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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수양회 2강 메시지 돈보다 예수님이 좋다

작성자 : 천안UBF
작성일 : 2023-07-06 11:26:54
조회수 : 75

돈보다 예수님이 좋다

사도행전 31~10

요절 사도행전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안녕하세요! 주제 말씀 2강 돈보다 좋은 예수님을 전하는 최요한 목자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평생 앉은뱅이로 살아왔던 남자가 어떻게 일어나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됬는지 알아보고자 하는데요! 여러분, 여러분은 인생의 행복의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단기적으로는 시험합격, 취업, 여행 이런게 있겠고 장기적으로는 건강, 행복한 결혼생활 이런게 있겠네요.

 

제가 단국대학교 학생들에게 전도하면서 나눠준 설문지 3번 문항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행복의 조건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그에 대한 선택지는 자유, 마음의 평안, 사랑, 자아를 실현하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사회에 공헌하고 유익을 주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이 있습니다. 이 중에 학생들이 뭐를 가장 많이 골랐을까요? 마음의 평안이 제일 많았고, 자유가 두 번째로 많았구요, 사랑이 세 번째로 많았습니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이 가장 많을 줄 알았는데 마음의 평안이 가장 많이 나온 것에 놀랐습니다. 평안이 무엇일까요? 편안과 평안,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둘은 다릅니다. ‘편안은 몸의 상태가 좋은 것을 뜻하고 평안은 몸과 마음의 상태가 좋은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니까 학생들은 마음의 상태가 좋은 평안을 원한다는 뜻이겠죠. 그래도 돈이 싫다는 것은 아닐겁니다. 돈은 우리 생활에 도움이 되고 삶을 편안하게 해주니까요. 하지만 돈이 평안을 가져다 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돈은 오히려 마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저는 주식을 해본 적이 있는데 주식이 얼마나 떨어졌을까 혹시 대박이 터져서 부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해야할 일에 집중하지 못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럼 이 마음의 평안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여기 여름수양회에 오신 여러분들은 이미 답을 알고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소유할 때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통장에 돈이 채워지고 좋은 직장에도 취업하게 도와주십니다. 설령 돈이 부족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소유한 예수님으로 인해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왜 예수님을 소유해야 하는지, 왜 돈보다 예수님이 좋은지 배우고 우리가 소유한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길 기도합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요한과 베드로가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면서 말씀이 시작됩니다.

제 구 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12제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계실 때는 기도하러 갔다가 졸았다는 말만 나올 정도로 기도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다가 졸아서 예수님께 꾸중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 제자들이 이젠 스스로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변화할 수 있던 이유는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볼 때 신앙생활은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성령이 임하고 성령의 힘을 체험해야 스스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저도 군대에서 양식을 읽으며 성령의 힘을 체험했을 때 양식 읽는 습관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믿음이 있는 곳에 임하시고 힘을 내시기 때문에 성령이 소멸되지 않도록 말씀 읽기와 기도를 꾸준히 해야합니다.

2절과 3절에서는 앉은뱅이가 등장합니다.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나면서 못 걷게 된 앉은뱅이가 된 사내가 있었습니다. 후천성 장애로 못걷게 된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하반신마비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 앉은뱅이는 걷는 법을 모릅니다. 이 당시에 휠체어가 있던 것도 아니고 의족이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은 같이 축구하고 농구하며 뛰면서 놀았지만 자신은 친구들이 노는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게 당연했습니다. 부모의 품에 있었을 땐 보살핌이라도 받았겠지만 다 큰 성인이 되고 나서는 독립해서 경제활동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장애라는 것이 죄라고 여겨지는 시대에 누가 앉은뱅이를 고용할까요. 자신의 몸을 지탱하지도 못하는 다리로 경제활동이란 완전 100% 불가능해 보입니다. 경제활동도 못하고 기초생활수급비도 받지 못하는 그는 구걸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앉은뱅이를 내버려두지 않고 구걸할 수 있게 아름다운 문이라는 뜻의 미문이라는 성전에 매일 두었습니다. 앉은뱅이는 누군가가 종으로라도 거둬들이지 않는 이상 앞으로 평생 구걸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의 나이 40대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막막할까요. 마치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동안 연못에 들어가려고 했던 병자와 비슷해 보입니다. 이 병자는 아무도 자신을 연못으로 옮겨줄 사람이 없어 자신과 주변을 원망했습니다. 앉은뱅이도 오랜시간 구걸하는 자신의 모습이 원망스럽고 세상이 원망스러웠을 겁니다. 더 이상 다리가 나을 것이란 소망도 없어진 채 그 마음으로 평생을 구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좌절하며 있는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38년된 병자에게는 직접 만나서 병고침과 죄사함을 주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떠나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앉은뱅이를 직접 만나주시지 못하지만 요한과 베드로를 앉은뱅이 앞으로 지나가게 하셔서 마음을 치유하고 소망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앉은뱅이는 자기 앞을 지나가는 요한과 베드로를 보고 돈을 달라며 구걸했습니다.

돈 좀 주십쇼, 돈 좀 주십쇼. 저는 앉은뱅이라 일을 못합니다. 돈 좀 주십쇼.”

 

앉은뱅이가 구걸할 때 베드로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4절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먼저 우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왜 자신들을 보라고 했을까요? 2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일을 하시기 전에 먼저 관계성을 맺고자 하십니다. 남편이 많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우물가에서 물을 달라 하신 것처럼 대화를 통해서 관계성을 먼저 맺길 원하십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로 앉은뱅이와 관계성을 맺고 싶어서 우리를 보라고 한겁니다. 둘째는 베드로와 요한이 소유한 예수님으로 인해 행복한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했지만 좋은 자리를 탐하고 두려움에 떨어 예수님을 배반했던 이전 모습과는 달리 예수님을 영접하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도 예수님으로 인해 행복한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보라고 한겁니다. 예수님을 소유한 우리도 누군가에게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어떻게 저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예수님을 믿으면 정말 저렇게 행복해질까 궁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또 자연스레 전도가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앉은뱅이에게 자신들을 보라고 했습니다. 앉은뱅이는 고개를 숙여 구걸하느라 그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앉은뱅이는 베드로의 말을 듣고 얼마나 줄까 기대하며 그 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거나 돈만 띡 던져주고 가는데 자기를 보라하니까 기대를 안할 수가 없었겠죠. 거기서 베드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앉은뱅이가 혹시라도 큰 돈을 받을 것을 기대할까봐 은과 금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앉은뱅이가 이 말을 듣고 실망하기 전에 또 말합니다. 요절 말씀인 6절 후반부와 7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아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서 걸으라니! 앉은뱅이는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지금 앉은뱅이한테는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게 이 돈인데, 돈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준다뇨. 그리고 평생을 앉은뱅이로 산 사람한테 일어나라니. 이것은 분명 앉은뱅이 자신에 대한 놀림과 모욕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이 준다는 이름은 치유의 권능이 있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었습니다. 앉은뱅이는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행복해보여서 나도 그 예수님을 영접하면 이 사람들처럼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소망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소망은 곧 믿음으로 바뀌었고 예수님이 앉은뱅이의 좁고 어두웠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겨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앉은뱅이는 자신의 두 다리로 서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발과 발목에 힘이 들어가고 스스로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7절과 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 서있어요! 제가 제 다리로 서 있어요!”

앉은뱅이는 스스로 놀랍고 기뻐서 자기 다리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 보았습니다. 평생 앉은뱅이로 살 줄 알았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준 예수님을 영접하자 다리가 고쳐지고 일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얼마나 기쁘면 말씀에서도 걷기도 하고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고 말했을까요. 마치 하람이와 예성이가 웃으면서 뛰어노는 것처럼 뛰어다녔을 것 같습니다. 앉은뱅이는 이 기쁜 마음을 단순히 기뻐하는 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일으켜주시고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주신 예수님께 기도하러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으로 기도하러 들어갔습니다. 이제 앉은뱅이는 구걸하러 성전문으로 나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구걸하며 모인 돈이 적어 굶을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제 그는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돼서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앉은뱅이에게 큰 돈을 주실 수 있는 능력이 되셨지만 돈 대신 예수님 자신을 주셔서 평생을 앉아 살면서 받은 상처와 죄와 슬픔을 모두 치유해 주시고 다리까지 치유해주셔서 돈문제까지 해결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한 분만을 소유했을 때 나타난 변화입니다!

 

그럼 이제 왜 돈보다 예수님이 좋은지 아시겠죠. 제가 처음에도 말씀을 드렸죠. 마음의 평안은 스스로 노력하거나 돈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 한 분을 소유했을 때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대속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한 번 선택하신 사람은 절대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내 인생 문제들을 해결해주실 능력이 있으시고 이 문제들을 가지고 나올 때 가장 선하신 방법으로 도와주십니다. 앉은뱅이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고 40년동안 때를 기다리셨다가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말씀을 통해서 도우셨습니다. 하지만 때론 문제를 가지고 나와도 바로 도와주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으셨나요? 하나님께서 가장 적당한 때를 기다리시는걸 수도 있고 어쩌면 평생 도와주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곧 문제 해결이 내 행복이 되지 말고 예수님 한 분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천국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처럼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풍족하게 예수님 없이 살다가 죽어서 지옥에 간다면 세상에서 얻은 행복으로 사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비록 빚이 1억이 있고 건강하지도 못해 힘들게 살더라고 예수님 한 분만으로 행복하게 살다가 천국가는 것이 백배 천배, 모든 걸 다 곱해서 훨씬 낫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때로 앉은뱅이를 치료해주지 않으실 때도 있습니다.

 

저에게는 천만원이 있습니다. 빚이 천만원입니다. 대학교에서 6학기동안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감면해도 천만원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 빚 때문에 제가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심적으로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돈을 예수님께서 갚아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미 제 마음에는 이 빚을 다 갚아주셨다 믿고 있어서 마음이 편합니다. 그리고 돈이 부족할 때면 여러 방법으로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저번주에는 근로 장려금으로 120만원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제 다친 무릎 때문에 크게 절망한 때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 축구를 하다가 무릎을 다쳤고 고3 입시체육을 준비하다가 연골이 찢어져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운동은 계속할 수 있어서 ROTC의 꿈을 가지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남들 술 마시고 놀 때 ROTC를 위해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필기, 체력, 면접 모두 다 통과했지만 무릎 때문에 신체검사에서 4급판정을 받고 ROTC에서 떨어졌을 때 크게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일반 병사는 3급이라 아픈 무릎으로 병역의 의무는 해야되서 더 크게 낙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 무릎을 다치게 하시고 이것 때문에 제 꿈까지 포기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됬습니다. 차라리 확실하게 다쳐서 면제를 주시지 애매하게 다쳐서 일반 병으로 군대를 가야된다니 너무 처참했습니다. 무릎이 건강했으면 특수부대라도 들어가서 멋지게 복무했을텐데 이젠 ROTC조차도 못하게 되어서 제 무릎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다 19년에는 운동을 계속 하다가 무릎이 더 안좋아져서 수술을 한번 더 받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운동만 한건데도 무릎이 안좋아진거면 ROTC를 했으면 더 안좋아졌을거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제가 군훈련을 받아 더 심하게 다치지 않고 더 큰 일을 겪지 않게 하시려고 저를 보호하셨다는 생각에 마음에 감동과 감사가 생겨났습니다. 저는 당장의 일을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더 멀리 보시고 저에게 좋은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하지만 수술을 하니까 무릎이 전보다 더 안좋아졌습니다. 상태가 얼마나 안좋아졌냐면 예배 사회자로 단상에 서있는 그 시간도 가만히 서 있는게 힘들정도였습니다. 평생 아픈 무릎으로 살아야 하고 회복가능성도 없다보니 군대에 대한 걱정도 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많은 목자님들이 걱정해주시고 기도로 응원해주셔서 저도 거의 포기한 제 무릎을 낫게 해주시길 믿고 기도했습니다. 막상 군입대를 하니 걱정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훈련을 못받으면 퇴소조치가 된다길래 몸이 안좋아서 미리 퇴소하는 훈련병들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너무 부러웠고 무릎 핑계대고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차 타고 40분이면 집에 가는데 무릎아니라 그냥 집에 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근데 군대 간다고 응원 다 받고 집에 돌아오기는 자존심이 상해서 받을 수 있는 훈련만 받고 나머지는 참관훈련만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무릎이 아프기는커녕 모든 훈련을 다 수료하고 사단장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교로 선발되어서 군생활 동안 같은 훈련을 반복하는데 아무런 아픔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훈련이 끝나면 가끔 통증이 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즉시 통증이 사라지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제 원대한 꿈도 포기하고 평생 불구로 살아야하는 실패자로 생각했지만 군대에서 가장 선하신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알게 되니까 더는 실패자가 아니라 성공자로 생각이 바뀌어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심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내 행복의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됬을 때 내가 가진 꿈, 건강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예수님 한 분 만으로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행복해지기만 한게 아닙니다. 전역 후에도 취업 문제로 마음이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을 말씀공부를 통해 알게 해주시고 제 지식과 능력은 뛰어나지 않아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겸손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앉은뱅이는 이제 일어서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과 성전으로 가면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나를 일으켜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큰 소리로 찬양하는 사람이 누구인고 하고 봤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9절과 10절을 보겠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사람들은 그 걸으며 찬송하는 사람이 항상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인 것을 알고 놀랍게 여기며 놀랐습니다. 아까 성문을 지나갈 때 구걸하고 있던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걸어다니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크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앉은뱅이를 회복시키신 예수님의 능력과 그 능력을 행하신 예수님을 소유한 베드로와 요한에게도 놀랐습니다.

 

결론입니다. 앉은뱅이는 우리 근처에도 있습니다. 천안 터미널에는 돈이 없어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터미널에 자주 다닐때는 그 분들이 보이면 돈을 넣어주고 가기도 했습니다. 돈이 없어 구걸하는 사람들만 앉은뱅이일까요? 우리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마음에 예수님이 없는 앉은뱅이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돈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도와주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돈이 끼어들면 관계가 금방 깨지기 쉽고 처음엔 돈을 받게되면 감사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돈을 받는 것이 당연하게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들을 위해 해야할 것은 우리가 소유한 예수님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소유하게 된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돈이 채워질 수 있고 인간관계가 문제인 사람들에게는 관계회복, 건강이 안좋은 사람들은 건강의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욥처럼 재산, 건강, 가족 모두 빼앗긴 것처럼 각자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 해도 자신이 소유한 예수님으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어디 문제 해결뿐일까요. 부정적인 생각만하던 사람들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고 우울하던 마음이 밝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주변사람들도 변화된 사람을 보고 예수님을 소유하게 되는 복음전파 역사가 이뤄지게 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잘 소유하고 있다가 앉은뱅이를 만난다면 그 앉은뱅이에게 예수님을 주어서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그 앉은뱅이가 다른 앉은뱅이에게 예수님을 주는 복음전파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돈으로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 이유를 쓸까?

 

배울점, 행복의 조건이신 예수님을 소유하기 위해 해야할 것

믿음, 순종

소유했으면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할 것

소유한 예수님을 갖고만 있지 말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줄 것

 

그리고 내 스토리

 

예수님을 소유하면 나타나는 변화 몇가지

 

예수님을 소유했을 때 난 행복할 수 있다

? 한 번 선택하신 사람을 절대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소유했으니까

그리고 예수님은 내 인생 문제들을 해결해주실 능력이 있으시고 실제로 도와주신다.

하지만 인생문제를 해결해주시지 않더라도 나는 예수님으로 인해 행복하다

결국 나는 예수님께서 함께하시고 죽어서는 아무런 걱정없는 천국에 가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비록 힘들게 살았어도 건강하지 못했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면 버틸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풍족하고 행복하게 산다 해도 지옥에 간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앉은 뱅이는 우리 근처에도 있습니다. 천안 터미널로 가면 횡단보도 앞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안역, 두정역, 성환역에도 있습니다. 그들의 하루 일과는 가만히 앉아서 자면서 돈이 모아지길 기다리다가 모은 돈으로 밥 먹고 따듯한 곳을 찾아서 자는 겁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보이면 현금이 있을 땐 두고 가지만 현금이 없으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지나갑니다.

! 예수님은 수많은 앉은뱅이들이 살기 좋게 도와주시지 않는걸까요?

앉은뱅이는 진짜 돈없는 사람 그리고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

그런 사람들을 돈으로 도와줘도 당시엔 감사해도 시간이 지나면 더 돈을 달라고 요구할 뿐

진짜로 줘야할 것은 예수님.

물론 돈으로도 도와줄 수 있지만 소유한 예수님을 주어서 영적으로 복음을 가득채워 행복하게 해주자]

 

앉은뱅이가 예수님을 소유한 것을 통해 우리가 배울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믿는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이 소유한 예수님을 자신도 소유한다면 행복해질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내면에 생겨났습니다. 바로 그 믿음으로 앉은뱅이는 예수님이 치유의 역사를 이뤄내실 준비를 한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큰민족을 이루게 하신다는 약속을 하신 하나님을 믿었을 때 의로운자라 부르셨고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비록 겨자씨와 같은 아주 작은 믿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으로 치유의 역사를 이뤄내셨습니다. 반면에 아무런 믿음이 없던 예수님의 고향에서는 예수님께서 어떤 기적도 행하시지 못하셨습니다. 우리가 혹시 작은 불신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바로 회개하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예수님과 앞으로도 인도하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로 순종입니다. 앉은뱅이가 베드로의 손을 뿌리치고 돈이나 달라고 했으면 어떻게 됬을까요. 평생 죽을 때까지 앉은뱅이로 살면서 구걸하다가 죽어서 지옥에 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앉은뱅이는 베드로의 손을 잡고 그대로 일어났기 때문에 죄 문제, 걷는 문제, 돈 문제 모두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앉은뱅이는 믿음과 순종으로 예수님을 영접해서 죄에서 구원받고 다리가 고쳐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앉은뱅이를 통해서 믿음과 겸손을 잘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아니죠. 이 마음이 원한다고 해서 평안해질까요? 세상을 살면서 이 걱정 저 걱정하면서 살다보면 마음은 어느새 평안이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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