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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디모데후서 3장 강해 일부 고통하는 때의 복음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1-11-08 00:00:00
조회수 : 4,057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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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장 강해 4부 생명의 떡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6장30-요한복음 6장 40
요절 요한복음 6장 3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메리 크리스마스! 07년 성탄을 축하합니다. 성탄을 앞두고 벌써 케롤 송이 나오고 사람들은 들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왜 이렇게 기쁜 소식일까요? 우리는 요한복음 6장을 네 강에 걸쳐서 배우며 성탄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 일강으로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선포하셨습니다. 떡은 밥이나 쌀이라고 해도 되고 혹은 빵이라고 해도 됩니다. 아니면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이라고 해도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음식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냥 음식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음식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행복, 하나님 나라를 주시는 떡이십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떡을 구하는 무리들)

3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고기 두 마리로 성인 남자만 오천 명이나 되는 무리를 먹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그 표적 말고 더 많은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한 번 떡을 주신 것으로 그치지 말고 계속하여 떡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계속적인 떡을 주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살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겠다는 것입니다.

(매일 떡을 주소서)

31절을 보십시오.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그들은 출애굽기 16장 4,5절 말씀까지 인용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주신 것처럼 지금도 만나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매일 떡을 준 것처럼 매일 떡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삶의 목적이 세상에 있으면 성경 말씀도 세상적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40년 동안 만나를 주셨습니다. 이백만 인구가 애굽에서 나와서 사십 년을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이곳이 신광야인데 지금의 시나이 반도가 있는 곳입니다. 저는 이곳을 사진으로 쭉 보았습니다. 완전히 사막 땅입니다. 가끔 나무 한 그루나 풀 몇포기가 있을 따름입니다. 이곳은 먹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광야에 있는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먹게 하셨습니다. 만나는 까씨같기도 하고 꿀 섞은 과자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십 년 동안 이백만의 인구를 사막에서 매일 먹여 살리셨다는 것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이 만나를 언약궤 속에 넣어서 영원히 보존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배가 고플수록 만나를 먹던 때를 그리워하였습니다. 일하기 싫으면 싫을수록 만나를 그리워하였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는 문제가 심각하였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아래서 경제적으로 무척 가난했습니다. 일제시대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했나를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그때 나온 말입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나무껍질을 벗겨먹다가 대변을 볼 때 찢어지는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그들은 배가 고프니 당신이 메시야라면 지금도 광야에서와 같이 하늘에서 먹을 양식을 매일 내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만나는 특별한 은총임)

그러나 매일 만나를 달라는 이들의 요구는 잘못된 것입니다. 만나는 광야에서만 한시적으로 주신 은혜입니다. 광야는 그들이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목축을 할 수도 없습니다.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곳입니다. 만나는 그런 특별한 상황에서만 주신 특별한 은혜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만나를 주신 목적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만나는 그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목축을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일을 하면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서는 만나를 주시지 않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에게 얼굴에 땀을 흘려서 먹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로마 식민지 시대인 당시도 먹고 살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열심히 일을 하면 하나님이 친히 먹을 것을 주십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땀을 흘리며 일하면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면 먹을 것을 주십니다. 그들은 만나를 달라고 하는 것은 일하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 하나님은 열심히 일을 하고 먹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성적 나오기를 바라야지 기도만 하고 정답을 잘 찍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어야지 로또 복권을 사서 한 번에 왕창 돈을 벌고자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만나를 달라고 하는 그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의 떡은 생명을 주는 것이다)

32,3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만나를 구하는 그들에게 성경의 올바른 해석을 말씀하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만나는 모세가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16장 12절에 보면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떡을 주셨다는 것을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덧붙여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먹는 떡이 아니라 참떡, 하나님의 떡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참 떡, 하나님의 떡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결국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주셔서 육적인 양식을 주셨지만 진정 그들에게 주시고자 하신 것은 육신의 떡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면 그들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참떡이신 하나님을 주시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수 있음)

신명기 8장 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 받을 때 인용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사십 일을 금식하셨습니다. 사단은 예수님께 돌을 빵으로 바꾸어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에게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나를 주신 뜻은 사람이 떡으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만나를 주신 목적은 빵을 주시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에 순종하여 영혼의 만족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말씀을 먹어야 마음에 영생이 있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시해야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육신의 먹을 것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영혼의 양식도 먹고 육신의 양식도 먹었습니다. 예수님도 사십일 금식하였을지라도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굶어죽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먼저 말씀을 구하였을 때 예수님의 육신의 양식도 책임져 주셨습니다. 이것이 만나를 주신 목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께 만나를 달라고 요청하기보다는 말씀을 영접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의 경제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다)

34-3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참떡 곧 하나님의 떡을 주시기를 원한다고 하자 그들은 떡을 한번 먹으면 영원히 배고프지 않은 떡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런 떡을 주신다고 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들은 졸리던 눈에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생명의 떡을 항상 우리에게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먹고 배고픔에서 영원히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폭탄 선언을 하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무엇이라고 선포하시는 일을 말씀하십니다. 특히 요한복음에서 많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하십니다. 오늘은 그 첫 말씀으로 예수님 자신이 떡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 자신에게 관심을 갖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소유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소유하고 예수님께 와서 믿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에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영혼의 양식이다)

첫째, 예수님은 영혼의 양식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양식으로 우리를 주리지 않게 하십니다. 먼저 양식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줍니다. 양식은 에너지의 변화입니다. 처음 태양 에너지가 지구에 옵니다. 그러면 식물은 물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탄소동화작용을 하여 푸른 잎사귀를 만듭니다. 이 푸른 잎사귀를 초식 동물이 먹고 인간이 먹습니다. 이 초식 동물을 육식 동물이 먹고 인간은 초식 동물과 육식 동물을 잡아먹습니다. 양식은 에너지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양식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에너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 속에 있으면 우리는 힘이 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말세의 때에는 젊은 남녀라도 피곤하고 지칩니다. 그러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청년의 패기를 되찾아 줍니다. 우리가 여름 수양회에서 지라 목동님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는 매우 패기가 넘쳤습니다. 그 패기가 밥을 많이 먹어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생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양식은 만족감을 줍니다. 우리는 먹을 때 행복을 느낍니다. 에덴동산에서도 먹기에 좋은 실과들이 주렁주렁 맺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힘과 만족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우리가 영접하면 우리 마음에 거듭나는 기쁨을 맛봅니다. 거듭나신 분들은 나의 말을 이해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물이다.)

둘째, 예수님은 영혼의 물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물로서 우리의 영혼을 목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물이 몸에서 무슨 기능을 하시는지 아십니까? 물은 먼저 똥오줌 땀에서 섞여서 노폐물을 배출하고 우리의 몸을 정화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물이 없으면 배설을 할 수 없고 배설을 할 수 없으면 우리는 죽습니다. 물은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영양분을 흡수하도록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밥을 먹어도 물이 없으면 영양분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물은 우리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게 합니다. 물이 없으면 여름에는 우리의 몸은 갑자기 온도가 올라가고 겨울에는 온도가 갑자기 내려가 생명이 위독할 것입니다. 더욱이 물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체형을 유지하게 합니다. 물이 없으면 우리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될 것입니다. 이 외에도 물은 피의 삼투압을 조절하고 관절에 윤활유 기능을 하고 신체가 각 기능을 원활하게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이 물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사람은 물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물을 주신다.)

여기서 물은 요한복음 7장을 참고하면 성령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내게 오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자 요한은 이 물이 성령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성령을 받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심령에 솟아납니다. 성령의 강물이 흐릅니다. 성령님이 있어야 말씀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해야 말씀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물이 하는 기능과 유사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물처럼 더러운 죄를 씻어서 우리를 정화시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적당히 뜨겁게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영혼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게 합니다. 우리에게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듯이 성령님을 우리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종합하면 예수님은 생명의 양식이요 생명의 물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현재 힘을 얻고 만족을 얻을 뿐 아니라 부활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새하늘과 새땅에 가서 영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을 하라)

예수님은 생명의 양식으로 목마르지 않고 주리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과 기쁨과 힘을 주십니다. 부족함이 없는 행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이런 양식과 물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예수님께 나가서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는 예수님께 나왔지만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것을 일에 비유합니다.(27)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일을 하는 것은 힘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는 일을 하는 것은 힘이 듭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서 피흘려 죽으신 것을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저주를 대신하여 받으신 것을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그리스도가 되신 것을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왕이요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돈도 쾌락도 나 자신도 왕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나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

예수님을 믿는 자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먼저 믿음은 예수님 안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나 갈렙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들은 긍정적인 생각의 소유자였습니다. 가나안 땅 정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힘이 듭니다.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절대 긍정의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꿈을 꾸라)

다음으로 믿음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꿈을 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소망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한 이미지로 그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름답고 영롱한 미래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상상을 하면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면 우리의 미래는 긍정적이 됩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미래의 꿈을 이미지로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을 믿으라)

우리가 어떻게 미래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를 가져 가셨습니다. 우리의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부활하셔서 실패를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예수님과 ??은 사랑의 관계성을 맺어야합니다. 예수님과 교제하고 연합을 해야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거해야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은 사랑의 관계성을 맺음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이미지를 갖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그 소망을 이미지로 갖게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소망하는 것을 이미 받은 과거의 일로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은 그대로 이루어주십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가고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자가 온다)

36,37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셔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뒤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믿은 사람은 열두 사도들뿐이었습니다. 열두 사도외에는 다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자만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의롭다하신 자들은 예수님께로 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마지막 날에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하나님이 남게 하신 자가 있고 믿는 자가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가 여기에 와서 말씀을 듣고 남아 있다는 하나님이 인도하신 엄청난 기적입니다.

(나오는 자를 환영하신다)

예수님은 나아오는 자를 어떻게 하십니까? 예수님은 결코 내어 좇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열렬히 환영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는 힘없고 돈 없고 가난하고 못생기고 물을 흐리는 자를 내어쫓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라도 내어 쫓지 않으십니다. 저는 초기 개척기 때에 여러 명의 조상을 내어 쫓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날 조금 늦게 왔다고 내어 쫓았고 어떤 사람은 우리 센타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고 내어 쫓았습니다. 서 목자님도 내어 쫓으려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극적인 도우심으로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모임에 나옵니다. 우리는 대학생 성경읽기 선교회기 때문에 대학생이 아니면 내어 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도 내어 쫓지 말아야 합니다. 이들도 변화되면 대학생 역사를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는 누구든지 영접하여 말씀을 전해야합니다.

(예수님은 나오는 모든 자를 환영하신다)

경주를 개척한 박다니엘 목자님도 고등학교 출신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많은 포항공대의 수재들이 변화되어 에수님을 믿었습니다. 안성의 박무디 목자님도 방통고를 나온 고등학교 출신인데 중앙대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대전의 최폴린 사모님은 고등학교 출신인데 배제대를 개척하였습니다. 종로의 심다니엘 목자님은 초등학교 출신인데 성대 앞에서 안경점을 하면서 성대학생들을 초청하여 제자로 양육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기준으로 양들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고 우리 모임에 나오는 자들은 다 뜨겁게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38,39절을 보십시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행하러 오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 주신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긍극적인 목적입니다.
인간은 범죄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잃고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생명 나무의 열매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인 성령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소유한 사람들을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십니다. 예수님이 영광 중에 나팔을 불고 오실 때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새 몸을 주십니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하십니다. 우리을 영원히 살게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마지막 날에 모두 다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새하늘과 새땅에 가서 영생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6장 강해 4부 생명의 떡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6장30-요한복음 6장 40
요절 요한복음 6장 3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장 강해 사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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