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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베드로전서 3장 강해 일부 그리스도인의 가정 윤리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7-12-27 00:00:00
조회수 : 2,793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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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3장 강해 일부 그리스도인의 가정 윤리

말씀 베드로전서 31-베드로전서 312

요절 베드로전서 38절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어떤 분이 나이가 들었습니다. 아내가 잘 알아 듣지 못하는 것 같아서 시험해 보려고 하였습니다. 집을 나가다가 15m 떨어져서 여보 내 목소리 들려!” 라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대답하지 않길래 10m 정도의 거리에 가서 다시 불렀습니다. “여보! 내 목소리 들려?” 그런데 이번에도 아내의 대답이 들리지 않아서 등 뒤에로 가서 불렀습니다. “여보!” 그러자 아내가 대답하였습니다. “여보, 세 번이나 대답했는데 당신은 내 말이 안 들려요.” 남편이 귀가 먹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공부하고 나면 남편은 아내가 남편의 말을 안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둘 다 다른 사람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잘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1절을 보십시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오늘 말씀을 보면 아내에게 주는 말씀은 1-6절까지입니다. 그러나 남편에게 주는 말씀은 7절 단 한 절입니다. 베드로는 아내에게 먼저 말하고 남편에게 나중에 말합니다. 이를 보고 어떤 자매는 베드로가 너무 편파적으로 자매에게만 요구한다고 말합니다. 남자인 베드로가 써서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매우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이렇게 자매에게 먼저 더 많이 말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가정에서 중요한 역할은 하는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라이프 소감을 들어보아도 대부분 어머니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간증을 들어보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모두가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여기지만 어머니가 이방인이면 유대인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아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아내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항상 아내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의 장모가 병들었을 때는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고 처갓집에 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살면서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내가 자녀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를 알고 먼저 아내들에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순종하십시오.”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면 아내들도 남편에게 남편들이여 아내들에게 순종하십시오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남편도 아내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놀라셨죠? 에베소서 521절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남편과 아내는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순종하는 관계는 아닙니다. 상호 순종하는 관계입니다. 그렇다고 서로의 권리를 주장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면 가정은 더욱 피곤해집니다. 다만 남편이 아내에게 순종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때문에 남편에게 순종해야합니다. 왜 여자가 남편에게 순종해야할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하나님은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 나중에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인간이 범죄한 것도 여자가 먼저 선악과를 먹고 남편에게 주어 남자도 선악과를 먹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창조와 타락의 역사를 근거로 남자와 여자 사이에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해서 남녀를 차별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서로의 자리와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마치 남편이 머리라면 여자는 몸입니다. 한 사람은 방향을 잡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동역을 하는 사람입니다. 방향을 잡고 동역하는 것을 차별로 생각하는 것은 유교문화 때문입니다. 머리나 몸은 동등한 것이 차별이 아닙니다. 머리 없이 몸이 없고 몸 없이 머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면 여러 유익이 있습니다. 우선 남편은 아내에게 존경받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에 만족과 기쁨이 생깁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생깁니다. 남편은 더욱 열심히 가족을 위해서 일을 합니다. 아내를 보호하고 사랑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 교육에도 좋습니다. 자녀들이 어머니를 보고 순종을 배웁니다. 집에서 순종을 배운 아이들이 학교에서 성적도 좋습니다. 사회생활도 잘 합니다.

 

(순종이 남편을 변화시킨다)

 

어떤 아내는 남편이 믿음이 없어서 순종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면 남편이 믿음이 부족하여 순종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 곧 예수를 믿지 않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왜 믿지 않는 남편에게 순종해야할까요? 남편이 아내의 행실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경외하며 정결하게 살면 남편은 아내를 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사는 자로 변화됩니다. 남편은 아내의 말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아내의 순종하는 행실에 의해서 변화됩니다. 여자는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남편에게 끊임없이 말을 하여 가르치고자합니다. 하지만 남편은 결코 말에 의해서 변화되지 않습니다. 행실에 의해서 변화됩니다. 이를 안다면 말보다 행실을 보이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이렇게 순종을 통하여 변화를 만드신 대표적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일절에 보면 이와같이라는 말이 잇습니다. 이는 예수님과 같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말에 순종하였습니다. 군인들의 말에 말없이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들보다 낮아서 순종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더 높은 주도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빌라도의 권력에 의해서 죽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죽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순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한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주도적인 순종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순종해야합니다. 예수님의 순종을 통하여 로마 백부장이 변화되었습니다. 로마라는 나라 전체가 변화되고 세계가 변화되었습니다. 이와같이 아내가 순종할 때 남편이 변화되고 아이들이 변화되고 사회가 변화되고 세계가 변화됩니다.

 

(숨은 사람을 단장하라)

 

3,4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여자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입니다. 여자는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것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지말라는 말씀은 외모로만 하지말라는 말씀입니다. 외모도 적당히 단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이런 이유로 외모는 신경쓰지 않고 내면만 장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외모를 봅니다. 외모도 지나치지 않게 단장해야 사람들 앞에서 덕을 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내면의 단장을 외모보다 더 신경 써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의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씩지 아니할 것으로 장식해야합니다. 킹제임스 번역에는 온유하고 조용한 영의 장식으로 하라고 나옵니다. 이는 온유하고 조용하게 성령의 뜻에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여자들은 순종할 때 아름답습니다. 자매들의 미모를 가장 아름답게 하는 것은 순종입니다.

예수님이 왜 그렇게 아름다우십니까? 예수님은 마른 땅에서 나온 덩굴같아서 흠모할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가 예수님을 너무나 아름다운 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아름다운 것은 천사의 말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가장 좋은 미용법은 순종입니다.

 

(순종함으로 단장한 사라)

 

5,6절을 보십시오.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베드로는 가장 좋은 아내의 예로서 사라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말에 순종하였습니다. 한번은 가나안 땅에 갔을 때 기근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이민갔습니다. 당시는 아내가 아름다우면 남편을 죽이고 아내를 빼앗는 시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아내 사라에게 자신을 오빠로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말에 순종하여 오빠라고 불렀습니다. 사라는 바로의 신하들이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사라의 아름다움이 사라의 순종을 통해서 나왔다고 말합니다. 사라를 누이라고 하자 바로는 사라를 후궁으로 불려 들였습니다. 이때 사라는 놀라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라의 순종을 받으시고 사라를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또 한 번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기 바로 직전입니다. 사라의 나이가 90살이 가까웠을 때였습니다. 이때도 아브라함은 기근으로 그랄 땅으로 잠시 이민 갔습니다. 사라는 이때도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아브라함이 보기에도 사라가 너무 아름다워서 사라의 미모 때문에 자신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기에도 사라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이번에도 사라는 아비멜렉의 궁으로 불려갔습니다. 참으로 놀라온 일입니다. 사라는 90살까지 아름다움을 유지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아름다움의 근원이 성령님과 남편에게 순종한데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자매님들이 아름다워지고 싶으시지요? 순종을 통하여 천안에서 세계적인 미녀들이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남편들은 지식을 따라서 아내와 동거해야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는 남편들에게 딱 두 가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식을 따라서 동거하고 합니다. 베드로는 남편들이 지식을 따라서 아내와 동거하로 말합니다. 이를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아내를 잘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십시오.”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다른 점이 많습니다. 남편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혼자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처음에 만들 때 그 옆에 남자가 함께 있었습니다. 남자는 혼자 있는데 익숙하지만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서 외로움을 많이 탑니다. 남자는 무슨 문제가 있으면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혼자 있고자 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수다를 통하여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곁에 있어주어야 합니다. 아내는 끊임없이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남편은 이런 특성을 알고 아내의 말을 들어주어야합니다. 남편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아내와 함께 있어주고 아내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 이런 남자와 살아야하나 하는 회의가 듭니다. 남편은 아내의 대화를 그냥 들어주면 됩니다. 방향을 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둘째는 아내를 귀히 여겨야합니다. 남자가 아내에 대해서 알아야할 두 번깨 것은 아내는 연약하다는 점입니다. 여자는 남자와 만들어진 재료가 다릅니다. 남자는 거친 흙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뼈로서 만들어졌습니다. 여자는 남자에 비하여 연약합니다. 섬세합니다. 작은 것에 감동을 받고 작은 것에 화가 납니다. 똑같은 말을 해도 부드럽게 이야기하나 거칠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태도가 달라집니다. 여자들은 분위기에도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무드에 약합니다. 날씨에도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해가 떴는가 비가 오는가 보름달인가 그믐달인가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습니다. 형제들은 이런 것을 아시나요? 우리는 연약한 사기그릇을 대할 때 조심하여 대합니다. 사기그릇을 다루는 사람이 동이나 쇠로 만든 그릇을 대하듯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깨어집니다. 여자는 이처럼 남자처럼 막 대해서는 안 됩니다. 조심스럽고 부드럽고 섬세하게 대해야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됩니다. 아내는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아침에 교회에 올 때도 아내가 늑장 부린다고 책망해서는 안 됩니다. 남자는 세수만 하고 나오면 되지만 아내는 얼굴과 외모를 꾸며야합니다. 자녀들도 다 챙겨주고 나와야 합니다. 쇼핑을 가서 남자는 여자가 시간을 끈다고 책망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남자들은 물건만 사면 되지만 여자들은 모든 물건을 보고 즐깁니다. 무엇보다 아내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해 주어야합니다. 그러면 아내는 남편의 말에 잘 순종합니다. 더 많은 것으로 섬겨줍니다.

 

(예수님과 같이)

 

7절에도 이와 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도 예수님과 같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허물을 감당하여 주셨습니다. 죄인들의 죄를 나의 죄로 여기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였습니다. 때로는 아내가 나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말을 듣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남편들은 이런 아내라도 예수님처럼 사랑해야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는 변화됩니다. 아내가 순종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가정에 기쁨과 평화가 찾아옵니다.

 

(서로 불쌍히 여겨야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이제 베드로는 부부에게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부부는 마음을 같이 하여 동정해야합니다. 서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겨야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보고 판단하고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따지려고 하기보다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주고자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연약한 존재요 불쌍히 여겨야하는 존재입니다.

 

(도리어 복을 빌어야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부부들의 공통된 문제는 네가 그러니까 나도 그런다는 것입니다. 내가 악하게 된 것은 네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방이 악하다고 같이 악해서는 안 됩니다 악한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저주는 악을 행하는 한 사람만 받는 것으로 족합니다. 나도 상대방을 따라서 함께 저주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복을 받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악해도 나는 선해야합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 선을 행해야한다)

 

10-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상대방과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선을 행해야하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생명을 얻고 좋은 날을 얻습니다. 특별히 부부는 악한 말을 그쳐야합니다. 거짓말하지 말아야합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해야합니다. 부부는 서로 불화하지 말고 화평해야합니다. 주님이 선을 행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반면에 악행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대적하십니다. 이들은 소망이 없습니다. 따라서 부부는 상대방이 어떻든 내가 하나님의 복을 얻기 위해서 선을 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육일째 결혼을 만드셨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통하여 창조를 완성하셨습니다. 결혼을 통하여 자녀가 태어나고 새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부부는 다른 어떤 관계보다 중요한 관계입니다. 그러나 이혼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아내는 순종하고 남편은 이해하는 가운데 복음 역사가 더욱 흥왕히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베드로전서 3장 강해 일부 그리스도인의 가정 윤리

말씀 베드로전서 31-베드로전서 312

요절 베드로전서 38절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베드로전서 3장 강해 일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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