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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2장 강해 일이부 예수님을 초청하고 대접하는 법, 예수님이 오신 목적 두 가지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2,600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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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초청하고 대접하는 법

요한복음 21-5

요한복음 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오늘 11일 신학대학원 채플 시간에 찬양을 드리는데 '주 안에서 기뻐해'라는 찬양을 불렀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해 가사에 맞춰 찬양을 부르는데 마음에 기쁨이 생겼습니다. 기쁨이 생기다 못해 차고 흘러넘치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느껴본 적 없던 기쁨이 차고 넘치고 있었습니다. 아 내가 왜 이렇게 기쁘지? 생각했습니다. 찬양을 부르니 내 영혼이 기뻐하고 그로인해 성령님도 같이 기뻐하시는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더 기뻐함으로 찬양을 불렀습니다. 지난 전국학생수양회 때는 새벽기도하다가 참 평화를 맛보았습니다. 이번 채플에서는 찬양을 부르다가 참 기쁨을 누렸습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146:1). 정말 제 영혼이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예수님을 초청하고 대접하는 법입니다. 예수님을 제 마음에 초청하고 예수님을 찬양하는 찬양을 부르니 예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삶에 예수님을 초청하고 대접하는 법을 잘 배워서 제가 참 기쁨을 누린 것처럼 여러분도 참 기쁨를 누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삶에 초청하자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사흘째 되던 날, 즉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한 지 사흘 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라는 지역에 혼례가 있었습니다. 혼례의 3요소는 혼례의 주인공 신랑, 신부와 자리를 빛내주는 손님들, 맛있는 음식일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혼인잔치는 일주일동안 하며 신랑과 신부는 왕과 왕후로 대접 받는다고 합니다. 신랑과 신부는 손님을 초청하는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손님 초청을 아주 잘 한 것 같습니다. 고민의 결과로 순종을 배운 마리아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이 초청받아 혼례에 왔습니다. 5절과 그 이후의 말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순종을 잘 배운하인들도 혼례에 있었습니다. 이 결혼식에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예수님과 믿음의 사람들을 초청한 신랑과 신부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을 삶에 초청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초청할 때 성령님이 일하실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예수님을 삶으로 초청한다는건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항상 인식하고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인식하고 존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예의가 바라지는 것입니다. UBF 한국 대표이신 김느헤미야 목자님께서 천안센터에 방문하신다면 교회를 청소하고 귀하게 모시는 것처럼 귀하신 예수님이 우리 삶에 항상 함께하신다는 생각으로 말과 행동에 유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이 두세사람 모인다면 그 곳이 교회가 되고 그 자리에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우리가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심을 항상 인지하고 존중히 여기길 기도합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영이시라서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눈에 안보이면 어떤 문제점이 생길까요. 무시하기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의식하기 때문에 눈에 안보이는 것은 금방 잊어먹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눈에 안보인다고 화내고 욕하고 무시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무시하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없으면 그 사람과 함께하기 싫은 것처럼 예수님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을 무시하면 일하실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고 성령이 소멸되어 일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 가정에 모임에 직장에 교회에 예수님을 초청하려면 예수님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집에서 밥 먹을 때도 예수님도 같이 드시고 일할 때도 옆에서 같이 일하시시고 예배를 드릴 때도 옆자리에 앉아 계신다는 것을 항상 알고 그분 앞에서 말과 행동을 해야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우리 삶에 초청하고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천안 UBF도 예수님이 거하시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서로가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캠퍼스 복음화와 세계선교에 귀하게 사용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초청했으면 기도하자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결혼식의 3요소는 음식이라고 아까 말씀드렸죠. 어느 결혼식을 가든 손님에게 대접할 음식은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결혼식을 갔을 때 식장의 분위기, 크기, 결혼식 이벤트, 신랑 신부의 아름다움을 말하기도 하지만 단연 음식이 가장 큰 주제입니다. 밥이 어땠는지에 따라서 결혼식이 좋았다 별로였다 말합니다. 유대인의 결혼식은 온 마을 사람들의 기쁨이 되고 그 기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포도주라고 합니다. 그만큼 결혼식에서는 포도주가 중요합니다. 혼례를 일주일씩 하니까 질 좋은 포도주가 많이 필요합니다. 근데 그 포도주가 다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요즘은 생산과 공급이 잘 되서 부족해도 문제없이 채울 수 있지만 이 때는 현재보다 부족한 때라 포도주를 다시 공급하려면 긴 시간이 걸립니다. 포도주를 다시 만든다 해도 숙성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누가 먼저 발견했을까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먼저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신랑이나 매니저에게 알리지 않고 예수님께 가지고 왔습니다.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마리아는 이 혼례에 초청받은 손님입니다. 결혼식장에서 발생한 문제를 신경쓸 필요 없는 손님입니다. 근데 마리아는 불만과 원망을 품지 않고 내 문제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들고 나갔는데 그 대상이 예수님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았지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죽음 문제, 영적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을 믿고 예수님께 문제를 들고 온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의 문제를 기도로 예수님께 들고 가야합니다. 빌립보서 4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갑자기 찾아오는 돈 문제, 관계문제, 가정문제, 직장 이직문제들이 있습니다. 문제만 놓고 본다면 해결책이 안보여 막막하고 걱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나올 때 마음에 드러나는 걱정, 염려, 불안들은 쓸데없는 사라질 것이 됩니다. (올해 초였을 겁니다. 주일에 점심 먹고 김병기 목자님께서 커피를 사주셔서 마리스 카페에 있었을 때입니다. 이 날 오모니카 목자님께서 보청기 한 쪽을 잃어버리셨습니다. 이 일을 오요한 목자님께서 말씀해주시고서는 저에게 하나님께 기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커피 마시다가 그 자리에서 보청기를 찾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근데 기도 마치자마자 오모니카 목자님께 전화가 오더니 찾았다고 하셨습니다. 생애 두번째 가장 빠른 기도응답이었습니다.) (이처럼) 다만 우리는 염려하지 말고 우리 구할 것을 기도로 낱낱이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다니엘도 왕 외에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들어간다는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혔을 때도 그는 전에 하던대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사자들의 입을 막으셔서 다니엘을 보호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로 예수님을 초청해야 일하실 수 있습니다. 먼저 기도하고 만나야 합니다. 먼저 기도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먼저 기도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먼저 기도해야 예수님이 내 삶에서 일하실 수 있습니다.

 

기도했으면 순종하자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을 하자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셨습니다. 엄마가 쓰레기 좀 버리고 오라고 하셨는데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하면 분명 얻어 맞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전반부만 보면 내 상관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 같아도 그 뒤에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때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때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에 민감하게 반응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어갈 때도 예수님은 때가 이를 때까지 기다리시다가 때가 되어서 나사로에게 가셨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 명절날 유대로 가자고 하는 형제들에게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아 먼저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때에 맞춰서 유대로 올라가셨습니다.)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를 기다리시고 때에 맞춰 일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며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기도에 응답받지 못했을 때 절망하며 떠날 수도 있었지만 마리아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던 이유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마리아가 이미 하나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처녀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나온다는 말씀을 듣고 놀란마음을 부여잡고 간 엘리사벳의 집에서 여자 중에 복이 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을 향한 마리아의 찬양이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높고 귀한 예수님을 벤 때부터 마리아는 하나님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내 기도를 거절해도 더 선한 방향이 있음을 믿을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녀가 부모님께 혼났을 때 내가 바르게 크길 원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자녀와 같습니다.

둘째, 마리아는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며 순종했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가 잉태를 하는건 인간적으로 생각했을 때 불가능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약혼한 사람이 있는 여자가 잉태를 한건 간음죄로 몰아 돌로 쳐 죽이는게 가능했던 때입니다. 현실적인 제한사항과 불가능한 일이 자신에게 이루어지는데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순종한 마리아를 하나님께서는 보호해주시고 그리스도의 어머니, 여자 중에 복있는 자로 축복해주셨습니다. 이런 순종의 비밀을 알고 있는 마리아는 하인들이 예수님의 때에 일하실 수 있도록 절대 순종을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한한 사랑받고 있음과 하나님께 순종할 때 선하게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이 원하는 방향과 달라도 하나님의 때에 더 좋은 방향으로 기도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을 믿습니다.

예수님도 순종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내려가라 하셨을 때 그대로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메달려 죽으라 하셔도 그대로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그 순종까지의 길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습니다.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 잔을 옮겨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자기 의를 죽이고자 흘러 떨어지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십자가 순종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지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고통을 당하시면서까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말에 대해서 내 뜻, 의견을 굽히고 순순히 따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순종을 잘 못하게 태어났습니다. 상대방이 틀리고 내 뜻과 생각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책을 보면 순종은 내 자아, 내 의지가 사라지는 것 같아서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목자님이 뭐 하라고 시키시면 하기 싫은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 자아, 의지가 사라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나다운 나를 만들어주는 것이 순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어진 사람들이기에 그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오요한 목자님께서는 저에게 항상 순종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제가 순종을 하지 못할 때마다 바로바로 순종할 때 마음에 기쁨이 생기고 성령님께 칭찬받는 일이라며 작은 일에도 순종하도록 더욱 권면하셨습니다. 저번 달 한 목자님께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는 지금도 잘 하고 있겠지만 더 겸손해야돼. 금방 우쭐해지는게 문제야" 정확한 워딩은 모르겠지만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제 연약함을 잘 아는 목자님이라 만날 때마다 한번씩 조언을 해주셨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에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이내 곧 하나님께서 목자님을 통해 하시는 말씀으로 생각하고 목자님과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사람이란 참으로 연약한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 목자님들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들을 경청해서 작은 일에도 바로 순종해야겠습니다. (이 메세지를 쓰면서 배운 것은 하나님은 세우신 권위를 통해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그것을 거절하는 것도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다면 거절하고 더 좋은 하나님의 방향으로 상의할 줄도 알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이를 위해서 평소 성령님과 좋은 관계성을 맺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성령님의 소원과 권위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잘 순종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눈에 안보인다고 해서 무시하고 기도할 때만 찾는 사람이 아닌지 점검해보고 그런 자신을 발견했다면 이 시간 회개함으로 예수님을 존중하는 자녀들이 됬으면 좋겠습니다. 행위가 구원을 이루지 않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처럼 예수님을 의식하며 존중히 여기며 말과 행동을 하길 기도합니다. 존중 받고 높임 받으신 예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를 직면했을 때 그 문제를 가지고 나아와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주님께 아룄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주님이시지만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일하실 수 없습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삶으로 초청해 그가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면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믿고 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순종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성령의 소원을 통해서 그리고 세우신 권위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목자님, 동역자, 직장 상사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소원과 권위를 통해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여서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질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처럼 순종은 곧 우리들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한 그의 사랑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 모두 삶으로 예수님을 초청하여 존중히 여기며 모든 것을 주님께 구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천안 UBF 목자, 목동, 형제자매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고 하나님 나라 축복을 받길 기도합니다.

 

 

4월 셋째주 메시지 예수님이 오신 두 가지 목적

요한복음 2장 강해 2부 예수님이 오신 두 가지 목적

말씀 요한복음 26-12

요절 요한복음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꾼 첫 번째 표적이 나옵니다. 표적은 의미 있는 기적이라는 뜻입니다. 첫 번째 표적에는 다른 표적들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표적의 방향이 되는 표적입니다. 첫 번째 표적에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나옵니다. 저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두 가지 목적은 무엇일까요?

 

(1) 순종한 사람은 예수님의 맛을 알 수 있습니다.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혼인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모친은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하였지만 예수님은 내 때가 안 되어 일하실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모친은 예수님이 일하실 것을 믿고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드디어 당신의 때가 되어 말씀으로 일하셨습니다.

그곳에는 예수님의 정결 예식에 쓰는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두 세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려면 12-15통의 물을 채워야 합니다. 그 당시에는 수도가 있지도 않습니다. 유대지방에서 우물물은 깊습니다. 이 만큼의 물을 다 채우려면 많은 노력이 들어갑니다. 하인들은 여러 가지 일로 바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물을 아귀까지 채웠습니다. 덜 하지도 않고 더 하지도 않게 적절하게 아귀까지 채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갔다주라고 하셨습니다. 포도주를 달라고 하는 연회장에게 물을 갖다가 정신병자 취급받을 수 있습니다. 매를 맞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예수님과 모친을 신뢰하고 모친이 말씀하신 대로 무슨 말씀이든지 그대로 다 순종하였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바뀌었습니다. 물과 포도주는 분자식이 다릅니다. 하인들이 순종했을 때 성질이 완전히 달라진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HOC2H5OH로 바뀌었습니다. 본질이 바뀌었습니다. 이전에 그들이 먹던 포도주보다 더 좋은 포도주로 바뀌었습니다.

하인들이 순종하였을 때 혼인 잔치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이 좋은 포도주를 맛보았습니다. 순종은 주위사람들에게 이렇게 축복을 나누어줍니다. 하인들도 물론 물로 된 포도주를 맛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주위 사람들보다 더 좋은 또 다른 맛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맛을 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비밀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지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사랑이 많으시고 잔치를 축복하시는지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혼인잔치를 복주시고 온 세상을 혼인잔치와 같이 만들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인들은 그런 예수님을 맛보고 체험하였습니다.

시편에 보면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비밀은 바로 순종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순종해야 합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사울 왕을 대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성전을 지어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때 좋으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후손에게서 메시야를 보내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다윗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모든 백성이 풍성한 은혜를 맛보았습니다. 다윗을 통하여 다윗의 자자손손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고 이삭은 아브라함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그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의 미래를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이삭도 자신의 아내를 예비해주시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삭에서 나오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하 만민에게 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부활시키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과 땅 위에 있는 모든 자들 위에 높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순종을 통하여 부활의 맛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로 높여주시는 하나님을 맛보았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천하만국이 지옥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습니다.

 

(2) 첫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습니다.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예수님은 첫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제자들은 그 영광의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첫 표적을 통하여 나타내신 예수님의 영광은 무엇일까요? 이것이 첫 표적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첫 표적에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두 가지 목적이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이 세상을 혼인 잔치와 같은 기쁨과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오셧습니다. 이 세상은 아담의 불순종으로 초상집처럼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저주가 오고 질병이 오고 죽음이 왔습니다. 사는 것이 고생입니다. 부처도 인생은 백팔번뇌이고 생로병사가 고통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순종으로 이 세상은 혼인 잔칫집과 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저주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축복이 오고 부유함이 오고 건강이 오고 무엇보다 영생이 왔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현재 받은 복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맛보기에 불과합니다. 장차 지옥에 갈 우리가 천국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고통할 우리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의 삶에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려고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로 갔을 때 그들도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이 죽고 포로로 잡혀가 고통하니까 하나님이 자신들을 미워하여 고통스럽게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미래에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와 애가에서 그것을 부정하였습니다. 예레미야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예레미야애가 333도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의 방법이 아니면 우상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바벨론 포로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들을 변화시키사 제사장 나라로 쓰려고 보낸 것입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를 통해서 우상을 버리고 다시는 우상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었습니다. 성경 말씀에 기초한 신앙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 훈련을 통하여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민수기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일예배를 마칠 때마다 부르는 찬송입니다.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이것은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3에서도 말씀하십니다. “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으려면 변화되어야 합니다. 죄악된 사람이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합니다.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것은 화학적인 변화입니다. 맛이 없는 것을 맛있는 것으로, 색깔이 없는 것을 색깔이 있는 것으로 변한 것입니다. 잔칫집 상황에 있는 듯 없는 듯한 것을 꼭 필요한 것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사람이 바뀌는 것은 불가능해보입니다. 그래서 검은 머리를 가진 인간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시 만들어 쓰십니다. 예수님은 그 불가능한 인간의 변화를 이루십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악된 자를 거룩한 자로 변화시킵니다. 사망권세에 시달리는 자를 생명력이 넘치는 자로 변화시킵니다. 저줏덩어리를 복덩어리로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은 고상한 아버지 아브람을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라고 속이고 첩을 얻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죄많은 다윗을 거룩한 다윗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양치는 목동을 이스라엘 왕이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모래 같은 시몬을 바위 같은 베드로로 변화시켰습니다. 충동심 많은 베드로가 교회의 기초가 되엇습니다. 핍박자 사울을 순교자 바울로 변화시켰습니다. 열심 많은 바리새인을 세계선교의 선봉자요, 복음을 체계화하는 자로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누구나 변하여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예수님은 축복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첫째는 우리를 잔치집처럼 만들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저주를 거두어 가시고 복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잔칫집처럼 사는 사람이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꼭 필요한 사람으로 복덩어리로 변화시켜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축복과 변화를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을 통하여 믿는 모든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고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천국 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변화되고 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아멘

우리는 무엇에 순종해야 할까요? 첫째는 이성입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에 따라서 행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원리인 다수결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의학적인 것을 존중히 여기고 병원에 가야 합니다. 둘째는 지금까지 내려온 전통과 관습을 존중히 여기고 따라야 합니다. 전통과 관습은 인류의 지헤의 산물입니다. 셋째는 성령의 소원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성령의 소원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위에 우리는 성경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가장 놓은 권위는 성경 말씀입니다. 말씀을 정확히 공부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권위에 순종해야 합니다. 즉시 기쁘게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작을 것부터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순종을 통해서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잔칫집과 같이 즐거운 인생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한 마디) 순종하여 변화와 축복을 체험하자

요한복음 2장 강해 2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두 가지 목적

말씀 요한복음 26-12

요절 요한복음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한복음 2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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