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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1장 강해 삼사부 멋지고 아름답게 사신 예수님 날마다 은혜가 더하는 법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2,643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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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셋째주 메시지 멋지고 아름답게 사신 예수님

요한복음 1장 강해 3부 멋지고 아름답게 사신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1:14

요절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오늘 말씀은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는 성육신成肉身입니다. 한자어로 하나님이 육신肉身이 되었다는 말이고 영어로는 Incarnation이라고 하는 데 하나님이 살과 피를 갖고 오셨다는 말입니다. 박영선 목사님은 성육신을 하나님이 자신의 의리를 지키셨다고 말합니다. 김동호 목사님은 이것을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로 하나님이 가오을 지키셨다고 합니다. 가오는 제가 이해한 말로는 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름다움입니다. 하나님이 아름답게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멋지게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멋지고 아름답게 사신 예수님으로 제목을 잡았습니다. 우리가 멋지고 아름답게 사신 예수님을 배우고 성도로서 멋지고 아름다운 살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멋지고 아름답게 사신 예수님)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은 멋지게 행동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답게 행동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타락했을 때부터 우리 인간을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그 약속을 이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심히 부패하였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셔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엄청 자존심이 구기는 일입니다. 엄청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하나님답게 살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멋지게 육신의 옷을 입고 오셔서 사시다가, 아름답게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멋지게 살아야 합니다. 죽어도 멋지게 죽고 살아도 멋지게 살아야 합니다. 시험에 붙어도 멋지게 겸손하고, 떨어져도 멋지게 당당해야 합니다. 병이 나도 멋지게 감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건강해도 멋지게 주님께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점에서 멋지게 행동하셨을까요?

 

(1) 예수님은 육신을 아름답게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육신을 부정적으로 보고 영적인 것만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이들이 이렇게 보는 이유는 육신에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경건을 육신의 소원을 죽이는 금욕적인 것으로 봅니다. 불교의 스님은 결혼도 하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습니다. 힌두교신자는 대체로 채식주의자입니다. 이슬람교도 금식 절기를 만들어 금식을 하고 여자들이 히잡을 써서 남자들의 육체적인 욕망을 일으키지 않게 합니다. 유교도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하여 부부조차도 함께 걸어가는 것을 흉측하게 봅니다. 불교계에서 가장 경건하다고 하는 성철 스님은 화식을 하지 않고 생식을 하고 누워서 자지 않고 앉아서 잠을 잤습니다. 그들은 금욕적인 것을 경건한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육신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육신을 긍정적으로 보시고 아름답게 보십니다.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오셨고 부활할 때도 몸으로 부홯합니다. 하나님은 왜 죄악된 육신을 아름답게 보실까요? 성령 안에서 육신의 소원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성령이 거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죄안 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신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육신이 하는 모든 것이 다 아름답습니다. 우리의 먹고 마시는 것이 천국처럼 보시고 우리의 결혼도 천국 잔치처럼 보십니다. 예수님은 결혼을 하지 않으셨지만 혼인 잔치에서 첫 번째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먹고 마시는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따라서 하는 우리의 가정생활, 직장생활, 학교생활을 아름답게 보십니다.

기독교에서도 다른 종교의 영향을 받아서 육신을 부정적으로 보고 영적인 것만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영지주의라고 합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는 것을 부정하는 자들을 적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이들은 교회생활만 선하고 가정생활, 직장생활은 속되다고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영과 육을 이원론적으로 봅니다. 그들은 육신을 악하고 더러운 것으로 봅니다. 결혼은 더러운 것으로 보고, 음식은 가능한 한 먹지 않는 사람이 경건하다고 봅니다. 한 여학생이 교회 안에 있는 임산부를 보고 더럽다고 하는 말을 하였는데 이는 대표적인 영지주의자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아기를 가진 임산부는 더러운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입니다.

한국의 호세아라고 불리는 이세종목사는 아내를 데리고 와서 아내와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러면 또 데리고 와서 함께 잠을 자지 않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이세종목사는 믿음이 있는 것 같으나 이것은 영지주의 이단에 가까운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을 긍정하고 가정과 교회와 직장생활을 긍정하며 그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은 금식을 많이 하고 고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부부 간에 사랑하고 맛있게 음식을 먹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가장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가장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가장 경건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런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단지 예수님이 마음에서 사라지면 금식하며 예수님을 찾아서 다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이 인간과 같이 사는 모습이 아름다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권리를 포기하고 인간과 같아지고자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여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히브리 문화권에 오셨습니다. 예수님도 어런 시절 기저귀를 차고 사시고 돌이 지나서야 걸으셨습니다. 석가모니처럼 태어나자마자 일곱 발짝 걷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를 쓰시고 사람들과 같이 먹고 주무셨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목욕탕에 가고 퍼세식 화장실에 가셨습니다. 때로는 피곤하기도 하셨습니다. 우리와 같이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런 예수님을 보니 참으로 아름답고 멋이 있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아름다운 예수님을 배우고자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목자로 물질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 모든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독신으로 자비량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율법 있는 자에게는 율법 있는 자가 되고 율법이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강한 자에게는 강한 자가 되고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은혜가 넘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소설에 보면 건강한 사람이 소록도에 소장으로 가서 나병환자를 위해서 천국을 만들어주고자 하여도 그것이 천국처럼 여기지 않습니다. 당신들의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장이 나병환자와 하나 되기 위해서 자신의 딸을 나병환자와 결혼시키며 끝이 납니다. 그것을 통해서 나병환자들은 소장을 받아들이고 기뻐합니다.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입니다.

 

(3) 인간보다 더 낮아지신 예수님이 아름답습니다.

 

인간은 교만하여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과 같아지고자 하였습니다. 인간이 교만하여 하나님과 같아지고자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관계를 깨어졌습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인간과 동물과 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도 깨어졌습니다. 인간과 동물과 자연에 저주가 왔습니다. 교만하면 모든 관계가 깨어지고 망가집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겸손히 피조물인 인간이 되셨습니다. 죄인 중에 죄인이 되셨습니다. 가장 낮은 위치인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요즘 개를 사랑하여 개를 키우는 사람은 자신을 개의 아버지, 어머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개새끼, 개자식라고 하면 모욕으로 생각합니다. 더구나 그에게 개가 되라고 하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겸손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의 형상을 입으시고 그것도 부족하여 죄인이 되신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이 될 뿐 아니라 죄인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통하여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고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예수님이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겸손을 배워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4) 말씀대로 다 살아내신 예수님이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살아 있는 성경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처녀에서 태어나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을 가장 잘 살아낸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조차도 버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며 목마르다고 말씀하시며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 말씀을 육신으로 다 행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예수님이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이 이 예수님을 보니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말씀과 육신이 밥과 국밥이 따로나오는 따로 국밥처럼 말씀과 행동이 따로 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에서 모습과 사회에서 모습이 다른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실망한다고 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과 우리의 삶이 하나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하였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을 볼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은혜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다 순종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말씀대로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예수님 안에는 진리도 충만하십니다. 진리는 길입니다. 진리는 삶의 바른 공식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도 길이요 공식입니다. 율법은 길이지만 인간이 갈 수 없는 길이고, 공식이지만 우리가 풀 수 없는 공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풀 수 없는 삶의 공식을 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육신의 삶을 아름답게 하시고 우리가 다른 사람과 같아지는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시며, 우리가 더 낮아져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말씀대로 다 살아내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십니다.

 

(결론) 하나님은 우리를 멋지고 아름답게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육신의 모습을 입고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은 우리도 아름답고 멋지게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UBF를 시작하신 사라베리 선교사님의 살을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사라베리 선교사님은 1960년도에 미국에서 자가용 비행기를 가진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과 같이 된장국과 김치를 드시고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름도 배사라로 바꾸셨습니다. 어떤 분은 배사라 선교사님이 한국 음식을 정말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 이런 것을 다시 먹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한국인을 사랑하여 한국인과 같이 사신 것을 아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에 감동하여 많은 지성인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한국 목자가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선교사로 가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화장실이나 비위생적인 식습관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나가 될 때 그들이 아름다운 삶에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병들어도 멋지게 살고 실패해도 멋지게 실패하고 죽어도 멋지게 죽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공해도 멋지게 성공하고 부자가 되어도 멋진 부자가 되고 가난해도 멋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시험에 여러 번 떨어졌는데도 마음에 감사가 충만한 한 가정을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멋진 가정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멋지게 살면 우리는 또 다른 사람들을 멋지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진실사모님이나 한나 목동이나 예담이 부모인 유성 한설 사모는 멋지게 살고 있습니다. 이들을 통하여 우리도 멋지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도다운 멋진 성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장 강해 3부 멋지고 아름답게 사신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1:14

요절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장 강해 3부 끝.

 

 

2월 첫째주 메시지 날마다 은혜가 더해지는 법

요한복음 14부 날마다 은혜가 더해지는 법

말씀 요한복음 115-18

요절 요한복음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자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은혜의 폭포수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은혜가 지속적으로 철철 넘쳐흘렀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은혜 위에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살아갈수록, 날이 갈수록 은혜가 더욱 넘치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은혜 위에 은혜가 넘쳐납니다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보다 먼저 계신 분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아 말씀은 은혜가 파도처럼 밀려온다는 말입니다. 은혜가 쓰나미처럼 밀려옵니다. 나이가 늙을수록 은혜가 넘칩니다. 왜 이렇게 은혜가 넘쳐날까요?

첫째, 나이가 들수록 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육체가 연약하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연약해질수록 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약한 데 더 많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약해질수록 은혜가 더욱 넘칩니다.

둘째, 신앙이 성장할수록 은혜가 더욱 커집니다. 우리는 신앙이 성장할수록 예수님을 더 많이 알아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갈수록 예수님은 점점 커지고 나는 더욱 작아집니다. 순종이 생활화 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줍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잘 되게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고난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의 파도를 타는 것입니다. 은혜의 파도를 타고 더 큰 은혜로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 신앙을 가진 사람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신앙이 성장할수록 우리는 은혜가 더욱 커집니다.

셋째, 우리가 살아갈수록 천국이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갑니다. 우리가 시간이 흐를수록 죽음에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죽는 그 순간이 우리의 육체와 현실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날입니다. 죽는 그 날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율법 신앙은 날이 갈수록 진노를 쌓습니다. 율법신앙은 내가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니까 사는 것이 힘에 겹고 신앙행활도 갈수록 힘이 듭니다. 지금까지도 사는 것도 힘들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까 걱정합니다. 육체가 쇠약해질수록 더욱 힘이 듭니다. 점점 자아가 커져가니 하나님과 관계도 멀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도 멀어집니다. 자신이 외로워지고 고독해집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참으로 암담하게 느껴집니다. 점점 심판이 가까이 오니 죽는 그 순간이 가장 무서운 순간입니다.

사도바울은 과거 바리새인으로 율법 신앙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는 잘 살려고 하면 할수록 힘이 들었습니다. 그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자신이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죽기 전에 그는 옥중서신을 썼습니다. 죽음을 앞둔 그 날에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의의 면류관이 자신을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를 받은 사람은 구약성경에는 야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도 초기는 율법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야곱은 어려서 형이 배고픈 기회를 엿보아서 장자의 명분을 투쟁하여 얻었습니다.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14년에 걸쳐서 열심히 일하고 4명의 아내와 11명의 자녀를 얻었습니다. 7년을 다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여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가 율법 신앙에 머무를 때는 심히 답답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는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 신앙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잠시 안일에 빠져 딸 디나 사건과 시므온 레위의 살인 사건으로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회개하고 벧엘 서원을 갚으며 은혜 신앙을 배웠습니다. 벧엘 서원을 갚은 후부터는 완전히 은혜 신앙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그는 복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바로에게 복을 나누어주고 애굽사람에게 복을 나누어주었습니다. 12아들과 요셉의 두 아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는 죽는 그 순간에 열두 아들을 축복하고 가장 은혜가 넘치는 순간을 맺었습니다. 그것이 창세기 4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멋진 신앙생활입니까?

나도 과거 율법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40대 후반에 20여 년 동안 힘들게 살아왔는데 앞으로 살 일을 생각하니 막막했습니다. 자립도 그렇고, 하나님의 역사도 소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그 후 전임 사역자가 된 후에 은혜 신앙을 배웠습니다. 은혜 신앙을 배운 후 20년이 더 흘렀습니다. 20년을 돌이켜보니 그 이전보다 휠씬 더 큰 은혜가 있었습니다. 복음을 알고 고난도 많이 있었지만 은혜의 파도를 타고 살았습니다. 이를 볼 때 이제는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더 크게 복주시고 60대 전반보다 더 은혜로운 60대 후반부가 될 것을 기대합니다. 70, 80대는 더 큰 은혜가 올 것입니다. 언제인지는 모르나 가장 기대가 되는 날은 죽는 그 순간입니다. 그날 하늘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가 2024년에 받을 은혜를 기대하며 2023년보다 더 큰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2) 은혜와 진리를 알아야 은혜가 넘쳐납니다.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인생이 살아갈 길입니다. 아주 좋은 삶의 공식입니다. 십계명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지키면 복을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연약하고 완악하여 그 십계명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십계명의 공식을 풀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십계명의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에서 우상을 만들고 남창들이 성전 안에서 성행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어 책망하셨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지자를 돌로 쳐죽이고 톱으로 썰어서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여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은 이스라엘의 십자가와 같은 사건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십자가를 통해서 변화되었습니다. 자발적으로 우상을 제거하고 말씀 중심이 되며 하나님 나랑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변화는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새 언약은 은혜와 진리의 언약입니다. 새 언약을 통하여 그들이 온전히 변화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첫째, 은혜와 진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율법을 다 지킨 것으로 인정해주십니다. 율법으로 생긴 모든 저주를 가져가십니다. 모든 죄와 죽음을 가져가십니다.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됩니다.

둘째, 은혜와 진리는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은혜와 진리는 율법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감싸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사랑으로 감싸서 율법을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길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을 내셨습니다. 율법이 낸 하나님 나라의 길은 가시밭길이라 걸어가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곳에 사랑의 비단을 깔아서 쉽게 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가시밭길을 꽃길로 만들어 기쁨으로 걷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삶의 공식을 가정교사가 되어 쉽게 풀어가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율법을 점점 잘 지키며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다섯 남편과 살다가 한 남자와 동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여인을 은혜로 감싸서 그 죄를 용서하시고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게 도우셨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은혜로 용서하시고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진리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살게 도우셨습니다. 그녀가 생명의 빛을 따르며 거룩한 삶을 살게 도우십니다. 그를 죄에 빠진 자들의 목자로 세우십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태양과 같은 분이라 하나님을 보면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겸손하게 오심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하나님의 공의를 봅니다. 우리 예수 믿은 사람들도 우리 안에 예수님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정과 교회를 통하여 비신자들에게 천국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결론) 은혜 위에 은혜가 더 넘칩니다.

 

신앙생활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과 율법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으로 사는 사람을 힘들게 살고 미래를 생각하면 절망적입니다. 죽는 날이 가장 무서운 날입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감사가 많고 미래에 소망이 넘칩니다. 죽는 날이 가장 소망이 넘치는 날입니다. 우리는 은혜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성육신 예수님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은혜가 폭포수처럼 철철 넘쳐흐릅니다. 은혜의 쓰나미가 밀려옵니다. 우리가 거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복에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신앙이 성장할수록 나이가 들수록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해가 갈수록 소망에 불타게 됩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수록 육신은 쇠하여 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은 새로워집니다. 예수님은 커지고 나는 작아집니다. 우리의 인격은 점점 성숙해갑니다. 죽는 순간이 기다려지게 하십니다. 죽는 그 날이 우리의 은혜가 절정을 이루는 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문이 열리는 날입니다. 우리가 은혜 위에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월 첫째주 메시지 날마다 은혜가 더해지는 법

요한복음 14부 날마다 은혜가 더해지는 법

말씀 요한복음 115-18

요절 요한복음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한복음 14부 끝.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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