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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2장 강해1 삼사부 목숨을 건 종교개혁, 마이 성전의 시대가 되었다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3,190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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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넷째주 메시지 목숨을 건 예수님의 종교개혁

요한복음 23부 문제지 목숨을 건 예수님의 종교개혁

말씀 요한복음 2:13-17

요절 요한복음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하여 개신교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종교개혁의 뿌리를 보면 예수님에게로 거슬러 올라가고, 예수님의 종교개혁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종교개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예수님의 종교개혁을 통해서 기독교가 형성되었습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종교개혁을 통하여 진실한 유태교가 생겨났습니다. 이런 종교개혁은 지금도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기득권과 싸워야 하는 목숨을 건 행위입니다. 우리가 항상 개혁을 하여 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예수님의 종교개혁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고 첫 번째 유월절을 맞이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셔서 아버지 집인 성전을 찾아갔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입니다. 성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소리가 들리고, 기도하는 소리가 가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성전에 갔을 때 성전에는 장사하는 소리, 돈 바꾸는 소리가 가득하였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장사꾼의 집이 되어 있었습니다. 성전의 주인은 돈이 되고,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장사치들은 제물을 팔아서 폭리를 취하고 있었고, 성전세를 바치도록 환전하는 사람들도 높은 환율을 적용하여 폭리를 취하였습니다. 그들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자릿세로 커미션을 주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은 성전을 장사하는 집을 만들었다고 말씀하시지만 다른 복음서에 보면 강도의 집을 만들었다고 나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강도같이 성도들의 돈을 착취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제물을 팔아서 7-14배의 폭리를 취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채찍으로 양이나 소를 성전에서 쫓아내셨습니다. 돈바꾸는 자들의 돈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비둘기 파는 자들에게 비둘기를 가져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개혁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개혁한 핵심은 무엇일까요? 성전의 주인이 사람이나 돈이 된 것을 쫓아내고 성전의 주인을 하나님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의 주인된 장사치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주인 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장사치는 상인들보다는 이들을 통해서 이익을 얻는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거룩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장사치들입니다. 그들의 깊은 중심에 하나님이 없고 돈이 있었습니다. 목자들도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이 없고 돈이 있으면 목자들을 장사치로 보십니다. 지금의 성전은 우리의 몸이고 성도의 모임인 교회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주인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나 돈이 주인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채찍을 드시고 둘러엎으십니다. 우리가 주인 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주인 되는 교회를 만들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에 기초하여 개혁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잡으셨던 말씀은 이사야와 예레미야 말씀입니다. 개혁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편 말씀과 이사야 예레미야 말씀으로 개혁하셨습니다.

 

(2)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종교개혁

 

이사야 56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예레미야 7“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

 

예수님의 개혁은 이사야 예레미야 시대에 시작된 것입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시대에도 성전이 타락해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성전을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모여서 하나님과 기도하며 교제하는 곳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성전이 도둑의 소굴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망하기 전에 성전 안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남창들이 성전 안에서 몸을 팔았습니다. 성전에서 살인하고 성전에서 종교지도자들은 돈 버는데 열심이었습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스마야는 이런 시대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여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성전도 망하고 예루살렘도 망하고 유다도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시대를 바벨론 포로에서 지키기 위해서 눈물로 그들의 죄를 책망하였습니다.

3.목숨을 건 종교개혁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온유하신 예수님이 왜 이렇게 분노하셨을까요? 첫째는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개혁을 보면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는 시편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전을 사모하고 백성을 사랑하여 개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버지 집에 들어온 장사치와 강도들을 쫓아내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성전이 타락하면 성전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전체가 망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타락하여 유다가 바벨론에 망한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로마에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개혁하신 것입니다.

이 개혁은 목숨을 건 개혁입니다. 나를 삼킨다는 것은 불에 타서 죽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개혁으로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죄와 싸우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이 말씀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개혁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개혁은 기득권층과 싸움입니다. 기득권층은 자신의 이익을 놓지 않고자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빼앗아가고자 개혁하는 사람들을 결국은 죽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개혁을 하는 사람은 목숨을 거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개혁을 하다가 실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개혁을 하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셧습니다. 개혁하다가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도 헛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기독교가 형성되고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개혁해야 하는 이유가 이 개혁이 살 갈이 때문입니다. 우리의 개혁이 나도 살고 나라를 살리고 세계를 살리는 길입니다.

유대인들은 이사야를 톱으로 켜서 죽이고 예레미야를 지하감옥에 가두고 애굽으로 잡아갔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성전은 불에 탔고 유다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희생은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을 통해서 새로운 이스라엘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구약성경 39권을 보존하여 물려주었습니다. 이들의 개혁을 이어받아 에스라 느헤미야가 개혁을 완성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하고 안식일을 지키게 하고 십일조를 내게 하였습니다.

4. 루터의 종교개혁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이 이렇게 종교개혁을 하였지만 사도들에게 이어져 온 기독교는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로 나누어졌습니다. 로마가톨릭은 1500년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시 타락하였습니다. 로마가톨릭은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면죄부를 팔고 면죄부를 사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죄사함을 이용하여 장사를 하였습니다. 성경을 사제가 독점하고 성도들은 읽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당시에 사제들은 번역성경을 읽는 사람들을 불태워 죽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시에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닌 사제와 돈이 된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루터는 로마서 117절 말씀을 잡고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루터는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고 독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자국어 성경을 읽다가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불에 타 죽으면서 개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칼빈은 루터의 개혁을 체계화하였습니다. 그를 통하여 지금의 개신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톨릭도 개혁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가톨릭도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읽게 합니다. 평신도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게 합니다. 종교개혁을 통해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유럽과 미국이 그 개혁의 열매를 따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방정교는 개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 로마가톨릭보다 더 신앙이 분명했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삼위일체의 교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독교 교리가 생겼습니다. 사도신경도 이들을 통하여 형성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십자가를 긋은 순서를 가지고 싸우고, 두 손가락으로 그을 것인가? 세 손가락으로 그을 것인가?를 가지고 싸우고, 말씀을 읽은 후에 할렐루야를 두 번 부를 것인가 세 번 부를 것인가를 가지고 200년을 싸웠습니다. 십자가를 두 번 긋고 할렐루야를 두 번해야한다는 사람들을 2만 명을 화형으로 죽였습니다. 이것은 루터의 개혁에 비교하면 전혀 본질적인 개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형식적인 싸움을 한 것입니다. 그런 형식적인 논쟁을 하다가 그들 가운데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공산화 되어 수많은 성직자와 기독교인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으로 죽은 사람이 1억 명이 된다고 합니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목숨을 걸고 개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5. 지금의 종교 개혁

 

요한복음 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종교개혁을 한지 500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의 개신교는 어떠합니까? 또 다른 개혁이 필요합니다. 목사나 장로나 집사를 임명할 때 천만 원에서 일억 원씩 헌금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후임 목사는 전임 목사에게 돈을 주고 들어오기도 합니다. 매관매직이 된 것입니다.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이 재산권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성직자들이 하나님보다 물질적인 데 관심을 갖습니다. 교회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다른 교회 성도를 빼와서 자신의 교회만 성장하고자 합니다. 성직자들이 음란 문제로 넘어졌습니다. 교권 다툼을 하였습니다. 총회장이 되기 위해서 돈을 뿌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교회의 문제를 알고 개혁하는 하고자 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한 목사는 이런 것을 개혁하지 않으면 결국 교회도 망하고 나라도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70년 동안 평화가 있었는데 그런 평화가 깨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한국 교회에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코로나를 통해서 많은 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그를 통해서 교회 출석자의 숫자는 줄었지만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주인이 사람이나 돈이 아닌 그리스도 예수님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물질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교회가 아프리카나 아시아를 돕고 있습니다. 장애인이나 가난한 약자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법과 공의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음란문제, 교권 싸움 문제도 많이 줄고 교회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예배당 중심에서 말씀 중심이 되었습니다. 온라인이 활성화 되면서 말씀이 풍성해졌습니다. 이런 개혁을 통하여 교회는 살아나고 우리나라도 살아나고 있습니다.

 

결론 개혁이 살 길입니다.

 

우리는 다른 교회를 정죄하기 전에 우리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의 좋은 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기초하여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 되게 해야 합니다. 누구도 교회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두 사람이 교회를 좌지우지 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약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개혁해야 합니다. 성전 된 우리 몸을 항상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나도 이런 물질 중심의 기독교가 싫어서 평신도로 자원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24년 평신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거의 15년 전임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나도 항상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이 주인 되는 교회, 말씀이 중심이 되는 교회를 만들기를 원합니다. 제가 아직도 권위적인 것을 회개하고 보다 겸손하여 인격적이고 사생활을 보호해주는 목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 교회가 하나님 주인 되는 교회, 말씀이 중심이 되는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 몸이 돈을 벌어야 하지만 돈 버는 도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나 가족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만이 우리 교회의 주인이요 그리스도가 되게 해야 합니다. 돈이나 사람이 주인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살고 교회가 살고 우리나라가 사는 길입니다. 세계만민을 살리는 길입니다. 아멘!

 

5월 첫째 주 마이 성전의 시대가 되었다.

요한복음 24부 마이 성전의 시대가 되었다

요한복음 218-25

요절 요한복음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이전에 대한민국에 자동차가 처음 와서 탄 것은 고종황제라고 합니다. 운전기사가 없어서 일본인 기사가 운전했다고 합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우리 면()에서 자동차가 한 대뿐이 없었습니다. 차가 지나가면 아이들이 신기해서 따라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초등학교 선생님이 너희가 어른이 되면 마이카 시대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꿈이 이루어지어 마이카를 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왕이 탔던 차보다 더 좋은 차를 차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차를 사지 않든지, 운전면허를 따지 않으면 차를 탈 수 없습니다. 성전도 이와 같이 되었습니다. 과거는 대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뿐이 없는 성전에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이 성전의 시대가 되었다고 제목을 붙인 것입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성전이 주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보다 휠씬 좋아졌습니다. 이 성전의 은혜를 알아야 눌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전의 참된 기능을 알고 성전이 주는 세 가지 은혜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예수님은 성전이 되셨습니다.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이 성전을 개혁하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표적을 요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헐면 사흘만에 일으키겠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성전을 46년 동안에 지었는데 사흘 동안에 짓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을 건물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면 예수님이 사흘만에 부활하여 성전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그리스도가 되신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이 성전 되신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도 성전을 건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건물은 예배당이지 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의 몸이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은 일 년에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세 번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과 성도들과 교제하였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집의 창문을 내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도 무너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당시에 이 성전은 세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세 가지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성전은 죄사함을 받는 기능이 있습니다. 성전에서 속죄제물을 드려서 죄사함을 받습니다. 대제사장은 대속죄일에 지성소에서 속죄제를 드리고 대제사장이 성도를 대신하여 죄사함을 받게 합니다. 제사장들은 성전 뜰에서 매일 번제와 소제를 드리고 성소에서 속죄제와 소제를 대신 드립니다.

그런데 이제는 건물 성전이 아니라 성전되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십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되어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죽으심으로 속죄제물이 되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영원히 사하셨습니다. 전에는 제사장을 통해서 성전에서 죄사함을 받았지만 이제는 언제 어디에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습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회개하면 예수님이 그 피로 우리를 죄에서 깨끗게 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한 번은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상에 메고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보자 내 아들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이런 참람한 말을 하는가 하나님이 성전에서만 죄를 사할 수 있는데 예수님이 집에서 죄사함을 주었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대제사장이요 속죄제물이 되심으로 지구 어디서나 죄사함을 받는 시대를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회개함으로 예수님을 통한 이 죄사함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 성전은 하나님과 성도와 교제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화목제를 드려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성도들이 고기를 나누어 먹으며 교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성령을 받고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배당에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며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성도들과 식사하고 대화하며 서로 교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성도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그곳에 생명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성도들이 함께 모여 연합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노래했습니다. 그곳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시고 젖과 꿀이 흐르게 하십니다. 초대교회에 성도들이 서로 모여 떡을 떼며 물질을 나누었을 때 그곳이 천국처럼 되었습니다. 이를 보고 예수 믿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였습니다. 우리가 주일 말씀을 듣고 목장별로 식사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성전은 기도의 기능이 있습니다. 성소에는 분향단이 있습니다. 향을 피우는 분향단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향이 올라가듯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비가 내릴 때 이억 볼트의 번개가 치듯이 그렇게 큰 힘으로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분향단 앞에는 하나님이신 언약궤가 있고 왼쪽 위에서 성령님이 금촛대가 있고 오른쪽 뒤에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님께 둘러싸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언제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들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특히 중보기도가 힘이 있습니다. 저는 중보기도할 때 성령의 임재를 가장 많이 체험합니다. 중보기도는 내가 복받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교회 식구들과 가족들과 나라를 위해서 중보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전 되신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나 죄사함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과 성도들과 교제할 수 있고,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전 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큰 특권입니다. 우리는 차를 사서 타고 다니며 혜택을 누리듯이 나의 예수님 안에서 이 큰 성전의 은혜를 마음껏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2) 최고의 표적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예수님은 표적 신앙을 경계하셨습니다. 표적신앙은 표적에 기초하여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표적을 보여 주면 믿고 표적을 보여주지 않으면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탐욕에 기초한 신앙입니다. 그들은 탐욕이 채워지지 않으면 예수님을 떠납니다. 떡을 먹고 떡을 먹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른 무리들이 예수님이 떡을 주지 않자 다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표적신앙을 가진 자들을 믿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표적을 구하고 예수님은 표적을 보여주시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표적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표적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표적이 신앙의 기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표적을 보여주시면 믿고 표적을 주지 않으면 불신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표적을 보여주지 않아도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극열히 타는 풀무불에 집어넣는다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 왕이 그들을 풀무불에 넣으면 하나님이 건져주실 것을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표적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금신상에게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표적을 주시지 않아도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변하지 않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표적보다 무엇에 기초하여 예수님을 믿어야 할까요?

첫째는, 십자가와 부활에 기초하여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무슨 표적을 보여주느냐 물었을 때 예수님은 십자가 부활의 표적을 보여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요나가 사흘 물고기 뱃속에 있다 나온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동안 무덤 속에 있다가 살아나신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필요 충분한 표적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표적입니다. 십자가를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하신다고 크게 말씀하십니다. 부활은 공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적입니다. 부활을 보면 하나님은 공의가 반드시 이긴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만 있으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한 목사는 개혁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자살 충동에 시달렸습니다. 그 때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십자가가 그 목사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 너 죽는 꼴 보지 못한다예수님이 대신 죽었는데 우리가 또 죽을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말씀에 기초하여 믿어야합니다. 제자들은 말씀에 기초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었다고 두 번이나 나옵니다. 지구는 없어져도 하나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은 영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기초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믿어야 우리 신앙이 변화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가진 사람을 신뢰합니다. 백부장과 같이 말씀에 기초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크게 칭찬하십니다.

 

3. 결론

 

고종황제가 타던 차가 마이카 시대가 되었듯이 솔로몬의 하나뿐이 없는 성전이 마이 성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고종황제가 타던 차보다 더 좋은 차가 되었듯이 이제는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 좋은 성전이 되었습니다. 성전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을 믿은 성도의 몸이고 성도의 모임인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 좋은 성전을 하나씩 소유하고 있습니다. 마이 성전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성전은 죄사함을 주고 하나님과 성도와 서로 교제하고 기도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그리스도가 되심으로 성전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기초하여 성전 되신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고 성전의 삼대 기능을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을 통하여 죄사함 받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성도들과 서로 교제하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이 세 가지 은혜를 온전히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5월 첫째주 마이 성전의 시대가 되었다.

요한복음 24부 마이성전의 시대가 되었다

요한복음 218-25

요절 요한복음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요한복음 2장 강해 4부 끝.첨부6.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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