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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로마서 1장 강해 3부 하나님의 진노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2,604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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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강해 삼부. 하나님의 진노
말씀 로마서 1장18-로마서 1장 32
요절 로마서 1장 18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로마서 1장 후반부터 3장 전반부까지는 하나님의 심판론을 가르칩니다. 오늘 말씀은 특히 비도덕적인 이방인의 죄를 말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타오릅니다. 사람들은 살아서는 고통하고 죽어서도 지옥에 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의 모든 죄의 뿌리가 무엇이고 이 심판을 피하는 길이 무엇인가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18)

오늘 말씀의 핵심이 되는 단어는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는 것은 하나님이 친히 진노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현재도 타오르고 있고, 장차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 완전히 나타납니다.
먼저 하나님의 진노가 고난으로 나타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 사고는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입니다. 전쟁, 지진, 화산 폭발도 진노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진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사랑하시는 자에게 고난으로 진노하십니다.
다음으로 너무 타락한 경우는 내버려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버려 두는 경우는 최고의 진노입니다.
하나님은 진노를 통하여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의를 주장하여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에게 진노하십니다. 자기의 불의로 진리의 예수님을 믿는 것을 고의로 막는 자들에게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의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자기의 불의로 사는 사람들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이들은 신앙적으로 경건치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도덕적으로 거룩하게 살지라도 신앙적으로 타락해 있습니다.
또한 도덕적으로 불의합니다. 다른 종교를 믿을지라도 생활이 비도덕적입니다. 겉으로는 도덕적이나 속으로는 비도덕적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자들은 신앙적으로도 타락해 있고 도덕적으로 타락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진노하시고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양심 계시)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19)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자들이 나는 하나님을 몰라서 믿지 못했다고 핑계 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그들 속에 이미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양심을 주셔서 죄책감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이성을 주셔서 말씀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자연계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20)

또한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만물에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하셨습니다. 우주와 천체, 천지 만물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생명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신비로움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지혜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늘을 보며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에 덮었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인간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인간에게 분명히 알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모습을 통하여 자신의 살아 계심을 분명히 알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때로는 질병이 나게 하시고 때로는 질병이 치료되게 하셔서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십니다. 때로는 시험에 떨어지게 하시고, 때로는 시험에 붙게 하셔서 자신을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손길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이는 고의적인 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진노하십니다.

(특수계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더욱 분명히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계시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 대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영화롭게 하지 않는 죄)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21)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셔서 아름다운 지구를 주셨습니다. 공기를 주시고 물을 주셨습니다. 먹고 입을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여 자신의 외아들까지 보내 주셨습니다. 개나 소도 주인이 먹을 것을 주면 주인을 알아봅니다. 주인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압니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모든 죄의 뿌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교만입니다. 인간은 중심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자신을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찮게 여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으면서 인간은 정신적으로 타락합니다. 사람들이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지 않을 때 마음은 부패하게 됩니다. 마치 빛이 없으면 어둠이 오고 온갖 병원균이 자라나는 이치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없으면 먼저 생각이 타락합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그 마음에는 탐욕이 들어옵니다. 탐욕은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탐욕으로 진정한 만족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고 불평합니다. 광야에 이스라엘 백성처럼 범사에 원망합니다.
다음에는 생각이 허망해집니다. 생각은 상상력이나 추측을 말합니다. 그들은 쓸데없는 상상을 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계시지 않으면 세상에 있는 일시적인 것이 우리 마음을 채웁니다. 우리는 사는 것이 허무합니다. 모든 일이 무의미하고 권태롭습니다. 죽으면 그만인데 왜 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우연의 연속이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는 말이 참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음에는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없는 사람들이 미련한 사람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들을 줄 모르고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 고집을 피웁니다. 이들은 생각이 어두워집니다. 모든 것이 부정적이 됩니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을 많이 생각합니다. 자신을 보아도 어둡고 세상을 보아도 어둡습니다. 위를 보아도 어둡고, 아래를 보아도 어둡고, 옆을 보아도 어둡습니다. 어둠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게 됩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를 못합니다.

(어리석은 인간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22)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은 지혜롭다고 교만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실로 어리석은 행동을 합니다. 인간은 지혜로 의학과 과학과 철학을 발달시켰습니다.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지혜롭다고 열심히 돈을 모으는데, 돈을 쓰지도 못하고 죽을 때는 하나도 돈을 가져가지 못합니다. 열심히 돈을 버는 지혜는 있지만 쓰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들이 남긴 돈으로 자식들은 서로 더 많이 갖고자 싸웁니다. 지혜를 발전시키지만 어리석게 죽을 짓을 합니다. 인간의 지혜로 과학을 발전시켰는데 인간은 핵무기를 만들고 환경의 재앙을 가져옵니다. 한국동란으로 남북한 합쳐서 오백만이 죽었습니다. 일이차 세계대전으로 사천만 이상이 죽었습니다. 얼마나 미련한 짓입니까? 이것이 인생입니다.

(우상숭배자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23)

하나님을 버린 인간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는 썩어질 사람과 짐승과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숭배합니다. 하나님이 마음의 첫 자리에 없으면 우상이 찾아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대신에 썩어질 피조물을 섬기고 경배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남편을 우상으로 섬깁니다. 예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고목나무를 우상으로 섬기고 돼지대가리를 우상으로 섬깁니다. 마음에 하나님보다 자기를 자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합니다. 자식이나 부모를 우상으로 섬깁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하는 자에게 진노의 불길을 타오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론이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했을 때 진노하시고 3,000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셨습니다.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고 음란해졌을 때 전염병으로 이만 사천 명이 죽었습니다. 우상숭배하는 자는 지금 마음에 불안을 느낍니다. 우상이 조금만 눈에서 없어지면 불안해집니다.

(하나님의 방치)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24)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버리고 피조물을 섬길 때 하나님은 그들을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십니다. 하나님은 책망을 해도 회개치 않으면 내버려 두십니다. 계속 뭐라고 하면 말하는 사람도 피곤하고 듣는 사람도 피곤해집니다. 우리도 자녀들을 아무리 혼내도 듣지 않으면 내버려 두지요? 그와 같습니다.
그러나 아주 버리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내버려 둡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참고 기다리십니다. 집을 떠난 탕자를 오래 참고 기다리십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면 어느 선 이상 내려가지 말라고 선이 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을 넘다가 죽는 사람이 일 년에 서너 명씩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습니다. 그 선을 넘으면 하나님께서는 내버려 두십니다.
잘못을 지으면 징계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잘못을 했는데도 일이 잘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보다 더 큰 심판입니다. 주인은 돼지를 잘 먹이다가 어느 날 주인은 살진 돼지를 잡아먹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를 지어도 잘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탄은 그들을 나중에 살찐 돼지처럼 지옥으로 끌고 가서 잡아먹습니다. 이스라엘 열두지파 중에 단지파가 이렇게 죄를 짓는데도 형통하다가 이스라엘 지파에서 사라졌습니다.

(정욕의 죄에 버려둔 자들)

하나님이 내버려둘 때 맨 처음 찾아오는 것은 바로 더러운 성욕입니다. 더러운 성욕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정상적인 성이 아닌 비정상적인 성입니다. 부부관계가 아닌 성관계입니다. 이런 현상은 심판 받기 전에 노아시대, 소돔과 고모라 시대의 모습입니다. 요즘도 그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결혼 전에 동거하고 결혼한 후에도 바람을 피웁니다. 대학가는 동거촌이 된 지 오래입니다. 드라마는 유부남 유부녀가 바람피우는 내용을 미화시킵니다. 러브호텔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버린 자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25)

이들이 이렇게 정욕적이 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실은 하나님이 창조주요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영화롭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할 구주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들은 이런 진리를 버리고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겼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정욕이 지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한 분만을 영원히 찬송하고 섬겨야 합니다.

(동성애의 죄에 버려둔 자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버리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26,27)

하나님은 계속하여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십니다. 사람들은 음욕이 불일 듯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정욕에서 더욱 자극적인 것을 요구합니다. 사람들은 변태적인 성행위를 즐깁니다. 비정상적인 성행위를 합니다.
여자가 여자로 더불어 성행위를 하고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항문 성교의 성행위를 하는 동성애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남자와 여자의 질서를 파괴하십니다. 이제는 동성애자가 목사가 되고 신부가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러 여자와 여러 남자가 관계를 하는 그룹섹스, 부부를 서로 바꾸어 잠을 자는 스와핑, 동물과 관계를 갖는 수음, 친족끼리 관계를 갖는 근친상간과 같이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짓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마음을 곤고하게 하시고 가정이 파탄 나게 하십니다. 매독, 에이즈와 같은 성병을 주셔서 이미 상당한 보응을 하셨습니다.

(상실한 마음에 버려둔 자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28)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는 당연히 하나님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사람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을 두지 않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상실하고 텅 빈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상실한 그 마음에는 온갖 죄악이 자라나게 됩니다. 더러운 귀신이 일곱이나 들어옵니다.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일을 합니다. 온갖 비도덕적인 행동을 합니다.

(비도덕적인 삶)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29)

그들은 모든 불의 곧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추악한 행동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지나친 욕심 곧 탐욕을 부립니다.
악의가 가득하여 고의로 남을 해칩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시기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자신을 죽여 자살합니다.
분파를 만들어 분쟁하며 싸웁니다. 사기처서 남의 물건을 빼앗고 도둑질합니다. 악독하게 마음이 굳어져 회개할 줄 모릅니다. 마음이 완악하여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앞에서는 아부하고 뒤에서 뒷담화를 하고 수군수군하며 흉을 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30)

하나님을 떠난 이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방합니다. 서로 싸우고 미워하여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을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인격을 무시하고 능욕합니다. 교만하여 자기가 가장 잘 낫다고 생각합니다. 입만 열면 자기 자랑합니다. 의도적으로 무리를 져서 악한 일을 합니다. 자신을 낳아 준 부모를 공경치 않고 부모님 말씀을 거역합니다.

(사이코패스의 죄)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31)

그들은 우매하여 선악의 분별력이 없습니다. 약속을 어기고 신용이 사라집니다. 감정이 메말라 사이코패스가 됩니다. 죄를 지으면서 아무 죄책감이 없습니다. 무자비하게 남을 해칩니다.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며 그것을 즐깁니다. 양심이 마비되었습니다.

(죄를 자랑하는 자들)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32)

사람들은 아무리 죄책감이 없어도 자신이 심판을 받을 것은 압니다. 그들은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들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음을 압니다. 그들은 둘째사망으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죄를 행할 뿐 아니라 그런 죄를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죄를 합리화합니다. 정욕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므로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상황윤리를 내세웁니다. 이런 이론으로 이들은 죄의식도 느끼지 않습니다. 마치 문둥이와 같이 양심이 무감각해져 있습니다.
다 함께 죄를 지으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됩니다. 죄가 문화가 되는 것입니다. 문화적인 타락이 찾아옵니다. 이혼이 자연스럽고 혼전 성관계가 자연스럽습니다. 유부남, 유부녀들의 연애가 자연스럽습니다. 오히려 순결하게 사는 사람이 바보처럼 보입니다. 천연기념물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혼전 성관계를 갖지 않은 사람은 바보 취급당하고 결혼하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연애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참으로 말세입니다.
지옥도 여럿이 같이 가면 갈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죄를 죄가 아니라 해도 죄는 죄입니다. 모두가 심판을 받아도 심판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죄에 대한 깨달음)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내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처음에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알고 고쳐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은 하나님을 알면서 영화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만하여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치 않을 때 십계명을 어기는 온갖 죄를 짓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불신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 앞에 나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이제는 성령을 힘입어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에게 진노가 아니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로마서 1장 강해 삼부. 하나님의 진노
말씀 로마서 1장18-로마서 1장 32
요절 로마서 1장 18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로마서 1장 강해 삼부 끝입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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