 것이라고 이해해 줍니다.

우리에게 끝까지 고난을 받고 남은 사람이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떠난 사람을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면 어느 때 그들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기도합니다. 이 허물을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합니다. 그 허물을 나에게 돌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면서 저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합니다.

성꼬리케라는 사람은 강도에 의해서 죽음을 당합니다. 그는 죽으면서 유명한 말을 합니다. 당신과 함께 낙원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억울하게 죽으면서 그분의 구원을 기도합니다. 그 강도가 감옥에 갇혀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상대방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면서 자신을 반성합니다.

 

(주님이 곁에 계십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모든 사람 다 바울을 버렸지만 주님이 곁에 서 계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바울의 편이 되어서 돌봐주십니다.

예수님도 다 떠나고 자신을 혼자 둘 때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혼자 두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바울과 함께 하셔서 사자의 입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사자는 극한 고난을 의미합니다.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는 돌로 쳐서 바울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돌로 쳐서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바람이 일고 파도가 쳐서 며칠 간 떠내려 가기도 하였습니다. 밀레도 섬에서는 뱀에게 물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와 함께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고린도 교회에서, 예루살렘에서, 파선하는 배에서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고난에서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구원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듣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감당할 때까지 어떤 사자의 위협이 있어도 우리를 살려주십니다.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 자기를 많은 위험에서 건지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하나님이 임종의 순간 바울의 곁에 있었습니다. 우리도 죽음의 순간에는 혼자 죽음의 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손을 잡아주실 것입니다.

 

(그의 천국에 가게 하실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은 옛날의 그 기적으로 지금도 다시 살아날 것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서 기적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순교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기적을 행하신 주님이 순교를 잘 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 시련 속에서 믿음을 지키게 도우셔서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을 믿습니다.

길버트라는 탐험가가 대서양을 여행하다가 빙산에 부딪혔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음을 기다렸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할 때 그는 말했습니다. “두려워말게 천국은 어디에서나 가네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은 차사고로도 가고, 응급실에서도 가고 교회에서도 가고, 가정에서도 가는 것입니다.

 

(은혜가 함께 할지어다)

 

19-22절을 보십시오.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바울의 전도여행에 헌신적으로 협조한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와 오네시보로를 잊지 않고 문안했습니다(18:18,19). 바울은 세계 선교라는 큰 비젼 가운데 큰 일을 했지만 구체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 동역자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는 이처럼 작은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죽음의 순간에도 한 사람 한 사람 양들을 살피며 문안하는 바울의 위대성을 배웁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주님이 함께 하시고 은헤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가 알게 됩니다. 그때는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중요한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인생은 마라톤 경주입니다. 이제 초반 레이스를 뛰고 있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이제 40대에 접어들어서 반환점을 돌은 사람도 있습니다. 저와 같이 종반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를 뛰고 있든지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달려가야 합니다. 죄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힘써서 자신을 훈련하고 고난을 감당하며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는 마라톤 경주를 완주하고 하나님의 상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 예수님에게 가서 이만하면 내가 잘 살았지요?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주님이 우리를 안아주시고 눈물을 닦아주시고 안아주실 것입니다. 아멘!

 

디모데후서 4장 강해 이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디모데후서 46-디모데후서 422

요절 디모데후서 47절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디모데후서 4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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