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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둘째날 새벽 메시지 하나님의 훈련

작성자 : john444
작성일 : 2011-07-10 00:00:00
조회수 : 853
011년 여름수양회 새벽메시지

하나님의 훈련

말씀/히브리서 12:1-13
요절/히브리서 12:7

히브리서는 유대사회에서 박해 받고 있는 히브리 성도들을 위하여 기록된 서신입니다. 본문은 말씀은 우리가 받는 훈련의 의미가 무엇이며, 이를 어떤 자세로 감당해야하는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훈련의 의미를 깨닫고, 적극적으로 훈련을 담당함으로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예수를 바라보자(1~3)
다함께 12:1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11장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아벨부터 시작해서 에녹, 노아, 아브라함 등 수 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열거하며, 다 말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처럼 구름 같이 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열거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소수라는 이유로 소수인 히브리 기독교인들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유대사회를 와해시키는 내부의 적이라는 비난을 들으며 온갖 박해를 받았습니다. 영화 ‘회복’에는 유대 기독교인들이 히브리 사회에서 당하는 고난을 잘 보여 줍니다. 한 소년은 보수파 유대인이 보낸, 선물로 위장한 폭탄을 열었다가 온몸이 갈기 갈기 찢기는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또 보수파 유대인으로부터 5년 동안 집 앞에서 욕설과 저주를 듣고, 때로는 폭력까지도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 가족이 나옵니다. 이처럼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유대사회에서 부당한 박해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다수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수가 정의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면 안심이 되지만 혼자하려면 불안합니다. 부모님들 중에서도 장로교회 다닌다고 하면 안심하지만 UBF다닌다고 하면 “그게 뭐여, 이상한 곳 아니여” 하며, 아무리 좋은 곳이라고 설명해줘도 나오라고 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길을 걸었던 구름 같은 선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이사무엘 목자님 등. 이렇게 구름같이 많은 증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말해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진리의 길이라는 확신을 줍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살다가 악한 형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노아 시대에 노아는 홀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 분들은 비록 소수였지만 하나님으로부터 그 믿음을 인정받았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이 바로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은 결코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진리의 길이라는 확실을 줍니다. 둘째로, 이 길은 결코 외로운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름 같은 믿음의 선진들, 앞서간 존경하고 사모하는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 이사무엘 목자님 등 그 분들이 지금도 하나님 보좌 앞에서 우리를 격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힘내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러면 이제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믿음의 경주를 감당해야 합니까?
첫째,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해야 합니다. 12:1하를 읽겠습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모든 무거운 것이란 바리바리 싸서 짊어지고 가는 것을 말합니다. 6.25전쟁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피난 갈 때 모두 다 한 보따리씩 지고, 이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짊어지고 가겠습니까? 아까우니까, 포기할 수 없으니까 지고 가는 것입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챙겨들고 튀는 것이 그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란 ‘쉽게 반복적으로 빠지는 죄’를 말합니다. 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또 죄에 넘어집니다. 이러한 사람은 영적인 신분으로는 자유인이나 여전히 죄의 종 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헛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마라톤 경주와 같습니다. 버리기 아깝다고 바리바리 싸들고 뛰다가는 몇 발자국 못가서 기운을 소진하고 쓰러집니다. 멋있다고 치렁치렁 달고 뛸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버려야만 힘찬 역주를 펼칠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절을 읽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힘차게 믿음의 경주를 시작했는데, 원하는 결과가 빨리 빨리 안 나오거나 힘이 들면 누구나 혹시 잘못된 길에 선게 아닌지 의심하고, 다른 길은 없는지 기웃기웃 거리고, 쉬운 길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No Cross, No Crown,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천지가 무너져도 요동하지 말고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전진해나가야 합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너희의 인내로 너희의 영혼을 얻으라”고 하셨습니다.(눅21:19)
주님은 인내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원수들이 네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할 때 잠깐 내려오셔서 손을 봐주고 다시 올라가실 수 있는데도 참으셨습니다. 거역하며 반발하는 죄인들을 참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도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캠퍼스에 나가면 과거보다 반발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떨 때는 목자인 것을 잠깐 내려놓고 선배로 돌아가서, 한 대 쥐어박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우리 주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묵상하며 그 인격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처럼 참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 참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참으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것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처럼 훈련에는 반드시 상급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예수님께서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박해할 때는 기뻐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니라”(마5:11,12)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훈련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를 위하여 흘리는 땀방울 하나 하나, 시간과 노력, 눈물 한 방울까지도 모두 다 우리에게 영광이 되어서 돌아올 것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날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기시고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며 우리를 그 품에 안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훈련 앞에서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님을 바라봐야겠습니다. 또한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하겠습니다. 그리고 힘을 내서 다시 일어서서 믿음의 경주를 힘차게 해야겠습니다.

Ⅱ. 아들을 훈련하시는 하나님(4~13)
그러면 주께서 사랑하시는 우리를 이처럼 훈련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억해야할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히브리서 저자는 그들이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는 순교하기까지 싸우라는 것입니다. 죄는 아무리 가벼운 것이라도 결코 봐줄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죄는 그 뿌리가 뽑히기까지 철저히 싸워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훈련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5절 말씀에는 하나님의 훈련을 받는 자가 범하는 잘못된 자세가 나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첫째는 하나님의 훈련을 경히 여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훈련을 받을 때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런 자는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그 내면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성장이 없습니다. 잠언 12:1절에 보면 훈련을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다고 합니다. 둘째는 낙심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훈련하면 “왜 나만 갖고 그래”하며 절망하고 깊은 불의에 빠져 자학합니다. 이런 자는 겉으로 볼 때는 겸손한 것 같지만 실상은 훈련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훈련을 받을 때 그것을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재난을 당할 때 그것을 하나님의 훈련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연한 사건으로 봅니다. 또 목자님이 주시는 훈련도 하나님께서 목자님을 통하여 주시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 앞에서 훈련을 받습니다. 우리는 어떤 훈련이든지 하나님께서 그 사건을 통하여, 그 사람을 통하여 주시는 훈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성숙한 내면을 지닌 하나님의 사람들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으로 영접하지 않으면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되고, 운명의 사슬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훈련으로 영접하면, 고난은 우리 내면에 하나님의 형상을 조각시키는 은총이 됩니다.
6-8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과거 우리는 사탄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신분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우리의 인격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금방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습관적으로 범죄하고, 고질적인 죄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거룩한 나라 제사장 백성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훈련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훈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왜 주께서 나만 미워하시는가? 구원해 놓고 실컷 부려만 먹으려고 하시는가, 희생만 하라고 하는가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그러나 훈련하시는 사랑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전쟁고아로 미국에 입양되어 상원 의원이 신호범 의원의 간증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네살된 한국인 아이를 입양한 미국인 부부에게 전화가 왔는데, 지난 일 년간 훌륭한 부모가 되려고 노력했는데 어렵다.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입양아가 농구 연습하는 곳으로 자주 찾아가 친해진 후에 “입양생활 어떠니?”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눈물을 쏟으면서 “자기는 행복하지 않다. 왜 자신을 입양아로 데려왔으면 아들인데, 아들로 대해주지 않고, 특별한 손님처럼 대합니까” 합니다. “무슨 말이냐?”고 하니, “그 집에 일곱 살과 열한 살 먹은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한테는 청소도 시키고, 자동차 세차도 시키고, 말 안 들으면 아빠가 때리기도 하는데, 왜 나한테는 일도 안시키고, 때리지도 않습니까? 그것이 아들입니까? 특별한 호텔 손님이지”하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그 양부모에게 전한 후 2개월 쯤 후 다시 만났을 때 기쁨의 춤을 추면서 “어제 큰 일이 있었습니다. 어제 밤에 아빠한테 얻어맞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얻어맞았기 때문에 아들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사랑을 받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훈련 받는 것은 하나님 사랑의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훈련하실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더욱 확신해야겠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훈련을 받을 때 공경하는 자세로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훈련하시기 때문입니다. 훈련을 받을 때 반발하고, 불순종하는 사람은 전혀 성장하지 못하고 점점 못쓰게 됩니다. 사람들은 훈련을 받을 때 순종하면 왠지 이상해보이고, 반발해야 똑똑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반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자세를 가질 때만이 겸손하게 훈련을 받을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훈련은 당시에는 즐거워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훈련을 받은 후에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습니다. 훈련을 통해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하나님 중심적인 사람으로, 이기적인 사람이 희생적인 사람으로, 세상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기를 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더 힘차게 믿음의 싸움에 동참해야겠습니다. 더 나아가 이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가 맺기 원하시는 열매를 맺어야하겠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청주센터에서는 오랫동안 소망 가운데 섬겨왔던 형제님과 자매님이 떠났습니다. 특히 자매님은 저희 모임이 작다는 이유로 다른 교회로 간 것은 저에게 많은 상처와 아픔을 주었습니다. 또 저는 직장과 신학대학원 공부, 제자양성 역사를 섬길 때 잠시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힘든 훈련과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문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훈련은 죄인과 청주센터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깨닫습니다. 죄인이 그동안 하나님께 감사보다는 불평을 일삼은 것은 회개합니다. 제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훈련을 마음으로 받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또한 충북대, 청주대, 서원대 등 청주센터 열두 제자양성 역사를 위해서 더욱 힘쓰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들을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의 훈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훈련 앞에서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믿음의 싸움을 싸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신앙의 경주를 힘차게 달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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