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2025부활절 메시지 1과연 복음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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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부활절 메시지 1 과연 복음이란 무엇인가?
고린도전서 15장 강해 일부
고린도전서 15장 1-11
요절 고린도전서 15장 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2025년 부활절이 4월 20일입니다. 신기하게도 대체로 부활절이 오기 전에는 날씨가 안 좋다가 부활절이 되면 날씨가 좋아진다고 합니다. 올해는 부활절이 늦게 4월 20일에 있어서 그런지 4월이 되어서도 눈이 오고 늦추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절이 다가오면서 따뜻해지고 꽃도 만발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일까요? 복음은 승전보의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기원전 490년에 마라톤이라는 지역에서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 사이에 전투가 있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아테네가 페르시아를 이기고 승리하였습니다. 이 승전 소식을 페이디피데스가 42.195 킬로미터를 아테네에 뛰어가 전하고 죽었습니다. 여기서 마라톤 경기가 유래했다고 합니다.(만들어낸 이야기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승전소식이 바로 복음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하나님이 전하는 복음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전하신 복음이 무엇인지 배우고, 그 복음에 기초하여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구원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복음을 헛되이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바울은 이미 복음을 전해서 고린도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복음을 다시 전해서 알게 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다시 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베드로파, 바울파, 아볼로 파로 나누어져 싸우는 분파 문제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의 첩과 잠을 자는 음행문제도 있었습니다. 물질 문제로 사기쳐서 손해 본 사람이 법정에 고소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성만찬할 때 가진 자와 안 가진 자가 따로 식사하는 빈부의 갈등 문제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들을 무시하여 갈등하는 문제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기 위해서 고린도전서를 써서 하나씩 도와주었습니다. 나중에는 사랑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여 13장 사랑 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쳤습니다. 사랑을 가르치고 바울이 결론적으로 생각하니 고린도 성도들이 복음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음을 잘 알면 이런 많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문제가 일어나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으로 부활의 복음을 고린도전서 15장에 걸쳐서 다시 길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바로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복음을 바로 알아야 우리는 여러 문제에 빠지지 않고 그 문제에 빠졌을지라도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복음을 바로 알아야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복음은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사탄은 이 귀한 복음을 훼손시키고자 공격합니다. 복음을 잘못 믿으면 한 사람이라도 지옥으로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귀한 것일수록 가짜가 많은 것과 같습니다. 귀한 돈도 위조 지폐가 있고 다이아몬드도 가짜가 많습니다. 위조지폐는 돈과 아주 유사하게 보이지만 결국 돈으로 가치가 없습니다. 위조지폐로는 물건을 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유사복음도 아주 복음과 같아 보이지만 유사복음을 믿으면 그 복음으로 구원 받지 못합니다. 사탄은 많은 이단을 만들어 복음을 훼손시켜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구원 받지 못하는 유사복음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세속주의 복음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보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좀 어려운 말로 번영신학, 성공신학, 축복신학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영지주의 복음입니다. 영지주의 핵심은 이원론입니다. 이들은 육체를 부정하고 영적인 것만을 신령한 것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자신은 택함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육신의 소원을 따라서 마음대로 사는 자들입니다. 아니면 금욕주의자로 육신의 소욕을 죄악시하며 살아갑니다. 이들은 음식을 폐하고 결혼을 폐합니다. 가정이나 직장 생활을 소홀히 하게 만듭니다.
셋째는 율법주의 복음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구제하고 금식하고 헌금하고 선행하여 구원받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교만하여 남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바리새인처럼 위선적이고 이중적이 됩니다.
이런 유사복음을 믿으면 위조지폐로 물건을 살 수 없는 것처럼 구원받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반복하여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유사복음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위조지폐를 분별하는 방법은 위조지폐를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진짜 돈을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가짜 복음을 구별하는 법은 바로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이단에 빠져 헛되이 믿는 성도들에게 복음이 무엇인지 다시 설명합니다.
(2)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사도 바울은 복음을 크게 세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십자가 복음입니다. 구약 성경대로 예수님을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시편 22편에 보면 그리스도는 그 몸이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같이 내 속에서 녹았다고 나옵니다. 이사야서 53장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모든 뼈는 어그러지고 마음은 촛물처럼 녹아내렸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흘려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사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우리를 저주와 심판에서 구원하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은 죄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이 뚫리는 복입니다. 나에게 죄사함을 받았을 때가 가장 기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만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의 길을 가며 날마다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은 것처럼 디모데에게도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을 받는 것도 복음입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져야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천안을 평신도로 개척하고자 천안에 와서 고난을 받았던 것도 지금의 영광이 있기 위해 매우 큰 기쁜 일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지 않은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십자가 없이 편하게 신앙생활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기독교는 잘못된 기독교입니다. 구원파가 이와 같은 자들입니다. 구원파는 기쁜 소식 선교회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역설적으로 슬픈 소식 선교회고, 구원파는 구원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장사될 때 우리의 옛사람도 장사지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옛사람을 무덤에 장사지내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 부활의 복음입니다. 시편 16편에 보면 주의 거룩한 자 그리스도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나옵니다. 주의 거룩한 자는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그 예언의 말씀대로 썩지 않는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예수님 안에는 죽음이 없고 잠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잠자듯이 평화롭게 죽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은 자들을 잠 들었다고 말합니다.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유일한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고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의 은혜로만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미국을 스스로 헤엄쳐 갈 수 없고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가듯이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않고 천사 중 하나로만 보는 이단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은혜로 살지 않고 율법주의에 빠집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고자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교나 신천지가 이와 같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행위로 구원을 받고자 열심을 냅니다. 이들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선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승천하여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새하늘과 새땅을 만드신다고 예언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경대로 승천하여 새하늘과 새땅인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키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시는 데는 비행기나 배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비행기나 배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십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우리를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로 데리고 가십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성도는 이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지 않고, 이 세상에 소망을 두게 사는 사람은 세속주의 이단에 빠진 사람입니다. 대체로 샤머니즘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세속주의에 빠집니다. 예수님 주위에 떡을 달라고 병을 고쳐달라고 찾아오다가 떡을 주지 않자 떠난 무리들이 세속주의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이들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3) 부활을 믿고 순교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바울은 복음대로 산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게바인 베드로와 12제자와 예수님이 승천할 때 있었던 오백여 형제에게 예수님은 보이셨습니다. 이들은 당시에 태반이나 살아 있었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총회장이 되었고 야고보서를 썼습니다. 예수님은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 보이셨습니다. 이 사도들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예수님이 표적으로 함께 한 사람들입니다.
위에 소개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 고난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름이 나온 제자와 사도들 대부분 순교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기쁨으로 자원하여 순교하였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고난을 받고 순교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도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죽는 것이 두려워 옛님을 세 번이나 계집종 앞에서 부인한 사람들입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서로 예수님의 옆자리에 앉고자 싸운 자들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다 이스라엘의 독립을 소망하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이 세상에서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믿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상급을 받을 것을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데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에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스데판처럼 순교하면서도 얼굴이 천사처럼 되어 순교하였습니다. 그들은 행복하게 죽음으로써 부활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4) 바울은 은혜로 더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를 쓰고 있는 바울은 자신의 삶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합니다.
첫째, 바울은 은혜의 복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부활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그는 과거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큰 빛으로 찾아와서 죄사함을 주시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사도로 삼아 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그와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그는 함께 하신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도보다 더 수고하였습니다. 그는 신약성경의 절반을 써서 기독교신앙을 체계화하였습니다. 그는 소아시아 유럽과 로마 선교를 통하여 세계선교를 하였습니다. 대부분 이렇게 많이 수고하면 자기 의에 빠집니다. 수고하지 않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였기 때문에 그는 조금도 교만해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함께 하신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많이 수고하고도 겸손했습니다. 그는 삶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둘째, 바울은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사람이 빠지는 잘못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은혜로 구원받았으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하기 싫으면 ‘은혜로 합시다’ 라고 합니다. 그들이 은혜로 하자느 말은 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그들은 불신자보다 더 못한 삶을 살아갑니다. 율법주의자보다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은혜로 사는 직장이나 교회에 부정부패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성도들이 욕을 얻어먹습니다. 이들은 구원받지 못하는 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사람들은 더 많이 수고합니다. 율법주의자보다 율법을 더 잘 지킵니다. 율법주의자는 행위로만 율법을 지키지만 은혜로 지키는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지킵니다. 기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더 많이 수고하여 다른 사람을 섬깁니다. 더 많이 수고하여 열심히 전도합니다. 더 많이 수고하고 헌금합니다. 바울은 더 많이 수고하여 십자가 복음을 몸으로 증명하였습니다.
(결론) 복음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복음은 기쁨의 승전보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무엇입니까? 첫째, 십자가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영광에 이르는 복음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 은혜로 구원받고 모든 것을 은혜로 사는 복음입니다. 셋째, 우리로 하나님 나라를 누리다가 죽어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이 세 가지 복음의 한 가지만 없어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아무리 도덕성이 있어도 은혜의 복음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열두 제자와 사도 바울을 통하여 증명된 복음입니다. 우리도 이 복음을 알고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삶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두고 순교적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은혜 신앙으로 겸손해야 합니다. 십자가 신앙으로 더 많이 수고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복음을 정확히 알아야 우리의 가정이나 교회가 문제에 빠지지 않습니다. 가정이나 교회의 여러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제대로 알아야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 나라를 만들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알고 다 구원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025년 부활절 메시지 1 과연 복음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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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 고린도전서 15장 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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