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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1장 강해 9,10부 똑똑하고 편견을 가진 사람을 제자로 삼는 법, 예수님이 우리를 아는 것은 점쟁이가 윌르 ㄹ아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2,349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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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둘째주 메시지 똑똑하고 편견을 가진 사람을 제자로 세우는 법

요한복음 1장 강해 9부 똑똑하고 편견을 가진 사람을 제자로 세우는 법

요한복음 143-요한복음 146

요절 요한복음 1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요즘 젊은이 가운데 스마트폰과 sns의 영향으로 합리적이고 똑똑한 빌립형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메스컴과 sns의 영향으로 예수님과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합리적인 지성인 빌립을 전도할 뿐만 아니라 제자삼으셨고 빌립은 편견이 있는 나다나엘을 전도하여 제자삼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똑똑하고 편견을 가진 사람을 전도하여 제자 삼는 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아멘

 

(1) 예수님은 합리적인 빌립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안식일이 지난 이튿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로 지나가시다가 빌립을 만났습니다. 빌립은 합리적이고 수학적인 사람입니다. 단번에 남자만 5천 명의 무리를 계신하였고 그들이 조금씩 먹을 때 반년치의 품삯이 들어간다고 계산한 사람입니다. 빌립은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믿고자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빌립은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하였습니다. 빌립은 헬라어를 잘하는 국제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사람들과 사교성도 있는 사람입니다.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을 때 빌립에게 먼저 면담 요청을 하였고 빌립은 안드레에게 말을 하였고 안드레는 예수님께 이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같은 동네 벳세다 사람입니다. 그는 안드레와 베드로의 변화를 통하여 그들이 만난 예수님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안드레는 그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자요, 살아있는 권력자요, 다시 오실 회복자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이 될 수 있느냐 말도 안 된다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냐고 정신차리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알고 있었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합리적인 사람의 세계만을 알고 있어지 합리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세계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을 보자 바로 그가 합리적인 지성인임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에게 하나님의 세계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고 빌립과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마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따르면서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과 성경을 공부하고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뒤에 그가 모세와 선지자에 기록된 그 분을 만났다고 한 것을 보면 그는 예수님과 성경 공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성경을 공부하면 그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를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합리적인 세계를 넘어서는 신비로운 세계가 있음을 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계산을 뛰어넘어 이루어지는 놀라운 세계가 있음을 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자 즉시 순종하여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빌립이 지성인이지만 예수님을 따라보면서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아보고자 한 겸손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거하며 성경을 공부하였습니다. 그가 성경을 공부하고 예수님을 보니 예수님이 성경에 예언된 그 그리스도임을 알았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인생 문제와 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다시 오셔서 인생을 회복시키실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하여 새생명을 얻었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처럼 그리스도를 만난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가 만난 그 예수님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같은 동네에 사는 나다나엘을 찾아가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성경을 의미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약 성경에 기록한 그 그리스도임을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구약에서 다시 보낸다고 하신 바로 그 그리스도라고 전했습니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사람도 예수님을 통하여 성경을 공부하면 변화됩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됩니다. 성경을 정확히 공부하고 성경을 통하여 나와 사람들과 역사를 보면 예수님이 바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합리적인 지성인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계신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가 예수님과 성경을 공부하면 변화될 것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은 예수님과 똑 같은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경을 정확히 공부해 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삶 속에서 순종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예수님이 우리의 참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성인을 힘써 성경 공부에 초청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사 예수님을 알게 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예수님은 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 그리스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 믿으면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지금 ubf 중에 성령의 역사가 가장 많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 우리나라의 지성인이 모인 서울대 ubf입니다. 서울대 관악 1, 3, 5, 7부 역사가 힘 있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울대 학생 중에서도 가장 똑똑하다고 하는 의대역사가 많습니다. 서울대 7부의 이목자는 수능모의고사에서 1등을 한적도 있는 수재입니다. 그러나 불에 닭이 타죽는 것을 보고 귀신이 들어갔습니다. 꿈에 뱀이 나타나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때 창세기 315절 말씀을 통해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했다는 말씀을 공부하고 귀신을 물리쳤습니다. 잠을 잘 잘 수 있었고 서울대 의대에 많은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관악 3부의 조상입니다. 관악 5부의 책임 목자인 인목자도 그분이 말씀을 가르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어떤 지성인이든지 말씀을 공부하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들을 전도해야 합니다.

 

(2) 빌립은 편견을 가진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빌립의 전도를 들은 나다나엘은 무시 받는 갈릴리 땅 나사렛에서 어떻게 그리스도가 날 수 있는가 반문하였습니다. 당시에 갈릴리는 이방의 갈릴리로 무시 받았습니다. 나사렛은 갈릴리의 산골짝에 있는 촌 동네입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미가서 말씀대로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말씀대로 예수님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할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빌립은 지역적인 편견을 가진 나다나엘과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와서 예수님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라고 한 것처럼 나다나엘도 우리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와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 와서 생활하면서 삶에서 직접 예수님을 알도록 도왔습니다. 이처럼 편견이 있는 사람도 다만 예수님께 와서 보라고 해야 합니다. 직접 성경 공부를 해보고 스스로 성경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 좋은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해야 합니다. 그들을 교회의 말씀 공부를 통하여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도와야 합니다.

루윌리스는 편견을 가진 친구가 기독교를 비난하는 말을 듣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고 편견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전도할지 몰랐습니다. 그 후에 그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성경공부를 통해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벤허를 썼습니다. 후에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그 책을 토대로 영화 벤허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편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벤허를 변화시킨 예수님을 보고 변화되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진실하게 공부해보면 어떤 편견을 가진 사람도 다 변화됩니다.

요즘에 메스컴과 sns에서 기독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뉴스를 많이 전합니다. 목사가 지은 죄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습니다. 소수의 영향력 있는 목사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광 무슨 목사가 코로나 시대에 안 좋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들을 전도하는 법은 좋은 교회 공동체를 소개해주고 그곳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좋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좋은 간증을 듣게 해야 합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의 모습을 나의 삶을 통하여 바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성경공부를 통해서 만나게 해야 합니다. 그가 직접 성경을 공부하고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해야 합니다. 바른 그리스도인임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편견을 가진 자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좋은 크리스천이 많습니다. 좋은 삶을 살았던 크리스천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가장 그리스도인답게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만나고 그리스도를 바로 보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편견을 가진 크리스천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여름수양회에서 한경직 목사님을 배웠습니다. 그분의 삶을 통하여 우리는 그 분이 그 시대에 얼마나 정직하고 청렴하고 겸손하게 살았는지를 배웠습니다. 그분의 선한 영향력으로 많은 선한 목회자가 많이 나왔습니다. ubf를 시작하신 이사무엘 선교사는 ubf를 성경공부와 평신도 중심의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를 이루었습니다. ubf가 아니면 나는 예수님을 만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가정교회를 시작한 휴스톤 서울교회의 최영기 목사님은 아주 겸손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았고 그리스도답게 사는 많은 사람을 양육하였습니다. 그는 관계를 중심으로 성경을 이해하였습니다. 교파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존경하고 그분을 배우고 있습니다. 요즘 ubf에서도 좋은 분들이 있습니다. 전직 ubf세계 대표를 역임하신 윤모세 목자님, 한양ubf의 김모세 목자님 안암골ubf의 이창무 목자님 같은 분들은 내가 존경하는 목자님들입니다. 우리 천안 ubf에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이런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그런 분을 만나게 해야합니다. 그러면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편견을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편견을 가진 지성인을 제자로 세우는 법

 

요즘 대학생은 메스컴과 sns의 영향으로 아주 똑독합니다. 편견도 많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갖기 어렵고 제자로 세우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들을 제자로 세우는 비전을 봅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체험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는 ubf 교회가 좋은 답입니다. ubf는 첫째 성경 중심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는 성경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교제 중심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잘 공부하고 말씀대로 살면서 좋은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고 서로 섬기는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좋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와 가정 안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요즘의 지성인들이 우리 교회에서 예수님을 경험하고 예수님의 좋은 제자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3월 둘째주 메시지 똑똑하고 편견을 가진 사람을 제자로 세우는 법

요한복음 1장 강해 9부 똑똑하고 편견을 가진 사람을 제자로 세우는 법

요한복음 143-요한복음 146

요절 요한복음 1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요한복음 1장 강해 9부 끝,

 

 3월 셋째주 메시지 예수님이 우리를 아는 것은 점쟁이가 아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요한복음 1장 강해 10부 예수님이 우리를 아는 것은 점쟁이가 우리를 아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요한복음 147-51

요절 요한복음 1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점쟁이를 만나면 우리의 과거를 알고 때로는 우리의 미래를 압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아직 예수님을 믿기 전입니다. 2층이 ubf교회 였고 일층이 점쟁이 집이었습니다. 이층 교회를 가려다가 1층에 잠간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점쟁이가 나에게 27살에 결혼할 것이라고 하였고 아내 때문에 내가 외국에 나가 살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27살에 결혼하였고 아내 때문에 외국에 나가 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잘 맞추는 사람을 점쟁이 같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의 과거를 아시고 현재를 아시고 미래까지 아십니다. 그러나 점쟁이가 우리를 아는 것과 예수님이 우리를 아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를 아실 뿐 아니라 미래도 아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아시는 것은 점쟁이가 우리를 아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예수님은 어디까지 얼마나 나를 아실까요?

 

(1)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아시고 복을 주십니다.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빌립이 편견을 가진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에게 와보라고 하였습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에게 나오자 예수님은 그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요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냐고 묻자 빌립이 그를 부르기 전에 무화과나무 아래서 묵상할 때부터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자신을 아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왕으로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아십니다. 내가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예수님은 38년된 병자를 보셨을 때 그 병이 벌써 오래 된 줄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을 때 그 여인이 과거 다섯 남편과 살았고 지금도 한 남자와 동거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니고데모가 나왔을 때 그가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갈망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시편에 보면 우리가 앉고 일어섬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오장육부를 아시고 우리의 생각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잠재의식까지 아십니다.

귀신들이나 무당들도 우리의 과거를 알아맞출 때가 있습니다. 이전에 축구 이영표 같은 대표팀에게 복음을 전한 박에녹 목사는 대기업에 다닐 때 신내림을 받았습니다. 어느날 복도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만나서 당신 오늘 조심해!’ 라고 하면 그 사람이 사고가 나는 것을 경험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전에 대전ubf교회에 있을 때 귀신들린 사람이 와서 너 호주머니에 돈 있으면서 내려고 하다가 헌금하지 않았지? 너 어제 음란 영상 봤지?’ 라고 하여 사람들을 정죄하여 무섭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귀신이 아는 것과 예수님이 아는 것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귀신은 우리의 과거의 죄를 알고 우리를 정죄하여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 합니다. 운명적인 생각을 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의 죄를 아시고 우리를 이해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38년된 병자의 병이 오랜 것을 아시고 치료하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부도덕한 과거를 아시고 이해하시고 용서하시고 새로운 삶을 살게 도우셨습니다. 니고데모가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를 아시되 우리를 정죄하지 않고 이해하시고 사랑하시고 해결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귀신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지만 예수님은 100% 아십니다. 귀신이 때로는 우리의 병을 아는 것처럼 하여 병을 치료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짜고 치는 고스톱입니다. 결국은 우리를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병을 치료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결국은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합니다.

성령을 받고도 귀신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박효진 장로는 성령을 받은 후에 사람들의 내면이 다 보이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였습니다. 누가 거짓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훤히 보였다고 합니다. 그들이 사람의 내면을 아는 그것을 사랑 안에서 소화하지 않으면 귀신이 아는 것과 다름이 없어집니다. 다른 사람은 판단하고 정죄하여 실족하게 합니다. 교만하여 자신의 자랑에 빠집니다. 사람들을 자기에게 몰려오게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사랑 안에서 은사를 사용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가장 큰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과거를 알면서 그것을 덮어주고 사랑으로 회개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공동체에 덕을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겸손히 영적 질서를 파괴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야 귀신과 달리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예정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인도하십니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나다나엘의 과거를 아시자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과거를 아시는 것을 보고 놀라는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은 더 큰 일도 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미래를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의 미래에 그는 예수님 머리 위로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문이 열리고 나다나엘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 성소와 지성소의 휘장을 찢어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여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예정된 미래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만 않으면 예수님은 우리의 미래는 영광스럽게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들을 택하시고 택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미래가 너무 확실하여 영화롭게 하셨다고 과거형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예정된 우리의 미래를 아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주님을 떠날지라도 우리가 주님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강권적으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 우리는 마음을 완악하게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영광스럽게 해 나가십니다.

귀신도 때로는 우리의 미래를 알아맞춥니다. 점쟁이가 한 분에게 누구와 결혼하면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점쟁이는 하나님 밖에 있는 인생을 결정적이 되고 운명적이 되게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두렵고 슬프게 합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귀신은 비인격적입니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우리를 끌고 갔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믿는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정하십니다. 예정은 결정과 다릅니다. 예정은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고 안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결정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문제를 당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살게 도우십니다.

성경에 부정적인 예언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현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40일 후에 니느웨가 멸망한다고 한 것은 그것이 결정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면 40일 후에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에게 죽을 것이니 예언하라고 한 것은 회개하면 더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15년을 더 살고 40일 후에 망한다고 한 니느웨 백성이 망하지 않은 것을 보면 결정론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과 자유의지를 존중하며 우리의 미래에 일하십니다.

예정은 하나님 편에서도 백프로 일하시는 것이고 우리 편에서도 백프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최선을 다하시지만 우리 인간 편에서도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정론이 결정론과 다른 것입니다. 결정론을 믿는 사람은 결정론으로 운명적이 되어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정을 결정론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사탄에게 빠진 사람입니다. 자신이 구원받은 것이 예정되었다고 생각하고 허랑방탕하게 사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사탄에게 속아서 지옥으로 갈 자입니다. 그러므로 예정된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최선을 다 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편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최선을 다해야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를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예를 들어서 김수성 목자님이 임고에 붙을까요? 떨어질까요? 나는 현재 김수성 목자님의 믿음을 보고 이미 붙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감사를 드렸고 현재도 드리고 있습니다. 김수성목자님이 이것을 믿고 가만히 있으면 붙는 것이 아닙니다. 김수성 목자님 편에서도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야 붙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결과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결정할 것이지만 우리 편에서는 믿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미래를 아시지만 우리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아시고 우리의 미래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아시고 이해하시고 용서하시며 새롭게 하십니다. 상처를 치료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예정하시고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며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강권적인 사랑으로 우리의 미래에 일하시지만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며 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레위지파가 복을 받고 하나님의 복을 받은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지파가 역사에서 사라진 것은 무슨 일일까요? 에브라임 지파는 요셉의 둘째 아들로 한 항렬이 높아지고 그 중에서도 장자의 복을 받았습니다. 복에 복은 받은 것입니다. 그 지파에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섬긴 여호수아가 나옸습니다. 북이스라엘 10지파의 왕인 여로보암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 시대에 여로보암은 조상들만 믿고 교만하여져서 벧엘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우상숭배를 하다가 계시록에 보면 12지파에서 사라집니다. 레위지파는 야곱의 세 번의 저주를 받습니다. 그들은 살인자요 혈기를 부린 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갔을 때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책망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때 그들은 전임사역자요 제사장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미래는 우리의 회개와 우리의 거룩함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우리의 미래가 영화롭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3월 셋째주 메시지 예수님이 우리를 아는 것은 점쟁이가 아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요한복음 1장 강해 10부 예수님이 우리를 아는 것은 점쟁이가 우리를 아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요한복음 147-요한복음 151

요절 요한복음 148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한복음 1장 강해 10부 끝.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7 [요한복음] 요한복음 2장 강해1 삼사부 목숨을 건 종교개혁, 마이 성전의 시대가 되었다 오요한 2005-03-12
6 [요한복음] 요한복음 2장 강해 일이부 예수님을 초청하고 대접하는 법, 예수님이 오신 목적 두 가지 오요한 2005-03-12
5 [요한복음] 요한복음 1장 강해 9,10부 똑똑하고 편견을 가진 사람을 제자로 삼는 법, 예수님이 우리를 아는 것은 점쟁이가 윌르 ㄹ아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오요한 2005-03-12
4 [요한복음] 요한복음 1장 강해1 7,8부 무엇을 구하느냐 인생을 역전시키는 만남 오요한 2005-03-12
3 [요한복음] 요한복음 1장 강해 오육부 멋진 전도자 세례요한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인가? 오요한 2005-03-12
2 [요한복음] 요한복음 1장 강해 삼사부 멋지고 아름답게 사신 예수님 날마다 은혜가 더하는 법 오요한 2005-03-12
1 [요한복음] 요한복음 1장 강해 1일이부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 나는 행복한 하나님의 자녀다 오요한 200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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