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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는가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07-17 00:00:00
조회수 : 762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는가

눅 17:11-19

요절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시간 나눌 말씀은 감사에 관한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각자가 자신의 감사지수를 체크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앞에 올바로 서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험하고 험한 세상에서 우리가 힘에 부치는 고난과 고통을 당할 때 감사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을 당하고 사기를 당하고, 손해를 볼때에도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할수가 있는것일까요?

예수님을 오래 믿었다고 해도 ‘하나님, 이런 시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란 말이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주인공들은 나병환자들입니다. 그들의 삶가운데에서 과연 감사는 인생에 어떤 결과와 파장을 일으켰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11-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한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서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실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 가시다가 한마을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문둥병자 열명이 담대하게 예수님께 나와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여기 문둥병자 열명중에 아홉명은 유대인이고 한명은 사마리아인입니다. 그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혼혈아라는 이유로 유대인들로부터 괄시와 멸시를 받았습니다. 함께 있지도 아니하고, 대화도 꺼려하던 존재였습니다. 개같이 여겨지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인공은 바로 사마리아인입니다. 이 사마리아인의 인생을 크게 4가지 단계로 나눠 그 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을 통해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를 대입시켜 보는 시간이기를 기도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나는 불평한다. 고로 존재한다.

먼저 나병이 어떤 병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나병은 치료하지 않고 그냥 놔두면, 신경계의 합병증으로 인해 사지의 무감각과 근육의 병적인 증상이 발생합니다. 또한. 촉감, 통각, 온도 감각이 소실되고, 위치감각과 진동감각도 없어집니다. 나균에 가장 흔히 침범되는 신경 부위는 팔꿈치이며, 4번째와 5번째 손가락이 갈퀴처럼 변형됩니다. 손목 처짐이나 발목 처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에 감각이 소실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외상을 입어도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이차 세균 감염이 발생하면 손가락과 발가락의 말단 부위가 떨어져 나가기도 합니다. 이처럼 나병에 한번 걸린다는 것은 그 인생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나병은 못된 죄인에게 하나님께서 형벌을 내린 극한 처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름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상처에 닿을 때 전염되어, 사람들은 무서워하여 가까이 하기를 꺼립니다. 그래서 사회에서 사람들과 같이 살수 없고, 사랑하는 가족과도 이별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다가오면 자기의 부끄러움, 자기의 불결함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나는 부정합니다. 나는 부정합니다.” 그것도 입을 가리면서 침이 튀지 못하게 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큰소리로 외치면서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경계 신호를 해야 했던 그런 병이었습니다. 나병 걸린 환자는 얼마나 자기삶을 통탄하고 서러워했을까요? 첫째 이 사마리아인의 삶은 ‘나는 불평한다 고로 존재한다“입니다. 그는 틈만 나면 자기 인생을 묵상하며, 불평과 원망을 벗삼아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수없이 삿대질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왜 나한테 이런 벌을 주셨습니까?“ 하고 따지느냐고 수없이 많은 불면의 밤을 지새웠을 것입니다. 그의 심정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나는 나병이 걸리기 전에도 핍박 받고 괄세 받던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에게 나는 개였다. 그들은 나와 대화는 커녕 욕하고 삿대질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나는 꿈이 있었다. 나는 사마리아 사회에서 훌륭한 일을 하고 싶었다. 인생을 의미있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날 나는 나병에 걸리고 말았다. 이유도 알수 없이 나는 나병환자가 되었고 사람들에게 쫓겨났다. 나에게는 사회생활도, 직장생활도 허용되지 않는다. 현재 내몸은 엉망진창이라 아무 감각도, 통증도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손가락, 발가락은 하나씩 없어진다. 나는 엄청난 두려움과 슬픔과 무기력함속에 살고 있다. 내 인생은 버림받았다. 하나님은 왜 내게 이런 엄청난 벌을 주신것일까?

내가 건강했더라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멋진 인생을 살았을 텐테..... 그러나 현재 내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갇힌 세계뿐이다, 내겐 아무런 기회도 없다. 또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이유와 의미는 아무것도 없다.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빨리 이 저주받은 삶을 끝내고 싶을 뿐이다‘라고 탄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님 여러분!

우리가 비록 겉으로는 문둥병자가 아니지만 이런 원망과 불평이 얼마나 가득합니까? 우리의 마음 속은 각종 죄로 인해, 썩어 문드러지는 마음을 품고 있을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인생을 저주하고, 쉽게 절망하고 낙담하고, 주저 앉아있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말하는 것마다 불평이요, 말하는 것마다 원망이요, 말하는 것마다 삶에 대한 절망이요, 말하는 것마다 남에 대한 조롱이요 비판과 판단입니다. 자기가 고통스러우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삶의 문제의 원인을 전부 다 다른사람 때문이라고 돌리고, 비판의 속사포를 쏘아댑니다. 그러면서 더욱 마음과 몸과 삶은 무너져 갑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삶을 불평하고 저주하느냐고 온통 낭비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나는 소망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그때 들려왔습니다. 예수님이 가까운 동네에 오셨다는 소문이 급속도로 퍼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가까이 다가갈수 없었습니다. 그냥 멀리서라도 예수님이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주목해 주시도록 있는 힘을 다해서 부르짖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곁에 있었던 아홉명의 나병환자도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열명의 문둥병자들은 합심하여 주변에 있는 사람들보다 가장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위대한 괴력을 발휘하게 했습니다. 또한 같은 고난은 그들을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한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뭐라고 외쳤습니까?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은 태어난 이후로, 이때가 가장 간절히 애타게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예수님을 향해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 다른 사람들도 다 고쳐주시는데 우리도 고쳐 주옵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우리는 저주 받은 인생입니다.” 하고 소리쳐 외쳤습니다. 이들의 간절한 바램과 소원은, 그대로 예수님에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애가 끓는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능력의 역사하심을 바라는 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삶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이 사람들을 향해서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14절을 다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예수님은 우리의 간절한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해줘도 좋고 안 해줘도 좋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가면 예수님은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불쌍히 여기시지만 우리의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의 질병이 모두 치유되도록 간절히 구하는 믿음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나는 순종한다 고로 존재한다 입니다.

“예수님이 이르되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 당시 문둥병자는 병이 다 나았다고 해서 바로 정상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에게 직접 가서 그 완쾌한 몸을 보여 확인을 받아야만 정상인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열명의 문둥병자들에게 “이제 너희 병이 다 나았으니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들의 몸을 보이라” 하셨더라면 참 좋았을텐데....그런 말씀은 없으시고 다짜고자 가라 하십니다. 얼마나 순종하기가 어려웠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고민고민 하다가 오히려 예수님에게 “예수님!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신 분인줄 저희들이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하나 지금 병도 낳지 않았는데 창피스럽게 이 몸을 이끌고 제사장에게로 가는 것은 너무 순종하기 힘듭니다. 그러지 마시고 바로 이 자리에서 깨끗이 낫게 해주시면, 저희들이 쉽게 이해가 되고 순종하기도 참 쉽겠습니다.”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까?

아니면 주저없이 바로 그 즉시 제사장에게로 갔습니까?

여기 보면 10명의 나병환자들의 특색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었습니다.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앞뒤 재지 않고, 돌로 맞을 각오를 하면서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단 순종했습니다. 이런 믿음과 순종이 그들에게 치유라는 기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에게 가면서 자기 몸에 가득한 상처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문드러진 손가락들이 새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피부 색깔은 다시 살빛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놀라서 소리쳤을 것입니다. “네 얼굴이 정상적으로 바뀌어 있어! 네 손좀 봐봐! 그리고 그들은 외쳤습니다. ”야호!“

구약에 열왕기하 5장을 보면.....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라는 이방인이 나병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붙잡아 왔던 한 이스라엘 여종이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하고 전해주었습니다. 이에 나아만은 왕에게 허락을 받고, 나아만 장군은 군대를 거느리고 많은 선물을 가지고 갑니다, 나아만이 엘리사의 집문에 도착하자 엘리사는 사자를 그에게보내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고 시켰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노하여 물러가며 말하기를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햐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났습니다. 그러자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하면서 순종하도록 도왔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아만은 자기를 부인하고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궜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순간 화가 많이 났지만, 자기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히 믿음을 가지고 순종햇습니다. 이러한 순종이 기적을 잉태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너무 느리게 예수님 믿는 길을 가는 것은 아닙니까? 주님앞에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긴다 하면서 이리저리 뭐가 자기에게 유리한가 계산해보고, 이쪽 저쪽 세상과 하나님사이에서 저울질하면서 예수님에게 믿음을 드린다고 말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 나가서 내문제, 내아픔, 내고통을 그대로 드러내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폭적으로 믿고 예수님이 어떤 말씀을 하셔도 순종하겠다는 믿음이 있어야 우리에게 기적의 역사가.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네번째 단계는 나는 감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입니다
15-16절을 다함께 보시겠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그들은 병이 치유된것에 감사했습니다. 나머지 아홉 유대인도 당연히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습니다. 몸이 치유된것, 하나님께 은혜받은 것을 감사했지만 그런 능력을 베푸신 예수님께 관심갖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받자 마자 그 자체로 너무 놀라고 신기했지만, 예수님께 어떤 관심도 영광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타까워했습니다.

7-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다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 아홉은 어디에 갔습니까? 병이 다 나았으니 그동안 못 가본 나이트클럽에 가서 부비부비하면서 그동안 즐기지 못한 뜨거운 청춘을 불태우러 갔습니까? 아니면 고향에 찍어둔 영자, 말자 숙자를 하루 빨리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미기 위해 떠났습니까? 아니면 요즘 청년실업이 아주 심각한데 먹고살기 위해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떠났습니까?

아홉명의 유대인들은 그냥 치유받은 것만 좋아하고, 축복만 좋아하고, 하나님께 받은 선물만 좋아하면서 그냥 떠나버렸습니다.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그 생의 은혜와 축복이 멈추어 버립니다. 그리고 생명이 구원 받을수 없습니다. 감사하지 않은 그들의 삶은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안타깝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그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열명 중에 딱 한명 사마리아인은 자기 몸이 고침 받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발걸음을 집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는 마음껏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이라는 인격을 직접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성을 맺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와 축복은 너무도 좋아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데는 얼마나 관심이 부족한가요? 우리는 은혜를 받았을 때에도 감사해야 겠지만 은혜를 받지 못했어도 감사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해야겠습니다.

18세기 영국의 청교도목 사님중에 매추헬리라는 분이 계셨는데 어느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에 강도가 들어, 모든 것을 다 가져갔습니다. 그는 마음이 불안해지고 어두워졌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기도하면서 감사의 제목을 발견했고 그래서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첫째, 전에 한번도 강도당한 것이 없다는 것이 감사하다.

둘째, 비록 그들이 내 지갑을 가져갔으나 목숨이 무사한것이 감사하다.

셋째, 비록 그들이 내게 있는 돈을 다 가져갔지만 그게 그다지 많지 않음에 감사하다.

넷째, 내가 강도를 했다는것이 아니라 내가 강도를 당했다는것에 감사하다.

여러분 집에 강도가 침입하여 집안에 모든 것을 다 가져가버린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쉽게 감사의 기도가 나오던가요? 그렇지 않을것입니다.

감사가 사라지면은 원망이 생기고 불평과 불만이 생기고 하나님과 인간관계에서 벽이 생깁니다. 인격과 인격의 만남에서 연결고리는 감사입니다. 동역자님 여러분! 이 감사라는 것은 내게 필요한 부분들이 충족이 되었기 때문에 하는 감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내게 필요한것들이 충족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제공해줬기 때문에 감사한다면은 만약에 그것을 제공해주지 않는다면, 충족이 되지 않는다면 감사는 사라지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드려야할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믿고 구원받아 복받게 하신것을 감사할뿐만 아니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감사해야 하는줄로 믿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하지 못할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사람의 믿음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사람이 얼마나 영적으로 성장했는가 하는 것은 그 입술에 얼마나 감사의 열매가 있는가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입을 열었을때 얼마나 감사할줄 아는가 이것이 바로 영적인 성장에 수준이라는 사실입니다 지혜의 보고인 탈무드에 이런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다 ” 감사와 행복은 한 뿌리에서 나온 열매입니다. 감사와 행복은 바로 붙어있는 것입니다. 감사와 행복은 뗄레야 뗄수가 없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언제나 범사에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언제나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나아온 사라마리아인을 보면서 1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을 만났을때 그는 육신의 질병만 치유되었을뿐 아니라 그 영혼의 기쁨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 그 영혼은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기도 제목이 있습니까? 예수님께 간절하게 구하세요.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고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듣고 순종하겠습니다. 그리고 감사와 영광을 모두 하나님께 돌리겠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만을 섬기는 삶을 살겠습니다.”하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은 현재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첫 번째 단계인 나는 불평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입니까? 그것은 인생을 낭비하는것입니다. 인생을 헛되게 사는것입니다.두 번째 나는 소망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입니까? 이때부터 우리에게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우리는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 끊임없이 꿈과 비젼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순종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네번째 단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나는 감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나님이 주신 이 세계에 감사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환경과 조건에 대해 감사한다.” 이렇게 우리는 감사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확인할수 잇습니다. 믿음과 감사는 같은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감사가 없다는것은 사실 믿음이 없는것입니다. 온 세상을 주관하시고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에 지금도 모든 것이 다스려지고 있음을 철저히 믿을때,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을때 우리는 우리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살려는 마음을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진정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믿음을 드릴때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를 통해 드러내십니다. 시편 50편 23절은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하는 자체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또한 보너스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이 지금 어떤 고난과 역경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심령에 감사와 기쁨이 넘쳐나는 자들이 되게 도와주옵시고, 이 모든것을 통해서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리기를 기도합니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현재 내게 주신 삶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하나씩 하나씩 돌이켜 보면서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노래부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2박3일 수양회에서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받은 은혜를 마음에 품고 집에 돌아가셔도, 늘 하나님께 감사의 표현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체의 건강을 주시고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게 하시고 또 우리의 삶에도 기쁨이 되는 일들을 펼쳐 보이실것입니다.


저는 1972년 6월5일 경상북도 영천군 화남에서 태어나서 자천이라는 동네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인구가 적고 동네도 손바닥만한곳이라 왠만한 사람은 다 알고 지낼 정도로 작고 아담했습니다. 이처럼 촌티 풀풀나는 곳에서 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냥 유년시절이었기에 아무 걱정없이 그냥 아이들과 틈만 나면 만나서 놀고 장난치고 마냥 행복하게 지내는것이 맞겠지만 제게는 어린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인생의 짐을 지고 가야만 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아버지의 뜻하지 않는 사고였습니다. 아버지는 직장에서 숙직을 하다가 구덩이에 떨어져 반신불수가 되셨습니다. 처음에는 얼른 털고 일어나겠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아버지는 지금까지 한번도 호전된 적이 없었습니다. 장애인으로 불구로 갖은 마음고생을 겪으시면서 살아가고 계십니다. 몸이 성할 때 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산에 사냥도 하러 가셨고 일터에 데려가기도 하시는 정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가 마냥 제 옆에 그 모습 그대로 계실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갑작스런 사고에 어머니는 갑자기 바닥인생을 시작하셔야 햇습니다. 어머니는 포장마차부터 시작해서, 각종 장사들을 하시며, 아버지의 병수발을 하시면서 4자녀를 키워냈습니다. 풍족하지 못한 어린시절, 춥고 배고픈 열악한 환경, 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뭘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계획하지 못하고 허비하며 보낸 세월.... 고등학교 까지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벌자.....그리고 그동안 못해본 호강호식을 누려보자 이것이 제 유일한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방황하고 허비하면서 금같은 젊은 시절을 허무하게 날려버렸습니다. 그런데 누나 때문에 그동안 접은 공부를 다시 어렵사리 시작하여 대학에 기적에 가깝게 들어왔지만 대학교는 저를 살리고 꿈을 이뤄주는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있던 저의 인생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저는 문둥병환자와 같이 바닥인생으로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자였습니다. 소망이라고는 돈많이 벌어서 못먹고 못입은 호사를 누리는것이 유일한 삶의 목표요, 위안거리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 앞을 지나가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믿습니다. 저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바닥인생에서 희망과 꿈과 비젼이 넘치는 자로 변화하게 도와 주옵소서....저는 예수님께 인생에 대한 소망과 신뢰를 보여드렸고,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게 한줄기 빛으로 제 마음을 환히 비춰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주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현재 감사하는 삶, 감사할줄 아는 인생으로 채워나가고 계십니다. 사실 우리는 정몽구나 이건희 회장님 처럼 많은 능력과 재물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후에 가진것을 다 가져가지도 못하고 또 땅에 쌓아 놓았기 때문에 결국 좀이나 등록으로 썩게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신으로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후회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땅에서 가난할수 있지만, 하늘창고에 지금까지 드린 주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과 물질의 보화가 엄청나게 쌓여 있을것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또한 저는 건강합니다. 건강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것인지 건강한 못한 사람은 잘 못느낍니다. 아파봐야 비로소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낍니다. 단국대 중환자실에 한번 가서 1시간만 있어보십시오. 자신이 얼마나 감사한 존재인지 뼈에 사무치도록 느낄것입니다. 옛말에 10년 병수발 감당하는 효자가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아파도 잠시 아픈것도 감사한것입니다. 평생을 아프면, 본인도 본인이지만 주위사람의 고통이 극심합니다. 저희 아버지 스스로도 얼마나 고통스럽게 사셨을까 만은 특히 저희 어머니가 극한 고생을 다 겪으셨고 저는 가족이 전부 해산되는것 같은 공허한 마음을 지닌채 유년시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전적으로 신뢰하고 예수님께 믿음으로 큰 소리로 외치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을때 저의 삶과 목표는 질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최소한 우리는 하나님에게 이생명과 건강을 은혜로 받았으니 저희가 얼마나 감사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계적인 유명인사 미국의 오프라윈프리는 어둡고 절망적인 유년시절에 감사제목을 하루에 꼭 5가지 이상을 일기에 적으며 감사하는 생활을 습관처럼 했습니다. 그 습관이 지금의 오프라윈프리의 삶과 같이 전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아가는 자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오장육부가 하나도 문제없이 작동되어 눈을 뜨고 몸을 움직일수 있으니 “ 하나님! 오늘도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하루을 열어가면 어떨까요? 정녕 현실은 감사할수 없는 상황이지만,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이어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면 진실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되는것입니다. 하나님 한분만 계시면 우리는 감사로 넘치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주님께 감사로 나아가는자 반드시 하나님이 그 길을 축복해 주십니다. 날마다 감사하는 삶에 순종하는 삶까지 더하면 기적의 역사가 우리에게도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제게 꿈과 비젼을 가진자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은 바닥인생과 같은 제게 한 지구를 개척하라는 크고 놀라운 비젼을 보여주시고, 날마다 기도하게 하십니다. 저는 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저보다 저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 저에게 가장 알맞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무조건 신뢰하고 따라가고자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제 모든 것을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사마리아인처럼 소망과 믿음과 순종을 예수님께 보여드리고, 또한 무릎 꿇고 감사와 모든 영광을 예수님께 돌려 드려서, 바닥인생에서 허무인생에서 절망적인 인생에서, 꿈과 비젼으로 가득찬 역전 인생의 주인공으로 저희 모두를 날마다 일으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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