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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아버지의 크신 사랑

작성자 : john444
작성일 : 2014-07-17 00:00:00
조회수 : 1,072
누가복음 15장 15:11-32 아버지의 크신 사랑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부족하고 죄 많은 저에게 말씀강사를 허락하시고 은혜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무지하고 말씀을 모를 때 인간은 무한 선한 존재임을 말하고 다녔던 저의 입이 부끄럽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죄에 대해선 정확하게 분노하시지만 그 가운데서도 무서움보다 선하심이 더 큰 하나님을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비유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어린아이들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잘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에 실상은 모르기 쉽습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나 자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재산을 가지고 가출한 일도 없고 방탕한 적도 없기에 탕자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생각되어, 중요한 이 복음이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고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탕자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방황하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사랑을 주시기위해서 언제나 기다리시고 돌아오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Part 1. 아버지를 떠나 세상으로 간 탕자
11-12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주었더니,"
-요즘에는 재산을 다양한 방법으로 자식들에게 물려줍니다. 그러나 재산을 나누어주는 것으로 그 재산이 정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유산이 어떤 아들에게는 인생의 경제적 초석이 될 수도 있으나 어떤 아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더러운 욕망의 끈의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집을 나가면서 분깃을 달라는 둘째 아들에게 아버지는 속된말로 재산을 미리 땡겨 주었습니다. 요즘 세상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재산을 미리 자식에게 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재산을 준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찬밥신세가 되어 자칫하다가는 평생 모은 재산을 죽써서 개주는 신세가 되어 거리에 나가 폐휴지를 줍는 늙은 노인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남의 얘기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최근에 많이 발전되어 땅값이 급등한 안서동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우리들의 동네에서도 자신의 재산 다 물려주고 폐지 줍는 노인 분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명한 분들은 미리 재산을 주지 않고 변호사를 통해서 자신이 죽었을 때 유산을 공개하고 자식에게 나누어 주도록 합니다. 물론 그 당시 탕자의 시대에도 살아있는 아버지가 자식에게 재산을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아버지가 죽었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때 재산은 부동의 재산이 거의 전부여서 아들에게 유산으로 땅을 주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 후 며칠이 안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둘째아들은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를 떠나기 위해 땅을 헐값에 처분했습니다. 그것은 욕망에 마음을 다 빼앗겨서 사리분별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는 것입니다. 집을 나가는 둘째 아들에게는 분명히 자기 나름의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궁극적인 욕망은 사실 아버지의 재산에 있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원플러스원의 또 다른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자 도구였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아버지와의 이별에서 얻을 수 있는 자유로운 독립, 그리고 물질과 능력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으리라는 탐욕, 소유욕, 권력욕, 등이 그를 충동질 하였던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 있을 때 이 아들은 아버지께 순종하기만 하면 무슨 일이라도 가능했습니다. 순종을 통하여서 얻을 수 있는 그 모든 행복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있어서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께 순종한다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의 수족처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러한 순종을 통하여서 아버지의 지혜를 얻고 아버지의 아들로서 화목을 이루며, 성장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 집을 떠날 때 그는 이러한 모든 축복의 잔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어차피 그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아버지께 순종하며 사는 길과, 아버지를 거역하고 세상을 따르는 길, 이 둘 뿐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께 순종하며 사는 길을 포기하고 세상을 택하여 갔던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 있을 때 세상을 바로 보는 믿음의 눈을 가지지 못한 이 아들은 철저한 실패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분명한 물질관이 없었던 그는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허랑방탕하여''라는 뜻의 헬라어는 ''무절제하게'',''방종하게'',''타락하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원대한 꿈을 꾼 아들은 얼마 못가서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처음부터 이 상황은 해충퇴치기에 돌진하여 외마디 비명 같은 전기적인 소음을 남기고 사라지는 나방과 같았습니다. 갑자기 생긴 재산에 아들은 재테크란 단어는 머릿속에 전혀 없었으며, 또한 듣보잡같은 기생오라비에게 몰려들어 돈을 빼앗으려는 사람들로 주변은 가득찼습니다. 돈 냄새를 맡고 모여든 사기꾼들은 그 돈을 나의 땅에 투자하라, 주식에 투자하라, 한마디로 난리가 아니였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저녁마다 술과 여자를 즐겼습니다.
세상에는 돈으로 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음식, 심지어 여자, 쾌락을 부르는 마약까지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 보십시오. 좋은 집이 아무리 많아도 한 집에서만 잘 수 있습니다. 좋은 차가 아무리 많아도 한 차밖에 탈 수 없습니다. 기차도 아니고 줄줄이 비엔나처럼 연결해서 다닐 수 도 없을테지요. 좋은 음식이 아무리 많아도 10분 안팎으로 먹으면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을 정도로 배가 부릅니다. 물론 더 먹을 수는 있으나 비만으로 인해 온갖 각종 병을 빨리 얻게 됩니다. 술집에 많은 여자도 오직 돈과 쾌락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세상에 돈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복사해서 쓰기 힘든 종이 일뿐입니다. 돈을 부리는 자가 아니라 돈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알고 돈을 아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세상적인 것을 떠나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세상친구들이 하는 것이 보기 좋아보였고 하고 싶었습니다. pc방에서 밤새도록 컴퓨터와 함께하며 동영상도 보고 게임을 하고 사발면도 먹고 자장면도 시켜 먹으면서 지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밤을 새워 올려야할 게임레벨을 올리고자 했습니다. 어떤 날은 친구들과 함께 불금을 제대로 즐기고자 나이트도 가고 그 흥을 이어서 단란주점에서 여자들과 함께 마음대로 놀고자 했습니다. 억눌렸던 자신의 욕망을 즐기고자 했습니다. 물론 아들도 그렇게 영원히 살고자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생활이 영원히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찌할까요. 세상이 아들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유흥친구들은 계속해서 아들을 찾았고, 술과 담배도 아들을 찾았으며, 아들의 돈을 보고 싶어 하는 여자들은 계속해서 콜을 보냈습니다. 강원랜드에서 빠징꼬도 내려봤고, 경마장의 마권도 사보고, 경륜장에서, 경정장에서 모든 도박장은 다 돌아다녀봤습니다. 이제 아들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되돌아가고자 했으나 마음이 몸이 듣지를 않았습니다. 몸이 욕망의 달콤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로 살지 않고 내 맘대로 살겠다는 둘째아들은 그렇게 자신도모르게 자신을 죽여가고 있었습니다.

14~16절 보십시오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가지고 있던 돈은 순식간에 없어지고 지갑은 텅텅비어 완전히 탕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서우신 분이십니다. 치실땐 확실하게 치십니다. 살짝 혼내고 용서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확실하게 눈물 빼시고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하시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다루고 징벌하시는 수단으로 천재지변을 사용하십니다. 그중에서도 성경에는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으로서의 기근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다윗을 징벌하실 때도, 아합 왕 시대에 바알 숭배로 인한 죄악이 넘칠 때도, 에레미야서에서 하나님께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조리를 징벌하시겠다고 경고하실 때도, 요한계시록 마지막때에도 기근으로 큰 환난을 예언하십니다. 기근으로 하나님의 징벌까지 받게 되어 재산을 다 탕진하고 완전히 만신창이가 된 아들은 엎친데 덮친격으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조차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설프게 혼냈다가는 또 허랑방탕한 세계를 동경하는 아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어서 확실하게 내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혹독한 고난을 통해 우리를 정신 차리게 하십니다.

Part 2 항상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사랑
17-19절을 보십시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둘째는 스스로 돌이켜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주저 하지 않고 일어나 아버지께 나아가 분명하게 죄를 이야기하고 죄를 지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죄를 지은 값을 치르고자 가장 낮은 신분에 속하는 품꾼의 지위도 감당하겠노라 했습니다.
우리는 탕자를 통해서 죄가 무엇이며 그 결과가 어떠하고 회개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배울 수 있습니다. 죄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살 때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을 답답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떠난다면 인간은 더 자유롭고 행복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의 힘을 의지하여 자신의 마음대로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에게 상속될 분깃을 미리 받아 기약 없이 떠나갔지만 언젠가는 그 아들이 돌이켜 아비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기보시면 거리가 먼데 아버지는 달려가 아들을 안았습니다. 동네에서 불효라는 타이틀로 소문이 난 아들을 아버지는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동네사람들에게 아들을 내가 다 용서 하였다고 말하고 싶어서 집에서 기다리지 않고 나아가서 아들을 맞이했습니다. 아버지를 원망한 아들을 아버지는 사랑과 자비의 충만함으로 안았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회개하는 아들을 나아와서 안아주십니다.
21-24절을 보십시오.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둘째 아들은 자신이 하나님과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죄를 지은 아들은 가장 낮은 신분의 품꾼을 아버지에게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죄로 인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아들을 알아보셨습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통해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회개를 듣고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자의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절대, NAVER, 과거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모든 것들이 돌아온 아들에게 축복을 주었습니다. 그 나라 최고의 시향과 사물놀이패 모든 춤꾼들이 모여 이 기쁨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행복의 풍악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좋은 옷과 가락지와 신을 신기고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아들을 사랑해서 송아지를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사랑하는 아들을 대속의 죄로 사용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셔서 아들의 권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인으로 대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대우하시고 우리의 권위를 회복시켜주십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의 옷을 벗기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령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Part 3 기뻐하기보다 자기 교만에 빠진 맏아들
25-30절을 보십시오.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데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맏아들은 열심히 일하고 돌아와 종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듣지도 않고 종의 말을 들은 그는 화를 내고 말도 안되는 그 상황을 피하고자 했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따지면 맏아들이 당연히 그럴 수도 있는 상황이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남들 보기에는 성실하고 열심히 생활하는 듯이 보였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자비와 긍휼이 없는 교만한자였습니다. 아버지가 나와서 들어가고자 권하였으나 아들은 이성을 찾지 못하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는 마땅히 맏아들로서 모처럼 되찾은 가정의 기쁨에 동참했어야 옳았지만, 오히려 찬물을 뿌렸습니다. 이는 그가 가정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버지는 기뻐서 잔치를 벌였으나 맏아들은 그러한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맏아들의 태도는 세리와 죄인들에게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를 원망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태도와 흡사합니다. 교만과 불만에 가득 찬 큰 아들을 아버지는 부드럽게 타일렀습니다. 동생이 비록 나쁜 짓을 했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왔으니 기뻐해야 마땅한 일이며, 형인 그가 장자이고, 또 아버지와 항상 함께 있었으므로 모든 재산을 물려받게 될 것인데 무슨 불평을 하느냐고 일렀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받을 하늘나라의 축복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어떤 죄인이 회개한다고 해서 우리의 축복이 줄어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마땅히 피를 나눈 형제가 돌아옴을 기뻐해야 합니다.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세리 같은 자들을 죄인으로 여긴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처럼 형제를 시기하고 미워하며, 하나님께 돌아와 축복 받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같은 형제로서의 도리가 아닙니다. 합당치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형제가 돌아옴으로써 우리의 기쁨이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용서를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며 돌아오는 형제들을 우리는 부정적인 태도가 아니라 아버지처럼 하나님처럼 두 팔을 벌리고 기쁘게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한 은혜에 대해 생각하고 그 가운데서 우리가 신앙에 대해 어떠한 자세로 임하여야 되는가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되었습니다. 함께하시는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모르고 욕망을 좇아 살고자한 둘째아들의 상황을 나한테 반영해보니 일치되는 부분이 참 많았습니다. 거제도 수양회에서 소감을 발표하면서 나의 과거에 대해 허랑방탕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단어를 오요한 목자님께서 권해주셨습니다. 그때 이 단어를 주셨을 때 좀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소감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이번 말씀을 전하면서 다시 이 단어를 접했습니다. 허랑방탕이란 단어는 무절제하게'',''방종하게'',''타락하여''입니다. 돌아온 탕자는 집을 떠나 방황하던 시절 허랑방탕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고 돌아와 해피엔딩을 만드는 주인공으로 삽니다. 교만했던 맏아들보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둘째아들은 9회말 투아웃에서 멋지게 역전홈런을 날린 것입니다. 올해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독일대표팀 막내였던 선수가 멋지게 넣은 골이 경기의 결승골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 나는 어떠했을까?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어머님 가정에서 자랐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모르고 세상 속에서 자라고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의 삶에 녹아들고 그 안에서 만족하며 지냈습니다. ppt(젊은시절 사진 등)세상에는 즐겁고 신나는 것이 참 많습니다. 술도 담배도 나이트장도 수많은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유흥가 속에 단란하게 위치한 단란주점도 모두다 쾌락으로 포장된 죄스러운 것이 많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유산을 팔아 한 때 세상에 나아가 그랬듯이 저도 또한 그렇게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저를 향한 끝없는 사랑으로 인해 ppt(백석대성적표)나는 지금 여기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저를 통해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시고 기다려주시고 측은해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로부터 좋은 옷, 좋은 신발, 송아지를 잡아주셨듯이 하나님은 돌아온 저에게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특수교사라는 직업을 허락하시고 아름다운 미모와 마음을 가진 동역자를 주시고 결혼으로 축복해주셨습니다. ppt(결혼사진, 아이들 자격증취득 등)돌아온 탕자가 받은 혜택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온 자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랑과 복을 주신 것입니다. 은혜롭고 사랑이 가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와 더불어 지금은 주일을 지키고 말씀을 공부하며 소감도 나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말씀에는 더 절실하지 못하고 언제나 더 많이 기도하지 못하고 더 많이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더욱 부르짖지 못하는 자이지만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레이다에 걸려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느끼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불편한 관심이 저는 좋습니다. 아니 감사하고 기쁩니다. 세상을 찾아 떠난 탕자가 하나님을 떠날 때는 그를 치시는 무서운 분이시며,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고자 했을 때 언제든지 받아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주권으로 나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몸과 맘으로 경험하며 그 사랑을 모르고 방황하는 양을 찾아 그 양을 치는 목자로 살고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떠난 자들을 크신 사랑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들이 돌아왔을때 그들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뜨겁게 영접해 주십니다. 집안에 있는 맏아들도 크신사랑으로 돌봐주시고 모든 재산을 물려주십니다. 우리 모두 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영접하고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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