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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상미 목자 모친 추도 예배 메시지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01-07 00:00:00
조회수 :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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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절의 영감을 주소서

말씀 : 열왕기하 2:1-25
요절 : 열왕기하 2:9“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 때가 언제입니까(1a)? 하나님은 엘리야를 각각 어느 지역으로 보내셨으며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1b-6)? 새로운 목적지로 떠날 때마다 엘리야는 왜 엘리사를 떼어놓고자 애썼을까요(2a,4a,6a) 그러나 엘리사는 왜 끝까지 엘리야를 떠나지 않았을까요(2b,4b,6b)?

엘리야의 시대에서 엘리사의 시대로 넘어갑니다 엘리야는 북이스라엘 왕이 오므리 아합 두 왕을 섬겼으나 엘리사는 두 시대를 섬겼습니다. 우상 숭배가 극심해가는 계승의 시대에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이전에 엘리야는 깊은 낙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낙심하는 엘리야에게 엘리사 한 사람을 후계자로 세우라고 방향을 주셨습니다. 이제 엘리야는 이 세상에서 삶의 끝날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려 데려가시고자 하셨습니다. 에녹 이후 두 번째 휴거입니다. 하나님은 이 휴거를 미리 여러 종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엘리야는 주님을 위해서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휴거를 통해서 엘리야를 위로해주시고자 하였습니다. 그 때 엘리야와 엘리사는 길갈에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자신 혼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벧엘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떼어놓고자 하였습니다. 제자의 첫 번째 요소가 스승을 따르는 것입니다. 제자의 자격이 되는가를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4장 36절입니다. 희생을 각오해야합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어떤 고난도 받을 각오를 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엘리야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두고 결코 엘리야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붙좇았습니다. 룻기 1장 16,17절입니다. 죽는 것 외에는 어떤 고난도 그들을 떨어뜨릴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엘리사도 죽는 것 외에는 엘리야를 떨어지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엘리사는 엘리야를 사랑하였습니다. 엘리야가는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엘리사는 이런 고난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엘리사의 굳은 의지를 보고 엘리야는 엘리사와 함께 벧엘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벧엘에 가자 예언자 무리가 엘리사에게로 와서 오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가실 것을 알고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엘리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벧엘은 아브라함과 야곱이 신앙을 출발한 곳입니다. 야곱에는 첫사랑이 있는 곳이요. 거듭나 새사람이 된 곳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된 곳입니다. 이곳에는 선지자 학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우상 숭배의 근거지가 된 곳입니다. 이것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이스라엘 역사 교육을 시키고자 하였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엘리야는 이번엔 여호와께서 자신을 두 번째로 여리고로 보내시니 엘리사에게 이제 그만 여기 머물러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엘리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엘리야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두고 결코 엘리야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어떤 고난이라도 받고자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엘리사의 굳은 의지에 어쩔 수 없이 엘리야는 여리고까지 엘리사를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리고에 도착하자 거기 있는 예언자의 무리도 엘리야의 승천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엘리사에게 나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하늘로 엘리야를 데려가실 것을 아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엘리사는 알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그만 잠잠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여리고는 이스라엘이 믿음으로 청복한 가나안의 첫성입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이 친히 싸우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성을 건축하지 말라는 말씀에 불순종하여 여리고를 건축하다가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데는 순종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마지막으로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여호와께서 자신을 요단으로 보내시니 그만 헤어지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엘리사는 엘리야를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떨어지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엘리야는 엘리사를 데리고 요단으로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언자 무리 50명도 따라가서 멀리서 그 둘을 바라보았습니다. 요단은 이스라엘이 믿음으로 건너간 강입니다. 그들이 언약궤를 앞세우고 건넜을 때 넘치던 요단강물이 마른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울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나타난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열 두돌을 택하여 역사를 기념하도록 하였습니다. 말씀을 앞세우고 순종하면 어떤 장애물도 사라진다는 교훈을 가르쳐줍니다 우리도 양화진이나 손양원 목사의 기념관이나 토마스 목사의 순교한 곳을 가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엘리야에서 엘리사의 시대로 넘어가는 것보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여호수아를 통하여 계승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왜 이렇게 엘리사가 엘리야를 떠나보내지 않고 따라다닌 것입니까?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그것을 간파하고 엘리사에게 물어봅니다







2. 엘리야와 엘리사는 어떻게 요단을 건넜습니까(7,8)? 엘리야가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엘리사는 무엇을 구했습니까(9)? 이 엘리사로부터 배울 점이 무엇입니까?

7,8절을 보십시오.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엘리야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말아 가지고 요단강의 물을 치자 물이 이리저리 갈라졌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마른 땅위로 요단강을 건너갔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일하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성령께서 엘리야에게 하시는 역사가 두 배나 자신에게 있게 해달라고 구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통한 성령의 역사의 두 배를 자신이 이루고 싶었습니다. 요한 142절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가장 귀하게 한 것은 성령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선지학교의 명의이전을 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생활을 보장해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메시지 원고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후계자로 직책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성령을 구하였습니다. 엘리야의 능력의 근원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모세도 여호수아에게 성령을 주었습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제자들에게 계승될 때도 성령이 임하십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 쓰임받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엘리야처럼 자신도 하나님의 역사에 귀히 쓰임 받고 싶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능력을 두 배나 받고 싶었습니다. 사단의 역사가 강하므로 성령의 능력을 두 배나 받아야합니다. 엘라사는 내적인 역사를 힘씁니다. 엘리야의 사역은 세례요한의 사역이라면 엘라사는 예수님의 사역에 비유합니다. 엘리야는 다섯 배의 이적을 행했으나 엘라사는 열 번의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람은 바뀝니다. 그러나 엘리야에게 임한 성령님과 엘리사에게 일하시는 성령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역사를 부각시키기 쉬우나 그 중에 성령님을 부각시켜야합니다. 사울도 성령을 받았지만 그 성령이 소멸되었습니다. 방법이나 스킬보다 성령님이 중요합니다. 동일한 성령을 받아야합니다. 우리도 합심 동역하는 효과가 중요합니다. 내가 중심이 되지 않고 성령이 이루어가는 역사를 이루어야합니다. 엘리사는 성령의 역사를 계승하고자 하였습니다. 지식보다는 성령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하나님께로 올려지기 전에 꼭 그 성령의 능력을 받고자 하여 떨어지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 말고도 다른 제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만이 강력한 영적인 소원으로 스승인 엘리야를 좇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갈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벧엘, 여리고, 요단에 갔을 때도 거기 있던 제자들은 오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실 것을 알고 엘리사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엘리야를 좇지 않고 엘리사만이 엘리야를 끝까지 따랐습니다. 그럴 때 엘리사만이 엘리야를 통해 영적인 능력을 물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스승의 능력을 받으려면 어떤 고난이라도 스승과 함께 해야합니다 엘리야의 능력의 근원이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성령을 받고자 하지 않습니다. 배우야 합니다. 발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셨습니다.










3. 하나님이 엘리야를 데려가실 때의 광경이 어떠했습니까(10,11)? 이 광경을 보았을 때 엘리사는 무엇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까(12)? 엘리야는 어떤 점에서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었습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엘리사의 소원을 들은 엘리야는 그가 어려운 것을 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하늘에 올리워지는 것이 가장 큰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죽음까지 극복하고자 합니다. 죽음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엘리야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지키는 힘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이깁니다. 죄를 극복해야 나라가 안전합니다. 죄를 극복해야합니다. 발람이 저주하지만 축복하십니다. 죄를 극복해야 축복합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가시는 것을 보면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길을 걸어갈 때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려지게 되었습니다. 불말과 불수레로 올라가는 것도 큰 성령의 역사입니다. 사도행전에도 보면 불처럼 바람처럼 임하였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동역을 통하여 이루지지만 계승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내부의 적은 죄입니다. 바알을 싸울 때 축복의 비가 내립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주의 종을 사랑하고 계승하는 역사입니다. 교만하게 비판하지 않고 겸손하게 계승하였습니다. 르호보암은 자신의 새끼 손가락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다는 교만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나라가 분열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롤모델을 따라야 합니다. 엘리야의 말처럼 엘리사는 엘리야가 하늘로 올려지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 소원대로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엘리사가 끝까지 엘리야를 떠나지 않고 강력하게 영적인 소원이 있을 때 그 소원대로 하나님께서 이뤄주셨습니다. 어떤 믿음을 갖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주일 말씀에도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말씀에 기초하여 믿을 때 우리의 믿음대로 이뤄주시는 것입니다. 엘리사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귀하게 쓰임받고자 하는 소원을 갖고 믿음으로 엘리야를 쫓았을 때 성령의 능력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엘리야가 고난 받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까마귀가 주는 것을 먹었습니다. 과부가 주는 것을 먹기도 하였습니다. 갈멜산의 전투에서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이사벨에게 쫓겨서 죽기를 구한 적도 있습니다. 엘리사는 이런 고난에 동참하고자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영적 소원을 갖고 그 고난에 동참하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여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야하니다.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믿음을 배우고자 하였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을 배우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충만히 주십니다. 엘리사가 받은 것보다 갑절의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알고자 그 고난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는 어찌하든지 고난을 받고자 몸부림쳤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흔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난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는 죽기까지 에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에수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을 알고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울에게 크신 능력을 주셨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승천한 것을 엘리사가 보게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하늘로 올려지는 것을 보게 되면 엘리사의 소원대로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엘리사의 바람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자신의 스승인 엘리야가 하늘로 올려지자 엘리야를 소리 높여 불렀습니다.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불렀습니다. 엘리사는 목자 엘리야를 영적인 아버지로 여겼습니다. 엘리야가 자신을 해산의 수고하였다는 말입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게가 아니었습니다. 사장과 비서의 관계도 아니었습니다. 깊은 사랑의 관계성이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죽음을 이기는 영적인 파괴력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지키는 병기였습니다. 사단과 싸움을 싸우려면 영적인 전투력이 있어야합니다. 엘리사는 사단과 싸워야합니다. 사단을 이기려면 영적인 전투력이 있어야합니다. 엘리야는 기도하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죄와 싸웠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이스라엘을 지키는 일과 상관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믿음으로 죄와 싸웠을 때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명이 있으면 멸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의인 열명이 소돔과 고모라를 지키는 병거와 마병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단과 싸움입니다. 죄와의 싸움입니다. 엘리야가 믿음으로 살았을 때 그는 이스라엘을 지키는 병거와 마병이 되었습니다. 엘리사는 더 이상 엘리야가 보이지 않게 되자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었습니다. 그는 옷을 찢어서 슬픔을 표현하였습니다.








4. 엘리사는 어떻게 요단 물을 건넜습니까(13,14)? 이를 통해 선지자의 제자들은 무엇을 깨달았습니까(15)? 선지자의 제자들은 왜 엘리야를 찾을 수 없었습니까(16-18)?

13,14절입니다.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엘리사는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가지고 요단 강으로 돌아왔습니다. 엘리야의 겉옷으로 물을 치며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를 부르짖어 찾았습니다. 지금까지 엘리야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이제 자신의 하나님이 되어 자신과 함께 하시기를 바랐습니다. 엘리야가 했던 것과 같이 옷으로 물을 치자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엘리사의 바람대로 그도 엘리야와 같이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소원을 가지고 자신을 부르짖어 찾는 자에게 오시고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현재에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그 고난에 동참하는 자들에게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고 성령의 권능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끝까지 십자가를 감당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승천을 바라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죽음의 위험 가운데서도 예루살렘에 남았습니다. 그들은 열흘간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에까데리나 역사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십자가를 감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의 권능을 주셔서 그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엘리사가 요단 강을 건너는 것을 본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자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무른 것이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사의 믿음대로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이나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엘리사 앞에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였습니다. 그들은 엘리사의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들은 엘리사를 엘리야를 잇는 목자로 인정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소원대로 이뤄주셨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에게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주님의 제자로 사명을 감당하며 살려면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도 성령을 주십니다. 사도행전의 제자들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초대교회의 큰 복음역사에 쓰임 받았습니다. 저희 천안 UBF도 가을학기 학생회 역사가 부흥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여 캠퍼스에 나아가서 전도하며 양들과 1:1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에 의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양들의 내면이 변화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우리도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가을학기 캠퍼스에서 성령님께서 마음껏 역사하실 줄을 믿고 학생회 역사도 어느 때보다 부흥케 하실 것입니다.

16-18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감한 사람 오십 명이 있으니 청하건대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무리가 그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그들이 오십 명을 보냈더니 사흘 동안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그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선지자의 제자들은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승천했음을 믿지 못했습니다.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이나 골짜기에 던졌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믿음도 부족하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부족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실수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실수하셔서 어느 산이나 골짜기에 떨어뜨렸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절대성이 없을 때 그들은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엘리사는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했음을 알고 그들에게 엘리야를 찾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지자의 제자 무리가 엘리사에게 부끄럽도록 간절히 청하자 어쩔 수 없이 보내라고 허락하였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엘리야를 찾지 못하고 엘리사에게 찾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엘리사는 가지 말라고 한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그들을 책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뒤에 그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함을 배웁니다. 그렇지 않을 때 믿음없이 행동하고 헛수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5. 엘리사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19-22)? 그의 사역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엘리사를 조롱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23-25)?

19-22절을 보십시오.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그 후에 엘리사가 여리고 성에 머물 때 일입니다. 그 성읍 사람들이 찾아와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좋지 않아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하소연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인 엘리사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나아왔습니다.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는 것은 다른 성경에서는 열매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아이를 임신하여도 물이 좋지 않아 유산을 많이 한다고도 번역하였습니다. 물근원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볼 때 그 성읍 사람들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그들의 문제를 보고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금을 물의 근원으로 가서 그 가운데 던졌습니다. 소금이 물에 생명을 주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 신앙으로 고치는 일을 해야합니다. 우리는 인본주의 역사를 경계해야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성령의 물이 깨끗해야합니다. 바알로 물근원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물이 좋지 않으면 열매가 떨어집니다. 성령의 역사는 근원이 바뀝니다. 성령의 역사는 사람들의 내면에 흐르는 물을 바꿉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너희는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은 바로 에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우리에게 유산이 치료되고 생명의 열매를 맺습니다. 엘리사는 자신과 별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그 성읍 사람들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와 같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23-25절을 보십시오.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엘리사가 여리고에서 벧엘로 올라갈 때 일입니다.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엘리사를 조롱하였습니다.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이것을 볼 때 엘리사는 대머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상 숭배에 빠져서 하나님의 사람을 업신여기고 무시하였습니다. 이것은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행동이었습니다. 또한 ‘올라가라’는 말은 엘리야의 승천을 불경스럽게 표현한 것으로, 이것 역시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물근원을 막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열두살이나 열세살 정도로 되었습니다. 레위기 26장 21절 22절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를 짐승을 통해서 회개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그들을 저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셔서 수풀에서 나온 암곰 두 마리를 사용하셔서 아이들 중의 42명이나 찢겨 죽이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을 무시하거나 하나님을 조롱하는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이고 하나님께 심판받는 것인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도록 도우셨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였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 조롱받기도 하고 멸시받기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참되고 복된 삶이지만 그 가운데 고난과 핍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그의 종을 지켜주시는 것 또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고난과 핍박이 있어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묵묵히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엘리사는 그 후에 갈멜 산으로 갔다가 사마리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갈멜 산은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한 장소이기도 하고 엘리사가 영적인 훈련을 받기 위해서 한동안 머무른 장소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볼 때 우리가 진정 구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먼저 성령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저를 사랑해 주셨듯이 저 또한 주님의 양들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주님을 끝까지 따라야합니다. 양들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여기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씀을 통해 해결해 줘야 함을 배웠습니다. 고난과 핍박이 있어도 하나님께 모두 맡기고 더욱 영적인 훈련을 받아야 함을 또한 배우게 되었습니다. 캠퍼스 목자로 산다는 것도 쉽지 많은 않은 길입니다. 사단이 호시탐탐 우리를 대적하여 우리를 넘어뜨리고 양들 또한 넘으뜨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항상 깨어서 기도하므로 성령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주님과 항상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드립니다. 저희 모임이 하나님의 생명 구원 역사에 귀히 쓰임 받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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