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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에베소서2장 강해1 1부(2:1-10) 1은혜와 믿음으로 인한 구원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7,056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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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장 일부 강해 은혜와 믿음으로 인한 구원

말씀 에베소서 21-에베소서 210

요절 에베소서 28절 요절(8)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는 1장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택하시고,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음과 성령의 인치심을 통한 구원을 배웠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를 알게 해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2장의 말씀도 구원을 좀더 시간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전의 과거의 나를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오늘과 내일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알아야합니다. 이렇게 구원을 주신 목적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드러내서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

 

1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바울은 인간의 본질을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이유는 허물과 죄 때문입니다.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죽음은 생명과의 단절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어 죽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력을 상실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없습니다.

허물은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죄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서 빗나간 것입니다. 허물과 죄는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가 있으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지 못하고 죽은 자가 됩니다. 여기서 죽었다는 말은 육체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죽어서 무기력 허무 두려움 권태 우울함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을 세 가지로 집약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상풍속을 따름)

 

2a을 보십시오. "그때에 너희가 세상풍속을 좇고"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은 세상풍속을 좇는 사람입니다. 에베소에는 그 당시 큰 아데미 여신상이 있었습니다. 이 여신상은 대지의 어머니며 인간이나 동물의 모든 생식을 장악한다는 오랜 역사를 가진 최고의 여신이었습니다. 12개의 유방이 있어서 만물을 보육하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아데미 전각은 가로 130m 세로 68m의 거창한 대리석 건물로서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입니다. 이곳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제사를 지냈고 제사를 지낸 후에는 의식적 매음 행위를 했습니다. 에베소의 많은 사람들이 아데미 여신상의 모조품을 만들어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또한 그곳에는 미신과 마술이 유행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은 오만(25억 원)어치나 되는 마술 책을 불살랐습니다(19:19). 에베소 성도들은 과거 세상 풍속을 좇아 우상 숭배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사단의 종노릇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의 세상의 풍속)

 

지금도 세상풍속을 좇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의 풍속, 세상의 가치관을 사랑합니다. 물질주의, 인본주의, 쾌락주의 가치관을 따라갑니다. 세상의 유행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갑니다. 육신의 정욕을 따라서 연애하는 사람들이 좋게 보입니다. 술 먹고 담배 피우며 고스돕치고, 거짓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자랑합니다. 자신과 관계되는 자녀, 마누라, 조상을 자랑합니다. 눈에 보이는 호화로운 것들을 사랑합니다. 사치스러운 옷, 치창한 머리, 치렁치렁 걸고 다니는 장식품을 사랑합니다. 세상의 노래가 좋습니다.

세상의 왕은 사단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의 왕 사단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 12장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요한 15:18에 있는 것처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핍박을 받습니다. 이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서 구별된 사람이요, 세상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불순종하는 삶)

 

2b를 보십시오.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사단을 말합니다. 사단의 특징은 요한복음 8:44에 보면 거짓말쟁이요, 살인자입니다. 사단은 교만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천사가 사단입니다. 사단은 살인적이며 파괴적입니다. 오만하고 핏대를 세우며 혈기를 부립니다. 사단에 잡힌 자들은 반항적이고 폭력적입니다. 이들은 권위를 업신여깁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대하여 대적합니다. 영적 질서를 파괴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욕심을 관철하기 위해 권모술수를 동원합니다. 서로를 비방하고 중상모략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진실하고, 순종적이며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들)

 

3절을 보십시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러니"

 

사탄을 따르는 자들은 죄의 소욕. 육체의 소육의 노예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가인과 같은 자들입니다. 가인은 시기심을 따라서 아벨을 죽였습니다. 이들은 노아시대의 사람들과 같습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습니다. 이들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 자유라고 말합니다. 성적 규제를 벗어나서 욕심을 따라 free sex를 즐깁니다. 혼전순결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과 같습니다. 이들을 동성애를 즐기며 폭력적입니다. 그들은 자유를 따라서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멋대로 행동합니다. 이들은 이성이 죽고 몸에 좋지 않은 것만 좋아합니다. 육체의 욕망에 노예가 됩니다. 이들은 겜이나 마약의 노예가 됩니다. 에이즈로 죽을 것을 알면서도 창녀촌에 갑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바로 육신의 욕심의 노예임을 알지 못합니다. 거라사 광인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무덤 속에 가서 옷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욕구불만, 답답함, 그리고 자학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는 진리 안에 있습니다. 인간은 성령을 따라서 살 때 참자유의 생명이 있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

 

바울은 허물의 죄로 죽은 세 가지를 말하면서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구원받기 전의 인간의 모습입니다. 겉모습인 육체는 살아 있으나 정신과 영혼은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아래 놓여있습니다. 이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갈 지들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4절을 보십시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이런 우리가 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까? 한글 성경에는 여기서 중요한 단어 그러나(but)가 빠졌습니다. 인간은 허물과 죄로 인해 진노의 자식이었고, 세상과 사단과 욕심에 빠져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 상황이 계속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성경말씀은 우리를 살려주신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가 긍휼이요, 둘째가 사랑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첫째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풍성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속에는 아무리 솟아도 솟아도 바닥나지 않는 풍성하신 긍휼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긍휼을 통해서 구원받았습니다.

인간의 행동은 구원받을 만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배신하기를 좋아하고, 그렇게 변덕이 심하고, 그렇게 간사하고, 그렇게 교활하고, 그렇게 못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화가 나시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파멸에 이른 우리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긍휼입니다. 우리의 죄보다 하나님의 긍휼이 크십니다.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우리의 죄는 용서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사망권세로 고통하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고독과 소외에 시달리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마음을 갖습니까? 긍휼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긍휼을 받은 사람은 긍휼이 있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을 보면 눈물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오지에 있는 사람, 공산권에 있는 사람, 회교권에 있는 사람, 예수 믿지 않는 가족, 예수 믿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 억울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방황하는 형제자매를 보면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축축히 젖어오는 긍휼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들을 조건과 이유없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긍휼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형제나 교인을 비판의 눈으로 보지말고, 사랑과 긍휼의 눈으로 봐야 합니다. 교회가 긍휼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긍휼을 잃어버린 자는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린 사람은 사람이 날카롭고 비판적입니다.

 

(그 큰 사랑을 인하여)

 

둘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신 이유는 사랑입니다. 사도바울은 그 큰 사랑이 우리를 살렸다고 말합니다. 이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랑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이 만약에 사랑입니다. 만약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나도 너를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네가 나에게 잘해주면 나도 잘 해주겠다 네가 나한테 말을 걸면 나도 말을 걸겠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때문에 사랑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지만 네가 예쁘기 때문에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네가 내 아들이니까, 내 아내이니까, 미워도 그냥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내 양이니까, 내 목자니까, 사랑하는 것도 여기에 속합니다.

마지막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입니다. 네가 죄악됨에도 불구하고 네가 미워함에도 불구하고 네가 나에게 피해를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바울은 사랑을 그 큰 사랑 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이유는 만약에 사랑도 아니고, 때문에 사랑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해주신 것입니다. 그 큰 사랑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첩을 얻고 사명의 땅을 떠나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 부인하고 물고기 잡으러 갔어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세 단계로 구원하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

 

5절을 보십시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여기서 살리셨다는 말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살리셨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는 말은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새 생명을 주사 거듭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보배 피로 죄사함 곧 구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과거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이천년 전에 이미 구원은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을 때 성령을 받고 새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고 감격에 넘쳤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쁨과 찬양이 가득찼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과거의 구원입니다.

 

(함께 일으키심)

 

6a절을 보십시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신다는 말은 현재 부활한다는 말입니다. 부활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실낙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재 사단이 시험합니다. 우리는 육신이 있고 질병과 가난에 시달립니다. 가뭄과 홍수에 시달립니다. 현재 사단은 우리의 마음에 절망과 두려움과 슬픔을 심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이 현재 사단의 세력을 멸하십니다. 이것이 구원의 현재입니다. 그렇게 과거에 우리를 살려 주셨고, 그분이 우리를 살려 주신 것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현재 이 순간에 일으켜 주셨습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 되사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십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사 지혜와 총명을 주십니다. 삶의 방향을 주십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십니다. 여러 표적을 행하십니다. 귀신을 쫓아내주시고, 병을 치료해 주십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현재 학과 공부, 직장, 가정에서 승리의 삶을 살게 도우십니다. 이것이 현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입니다. 부활도 현재적입니다.

 

(하늘에 앉히심)

 

6b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것은 구원의 미래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완성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 앉는 것입니다. 그날 우리는 부활하여 새로운 몸, 영광스럽고 썩지 않는 몸을 입을 것입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영원토록 왕노릇할 것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얻을 영광을 생각할 때 우리는 현재의 어떤 고난이나 슬픔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하늘 보는 것이 저주스러웠으나 예수 믿고 난후 자주 하늘을 본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면 언젠가 예수님께서 구름타고 오실 것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광의 그 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 위엣것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구름타고 오실 것입니다.

 

(은헤에서 나오는 구원)

 

7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이 구원에 대하여 많은 오해들이 과거에도 있고 현재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파라는 이단이 생겼습니다. "구원이 인간의 노력에서 나오느냐? 하나님의 선물이냐?"는 논쟁도 있습니다. 구원을 위한 인간의 어떤 노력은 전혀 필요 없느냐?는 질문도 합니다.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공짜를 기분 나빠합니다.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마실 정도로 굉장히 좋아하면서 공짜로 주면 기분 나빠합니다. 왜냐면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심리가 구원에도 반영됩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은혜로 값없이 준 것은 좋아하는데 기분 나빠합니다. 그러면 뭐냐?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느냐? 그럼 나는 바보냐? 고 말합니다. 이런 심리가 구원의 문제를 야기시켰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자비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은혜의 지극히 풍성하심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은혜의 풍성함을 여러 세대에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은혜는 선물입니다. 성경은 구원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구원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죽지 않고 영원히 살수 있다면 구원은 필요 없습니다. 인간이 모두 죄로 인하여 죽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은혜로 구원해 주십니다.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고 치료하시고 변화시켜주십니다. 참 안식을 주십니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고 지금 하나님 나라에 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선물입니다. 구원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값을 치르지 않지만 하나님은 값을 치러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자비와 은혜로 구원하신 것은 우리를 통하여 자비와 은혜를 여러세대에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에서 나오는 구원)

 

8절을 보십시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은 은혜인데 인간이 해야할 일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인긴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마치 지구가 태양 빛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태양이 에너지를 주고 생명을 보존합니다. 우리는 햇빛을 받아들여야합니다. 믿음과 은혜는 한 단어입니다. 은혜와 믿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믿음은 인간 편에서 본 말이고 은혜는 하나님 편에서 본 단어입니다. 믿게 된 것도, 주님을 찾게 된 것도, 성경 공부하는 마음을 주신 것도 마음을 열어주시고 예수 믿고자 결심한 것도, 내가 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절대적인 은총가운데, 절대적인 주권가운데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 이것은 모든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시작도 중간도 끝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하신 일을 영접하고, 고백하고, 신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믿고 신뢰하고, 순종하는 일이 인간이 할 일입니다. "주어, 옳습니다. 아멘!" 하는 것입니다. 그 은헤에 반응하여 순종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은혜와 믿음 중에 먼저는 은혜입니다. 은혜를 주셔야 믿음도 생깁니다.

 

(값비싼 은혜)

 

그렇다고 구원의 은혜를 값싸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값을 치르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 생명의 피 값을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보다 구원의 은혜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의 은혜를 잃어버립니다.

과거 우리 주위에 물은 흔했습니다. 사람들은 물의 가치를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환경오염이 되면서 물의 가치를 깨닫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식량 전쟁보다도 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공기는 더욱 그렇습니다. 공기는 흔하지만 공기가 없이 우리는 3분을 살기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것을 귀하게 여기고 잘 보존하고 지켜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의 은혜를 잊으면 우리는 타락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또 모든 것이 은혜라고 해서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는 믿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햇빛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누가 발을 밟았으면 발을 밟은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합니다. 예쁜 아가씨가 밟았으면 한 번 더 밟아달라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요. 영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상대방의 뜻과 마음과 사랑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헌신하고 교회에 헌신하고 주님이 맡기신 자들에게 헌신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람에게도 감사합니다. 돈 많은 외동딸이 상대방을 의심하다 보면 시집 못 갑니다. 돈 때문에 상대방이 장가든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믿음에서 나오는 헌신은 수고하면서 수고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헌신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입학허가서를 받으면 믿음으로 기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믿음의 투쟁을 해야 합니다. 믿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현재 부활하여 함께 하시고 장차 재림하여 우리를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구원의 은혜를 더욱 풍성케 주실 것입니다.

 

(선한 일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심)

 

10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친히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 받은 목적은 자신을 자랑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자의 삶은 어떠합니까? 인간은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만들어졌다는 것은 만든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솜씨를 드러내기를 원합니다. 나의 솜씨를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우리를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작품으로 재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자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예술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만드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선한 일을 하도록 지으셨습니다.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선한 이는 하나님 한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19:16-17)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구원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의 목적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평생 폐만 끼치고 살다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남의 신세만 지다가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에게 선한 일 한번 해보지 못하고, 항상 누구한테 도움만 받고, 폐만 끼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살라고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먹고 마시고 자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 전부인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동물적인 삶만 살도록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선한 일을 하라고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살라고 보내셨습니다. 남을 도우며 살라고 보내셨습니다. 구원을 베풀며, 가난한 자들을 보살피며 살라고 보내셨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전하라고 다시 만드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전도하며 살라고 보내셨습니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기 위해서 보낸 것이 아닙니다. 돼지처럼 먹고 마시며 살라고 보낸 것이 아닙니다. 개처럼 성적 욕구를 따라서 살라고 보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돼지처럼, 개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밖에 모릅니다. 입는 것, 먹는 것, 자는 것에 갇혀서 평생을 살아갑니다. 여러 분은 무엇을 위해서 사십니까? 자신을 위해서 삽니까? 나의 영광을 위해 삽니까?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을 위해 사는 것도, 남에게 폐를 끼치며 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남에게 은혜를 나누고, 그리스도께 영광 돌리며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겼는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헤가 얼마나 큰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을 통하여 학교나 직장을 통하여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솜씨를 자랑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여 생명을 살려야합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

 

에베소서 2:10 말씀은 ubf를 시작하신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인생 요절입니다. 이 분은 어릴 때 친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슬하에서 구박을 받으면서 성장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하며 힘들게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 대해서 깊은 운명주의가 있었습니다. 왜 이 고난 많은 세상을 이 고생하며 살아야 하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말씀을 보는 순간 자신이 우연히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가 아니오, 하나님의 크신 뜻 가운데 지음 받은 작품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그 당시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대학생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까지 약 40년 동안 캠퍼스 개척 역사와 세계 선교 역사에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기 전 세상풍속과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좇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과 그 크신 사랑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과거의 죄사함을 받았을 뿐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믿음에 굳게 서서 힘써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전해야합니다. AMEN!!

에베소서 2장 일부 강해 은혜와 믿음으로 인한 구원

말씀 에베소서 21-에베소서 210

요절 에베소서 28절 요절(8)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5 [에베소서] 에베소서2장 강해 2부1(2:11-22) 화평이신 예수님 오요한 2005-03-12
4 [에베소서] 에베소서2장 강해1 1부(2:1-10) 1은혜와 믿음으로 인한 구원 오요한 2005-03-12
3 [에베소서] 에베소서1장 강해1 사부(1:15-23)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오요한 2005-03-12
2 [에베소서] 에베소서1장 강해1 2,3부1(1:7-14) 신령한 복 II 오요한 2005-03-12
1 [에베소서] 에베소서1장 강해 1부(1:1-6) 신령한복I 오요한 200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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