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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에스겔 3장 강해 파수꾼의 자세와 책임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06 00:00:00
조회수 : 3,55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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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3장 강해 파수꾼의 책임과 특권
말씀 에스겔 3장 1-에스겔 3장 27절
요절 에스겔 3장 17절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지난 에스겔서 1,2장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하늘 나라에 계시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두루마리 말씀을 먹고 말씀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고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영적인 파수꾼으로 세우시고 파수꾼의 특권과 사명을 가르쳐 주십니다. 지난번 천안에는 눈이 많이 왔습니다. 저는 눈이 계속하여 내리기 때문에 눈이 얼마나 올 것인가 알려고 전화 131번을 눌러서 일기예보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기예보에는 천안에 1-3 cM내린다고 합니다. 저는 예보가 의심스러워 몇 번이나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 지방에 내린 눈은 적어도 30cM는 넘습니다. 일기예보만 믿고 운전하다가는 큰일날 것입니다. 일기 예보는 정확해야 합니다. 더구나 파수꾼의 말이 정확해야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파수꾼의 말은 많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지키는 영적인 파수꾼으로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두루마리를 먹으라)

1절을 보십시오.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하나님은 두루마리의 말씀을 먹으리고 하십니다. 폭이 25센티요 길이 8미터나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고난의 떡과 환난의 물을 마셔야 합니다. 70년 광야 생활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완전히 내것으로 만들어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매일 말씀에 기초하여 현실을 소화하여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입에는 꿀과 같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에스겔은 순종하여 입을 벌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두루마기를 먹이시며 말씀을 네 창자에 채우라 하셨습니다. 입에 넣었다가 뱉어서는 안 됩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마음에 동참하라고 하십니다. 에스겔이 먹으니 그것이 에스겔의 입에 달기가 꿀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오실 때 하나님의 말씀은 꿀송이처럼 달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재앙과 심판을 하나님의 사랑의 주권 속에서 영접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현실을 따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현실을 하나님의 말씀 편에서 해석하고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가 밥을 먹으면 입에서 꼭꼭 씹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소화액을 분비하여 소화하고 장에서 영양분을 흡수합니니다. 마찬가지로 에스겔은 고난의 현실을 하나님의 말씀 편에서 깊이 묵상하고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성으로 씹고 의지로 소화하고 감성으로 흡수해야 합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살과 피가 되게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혈관이 흐르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의 존재자체입니다. 코카콜라 사장은 내 몸에는 콜라가 흐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DNA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뀌게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것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에스겔의 모든 지정의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주시는 훈련을 받아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에 기초하여 고난의 현실을 깊이 소화할 때 말씀이 힘이 있습니다 자신과 혼연일체가 된 말씀을 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감동력으로 말씀을 전해야합니다 그때 말씀이 꿀처럼 달게 되었습니다. 그는 재앙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그 후에 올 희망을 보았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재앙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미래의 소망을 주는 것으로 영접되었습니다 말씀을 꿀처럼 소화하면 큰 확신이 생깁니다. 요한계시록 10장 10절에 보면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하나님이 주시는 재앙을 받으면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징계와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면 기쁨이 생깁니다. 구원의 징계를 받아들여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편에서 고난을 깊이 영접하면 이도 꿀송이처럼 달게 됩니다. 이사야서 30장 20절에 보면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신다고" 기록도 되어 있습니다. 떡은 밥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매일 밥을 먹고 물을 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환난을 떡으로 주시고 고난을 물로서 주십니다. 우리는 내게 있는 환난과 고난을 하나님 편에서 잘 영접하면 영적으로 우리를 성장시키는 좋은 자양분이 됩니다. 하나님은 또한 애가와 애곡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는 이런 환난 속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깊이 회개하며 애통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고해야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그 다음에 에스겔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을 전해서 먹게 해야 합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습니다. 그들은 기름진 것을 먹지도 못합니다. 북한 탄광에 끌려가서 일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고통을 알 수 있습니다. 탄광의 노동자들은 이불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냥 헛간 같은 데서 짚을 덮고 잠을 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밥을 한 덩어리씩 주고 소금을 준다고 합니다. 그것을 먹고 중노동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일을 하다가 죽으면 거적에 둘둘 말아다가 묻어 버린다고 합니다.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일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겪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면 왜 우리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면 우리도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겠는가? 한번 갈 때까지 가보자 하며 하나님을 대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을 전해야 합니다.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그들이 고난 속에서 과거 지은 죄를 회개하고 철저히 인격이 변화되도록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그들의 죄악을 인해서 애통하며 회개하도록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영접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도 환난과 고생을 당하는 분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어떤 자세로 받아드리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나에게 필요없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나에게 고통만 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빨리 피해서 없어져야 할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은 가능한 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맛있는 밥이요. 시원한 생수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절대주권과 사랑 가운데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깊이 영접하고 소화하고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힘을 얻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소망을 볼 수 있습니다. 환난 당하는 자들의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 천안을 개척할 때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때는 육개월 만성 설사를 했고 양도 없었고 직장도 없는 실업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고난이 나에게 살이 되고 피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고난을 통해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과 순종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물질의 주인이신 것을 배웠습니다. 양들을 보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건강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때가 저에게 힘이 되어서 지금 이렇게 환난당하는 자들을 위로하고 도와주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외국인에게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5,6절을 보십시오.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그들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할 나라들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방인에게 보내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십니다. 이스라엘 족속은 히브리 말을 잘 알아듣는 족속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잘 듣지 않는 완악한 자들입니다. 차라리 이방인에게 말씀을 전하면 잘 들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완악한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전하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소망을 포기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이 회개하고 거룩한 나라요. 왕같은 제사장으로 소망을 두고 계셨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세계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의 종을 보내사 끊임없이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주의 종을 핍박하고 죽게 해도 계속하여 주의 종을 보내십니다. 한번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부르신 자들을 항상 소망을 가지고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당시에 이방인들은 순수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 백성에게 "회개하라!"고 말씀을 전했을 때 왕에서 송아지까지 재를 뒤집어쓰며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팍하여 에스겔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자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완악해졌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훈련을 받으며 마음이 완악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훈련을 사랑으로 영접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은 징게하시며 징계받는 백성들보다 더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미워하여 훈련 주시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께 쓴 뿌리를 품고 불신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싫어하고 대적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에스겔을 보내십니다.

(에스겔의 이마를 금광석 같게 하십니다)

8,9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그들의 얼굴을 마주보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마주보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 하시니라" 에스겔이 이렇게 불신이 가득한 자들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려면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들은 가시나 찔레와 같고 그들은 전갈과 같은 자들입니다. 이들이 하는 불신의 말, 대적하는 말은 독과 같고 비수와 같이 마음에 꽂히기 쉽습니다.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얼굴을 굳게 하시고 이마를 굳게 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화강석과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마음을 화강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게 하셨습니다. 화강석은 돌맹이로 불을 일으키는 부싯돌입니다. 흔히 차돌맹이라고도 합니다. 부싯돌도 단단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에스겔의 미음을 다이아몬드도 짜르는 금강석같이 하십니다. 금감석과 화강석이 부딪히며 화강석은 산산조각 나서 깨어질 것입니다. 금강석에 부딪히면 가시나무도 꺾어지고 전갈도 죽어버립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성령을 주셔서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합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은 그들을 두려워 말며 무서워 말아야 합니다. 마음을 극히 강하고 담대히 해야 합니다. 에스겔은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하시다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복음을 전할 때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주신 금강석 마음을 받았을 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담대한 사람이 되어 이스라엘 공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금강석 마음을 믿음으로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화강석 같은 양들의 마음에 부딪히 산산조각 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렇다고 겉으로도 무서운 얼굴, 딱딱한 얼굴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외유내강해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이 금강석 같이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반면에 우리의 외면은 항상 온유 겸손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야합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아야 합니다. 입을 벌려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아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양들에게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갖는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금강석같이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물에 젖은 점토와 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갖어야 합니다. 양들에 대해서는 강한 화강석 같은 마음을 갖되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하고 여리고 부드러운 마음을 갖어야 합니다. 양들 앞에서는 담대하지만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두려워하며 떨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23장 9절 말씀에서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내 중심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을 인함이라" 이 말씀은 제가 좋아하여 저의 카페에 적어 놓은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는 핍박자들 앞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심히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그는 모든 뼈가 떨리기까지 하였습니다. 포도주에 중독된 사람이 벌벌 떨 듯이 하나님 앞에서 떨었습니다. 이것이 주의 종의 자세입니다. 사도 바울은 양들 앞에서는 담대했습니다. 유다 왕 앞에서도 두려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총독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죽이고자 돌맹이를 들고 달려드는 자들에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는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장 3-5)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이 나타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어린 아이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대조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화강석처럼 되어 조금도 떨지 않았습니다. 심판의 메시지를 전해도 조금도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흥하며 콧방귀를 꾸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 왕이 죽이고 파괴하는 것에는 두려워 벌벌 떨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두려워하고 말씀 앞에서는 담대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에스겔이나 예레미야같이 하나님의 작은 말씀에도 뼈까지 떨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 권세자들 앞에서는 조금도 기가 죽지 않는 당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런 목자들을 보면 한없이 존경스럽습니다. 한 목자는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주의 종이 그에게 불신이 있다고 책망하자 기절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목자들이 그를 떠매고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그 다음에 곧바로 카이스트에 그를 취업하게 도우시고 과기대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한 목자는 주의 종이 책망하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한 자매 목자는 주의 종이 심한 모욕을 주는 말로 여러 대중 앞에서 책망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매 목자는 조금도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 책망을 사랑으로 깊이 영접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내면이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양들의 죄악에 대해서는 철저히 회개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훌륭한 제자 양성가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임에도 이런 아름다운 목자들의 많이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서야 합니다. 오직 나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두려움과 떨림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사람을 두려워서 떠는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느헤미야 4장14절)

(주의 영이 에스겔을 들어올렸습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리시는데 내가 내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찬송할지어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처소로부터 나오는도다 하니 이는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생물 곁의 바퀴 소리라 크게 울리는 소리더라” 에스겔이 주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주의 영이 에스겔을 들어올렸습니다. 에스겔이 자유로드롭을 탄 것처럼 몸이 공중으로 붕 떴습니다. 이는 신기한 체험이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호와의 처소에서 그룹천사들이 여호와의 영광을 찬송할지어다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 소리는 생물들의 날개가 부딪히는 소리와 바퀴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였습니다.(12,13) 에스겔은 황홀함과 무서움이 엄습했습니다. 에스겔이 마음에도 하늘에 떠서 자신에에게 이런 신기한 체험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에스겔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갔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가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시키시더라 "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을 공중으로 들어올리며 갔습니다. 이때 에스겔의 마음은 근심하고 분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서 분노하였습니다. 그들의 불신과 완악한 마음에 대해서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심판 받을 것을 생각하며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가자 마음이 민답해졌습니다. 이는 고민하고 답답했다는 말입니다. 어안이 벙벙했다는 말입니다.

(두려워떨며 칠 일을 보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 가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그 중에서 두려워 떨며 칠 일을 지내니라”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서 델아빕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사로잡힌 백성 곧 거주하는 자들에게 나아갔습니다. 그 중에서 두려워하며 떨며 칠일을 지냈습니다. 그렇게 어안이벙벙하여 칠 일을 지냈습니다. 에스겔은 백성들이 고통하고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고생하는 백성에게 무서운 심판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민답히 지낸 것에는 깊은 목자의 심정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목자의 심정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에스겔이 분노하고 근심할 때 하나님의 권능이 에스겔을 크게 감동시키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목자의 심정이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양들에게 깊은 애정과 책임이 있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우리가 양들의 죄에 대해서 분노해야 합니다. 불신과 정욕과 교만의 죄악에 대해서 분노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양들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고민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주님의 권능으로 우리를 크게 감동시키실 줄을 믿습니다.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세웠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칠 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 파수꾼의 할 일은 적군의 침입을 경계하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파수꾼은 다른 군인들에게 적의 침입을 경고해 주는 사람입니다. 파수꾼은 적을 정확히 알아 보아야 합니다. 노루가 뛰어오는 것을 적군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적이 먼 거리에 있을 때 알아 보아야 합니다. 적이 너무 가까이 왔을 때 알아보면 늦습니다. 적이 공격하기 전에 알아보고 그 전에 적에게 대항하도록 해야 합니다. 적이 소수일 경우는 직접 사살해야 하고, 다수이면 사이렌을 울리든지 해서 다른 동료들을 깨워야 합니다. 파수꾼이 깨어있는 동안에 다른 군인들은 잠을 자고 편히 쉬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파수꾼이 필요합니다. 전시에는 파수꾼이 졸다보면 자신도 죽을뿐 아니라 다른 다른 동료들까지도 몰살시킵니다. 파수꾼이 잘못해서 한 대대나 연대가 몰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시에 제 임무를 하지 못하는 파수꾼은 사형입니다. 우리 목자들은 영적인 파수꾼입니다. 왜 양들에게 파수꾼이 필요합니까? 양들의 생명을 노리는 원수 마귀 사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양들은 이런 사단의 공격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양들은 사단의 공격에 의해서 언제 죽음을 당할지 모릅니다. 양들에게는 파수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목자가 파수꾼의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깨어 있어야합니다)

첫째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파수꾼이 잠을 자셔는 안됩니다. 잠은 안 자더라도 헛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아니면 보초 선다고 하면서 책을 읽고 있어서도 안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칠일 전쟁 때 아랍의 레이더 기지를 지켜보는 군인들이 낮잠 자는 시간이라고 잠을 잤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아랍은 이스라엘보다 10배나 넘는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중동 전체가 이스라엘에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당하지 않으려면 목자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목자는 기도와 말씀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목자는 절대적으로 양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목자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깨어 기도할 때 영적 분별력이 생깁니다. 깨어 기도할 때 사단이 어떻게 일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파수꾼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로 깨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등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영안이 밝아집니다. 말씀을 받을 때 사단의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보입니다. 영적인 파수꾼이 영적인 잠을 자서는 안됩니다. 쾌락의 잠을 자고 안일의 잠을 자고 정욕의 잠을 자서는 안됩니다.

(양들을 깨우쳐야합니다)

둘째 파수꾼은 양들을 깨우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깨우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양들에게 무엇이 죄인지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어떤 사단의 공격이 있을 것인지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지금 무슨 사단이 일하고 있는지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양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징계를 받고 있으나 징계의 의미를 모릅니다. 그들은 죄가 죄인 줄을 모릅니다. 오히려 징계를 받으면서 마음이 완악해졌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셔서 징계하고 있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소망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 속에 들어온 불신과 교만의 죄악을 책망하고 회개시켜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우상숭배한 죄악을 회개시켜야 합니다. 그들이 주의 종의 책망을 듣고도 회개치 않은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이 시대도 사단은 여러 모습으로 양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질주의에 사로 잡혀서 물질의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돈의 신이 시키는 대로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정욕을 사랑으로 가장하여 사단은 양들의 영혼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안락함에 취하여 인생의 목적도 의미도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이들에게 죄악을 회개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목자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말씀을 전해야합니다.)

18-21절을 보십시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악인이 죄를 지을 경우에 혹은 의인의 죄에 빠졌을 경우에 파수꾼이 깨우치지 않았을 경우 악인과 의인은 죽음을 당합니다. 이들을 깨우치지 않은 파수꾼도 그 피값을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파수꾼이 그들의 죄에 대해서 깨우쳤는데 회개하지 않으면 죄를 지은 사람은 죽습니다. 죄를 깨우친 파수꾼은 책임이 없습니다. 만약에 파수꾼이 깨우쳐서 죄를 지은 사람이 회개하면 그들도 살고 파수꾼도 삽니다. 파수꾼이 깨어서 깨우치는 일은 자신과 양들의 생명이 달려 있는 중요한 것입니다. 목자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깨우쳐야 합니다. 목자가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는데도 양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은 목자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것은 양들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 것은 바로 목자의 책임입니다. 목자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서 양들이 회개하면 목자도 살고 양도 삽니다. 목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영광스럽게 빛이 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절대적인 자세로 그들의 죄를 깨우쳐야 합니다. 양이 회개하지 않았다고 상처받지 말아야 합니다. 양이 회개하고 안하고는 양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안 캠퍼스 양들을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힘써 말씀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안의 캠퍼스 영혼들에 대한 책임을 물으십니다. 우리에게 캠퍼스 영혼들의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에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자 니느웨 12만 명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자 그가 도망 갔을 때 그는 물속에 빠지고 고기 배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알고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힘써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힘써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양들이 듣든지 아니듣든지 복음을 전해야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양들이 사는 길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을 시키십니다)

22-2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 하시기로 내가 일어나 들로 나아가니 여호와의 영광이 거기에 머물렀는데 내가 전에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영광과 같은지라 내가 곧 엎드리니 주의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너 인자야 보라 무리가 네 위에 줄을 놓아 너를 동여매리니 네가 그들 가운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 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 하나님은 비합리적인 일을 명령하십니다. 에스겔에게 자신의 집에 가서 사람들에게 잡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의 혀를 입천장에 붙게 하셔서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입을 여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합니다. 어느 때는 양들이 완악하니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하시고 어느 때는 양들이 완악하니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따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라는 훈련입니다. 먼저 말씀을 전하기 전에 하나님께 민감하게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기 전에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훈련을 시키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는 전하고 말씀하지 않을 때는 전하지 말아야합니다.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절대적인 신뢰와 순종이 중요한 것입니다.

(목자는 파수꾼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파수꾼으로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고 창자를 채워야 합니다. 포로생활의 고난을 사랑 속에서 영접해야합니다. 양들 앞에서는 담대해야 합니다. 양들에게 어떤 마귀가 공격해 오는지 분별하고 알려 주어야 합니다. 양들에게 나아가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담대함으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천안 캠퍼스 영혼들을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천안 캠퍼스의 파수꾼의 임무와 사명을 잘 감당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천안 12개 캠퍼스의 영혼들이 살아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에스겔 3장 강해 파수꾼의 책임과 특권
말씀 에스겔 3장 1-에스겔 3장 27절
요절 에스겔 3장 17절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에스겔 3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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