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작성자 : john444
작성일 : 2014-07-17 00:00:00
조회수 : 845
2014 여름수양회 메시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누가복음 23장:26-46
요절 34“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최근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다스리는 법에 대해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는 우리가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1. 매일 15분 이상 활기차게 웃으며 걷는다. 2. 화가 날 때 화를 내고 말은 하지만, 화난 표정 대신 미소를 짓는 표정으로 말한다. 3. 매일 화가 난 상황을 떠올리고, 무엇 때문에 화를 내었는지 적는다. 4. 실제 ‘하하, 호호, 후후, 히히, 흐흐 등 웃는 연습을 한다.’ 어떻게 분노가 사그러 들었나요? 아닙니다. 우리는 잠시 분노하려는 마음을 딴데로 돌린 것 뿐이지 마음속에 있는 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분노는 용서를 하거나 용서를 받을 때만이 없어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용서하셨고, 용서받은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기 전 밤새 심문을 받고, 120대의 채찍질도 당하셨습니다. 이로인해 예수님은 도저히 십자가를 매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것이 불가능 했습니다. 26절 전반부를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매고 먼저 가는 것이 아니라 군병들이 체력이 다한 예수님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26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시몬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고,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이 재판받으시는 것을 본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그저 시골에서 부터 예루살렘으로온 방문자였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만 ‘지는 예~ 이번에는 꼭 육삼빌딩이라는 곳을 보고 갈려합니데이~” 하고 거제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상경한 것과 같습니다. 군병들은 그가 순박해 보여서 그랬는지 혹은 힘이 좋아 보여 그랬는지 몰라도 그를 시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였습니다. 그는 “옴마 앙대여~” 하고 싶었지만, 온몸이 피로 뒤덮히고 일어설 기력조차 없어 보이는 예수님을 보자 측은한 마음이 생겨 그분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몬은 후에 성경에 기록되기를 그의 아내가 바울의 영적 어머니요 아들 루포가 로마 교회의 기둥같은 사람이 되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나)
이제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한발 한발 걷기 시작하셨고, 시몬이 그뒤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뒤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예수님께서 발을 딛는 곳 마다 피발자국이 생겼습니다. 큰무리의 백성들과 여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당하시기 위하여 다시 골고다로 걸음을 옮기기를 시작하시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곧 십자가에서 못이 박힌채로 죽임을 당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가슴을 치며 슬퍼하였습니다. 28-31절을 보십시오. 하지만 오히려 예수님은 자신을 보고 울고 있는 그들을 측은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빌라도는 자신이 죄가 없다고 손을 씻을 때 유대인들은 그 죄를 그들과 그들 자손에게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이런이스라엘사람들이 자신의 죄와 아직 죄를 깨닫지 못하고 반복하여 죄를 짓는 자녀들을 볼 때 너무나 슬프고 가슴이 미여졌습니다. 그들에게 임할 심판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지 그날에는 사람들이 자녀가 있는 사람들이 무자녀인 사람들에게 복이있다고 말을 하며, 산들을 향하여 우리에게 무너져 덮어 단번에 죽여 달라고 애원한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도실제 이러한 비극적인 일이 이스라엘민족에게 일어났는데,로마시대 디도장군에게 200만, 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에 의해서 600백만이나 학살당했습니다.더 무서운 것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대환난을 당하고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골고다에 이르자 군병들은 예수님의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박고 두 행악자도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세워두었습니다. 십자가형은 십자가 형틀에 못박혀 매달린 사형수가 근육경련과 질식현상으로 수 시간내에 혼수상태에 빠지게 하여 고통스럽게 죽게 하는 공개처형입니다. 사형수들이 벌거벗겨진 상태로 팬티만 두른 상태에서 처형된다는 점, 자기가 못박힐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는 점도 십자가형의 잔인성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로마인 철학자 키케로는 "십자가라는 단어 자체가 로마시민에게서, 그의 생각이나 눈, 귀에서조차 아주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단지 십자가형의 실제적인 집행뿐만 아니라 그것의 언급마저도 로마시민과 자유인에게는 합당치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고 할 정도로 당시 사람들도 십자가형을 매우 혐오했다고 합니다. (십자가형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당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귀먹어리의 마음은 귀먹어리가 잘 알고 소경의 마음은 소경이 잘 압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십자가를 지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에 달리시며 당한 모든 고통을 다 이해하기 힘이 듭니다. 그럼 왜 예수님은 이런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을 까요? 예수님은 자신의 죄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구약에는 이 예수님께서 우리죄를 위하여 죽으실 것을 예언하였고(창세기 3, 출애굽기12, 이사야 53, 신명기 21), 예수님 또한 자신의 대속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6, 마태복음 20, 누가복음 24). 단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히 영접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죄와 죄악된 속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살인과 간음을 하고도 죄의 심각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나단은 이런 그에게 한 가지 비유를 말했습니다. 나단이 예를 들어서 양이 많은 사람이 양 하나 있는 사람의 양을 빼앗아 잡아 먹은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다윗을 이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하였습니다. 나단은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때서야 다윗은 내가 나쁜 놈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베드로는 골고다 근처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들에게도 “너희가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았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볼때나의 과거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지금 현재의 죄로 인해 내가아직도 예수님을 골고다 언덕으로 내몰고 예수님의 손에 못을 박을 박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죄를 용서하신 예수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과정의 이야기을 성경에서 보고 있으면 화가 납니다.아무 잘못 없으신 예수님께서 무리들과 불의한 빌라도와 헤롯에 의해 희생당하신 것 처럼 보입니다. 이를 보면이같이 죄악된 세상을 예수님께서 권능으로뒤업어 놓아야 속이 풀릴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외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말들 수도 있는 분이시며, 폭풍을 잠잠케 하며 죽은자를 살리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 헤롯, 군병들과 무리들에게 단번에 영원한 죽음을 내릴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욕되게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희롱을 받을 수 없는 분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할 때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을 업신 여길때 분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스게 말로 국회의원이 차를 타고 가는데 경찰이 잡으면, 운전수가 “어허 지금 타고 계신분이 어떤분인데.. 누굴잡아” 한다고합니다. 저희 아이들을 보아도 둘째아이가 첫째 아이에게 까불면, 첫째아이가 “이게 죽을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분노해야 합니다.
또한,예수님은 아무런 죄없이 형벌을 받았습니다. 빌라도와 헤롯은 예수님께 죄가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죄있는 사람이 벌을 받고 죄없는 사람은 풀려나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물건을 하나 구입했는데 살때 부터 고장이나 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부주의로 고장난 것이 아니라 처음 받을 때 부터 고장난 것을 받았으니 아무런 조치 없이 판매자가 바꾸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판매자쪽에서는 무상으로 고쳐줄 것이니 그냥 쓰라며 결국 바꾸어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도저희 분이 나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예수님은 아무 죄없이 십자가를 지셨으니 분노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3년동안 함께 지내며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을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실 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를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제자들은 이미 뿔뿔히 흩어졌고, 몇몇의 제자들만이 무리들에 뒤에 숨어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전해집니다.그들에게는 으리으리한 ‘의리’가 없었습니다.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지 못한 제자들과무리들을 보면 화를 내셔야 했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이러한상황가운데 어떻게 행하셨습니까?하늘에서 불을 내려 사람들을 멸하셨습니까? 26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에게 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체포한 사람, 채찍질한 사람, 발로 차고 구타한 사람,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은 사람, 손에 대못을 박은 사람, 옷을 벗긴 사람등 다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 모든 자들을 용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를 사하여 줄 것을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인 죄인들을 깊이 이해하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더나아가 그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영혼을 깊이 이해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나를 용서하셨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를 생각해보라고 하면, 유학할때도 아니고, 첫째를 낳을 때도 아닙니다. 인생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바로 재수할 때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때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항상 난 마음만 먹으면 잘 할 수 있다는 밑도끝도 없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이런걸 전문용어로 자뻑남이라고 합니다. 저는 재수를 하면 점수가 수직 상승하여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갈 것이라고 착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재수를 하며 점수가 생각보다 오르지 않자 심한 좌절감이 밀려왔습니다. 시험성적에 비관하여 가출도 하였는데 하루만에 붙잡힌 적도 있습니다. 저는 저에대해 기대가 컷던 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서 오는 좌절감으로 나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고, 그냥 아무런 희망도 없이 세상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일찍 죽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소망없이 죽어있는 청년과 같은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저를 용서하기 힘이 들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일방적으로 저를 용서해 주시고 저를 심히 기쁜 존재로 만든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 용서는 제가 받기 싫다고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나의 모든 죄값을 치루시고 일방적인 은혜로 용서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내면에 있는 깊은 죄문제를 끄집어 내시고, 치유해 주셨습니다. 스스로를 가두고 죽이고 있는 저에게 ‘나도너를 정죄치 아니하니 너도 너를 정죄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자신의 피값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용서하신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용서받은 행악자)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용서를 영접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38~4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옆에는 둘 다 온 몸에 용문신을 한 행악자가 있었습니다.심지어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행악자까지도 예수님을 비방하며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른쪽 행악자가 왼쪽 행악자를 꾸짖으며 말합니다. "너는 어째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냐? 우리는 죄값을 받아 싸지만 이 분은 잘못한 것이 없어." 오른쪽 행악자는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깊이 인식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게 만든 사람들을 용서의 사랑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하고 예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하시며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를 볼때 예수님의 모든 사람을 용서를 했지만 어느누구나 예수님의 용서를 영접하는 것이 아닌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를 영접한 사람은 구원을 받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44~46절을 보십시요. 한 낮이 되었는데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졌습니다. 성소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막고 있는 휘장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는 죄의 장벽이 있었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성소의 휘장은 예수의 몸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찢으셔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만드셨습니다.예수님은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언제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로서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하나됨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말씀하시고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땅에 오신 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의 영과 몸을 사흘만에 부활시키셨습니다.
(용서의 힘)
2013년 미국에서 사형수였던 쿠퍼라는 한 여인이 27년만에 출소하여 신문에 나왔습니다. 인디애나주 개리에서 그녀는 15세의 나이에 성경공부를 하고싶다는 이야기로 루스 펠케 할머니의 집안으로 들어와 꽃병으로 할머니의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쓰러진 할머니가 주기도문을 외우자 쿠퍼는 준비해 간 부엌칼로 할머니의 팔과 다리를 그으며 고문하기 시작하였고, 미친 듯 복부를 33차례나 찔러 할머니를 살해 하였습니다. 그리고 범행 후 네 소녀가 훔쳐간 돈은 단돈 10달러(1만원)이였다고 합니다. 미국 사회는 경악하였고, 앳된 소녀들의 잔혹한 살인에 치를 떨었습니다.1986년 7월 11일 선고 공판에서 공범 3명은 25~60년형이 내려졌지만 주범인 쿠퍼에겐 사형이 언도되었습니다. 당시 인디애나주에선 10세 이상이면 사형 선고가 가능해 그녀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사형수가 됐었습니다. 이때부터 쿠퍼를 살리자는 구명운동이 시작되었고, 200만명이 인디애나주 대법원에 청원을 넣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직접 주지사에게 연락해 감형을 호소하였습니다. 하지만 인디애나주는 요지부동이였고, 이런 인디애나주를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피해자의 손자 빌 펠케였습니다. 빌은 다른 여느 유족들처럼 처형을 원했지만 쿠퍼가 사형선고를 받자 구명운동에 발벗고 나섰습니다. 빌도 처음에는 할머니를 처참하게 죽인 그녀에게 분노로가득 찼지만, 할머니를 생각할 때 용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빌은 "할머니의 삶과 선행들을 생각해보니 ''쿠퍼가 죽어선 안되겠다.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용서의 깨달음을 얻었고 그것은 내게 어마어마한 치유를 안겨줬다"고 말했다. 이에 쿠퍼는빌의 용서에 마음을 열고 교도소에서 23차례나 말썽을 피울 만큼 문제아였지만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학사모도 쓸 정도로 27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용서는 분노한 자신을 치유할 뿐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용서를 하려고 해도 그것이 마음대로 잘 되지 않을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첫째 우리가 큰 용서받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에는 우리가 받은 용서에 대해 나옵니다. 베드로는 혈기 많은 사람으로 분을 잘 내에 용서에 대해 의문점이 많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다른 사람이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를 해주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이성적으로 최대한으로 용서해 줄수 있는 수 7번입니까?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하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일곱번 이하를 생각하던 아마 베드로는 기가차서 예수님의 말씀을 흘려듣고자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한가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일만달란트 지금으로 따지면 5억원의 빚을 임금에게 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임금에게 자신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 했고 이를 불쌍히 여긴 임금이 모든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는 임금의 너그러움에 감격하여 기쁜 마음으로 성을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5만원정도 빌린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돈을 갑지 않는 그를 보자 화가 났고 목을 붙자고 ‘야이놈아 빚값아!’라고 열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빚을 갚을 능력이 되지 않자 그를 옥에 가두웠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받은 용서가 얼마나 큰것이고 우리가 해야할 용서가 얼마나 작은 가를 알려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값으로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인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용서를 깊이 영접하면 다른 사람도 기꺼이 용서할 수 있게됩니다
둘째는 예수님은 나와 다른사람까지도 사랑하신 것을 깨닭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이땅에 내어 주실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신의 모든 물과 피를 내어 주실만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사람을 받고 싶어 합니다. 아이 셋을 키우다 보면 아이들이 서로 자신과 놀아주기를 원하고 다른 자매들과 놀면 심술을 부립니다. 서로 시기하기도 합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다 똑같이 사랑하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공평하게 사랑하십니다. 나를 더 사랑하고 다른 사람은 조금 덜사랑하는 것이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다고 하면 다른 사람도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사랑하시는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 안에서사랑할 수 있게됩니다.인간들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놓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 할 때 우리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셋째,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그것은 용서는 원래 사람의 성품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아담은 범죄한 후 자신의 죄를 지게 된것이 여인 때문이라고 원망했습니다.하와는 자신의 범죄가 뱀의 꼬임 때문이라고 뱀을 원망했습니다.그들은 회개하고 서로를 용서하기보다 서로의 허물을 들추어 냈습니다.자신의 뼈중에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고백했던 여인이 평생 원수가 되었습니다.하나님은 이런 범죄한 인간에게 먼저 찾아오셔서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하나님은 죄는 미워 하셨지만 그들을 사랑하심에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셨습니다.우리는이 하나님의 용서의 성품을 배울 때 용서할 수 있습니다.그럼 우리는 누구를 용서해야 합니까?우리가 용서해야할 사람들은 북한에 있는 사람도 일본에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사람은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먼저는 나를 용서해야 해야하고 더나아가 나의 남편이나 아내,부모님이나 자식,혹은 공동생활을 같이 하는 형제나 자매와 동역자를 용서해야합니다.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큰 이유 중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준것에 대해 자책하는 마음과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 자신이 손해 보는 것 같고,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나의 절대적 가치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커닝을 통해서 자신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은 친구를 용서해야 합니다. 내학점을 잘 주지 않은 교수님을 용서해야 합니다. 공동생활 방을 잘 청소하지 않는 형재자매를 용서해야합니다. 남편에게 잔소리하는 아내를 용서하고, 아내에게만 무뚝뚝한 남편을 용서해야합니다. 말씀공부 약속 펑크 내고 전화도 안 받는 양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품으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를 기억할때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넷째, 우리는 용서했다면 그 일에 대해서는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말다툼을 할 때 하지 말아야 할것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얼마나 무서운지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고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전의 죄까지 싸잡아 책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고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정죄치 안하겠다 말씀하시고 몇일 후에 ‘그러데 다시생각해 보니 그 세번째 남편말이야…” 하면 우리는 답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예전에 한 목사님께로 들은 이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한 사람이 심하게 다리를 떨었습니다. 그는 이 습관을 고치기위해 병원에 찾아가 검사를 받기고 하고, 심리상담사를 찾아가 자신이 다리를 심하게 떠는 이유에 대해서 원인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도 결국 그는 원인을 찾지 못하고 계속해서 다리를 떨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목사님을 찾아갔는데 목사님께서 ‘다리떨지마’라고 한마디를 하자 다리를 떨지 않게 &#46124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거저거 따지고 잘잘못을 가리려고 한다면 진정으로 용서하기가 힘이듭니다. 우리는 용서를 했다면 모든 시비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 일에 대해서는 영원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도록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용서에 대해서 배웠습니다.우리 모두가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도 용서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깊이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더나아가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진실로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며 오직 주와 복음을 위해 살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149 [여름수양회] 넉넉히 이기느니라 john444 2014-07-25
148 [여름수양회]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john444 2014-07-25
147 [여름수양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소서 john444 2014-07-24
146 [여름수양회] 태양아 머무르라 이용호[YES] 2014-07-17
145 [여름수양회]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는가 오요한 2014-07-17
144 [여름수양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john444 2014-07-17
143 [여름수양회] 아버지의 크신 사랑 john444 2014-07-17
142 [감사제/부활절] 아버지 추도예배 순서 및 설교 john444 2014-06-26
141 [신년수양회] 2014 설 추도 예배 순서 및 설교 john444 2014-01-26
140 [감사제/부활절] 강두석 님의 화장 예배 순서 및 설교 오요한 2014-01-11
<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