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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베드로전서 2장 강해 이부 성도가 고난을 받아야하는 이유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7-12-22 00:00:00
조회수 : 2,859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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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장 강해 이부 t성도가 고난을 받아야하는 이유

베드로전서 211-베드로전서 225

요절 베드로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당시에 성도들은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로마의 핍박으로 세계에 흩어졌습니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도 힘이 들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타의에 의해서 고난받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생각함으로 자원하여 고난을 받도록 도우십니다. 고난 중에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라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개인적인 거룩함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제는 사회적인 거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고난을 받고 거룩하게 선을 행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1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당시 성도들은 고향을 떠나 나그네같이 떠돌아 다녔습니다. 당시 성도뿐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은 나그네들입니다. 성도들은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자들입니다. 노숙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의 본향을 떠나 잠시 이 세상에서 사는 거룩한 나그네요 노숙자들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타국인과 타향사람과 같은 자들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릅니다.

베드로는 이런 나그네들에게 권합니다. 영혼을 거슬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체의 정욕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 시민인 우리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합니다. 육체의 정욕과 성령의 소원은 서로 상극입니다. 이 둘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정욕은 육체에서 나오는 죄악된 소원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는다고 육체의 정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단이 통치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육체의 정욕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죄의 소욕을 자극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믿음으로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소원을 따라서 행하면 육체의 정욕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서로 사랑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성령을 따라서 익숙하게 살아서 거룩함의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의 고향에 가서 우리의 거룩한 아버지를 떳떳하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지라)

 

1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우리 신자들은 불신자들 가운데 살아갑니다. 불신자들 가운데는 신자들이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당시는 성만찬하는 성도들을 보고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남녀가 함께 예배드리자 남녀관계가 문란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불신자보다도 못하게 부모를 공양한고 합니다. 성도들이 물질 문제, 여자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보다는 거룩한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불신자들은 우리의 말보다 우리의 행실을 봅니다. 우리는 이들 속에서 선한 행실을 가져야합니다. 선하게는 excellent로 번역된 데도 있습니다. 우리는 뛰어난 행실을 가져야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서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면 선한 행실을 살 수 있습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희생적인 삶을 살아야합니다. 도덕적으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뛰어난 행실을 보고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이 말을 그칠 것입니다. 그들은 성도의 선행을 보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도 전도하지만 선한 행실로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그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총독에게 복종하라)

 

13,14절을 보십시오.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사람들은 사회 질서를 위해서 법을 만들고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 제도를 운영하는 통치자를 세웠습니다. 그 제도나 통치자들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들은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순종해야합니다. 위에 있는 왕이나 왕이 세운 총독에게 순종해야합니다. 당시는 로마 식민지였고 로마총독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악행하는 자들을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입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게 하신 것도 유다의 죄악을 훈련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들에게 순종해야합니다. 그들에게 세금을 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이들에게 순종해야합니다. 베드로전서에는 순종, 복종이라는 단어가 15번 나옵니다. 베드로는 고난을 받되 복종하는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을 배워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5절을 보십시오.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에 순종하는 것이 선행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에 순종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자들이 기독교는 반사회적이라고 비난합니다. 정치적인 혼란을 준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반역자로 몰아서 십자가에서 처단하였습니다. 사도들이 사회를 혼란케 하는 자라고 하여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시 빌라도와 로마법에 순종하였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도 순종하여 고난을 받고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선행을 하셨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선행으로 예수님을 반사회적이라고 비방하는 자들의 무식한 말을 막았습니다. 이렇게 선행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말을 막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세상 법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길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납세와 국방과 근로와 교육의 의무를 져야합니다. 우리도 선행으로 순종하여 이런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말을 막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성도들은 예수님 안에서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피값으로 사셔서 죄와 율법과 사망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유로 악을 짓는데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내 마음대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나를 위해서 쓰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사용해야합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데 사용해야합니다. 우리는 자유로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17절을 보십시오.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사람을 공경해야합니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자들을 공경해야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한 아버지를 모시는 형제자매를 사랑해야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왕을 존대해야합니다. 그들을 선으로 감동시켜서 예수님을 믿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직장 가정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을 존대해야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존대하였듯이 그렇게 존대해야 합니다.

 

(까다로운 주인에게 순종하라)

 

18절을 보십시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로마시대에는 많은 사환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범사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세우신 종에게 순종해야합니다. 범사에 두려워하라는 말은 with all respect로 번역되어 모든 존경심으로 존경하라는 말입니다. 사환들은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 순종해야합니다. 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순종해야합니다. 까다롭다는 말은 unreasonable로서 비합리적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비합리적인 말에도 순종해야합니다. 사환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주인에게 순종해야합니다. 그래야 주인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면 아름답다)

 

19,20절을 보십시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사환들이 부당하게 고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환들은 그때 반항하고 저항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아야합니다 내가 행한 선한 일에 하나님이 상주실 것을 믿어야합니다. 악한 자를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을 믿어야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안에서 슬픔을 참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름답다는 말은 credit로 번역되어 신용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죄가 있어서 매를 맞고 참으면 아무 칭찬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아름답습니다. 칭찬 받을 만한 일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바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름답게 보시고 상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가 고난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예수님이 가신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리스도를 본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 받는 본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부활시키사 그리스도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부활의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되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예수님은 죄를 범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입에 어떤 거짓도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욕을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네가 왕이냐 하며 모욕하였습니다. 침을 뱉기도 하고 발길질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능히 멸하실 수 있었습니다. 열두 영이나 되는 천사를 부르셔서 그들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맞대어 욕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그들에 대한 심판을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부탁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었기 때문에 부당한 고난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무에 달려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담당하셨다는 말은 아기를 낳기 위해서 참고 인내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질고를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죽기가지 담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에 대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의롭게 사는 새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상처를 치료받았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 우리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고 치료 받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우리도 과거는 악행하는 자요,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참으심을 통하여 변화되고 치료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서 고난을 받아야합니다.

 

(이제는 영혼의 목자에게 돌아왔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우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탕자와 같이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목자요, 우리의 영혼을 살펴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고난을 받으면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들이 치료받게 됩니다.

 

(고난을 받는 이유)

 

우리가 고난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게 하기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여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불신자들의 죄에 대한 값을 우리가 치르는 것입니다. 더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적극 고난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베드로전서 2장 강해 이부 성도가 고난을 받아야하는 이유

베드로전서 211-베드로전서 225

요절 베드로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베드로전서 2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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