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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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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66권강해서

에베소서1장 강해1 사부(1:15-23)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3,417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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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장 강해 사부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말씀: 에베소서 115-에베소서 123

요절 에베소서 11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우리는 지금까지 지하 감옥에서 바울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창세 전에 선택하시고 예정하시며, 예수님 안에서 죄사함을 주시고, 성령으로 인치신 것을 찬송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신령한 복을 설명하다보니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깨우쳐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도는 에베소 성도에 대한 감사와 그들을 위한 간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감사)

 

15,16절을 보십시오.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기도할 때마다 너희를 말하노라."

 

사도바울은 에베소 성도를 생각할 때마다 끊임없이 감사했습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의 부담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감사가 생겼습니다. 그치지 않는 감사가 생겼습니다. 소리쳐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사도바울은 편지를 쓸 때마다 서두에서 언제든지 먼저 감사 기도를 합니다. 심지어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 하면서도 항상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분파, 음란, 불신, 교만등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항상 감사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 교회에 가본 일이 없습니다. 로마 교회에 편지 하면서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된 것을 감사하였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도 빌릴보성도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골로새 교회의 성도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위한 편지에서도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의 편지에서도 데살로니가 성도를 인해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책망할 때도 감사로 시작하며 충고할 때도 감사로 시작하며 기뻐할 때도 감사로 시작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범사에 감사의 체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복음을 알고 감사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감사할 뿐 아니라 양들에게도 감사를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카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는 누구나 감사거리가 있으면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천사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천사를 보내며 한 천사에게는 기도의 바구니를 주고 다른 천사에게는 감사의 바구니를 주어서 감사제목과 기도제목을 담아 오라고 하였습니다. 두 천사가 왔는데 감사바구니는 밑에 쪼끔 채워져 있는데 기도바구니는 넘쳤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모습입니다.

 

(절대 감사)

 

어떤 사람이 돈 10만원을 도둑에게 빼앗겼습니다. 이 사람은 처음에는 마음이 상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감사제목을 찾아보고 하나님께 크게 감사했습니다. 10만 원 이상은 더 도둑질 맞지 않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돈만 빼앗겼지 몸이 상하지 않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 돈이 불에 타 없어지지 않고 도둑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돈을 빼앗겼지만 마음 속의 예수님을 빼앗기지 않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자신은 돈을 빼앗겼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생명을 강도에게 빼앗긴 것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그는 돈을 통하여 십자가의 예수님을 배우게 된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는 돈을 빼앗김으로 심령에 예수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감사가 솟아났습니다.

우리는 시험에 실패하거나 자동차 사고가 나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특히 기도할 때, 찬송을 하고 감사를 해야 합니다. 한번은 수양회에 가서 저녁에 개인 기도하는데 어떤 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징징거리며 기도합니다. 제가 옆에서 들어도 부담스러운데 하나님이 얼마나 부담스럽겠습니까? 하나님은 먼저 감사 기도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일생 동안 감사한 일이 많습니다. 하루에도 감사한 일이 많습니다. 양들이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감사한 일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몸이 아파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염려가 생겨도 먼저 감사해야합니다. 우리는 먼저 감사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의 조화)

 

그러면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하여 감사한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의 믿음과 사랑이 조화를 이룬 것입니다. 15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에베소 성도들은 믿음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실 믿음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결핍되어 있고, 사랑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의 결핍이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예수님을 주인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믿음에 기초하여 성도들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 뿐 아니라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믿음 없는 사랑은 자선사업입니다. 사랑 없는 믿음은 울리는 꽹과리처럼 시끄럽습니다. 부자가 나사로를 돕지 않은 것처럼 믿음이 거짓됩니다. 야고보서도 믿음과 함께 성도를 섬기는 사랑을 강조하였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사랑을 해야 하고 사랑을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믿음에 기초하여 해야 합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이 두 가지가 잘 균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감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뿐 아니라 지금도 믿음만 강조하지 구체적인 사랑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교회가 부족하여 예수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몰라서 못 믿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는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회는 점점 삭막하고 고독하고 이기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람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찬송소리 높고, 기도소리 높고, 메시지의 소리가 높아도 성경대로 살지 못하면 비극이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세상은 쓸쓸하고 고독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함께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 안에서 서로의 죄를 책임지고 믿어주고 기뻐하며 감사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동시에 경계해야 할 것은 사랑의 실천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믿음을 소홀히 여기거나 상대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휴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휴머니즘을 강조합니다. 예수를 믿든 석가를 믿든 무엇이 중요하냐 사랑만 실천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아무리 사랑을 많이 해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YMCA입니다. 그들은 처음에 믿음으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믿음을 잃어버리고 사회봉사만 남아 있습니다.

참 신앙은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기초하여 구체적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 양면성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것도 중요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믿음과 기도와 말씀에 힘써야 하지만 구제와 사회봉사에도 힘써야 합니다. 둘 중에 하나만을 강조하는 극단적인 신앙은 파멸을 가져옵니다. 우리는 절대 신앙에 기초하여 사랑을 절대 실천하는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17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먼저 사도 바울이 기도하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믿었던 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믿은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믿은 하나님은 영광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항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믿은 아버지는 영광스러운 아버지이십니다. 영광을 받기에 합당한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영원토록 살아계시는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를 아들 예수님처럼 대우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이 믿었던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가 믿으셨던 그 아버지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현실 문제만을 기도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현실 문제에만 급급하면 막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다 잊어버립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찬양과 회개, 믿음과 사랑의 고백과 간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기도하다보면 주시옵소서. 하는 간구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주로 달라고 하는 것도 새로운 성도나 돈이나 성적등이 대부분입니다. 그 이유는 현실 문제에 급급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 문제에 얽매여 있으면 문제의 노예가 되고 마음의 여유가 없고 하나님이 누구신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기도의 내용은 좀 다릅니다. 그는 자신이 감옥에서 나가도록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찬송과 감사를 한 후에 지혜와 계시의 정신(성령)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깨닫고 내면이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첫번째 기도제목입니다. 바울에게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석방이나 돈이나 명예나 학점이나 양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하였지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알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는 몰라도 될 것까지 너무 많이 알고 있습니다. 세상쾌락을 너무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서는 너무나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기도하는 것은 산신령에게 비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봉사하면 불교 신자가 봉사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신앙적 열심을 내면 바리새인처럼 됩니다. 우리 신앙의 기초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습니다. 크신 하나님을 알 때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알 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건을 사랑으로 보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나를 전적으로 신뢰해주시는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나를 소망두시고 키우시는 하나님을 알 때 우리도 소망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피상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좀 더 깊이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깨달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해서 알아야합니다. 여러분은 내가 오요한 목자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인격을 깊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를 알아야 저와 바른 관계가 맺힙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이 맺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은 하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을 알게하여 주십시오이어야 합니다.

어거스틴이 평생 동안 알고자 했던 것도 하나님은 누구시며 자신은 누구인가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격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면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집나간 탕자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사정없이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런 공의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싸고 있어야합니다. 사랑 없는 공의는 사람을 죽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완전하신 주권과 섭리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었을지라도 그에게 이삭을 낳게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역사를 계획하시고 섭리하시고 끝맺으시는 주권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정확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옳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이 하신 일을 보고 말을 할 수 있어야합니다. "주님, 당신이 하신 일이 옳았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알았던 그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믿었던 그 아버지를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나신 그 하나님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가 받는 은혜)

 

우리가 상대방을 알지 못하면 사랑하지 못합니다. 이해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되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되어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맺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우선 구해야 합니다.

사도요한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에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성에서도 중요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알면 사람들과도 사랑의 관계성이 맺어집니다. 무서우신 하나님을 알면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 때 어떤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절대 주권자 하나님을 알 때 우리의 인생길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알고자 힘써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똑바로 알 때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바울은 두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성령이 임해야합니다 첫째는 지혜의 영이요 둘째는 계시의 영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의 성령이요, 계시의 성령이 도와줘야 합니다. 성령이 임해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가 하나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열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우리는 지혜의 마음으로 성경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계시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을 때 하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시지만 사건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러 사건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서 현실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아야합니다. 하나님을 알면 모든 것이 간단해집니다. 모든 것이 해결 됩니다. 모든 것이 쉬워집니다. 모든 것이 분명해 집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실패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각종 질병에 시달립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에 각종 심리학적 이론, 마케팅이론, 엔터테인먼트가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알자)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이 다섯 남자를 찾아서 방황하게 된 것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가 하나님이 누구인줄 알고 구하면 하나님은 생수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호세아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자 힘써 하나님을 알자 그의 임하심은 새벽빛과 같이 어김없으며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일정하게 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 때 정확하게 하나님의 빛이 비칩니다. 하나님을 알 때 성령의 비가 때에 따라서 우리 마음에 임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에 만족이 생기고 기쁨이 생깁니다. 두려우신 하나님을 알면 힘이 생기고 용기가 생깁니다. 담대함이 생기고 패기가 생깁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정혼하고 결혼을 앞두신 분들은 하루라도 못 보면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을 알고자 힘써야 합니다.

 

(마음의 눈을 밝히사)

 

18a절을 보십시오. "너의 마음 눈을 밝히사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먼저 마음의 눈을 밝히도록 기도합니다. 아무리 눈이 좋아도 빛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세계가 아무리 넑고 커도 하나님의 빛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셔야 우리는 마음의 눈이 밝아집니다.

 

(부르심의 소망을 알도록)

 

바울은 먼저 부르심의 소망을 알도록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사도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택한 그릇으로 부르셨습니다. 긍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두고 부르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은 후 나중에 부르심의 소망을 깨닫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음과 동시에 부르심의 소망을 깨닫습니다. 부르심의 소망은 목사나 스텝 목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풀타임으로 부르셨고 어떤 사람은 파트 타임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이 시대에 UBF를 통하여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쓰셔서 세계 캠퍼스 개척 제자양성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이 부르심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영광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의 부르심은 영광스럽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로마와 세계선교를 이루고자 소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복의 근원의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고자 하셨니다. 베드로를 부르실 때 교회의 반석으로 소망을 두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부르실 때 왕같은 제사장으로 소망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큰 민족의 양떼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세계적인 말씀의 종 기도의 종이요 목자 교수로 소망을 두고 부르십니다. 우리에게 캠퍼스 개척 역사에 소망을 두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실 때는 쓰시고자하는 소망을 갖고 부르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늘나라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소망을 두고 부르십니다. 나에게는 천안 개척을 하고 성경 강해를 쓰도록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세계선교를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기업의 풍성함을 알게 하심)

 

18b를 보십시오.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기업이 함께 따라 옵니다. 기업이란 우리에게 주시는 재산, 소유를 의미합니다. 상속재산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자녀도 우리의 기업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땅, 자녀나 양들은 우리의 기업입니다. 하나님은 천안과 세계 233개국 캠퍼스를 우리의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천안 캠퍼스는 우리의 땅입니다. 천넌 왕국의 때에는 이 지구를 신자들에게 왕노룻하도록 기업으로 주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하늘과 새땅의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기업이 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기업은 풍성합니다. 특별히 에베소서에는 풍성이란 말이 많이 나옵니다. 이는 우리의 생각보다 넘치도록 많이 주신다는 말씀이십니다. 아브라함은 한명의 아들을 기업으로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뭇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양떼를 기업으로 주실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좋은 곳입니다. 하나님은 하늘나라에 멘션을 짓고 우리를 기다리실 것입니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새로운 몸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심)

 

19절을 보십시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인들에게 능력을 주시도록 기도하지 않고 이미 있는 능력을 알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능력을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지극히 크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힘의 강력으로 일하십니다. 여기서 힘의 강력은 이기는 힘, 승리하는 힘, 사단을 완전히 정복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넘어뜨릴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어떤 골짜기라도 높일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그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태산 같은 힘을 말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힘으로 역사하십니다.

여기서 일하신다는 것은 현재진행형으로 지금도 일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믿는 자들에게만 일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절정은 부활의 능력입니다.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능력이 크신 예수님)

 

20~22절을 보십시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하늘에 오르게 하사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셨습니다. 모든 정세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것 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의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사단의 권세 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부활의 권세)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이 뛰어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만물이 예수님 발 아래 복종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능력은 권세, 지위와 같은 개념입니다. 예수님은 사망권게를 이기시고 부활 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이 세상의 최고의 권세는 사망 권세입니다. 사람들 가운데 권세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히틀러, 징기스칸, 진시왕 이들은 막강한 권세를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권세 있는 자들도 사망권세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망권세는 최고의 권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어떤 권세보다도 힘과 능력이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셨습니다. 병자와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죄사함을 주시고 오천 마리의 떼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 앞에 복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권세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권세를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는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

 

바울은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지극히 크심이"라고 말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믿는 자가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순종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릴 때 하나님은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얼마나 대접해 드립니까? 하나님은 대통령보다 참모총장보다 대법원장보다 그리고 국회의장보다 더 높게 대접해 드립니까? 우리가 말씀을 받는 자세, 기도드리는 자세는 어떠합니까? 모임에 참석하는 자세, 주의 종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합니까? 주의 종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느 정도 순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십니까? 하나님의 존전을 인식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겨 드려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내면에 강력으로 역사하십니다.

바울은 이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능력을 알게 해 주는 믿음의 비밀을 체험했습니다. 그가 체험한 하나님의 가장 큰 능력은 자신의 변화입니다. 그는 이 사랑의 능력으로 자신이 변화되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자가 예수님을 증거하던 자로 변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많은 사람이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사망권세에서 해방되어 생명을 얻었습니다. 의롭다함을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바울을 통하여 이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성도들은 이 능력을 자기의 것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지극히 크심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하나님의 능력이 지극히 크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 능력을 알 때 슈퍼맨이나 슈퍼우먼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극히 크신 예수님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교회를 통하여 나타나는 능력)

 

22b,23을 보십시오.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하나님의 충만한 능력이 교회를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머리가 갖고 있는 지혜의 능력은 몸의 손과 발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는 자의 충만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교회 안에 거하시면 부족함이 없고 충만해집니다. 하나님으로 가득차고 넘쳐나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신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심룻 목자의 건강을 주신 분도 이 능력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변화시킨 것도 이 능력입니다. 우리는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지극히 크신 능력을 알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 능력이 믿는 우리 교회에 나타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을 머리로 모시고 복종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마음의 눈을 밝히사)

 

18절 전반부를 다시 보십시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아질 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눈이 멀어져 있습니다. 물질로 인하여 세상 욕심으로 인하여, 사단의 역사로 인하여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불신의 죄, 교만의 죄, 정욕의 죄로 인하여 우리의 눈이 멀어져 있습니다. 소경은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욕심과 죄를 회개하고 눈을 밝혀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을 밝혀두시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성령님을 믿어야합니다. 말씀을 믿어야합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간절한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밝히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며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지극히 크심을 알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를 통하여 그 능력이 나타나도록 기도합니다. 아멘

에베소서 1장 강해 사부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말씀: 에베소서 115-에베소서 123

요절 에베소서 117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에베소서 1장 강해 4부 끝입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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