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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데살로니가전서 1장 강해 믿음의 본이 된 데살로니가 성도들

작성자 : 천안UBF
작성일 : 2021-07-09 05:47:17
조회수 : 922
데살로니가전서 1장 강해 믿음의 본이 된 데살로니가 성도들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1장1-데살로니카전서 1장 10
요절 / 데살로니가전서 1장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에 데살로니가를 개쳑했습니다. 2차 전도 여행은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유럽 전도로 방향을 바꾼 여행입니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 처음에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종의 귀신을 쫓아내고 나서 바울은 그 주인의 고소로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감옥에서 풀려 났습니다. 그 다음에 개척한 곳이 데살로니가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3주일에 걸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곳에서도 핍박을 받습니다.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바울을 잡고자 난리를 피웠습니다. 바울은 이들의 핍박을 피하여 밤에 도망가 베뢰아에 가서 다시 복음을 전합니다. 베리아에서 아테네로 간 바울은 박해받고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굳게 세우려고 디모데를 보냈습니다.(3:1-3) 아덴에서 복음을 전한 후에 바울이 고린도에 갔을 때 디모데가 바울에게 와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신앙의 문제점을 돌보아 주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특히 오늘 말씀에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이 마게도냐 지방에 본이 되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본이 된 교회였습니다. 신앙생활 잘하기로 소문난 교회였습니다. 우리도 올해 초 모델 교회가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잘 배워서 우리 모임이 모델교회로 소문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쓰는 편지) 

1절을 보십시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1) 실루아노는 실라의 로마식 이름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이차 전도여행시 같은 조가 되어 역사를 섬겼습니다. 디모데는 이차 전도여행 초기에 루스드라에서 택한 바울의 아들과 같은 제자로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함께 있어 편지를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라고 소개합니다. 사람들은 교회라는 말을 쓰지만 교회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은 교회하면 십자가가 있는 건물이 있고 신학교를 나와 안수받은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 시무하는 곳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유비에프는 선교회이니까 교회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적으로 볼 때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을 때 그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말을 했습니다. 카톨릭에서는 이 말씀을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이 있는 자신들만이 참 교회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교회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 곧 왕으로 모시고 그 몸이 되어 모인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지 사람의 교회가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교회의 건물도 없었고 신학교를 나온 목사도 없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주로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목회자도 바울과 디모데가 잠깐 있다가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 공동체의 주인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들을 교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임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임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임도 하나님의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입니다. 교회의 몸은 신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신자들을 통해서 자신을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런 교회에 소속해서 서로 교제를 나누고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듯이 교회에 대해서도 좋은 이미지를 가져야 합니다. 칼빈은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가  되어야합니다. 성도들은 교회를 사랑하는 어머니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바로 성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는 싫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가 망해야 예수님이 산다고 말하고 무교회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뜨내기처럼 이 교회 저 교회 옮겨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교회에는 미숙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가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어야하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교회를 이분화 시켜서 교회를 비난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이상적으로만 알지 현실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의 신앙은 다분히 관념적인 신앙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비록 교회에 문제가 많지만 교회를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아름답게 생각한다면 교회를 아름답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미국 메이져리그에서 최다 홈런을 친 어느 야구선수가 홈론을 칠 때 씹다 뱉은 껌이 아주 비싼 가격에 팔렸다고 합니다. 그 껌이 무슨 특별한 껌이 아닙니다. 다만 최다 홈런 선수가 씹었다는 연관성밖에는 없습니다. 그 사람이 좋으니까 심지어 그 껌까지 좋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사랑하는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목자의 부정적이 면을 함부로 말하는 것도 예수님을 경외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교회를 사랑하고 주의 종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깨끗하고 좋은 이미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이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자부심과 긍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신앙이 바로 설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바울)

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인해서 항상 감사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에는 어느 곳을 보든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편지를 쓸 때마다 감사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편지를 쓰거나 말을 할 때 감사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을 해야 그 말이 마음에 역사합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감사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아첨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마다 감사했습니다. 바울은 양들의 좋은 소식을 들을 때만 감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당시에 데살로니가 성도들 사이에는 사도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생각할 때 항상 감사했습니다. 이런 감사하는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목자가 양으로 인해서 감사하고 양은 목자로 인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로 인해서 항상 감사하고 아내는 남편으로 인해서 쉬지 않고 감사해야 합니다. 바울의 감사는 추상적이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구체적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의 감사제목이 무엇입니까? 

(믿음을 인하여 감사함)

3절을 보십시오. "너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인하여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바울은 세 가지 점에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데살로니카 성도들의 믿음의 역사입니다. 여기서 역사라는 말은 행함이라는 뜻입니다. 진실된 믿음에는 행함이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거짓된 믿음이요. 이중적인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구체적으로 위기 상황이나 문제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폭풍이 불고 파도가 치는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서워 떠는 제자들을 책망했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우리는 살아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을 때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고 믿음으로 학과 공부를 정복하고 믿음으로 제자양성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제가 가르치는 한 학생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선생님 저 종찬인데요. 언어 영역 다맞고 총점은 388점에요." 이 학생은 언어 점수가 거의 105점 정도 였습니다. 이 학생이 120점 만점을 맞았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또 한 학생은 평상시에 언어가 108점 정도 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와 공부한 후에 어려운 문제인데 116점이 나왔습니다. 이 학생은 천안에서 이등을 하였습니다. 북일고 자모회에서 이들이 나를 이야기하여 나의 소문이 많이 퍼졌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제가 그들이 본 문제를 보니까 내가 보아도 햇깔리는 문제가 몇 개 있었습니다. 이들이 좋은 점수를 맞은 것은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복의 근원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믿음이란 현실에서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로 인한 감사)

둘째 사랑의 수고입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수고가 따르는 것입니다. 거짓된 사랑은 상대방에게 수고를 요구하고 자신은 섬김만 받고자 합니다. 이는 이기적인 사랑이요. 감정적인 사랑입니다. 아가페적인 사랑이 아닌 에로스적인 사랑입니다. 아니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한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서 자신이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다가오기를 요구하지 않고 내가 다가가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사랑하니까 내가 사랑하는 것은 거래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상대방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 주셨습니다. 지난 주에 배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해서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바르고자 무덤으로 갔습니다. 모니카 사모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며칠을 함께 유하며 간호해 드렸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진정 시아버지를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 목자들이 수고하는 것도 양들을 돌보는 것도 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수고가 있는 곳에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사랑의 수고가 있는 곳에 성령이 일하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망의 인내)

셋째 예수님에 대한 소망의 인내입니다. 진정한 소망은 인내를 가능하게 합니다. 소망이 있을 때 어떤 고통도 참을 수 있습니다. 여자가 해산의 고통을 참을 수 있는 것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임산부가 부끄러워 했으나 요즘은 자랑합니다. 여자 가운데 육분의 일이 불임이라고 합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아기를 한번 낳은 여자와 결혼한다고 합니다. 이는 생명을 낳을 수 있는 분명한 소망이 있는 여자와 결혼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첫애기 예수님의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도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갈 것이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어떤 고통이라도 참을 수 있습니다. 월드컵 축구팀이 16강 진출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훈련의 고통을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월드컵 부활팀을 세운다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기도의 고통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4)” 현재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핍박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는 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그들의 의지나 선택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잘 전해서 된 것도 아닙니다. 이런 것도 있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이들 가운데 일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셨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창세 전에 선택하시고 그들 가운데 일하신 것입니다. 세계 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 믿고 선택받았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때 현재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파된 복음) 

5절을 보십시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카 교회가 하나님께 선택함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우선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은 내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이 만난 부활의 주님, 십자가의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그의 죄를 사해주시고 그의 마음 속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복음은 말을 통해서 전파됩니다. 일대일 말씀과 주일 말씀 새벽 말씀을 통해서 전파됩니다. 그러나 복음은 말로만 전파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에는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성령님에 의해서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따라서 일어납니다. 이를 통해서 부활의 주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속에 함께 하시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복음이 임하면 그렇게 담배가 맛이 있던 사람이 담배 맛이 없어집니다. 늦잠을 자고 게으르던 사람이 부지런하여 일찍 일어납니다. 이기적이 되어서 빼앗기만 하던 사람이 주는 사람이 됩니다. 매일 인상만 쓰고 다니던 사람이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게 됩니다. 윗사람에게 반항하던 사람이 윗사람에게 공손하게 순종하는 사람으로 됩니다. 복음이 임하는 곳에 질병이 치료됩니다. 학과성적이 올라가고 직장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질병이 치료되고 가난한 자가 부유하게 됩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이 말로만 전파되지 않고 능력으로 전파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역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확신을 갖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본이 되어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 복음을 전했는지 너희가 안다고 하였습니다. 목자는 인격적으로 본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십계명 말씀에 순종하여 인격이 변화되어야합니다. 물질 문제나 여자 문제나 명예를 위한 싸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친히 능력으로 일을 하십니다. 

(환난 가운데 역사한 복음)

6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 되었으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복음을 받아드렸습니다. 사람이 환난이 있으면 겸손해집니다. 순수해집니다. 복음에 대해서 마음 문이 열립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큰 환난 가운데서 복음을 받아드리고 성장을 했습니다. 고인이 되신 영락 교회의 한경직 목사님, 명성교회의 김삼환 목사님, 충현교회를 일으키신 김창인 목사님,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님 모두가 폐병 삼기까지 가서 생사의 기로에 있던 분들입니다. 곽선희 목사님은 북한 공산당에 의해 탄광으로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사람입니다. 유비에프를 시작하신 이 사무엘 선교사님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새엄마 밑에서 많은 고생을 하며 자랐습니다. 우리 나라는 민족적으로도 일제 식민지와 육이오, 가난, 질병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하나님은 복음으로 뜨겁게 역사하셨습니다. 이렇게 복음은 환난 가운데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환난은 복음을 영접하고 신앙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성령의 기쁨으로 복음을 영접했습니다. 이는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맛보는 것입니다. 이는 돈을 벌 때의 기쁨이 아닙니다. 대학에 합격하고 아들 낳고 박사학위를 땄을 때의 기쁨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나라의 기쁨입니다. 진리를 발견할 때의 기쁨입니다.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그 기쁨입니다. 이런 기쁨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고난과 환난도 극복하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예수님을 본받은 교회)

그들은 이렇게 예수님을 믿은 후에 사도 바울과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델로 삼아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본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가장 잘 본받고 있는 사도 바울을 본받는 생활을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말씀을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본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생활 속에서 가장 잘 믿고 있는 사람을 본받아야 합니다. 

(본이 된 교회)

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사도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 그리고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했을 때 그들은 또 본이 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빌립보 베뢰아 아덴 고린도 교회의 본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을 삼 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디모데가 이들을 말씀으로 도왔습니다. 이들은 신앙이 짧았지만 모델교회가 되었습니다.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좋은 교회로 소문난 교회가 되었습니다. 

(소문난 교회)

8절을 보십시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도다." 우리 주위에는 소문난 것들이 있습니다. 자동차 하면 현대차가 견고하고 AS가 잘 된다는 소문이 나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차가 잘 팔립니다. 전자제품하면 삼성전자입니다. 천안에서 생태찌개하면 유량동 생태찌개가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허름한 집에 생태찌개를 먹으러 모여 듭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그렇게 믿어야 한다고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배우기 위해서 데살로니가 교회로 모여 들었습니다. 우리 모임도 소문난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모임, 기도 잘하는 모임,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모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모임, 제자 양성을 가장 잘 하는 모임으로 소문이 나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본이 되고 소문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본이 되는 모델을 설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 선배들 가운데 신앙생활을 잘하는 분들을 우리의 모델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배우고자 투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이 시대의 모델교회요. 모델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신앙의 모델이 되신 분들은 많이 있습니다. 한안드레 목자님은 섬김의 모델이 되어주셨고 구모세 목자님은 말씀의 종으로서 모델이 되어 주셨으며 서베드로 선교사님은 이해의 모델이 되어 주셨고 홍보나 목자님은 순종의 모델이 되어 주셨습니다. 곽선희 목사님은 기도와 진실된 신앙의 모델이 되어 주셨고 조용기 목사님은 성령의 역사와 십자가의 모델이 되어 주셨습니다. 제가 특별히 곽선희 목사님의 절대적인 새벽기도를 모델로 삼아 기도했을 때 십년째 절대적인 새벽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많은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좋은 신앙 생활하는 분들의 본을 받아 우리도 모델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 알다시피 저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인간적으로는 허점투성입니다. 그러나 제가 한 가지 여러분들에게 본이 된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천안 ubf가 절대적인 기도의 본이 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삶)

9절을 보십시오 이 나옵니다. "저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신앙생활에서 본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첫째 그들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했고 진실한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버리는 분명한 결단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기 쉬운 음란한 것들, 물질적인 것들에서 분명히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했습니다. 

(분명한 재림 신앙을 가진 교회)

 10절을 보십시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부활의 주님이 다시 재림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늘에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반드시 올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심판에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불신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천안 ubf는 많은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이것이 옳은 신앙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신앙이라는 면에서 본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과 예수님을 잘 믿는 교회의 본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한국의 종로ubf의 전요한 목자님, 경주ubf의 박다니엘 목자님의 본을 받아 우리도 본이 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데살로니가전서 1장 강해 믿음의 본이 된 데살로니가 성도들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1장1-데살로니카전서 1장 10
요절 / 데살로니가전서 1장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데살로니가 1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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