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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로마서 1장 강해 1,2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1 00:00:00
조회수 : 4,45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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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강해 일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로마서 1장 1-로마서 1장 13
요절 로마서 1장(3,4)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 말씀을 통해서 변화되었습니다. 로마서 말씀으로 어거스틴이 변화되었고 마틴 루터가 변화되었습니다. 로마서 말씀에 의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르네상스가 일어났습니다. 로마서 말씀으로 기독교가 형성되었고 세계의 역사가 변화되었습니다. 로마서는 개인과 세계를 변화시킨 귀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삼차전도여행을 통해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후 로마 선교의 비전을 가졌습니다. 그는 일이차 전도여행한 곳에서 구제헌금을 거두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에 고린도에 삼 개월 머무는 동안에 로마서를 썼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가면 죽을지도 몰랐습니다. 그는 당시 세계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자 유언적 서신으로 로마서를 썼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바울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귀 뚫은 종 바울)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

바울은 세 가지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자신을 소개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먼저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종은 노예입니다. 노예는 동물처럼 사고파는 존재입니다. 바울은 죄의 종이고 미움의 종이고 탐심의 종이고 율법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를 위해서 피 흘리사 피값으로 죄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예수님의 종으로 살고자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평생 그리스도의 종(a bond servant)으로 살았습니다.
출애굽기 21장에 보면 귀 뚫은 종이 나옵니다. 주인이나 주인이 준 아내를 너무 사랑하여 자원하여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제사장에게 가서 문설주에서 귀를 뚫어 영원한 종이 됩니다. 그는 귀를 뚫어서 평생 주인의 종이 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합니다. 그와 같이 바울은 주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주님의 종이 되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종은 자신의 이름도 명예도 주장도 소유도 자기 의도 없습니다. 종은 이 모든 좋은 것을 주인에게 돌립니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자신이 좋은 모든 것을 다 주인 되신 예수님께 돌려 드렸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사랑하면 종이 되는 것이 행복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명예와 의를 그에게 돌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마음으로 사랑해서 예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모든 명예를 예수님께 돌려드렸습니다.

(사도로 부르심)

바울은 둘째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사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전권대사입니다. 우리가 쓰는 대사라는 말과 같습니다.
처음 사도라고 칭함을 받은 분은 예수님이십니다.(히3:1)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도입니다.
사도라는 말은 처음에는 열두 사도에만 썼지만 나중에는 열두 사도와 동일한 사역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사용하였습니다. 바울도 사도요 바나바도 사도라고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도 사도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사도는 예수님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자로 인정되었습니다. 사도들의 편지는 성경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빛 가운데 나타나셔서 바울을 만나 주시고 아나니아를 통하여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예베소서에서 이 부르심이 창세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먼저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바울의 행위를 보고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바울에게 시험을 봐서 시험 성적을 보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절대적이요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창세 전에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주의 종으로서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선택받은 자)

셋째,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습니다. 택정했다는 말은 따로 세웠다는 말입니다.
사람마다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선발하신 사람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바울을 복음 전하는 자로 뽑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뽑으셔서 복음 전파하는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로 따로 구별하여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유대인들의 사도로 임명한 것처럼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임명하셨습니다. 바울은 헬라어를 잘하고 유대이즘이 없어서 이방인의 사도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성경 66권 강해서를 쓰고 그 말씀대로 사는 가정과 교회를 만들도록 택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시작했다는 말도 되고 하나님 자신이 복음이라는 말도 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계시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음은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 자신을 주시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믿으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기셨습니다.

(큰 기쁜 소식 예수님)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2)

복음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던 것도 잊어버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불화산처럼 소개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승리의 소식입니다. 복음은 주로 전쟁에서 승리한 소식을 전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일본천황이 우리나라에 항복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연합군의 도움으로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일본을 이겼습니다. 일본을 이긴 소식은 식민지 생활에서 고통하던 우리 국민에게 복음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이런 민족적인 복음이 아닙니다. 바울은 인류에게 임한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고해의 연속에서 살아갑니다. 생로병사가 고통입니다.
우리가 이런 고통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이 죄를 짓고 낙원에서 쫓겨나 사단의 통치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범죄한 순간부터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 마음속에 두려움과 불안과 슬픔에 시달립니다. 죄로 인하여 죽어야 합니다.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인간은 죄로 심판받아 영원히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갑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죄에서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실존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한 순간부터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메시야를 통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복음을 시작하셨습니다. 온 백성에게 가장 크고 기쁜 소식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지속적으로 성경에 약속하셨습니다. 사무엘은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에서 온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이사야는 처녀의 몸에서 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에 약속하신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인간 예수님)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3,4)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그 약속대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성경에 약속된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산 어린아이 같은 왕입니다. 예수님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의 영뿐 아니라 우리의 육도 중요하고 물질도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목마르고 배고프시고 피곤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식욕, 성욕, 명예욕이 있으셨습니다. 우리를 이해하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이해하실 뿐 아니라 인간의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져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죄 값을 다 치러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가난과 질병도 지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실 때 죄값을 다 갚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죄 없는 분이므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죄와 저주와 죽음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예수님은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죽음을 이기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우리를 위해서 흘린 피를 영원히 효력 있게 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우리를 사망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여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원수를 발아래 짓밟고 있으십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인이요 왕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토록 살아 계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사 마음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를 불안과 두려움과 슬픔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도우십니다.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하셔서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현재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을 주십니다. 썩지 않고 강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소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예수님을 믿은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신 것은 온 인류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모든 인류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복음입니다.
당시에 황제는 가이사 아구스도였습니다. 그는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가져 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람들의 생사를 주관하는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그의 말에 따라서 사람들은 살고 죽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세계에 평화를 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그리스도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경배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하지만 가이사 아구스도도 죄와 율법과 죽음에서 자유를 주지 못합니다. 그도 죽게 됨으로 죽음에서 자유를 얻지 못했는데 인간을 어떻게 죽음에서 자유를 주겠습니까? 죄와 죽음과 율법에서 자유를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가이사 아구스도가 사람들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를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우리의 결혼과 직장과 물질과 성적과 미래와 장래를 주관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 가장 높으신 주가 되십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돈을 그리스도요. 쾌락이나 가정을 그리스도요.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로 섬기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일시적인 것으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의 그리스도는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이 시간 우리의 그리스도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은혜로 주신 사도의 직분)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5)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은혜로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사도의 직분이 은혜요, 은혜 중에 하나가 사도의 직분입니다. 사도로 쓰임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죄인의 우두머리로 사도로 쓰임 받을 수 없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그를 사도로 임명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모든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전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믿도록 도왔습니다.

(이방인을 믿어 순종케 함)

바울은 사도로서 모든 이방인 중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순종케 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믿음에서 비롯된 순종을 가르쳤습니다.(the obedience that comes from faith.) 예수님께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면 우리는 어떤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예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마음과 입으로만 시인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신다면 삶으로 그리스도를 시인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순종을 배워야 삶 가운데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할 수 있습니다. 순종해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되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기까지 도와야 합니다.

(그 이름을 위하여)

바울의 인생의 목적은 그 이름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예수님을 존귀하게 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그리스도 살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죽는 것도 유익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6,7)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소유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그들은 값진 소유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는 소유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십니다. 기쁨과 평화를 주십니다. 기쁨과 평강은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내적인 선물입니다.

(로마 성도의 믿음을 감사함)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8)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돈을 벌고 출세해서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로마와 아시아에 소문이 나서 감사하였습니다. 그들은 로마 황제보다 예수그리스도를 더 높이며 살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감옥에 가고 불에 타서 죽고 사자의 밥이 되어도 그들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갈수록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단박에 온 세계에 소문이 났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절대적인 믿음으로 인해서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9.10)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말하며 기도했습니다. 항상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사랑하였습니다. 사랑하면 그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들에게 속히 나가서 그들을 보기를 심히 원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습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이 있었습니다. 헬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에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로마에 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가고자 하였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나가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지금은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계획하고 있어서 로마에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를 받으사 바울이 나중에 예루살렘에서 죄인의 몸으로 체포되어 로마에 재판을 받으러 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로마 군사의 호위를 받으며, 죄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로마에 죄인으로 가는 것은 인간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당시에 예루살렘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자 40여 명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죄수로 가기 때문에 보병 200명과 기병 70명과 창병 200명과 백부장의 호위로 보호받았습니다.(사도행전 23장23) 하나님은 로마 군사를 통하여 바울을 거의 왕의 수준으로 경호하여 주셨습니다. 그는 로마에 가면서 총독과 왕과 공회와 군사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배에 탄 군인과 그들이 표류한 멜리데 섬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보기에 좋지 않은 방법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로마에도 복음 전파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11,12)

바울은 여러 번 로마에 가고자 하였습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학문을 배우고 돈을 벌기 위해서 로마에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에 가고자 하는 이유는 달랐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로마에 가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때 로마도 보아야 한다고 비전을 말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서 믿는 자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어 성도들을 견고케 하기 원했습니다. 신령한 은사(some spiritual gift)는 하나님의 은사요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예수님이요. 성령님이요 영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입니다. 바울은 사도의 은사가 있었고, 말씀의 은사가 있었고, 병 고치고, 귀신을 쫓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난 예수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의 복음이 있었습니다. 그가 아는 예수님은 풍성한 분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성령의 은사를 로마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어 견고케 하고자 하였습니다. 로마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여 그들이 로마의 목자가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로마 성도를 제자로 양육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세계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피차 격려를 받고자 하는 바울)

로마 성도들의 믿음과 바울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격려를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특히 부활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죄사함의 복음, 은혜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에 기쁨이 가득 임하는 것을 느낍니다. 분명히 처음 만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뭔가 통합니다. 그래서 한참 이야기를 하고 나면 성령이 가득 임합니다. 공감이 이루어지고 공명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힘이 납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만날 때 이런 공감이 이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세계 선교를 하고자)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13)

바울은 믿지 않는 로마인에게 생명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로마에 가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전도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비전을 가졌습니다. 당시에 로마는 세계의 중심지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제자양성 후에 로마를 통해서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고자 하는 환상에 불탔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님께서도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사도바울을 로마로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에게 여러 번 나타나서 그가 로마에서도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 제목대로 로마에 바울을 인도하시고 로마에서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또한 바울이 로마에 보낸 로마서를 통해서 복음을 체계화시키고 세계화시키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을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바울의 그리스도이시오, 로마성도들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울은 자신이 아는 복음을 로마에 전하고 전 세계에 전하고자 하는 열망에 불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울의 열망을 쓰셔서 로마 선교를 이루시고 세계선교를 이루어주셨습니다.

로마서 1장 강해 일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로마서 1장 1-로마서 1장 13
요절 로마서 1장(3,4)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1장 강해 일부 끝.


로마서 1장 강해 이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장 14-로마서 1장 17
요절 로마서 1장(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고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주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울은 자신이 믿는 그리스도를 어찌하든지 로마에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이 로마와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동기를 말하고 우리는 그 복음을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은 로마서 전반부의 주제입니다. 로마서 1-8장의 주제는 오직 의인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를 배우고자 합니다.

(빚진 자 바울)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14,15)

바울이 세계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울은 빚을 졌기 때문에 빚을 갚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가계 빚이 많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진 빚은 이런 물질적인 빚이 아닙니다. 사랑의 빚입니다.
바울은 부모님 그리고 가말리엘 스승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자신을 거듭나도록 도와준 아나니아 목자에게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자신을 다시 안디옥에 불러서 쓰임 받게 한 바나바에게도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바울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혜의 빚을 졌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사는 율법적인 자였습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저주를 선포하신 대상이 바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바울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오셨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을 핍박하는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삼아 주셨습니다. 바울은 이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은혜의 빚을 세상 만민에게 갚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면 당신의 양을 치기를 원하셨습니다. 헬라인이나 지혜 있는 자에게도 빚을 갚기를 원하십니다. 똑똑하고 도덕적으로 사는 자들에게 은혜의 빚을 갚기를 원하십니다. 무식하고 비도덕적인 사람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빚을 갚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세계 만민에게 빚을 갚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를 통하여 세계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강한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복음을 자랑하는 바울)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16)

당시에 많은 사람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했습니다. 로마사람들은 예수님이 무능하게 십자가에 죽었다고 부끄러워했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예수님이 무식하여 십자가에 죽었다고 부끄러워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표적으로 로마 사람들을 물리치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싶어 뜨겁게 불타고 있었습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바울이 왜 그렇게 예수님을 자랑합니까?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영생이요 하나님 나라입니다. 구원은 자유요, 변화요, 치료요, 안식입니다. 구원은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이런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돈도 권력도 지혜도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믿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로마서에는 특별히 세 가지로부터 구원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죄사함을 주시고, 죄를 이기는 능력을 주십니다.
다음에 예수님은 율법에서 구원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율법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죄를 극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도우십니다.
무엇보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은 우리를 사망 권세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두려움과 슬픔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하십니다. 부활의 새 몸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현실에서도 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하십니다. 현실의 질병이나 물질 문제에서도 구원하여 주십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구원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자랑, 예수님)

사람들이 왜 돈을 자랑하고 학력을 자랑하고 친인척을 자랑합니까? 사람들은 그것들이 자신에게 힘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것보다 더 큰 힘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은 최고의 능력이 되시고 지혜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고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요즘 복음 역사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복음 외에도 여러 가지 상담이나 은사에 관심을 갖습니다. 여러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진정한 생명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복음이신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높일 때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니다. 삶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우리를 변화시키고 치료하시고 자유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의가 되신 예수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생각이 나타나 있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길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요구, 율법의 요구를 다 들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부활하여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일을 다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짐을 대신 져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숨 쉬는 것, 걸음 걷는 것, 세포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맺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십니다. 의롭다는 말은 죄 없다, 사랑한다, 자랑스럽다는 말입니다. 우리로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이웃을 사랑할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한 가지는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의로워짐)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매 하나님은 의롭다고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해서 행위로 의로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매 의로워졌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강도가 무엇을 했습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자신을 낙원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의롭다 해주십니다.
루터는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해서 베드로 성당의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기억하고 벌떡 일어나 올라갔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먼저고 행위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은 또한 우리는 믿음으로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윤리적인 삶도 살 수 있고, 사랑하는 삶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현실이 어떠하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말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하박국 3장 17-19) 하박국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많은 악을 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침략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박국은 현실에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보았습니다. 그는 고민하며 하나님께 왜 이런 현실이 있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믿음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벌한 이방인을 징벌하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십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만민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공의를 이루십니다. 현실이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친히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도 이해되지 않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가 고난을 당하고 불신자가 잘나갈 때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죽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친히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친히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상을 주시고 하나님이 친히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다릴 때 의심과 절망을 극복하고 살 수 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항상 믿음으로)

특별히 우리는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한다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처음도 믿음이요. 중간도 믿음이요. 끝도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시작도 중간도 끝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로마서11장 36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도 은혜로 주십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고 부활의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작도 중간도 끝도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시작은 믿음으로 했지만 중간과 끝은 행위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했습니다. 할례를 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헌금을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행위로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행위는 믿음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믿음으로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헌금을 할 때도 돈의 주인이 그리스도임을 믿음으로 하고 예배에 참석해도 시간의 주인이 그리스도임을 믿음으로 참석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사는 것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전도하고 제자를 양육하는 것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살다가 행위로 마친 갈라디아 성도들을 책망합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려느냐?”(갈라디아서 3장 3절) 우리가 믿음으로 시작하였다면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 위에 믿음)

사람들이 처음에 은혜가 넘치고 눈물을 흘리는데 나중에는 사랑이 식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은혜로 시작했다가 행위로 마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은혜에서 은혜로 사는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한복음 1장 16절) 우리가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 살면 은혜 위에 은혜가 넘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더욱 은혜가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사도바울도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 산 분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율법으로 살았습니다. 그때 그의 신앙생활은 고통에 고통을 더하는 신앙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은혜의 신앙을 배웠습니다. 그는 평생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영광의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자신이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의 영광 위에 영광이 넘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린도 후서 32장 17절) 바울의 삶은 갈수록 영광이 넘치는 삶이었습니다. 야베스도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나가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역대상 4장 10절) 그는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고 갈수록 더욱 복을 내려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야베스는 믿음으로 살아서 담대히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행위를 의지했다면 담대히 기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살아서 복받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항상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로마서 1장 강해 이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장 14-로마서 1장 17
요절 로마서 1장(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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