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욥기 18장 강해 빌닷의 강한 확신에서 오는 교만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0-02-16 00:00:00
조회수 : 2,645

문제지풀이(2)

    icon1.hwp  (14.50KB)

    icon2.hwp  (14.50KB)

욥기 18장 강해 빌닷의 강한 확신에서 오는 교만

말씀 욥기 181-욥기 1829

요절 욥기 1821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수아 사람 빌닷의 두 번째 변론입니다. 그는 첫 번째 변론에서 공의의 하나님이 욥을 징벌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더욱 강하게 악인이 받을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는 자기 확신이 지나쳐서 자신의 생각만 옳다는 교만에 빠지고 있습니다. 우리 신자가 경계해야할 것이 지나친 자기 확신에서 오는 교만입니다.

 

(말을 그치기를 바라는 빌닷)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1-)

 

빌닷이 두 번째로 말합니다. 빌닷은 첫번째에서 아주 은혜로운 말을 한 자입니다. 네 처음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죄를 회개하면 창대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빌닷은 이제 욥에게 너는 언제 입을 다물 테냐고 합니다. 빌닷은 직설적이며 과격하게 말합니다. 그는 욥기 82절 이하의 첫 번째 변론에서와 마찬가지로 18장에서도 엘리바스의 두번째 변론에 대해 반박했던 욥을 심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너희복수를 사용하여 욥을 포함한 모든 불경건한 자를 책망합니다. 빌닷은 불경건한 자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합니다. 빌닷은 그의 친구들을 책망하는 욥에 대해 그의 말을 그만 둘 것을 강하게 비난조로 요구하고 있습니다.(6:9 10:2 12:4 13:18 16:2 17:10). 욥이 제발 좀 이제라도 눈치를 채고서 말을 그치면, 빌닷은 말을 할 수 있겠다고 합니다. 빌닷은 이제 욥에게 그의 말을 그치고 자신의 말을 듣고 깨달으라고 합니다.

빌닷은 욥에게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처럼 여기며, 어찌하여 우리를 어리석게 보느냐고 묻습니다. 빌닷의 눈에 비친 욥은 끝까지 회개치 않고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자입니다. 도리어 선의의 조언을 하는 친구들을 짐승처럼 경멸하는 자일뿐이었습니다. 물론 욥이 친구들에게 경멸적인 조롱을 퍼부은 예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욥이 마치 길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발길로 차는 것과 같은 친구들의 매정한 태도을 비판한 것입니다. 결국 빌닷은 욥의 현실적 필요를 세심하게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의 명성이 실추될까봐 더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부정하게를 어리석게, 우둔하게의 뜻으로 이해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빌닷은 욥이 친구들을 짐승처럼 어리석게 본다고 말합니다. 빌닷은 욥과의 논쟁이 이제 감정싸움으로까지 치닫고 있습니다. 우리가 논쟁을 하다보면 논점을 일탈하여 서로 간에 감정 싸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울분이 있는 자는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4-6)

 

빌닷은 욥에게 화가 치밀어서 제 몸을 갈기갈기 찢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빌닷은 욥이 무죄한 가운데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변론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을 갈기갈기 찢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괴롭거나 슬플 때 자신의 옷을 찢는 것으로 고통을 표현한 곳이 많습니다.

욥이 울분을 터뜨린다고 이 땅이 황무지가 되며, 바위가 제자리에서 밀려나느냐고 묻습니다. 땅을 견고히 세우시고 바위를 땅에 고정시키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 법칙입니다. 빌닷은 자연 법칙이 함부로 바꿀 수 없듯이 죄의 결과로 징계를 받는 것 또한 하나님께서 정하신 도덕적 법칙이므로 욥이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빌닷은 전 우주가 욥에게 맞추기 위해 재구성 되어야겠느냐?고 빈정거리고 있습니다. 욥이 아무리 발버등쳐도 땅이나 바위와 같은 자연은 조금도 요동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가 아무리 분노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기계적인 하나님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보지 못합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잠시 욥에게 고난을 주셨지만 그 고난을 거둘 것입니다.

이제부터 빌닷은 악인의 최후를 말합니다. 욥이 악인이라는 전제 아래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난을 받는 자는 악인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이 없으므로 빛이 꺼집니다. 그는 어둠 속을 걷는 자와 같습니다. 그는 악인인 욥이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빛이나 불꽃 등은 악인이 누리는 건장한 생명 또는 삶의 번영 등을 상징합니다. 빌닷은 악인이 풍요를 누리는 듯이 보이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며 이내 멸망당하고 만다고 말합니다.

잠언 139의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리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는 욥이 악인이므로 현재 심하게 고난을 받아 그 자신과 집이 파산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장막이란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는 생활 터전으로서의 거주지입니다. 장막 안의 빛이란 특히 그 사람의 경제적인 번영, 부귀 등을 상징적으로 뜻합니다. 빌닷은 그의 첫 변론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든 또 반복하여 욥이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다고 한 말을 반박합니다.

 

(악인은 스스로 망한다)

 

7-11절을 보십시오. “그의 활기찬 걸음이 피곤하여지고 그가 마련한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이는 그의 발이 그물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려들며 그의 발 뒤꿈치는 덫에 치이고 그의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 그를 잡을 덫이 땅에 숨겨져 있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목에 있으며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갈 것이며

 

악인의 힘찬 발걸음이 피곤하여 뒤뚱거립니다. 악인은 제 꾀에 제가 걸려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빌닷은 악인의 멸망, 연약함, 쇠약해짐 등을 사람이 걷는 걸음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라고 하였습니다. 빠질 것이라는 말은 내던지다, 세게 던지다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본문 하반절을 그 자신의 꾀가 그를 내어 던지다(던질 것이다) (KJV, his own counsel shall cast him down NIV, RSV, his ownschemes throw him down)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빌닷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빌닷은 공의의 하나님께서 사악한 꾀를 품는 자가 도리어 그 악한 일의 도모로 말미암아 파멸에 직면하게끔 만드신다고 말합니다. 악인은 제 발로 그물에 걸리고, 스스로 함정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빌닷은 8에서 10절까지에서는 짐승을 잡는 데 사용되는 각종 사냥 기구들을 비유적으로 동원시켜 악인의 결국이 사망으로 끝나고 만다고 합니다. 특히 여기에서 그물이란 작게는 새나 조그마한 짐승들을, 크게는 사자 같은 짐승들을 잡는 데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얽는 줄은 여자 머리털이나 기타 가는 줄로 짜서 만든 것, 구덩이 위에 얹혀 놓은 격자(格子) 모양의 나뭇가지 그물, 혹은 구덩이 위에 펴놓은 그물로 보기도 합니다. 그의 발뒤꿈치는 덫에 걸리고, 올가미가 그를 단단히 죌 것입니다. 창애란 덫, 특히 나무로 만든 덫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치이고는 잡다(25:26 2:15 3:8 49:24)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영역본들은 본절 전반절의 의미를 덫이 그 발뒤꿈치를 잡는다(잡을 것이다)(KJV, The gin shall take him by the heel NIV, RSV, A trap seizes him by the heel)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빌닷은 악인인 욥이 갑자기 멸망 받았음을 말합니다. 땅에 묻힌 밧줄이 악인을 기다리고 길목에 숨겨진 덫이 악인을 노립니다. 덫은 올가미 함정을 말합니다. 빌닷은 악인이 가는 길 도처에는 멸망케 하는 요소가 도사리고 있어 멸망을 도무지 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공포가 갑자기 악인을 엄습하고, 그를 시시각각으로 괴롭히며, 잠시도 그를 놓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무서운 것은 깜짝 놀라게 하는 것, 공포등을 뜻합니다. 실제로 악행을 도모하는 자는 항시 보복에 대한 두려움과 양심의 가책 때문에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늘 쫓기는 심경에 직면하게 됩니다. 빌닷은 욥이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타인에게 해를 끼친 자라고 그의 내면 심리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악인의 유황불 심판)

 

12-15절을 보십시오. “그의 힘은 기근으로 말미암아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 그가 의지하던 것들이 장막에서 뽑히며 그는 공포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그에게 속l하지 않은 자가 그의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의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악인이 그처럼 부자였어도, 이제는 굶주려서 기운이 빠지며, 그 주변에 재앙이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영역본KJV, RSV은 이를 그의 힘이 고갈케 되다의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의 재난이 그를 삼킬 만큼 굶주림을 보인다고 말합니다. 굶주림이 그를 대면하고 있다(The ravenous oneconfronts him)라는 뜻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죽음은 산 것들을 먹어치우는 데 혈안이 된 게걸스러운 자로 비유됩니다. 악인의 파멸이 필연적임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살갗은 성한 곳 없이 썩어 들어가고, 마침내 죽을 병이 그의 팔다리를 파먹을 것입니다. 악인의 힘은 기근으로 다 빠집니다. 질병이 그 피부를 삼킵니다. 사망의 대왕이 그 지체를 먹을 것입니다. 그가 의지하는 것은 다 사라집니다. 지체는 그의 피부의 부분들(NIV, parts of his skin)을 뜻합니다. 병에 의해 피부는 상할 것입니다.. 그의 피부가 병에 의해 먹혀집니다.(RSV, By desease his skin is consumed)

결국 빌닷은 욥이 악인이므로 욥의 온몸을 뒤덮은 독한 악창이 생겼다고 합니다. 사망의 장자란 일반적으로 아라비아나 바벨론 및 앗수르 지역에서 흔히 무서운 질병을 가리킬 때 쓰인 환유법적 표현입니다. 빌닷은 악인인 욥이 무서운 질병으로 고통한다고 말합니다. 빌닷은 악인은 믿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서, 죽음의 세계를 통치하는 왕에게로 끌려갈 것이라고 합니다. 공포의 왕은 무서운 것, 사망의 장자 등의 표현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악인은 자기 나름대로 갖가지 안전책을 구해 보지만, 결국 죽음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그의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집에 남아 있지 않으며, 그가 살던 곳에는 유황이 뿌려질 것입니다 그에게 속하지 않은 불이 그의 장막에 붙을 것입니다(NIV, Fire resides inhis tent). 악인의 멸망 받은 장막 안에 그에게 속하지 않는 것들, 즉 들짐승이나 야생 식물 등만이 거하게 될 것입니다. 유황이 그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란 멸망받은 악인의 처소가 다시는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황폐화 되게끔 심판받음을 암시합니다. 그의 집은 소돔 고모라처럼 마지막 유황불 심판을 받습니다.

현재 욥은 질병으로 피부가 삼켜져있습니다. 그런데 빌닷은 욥이 앞으로 사망이 오고 유황불 심판을 받는다고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현재 고통하는 자에게 지옥불이라는 더 큰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는 욥의 아픈 상처에 재를 뿌리고 있습니다. 결국 욥에게 악을 회개하고 의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악인의 후손이 끊어짐)

 

16-19절을 보십시오. “밑으로 그의 뿌리가 마르고 위로는 그의 가지가 시들 것이며 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 그는 광명으로부터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며 그가 거하던 곳에는 남은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빌닷은 악인은 밑에서는 그의 뿌리가 마르고, 위에서는 그의 가지가 잘릴 것입니다. 악인은 뿌리채 뽑히게 됩니다. 악을 행한 자의 멸망에 대해서 식물의 비유를 들어 욥의 전가족의 멸망을 암시합니다. 가족의 생존의 근원이 되는 뿌리로서의 욥 자신뿐만 아니라 그 뿌리에서 나온 가지인 그 자손들까지 온전히 멸망당하고 만다고 합니다. 이 땅에서는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어느 거리에서도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사라집니다. 여리고나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인생의 최대의 비극은 후손이 없는 것과 그 이름이 후손들에게 기억되지 못하고 잊혀져 버리는 것, 이 두 가지였습니다. 자신의 삶이 후손들에게 기억되고 또 기념되는 것은 큰 축복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을 이롭게 한 의인은 길이 기억되나 악인의 이름은 철저히 망각됨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빌닷은 사람들이 악인을 밝은 데서 어두운 곳으로 몰아넣어, 사람 사는 세계에서 쫓아낼 것입니다. 그의 백성 가운데는, 그의 뒤를 잇는 자손이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악인이 이 세상 밝은 곳에서 죽임을 당하여 음부의 어두운 곳으로 쫓겨가게 됩니다.

특히 빌닷은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내려졌던 형벌을 연상시십니다. 고대의 상황에서 땅에서 쫓겨 나는 저주는 치명적인 심판입니다. 그의 집안에는 남아 있는 이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빛에서 어둠으로 쫓겨갑니다. 그는 후손도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16절의 말씀과 유사한 것으로서 악인의 후손이 끊겨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는 후손이 없거나 도중에 끊기는 것을 불행한 것 또는 하나님의 심판의 행위로 묘사된 곳이 많습니다.

전반절의 아들의 히브리어 닌은 단순히 아들(son)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싹이 트이다에서 유래된 말로 자손(NIV, RSV,pffspring)을 의미합니다. 손자도 단순한 손자(29:5 31:28)보다는 역시 후손(NIV, RSV, descendant)을 의미합니다.

 

(불의한 자는 망함)

 

20,21절을 보십시오. “그의 운명에 서쪽에서 오는 자와 동쪽에서 오는 자가 깜짝 놀라리라.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동쪽 사람들이 악인의 종말을 듣고 놀라듯이, 서쪽 사람들도 그의 말로를 듣고 겁에 질릴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의 날은 악인이 심판받는 멸망의 날을 뜻합니다. 서편의 사람들과 동편의 사람들 곧 당대의 모든 사람들이 놀랍니다. 악한 자의 집안은 반드시 이런 일을 당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사는 곳이 이렇게 된다고 합니다. 원문에는 KJV, NIV, RSV Surely라는 부사가 첨가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빌닷의 변론 중 결론적인 내용으로서 그의 주장하는 바를 요약 강조함을 암시합니다.

빌닷은 욥이 바로 멸망에 처할 수밖에 없는 불의한 자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시편 일편에 보면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합니다. 빌닷은 욥이 악인이므로 망했다고 합니다. 욥이 불의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망했다고 합니다. 망할 뿐 아니라 나중에는 지옥에 들어가고 그 이름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빌닷의 말을 들어보면 잠언이나 시편의 말씀을 읽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는 악인은 망한다는 일반론을 말합니다.

그의 메시지는 죄를 깨닫지 못하고 설치는 악인에게 주면 회개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악인들이 설치는 것으로 고통받는 자에게 주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욥에게는 힘이 되지 않습니다. 더욱 고통스럽게 할 뿐입니다. 빌닷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외를 인정할 것)

 

첫째, 빌닷은 욥의 특별할 경우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악인이 망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에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의인으로서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신뢰하여 고난을 주시고 욥을 자랑으로 생각하여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외적인 상황이 있습니다. 또한 의인도 이 땅에서는 고난을 받고 하늘나라에서 복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랬고 아벨도 그랬고 순교자들이 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항상 예외를 인정할 줄 알아야합니다 우리에게는 예외적인 상황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론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하나의 교리나 철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잘못을 버려야합니다. 모든 것을 예정론이나 혹은 지유주의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악인은 망한다는 것으로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복통은 주로 소화불량에서 옵니다. 복통이 올 때 소화제를 먹거나 화장실에 갔다오면 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해도 복통의 원인은 삼십 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나는 과거 과민성 대장으로 복통이 왔습니다. 대부분 과민성 대장은 복통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사도 나에게 과민성 대장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과민성 대장으로 고통했고, 장진통제를 먹고 마음에 기쁨을 가졌을 때 치료되었습니다.

 

(강한 자기 확신에서 오는 교만의 문제)

 

둘째, 빌닷은 악인은 망한다는 자신의 생각에 매여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의 가장 큰 고질병은 자기 확신이 너무나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내가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무엇이든지 아는 줄로 생각하면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목자는 항상 자신의 옳은 생각도 특별한 경우에는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과학자는 자기의 생각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압니다. 자신의 생각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겸손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깨뜨리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자신의 확신이 너무 강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확신을 갖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말을 지나치게 확신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의 메시지나 나의 생각이 항상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독선적이고 독불장군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말씀 공부에 가면 너무 자신의 주장만 해서 시끄러운 것을 보게 됩니다. 은혜가 없습니다. 우리가 항상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인정할 줄 아는 겸손한 자세를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욥기 18장 강해 빌닷의 강한 확신에서 오는 교만

말씀 욥기 181-욥기 1829

요절 욥기 1821

욥기 18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21 [욥기] 욥기 21장 강해 누가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 오요한 2010-04-04
20 [욥기] 욥기 20장 강해 무서운 사람, 소발 오요한 2010-02-18
19 [욥기] 욥기 19장 강해 변신에서 대속자를 갈망함 오요한 2010-02-18
18 [욥기] 욥기 18장 강해 빌닷의 강한 확신에서 오는 교만 오요한 2010-02-16
17 [욥기] 욥기 17장 강해 이부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오요한 2010-02-16
16 [욥기] 욥기 16장 강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라 오요한 2010-02-15
15 [욥기] 욥기 15장 강해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않는가? 오요한 2010-02-13
14 [욥기] 욥기 14장 강해 욥의 부활신앙 오요한 2010-02-13
13 [욥기] 욥기 13장 강해 변호인이 없는 욥의 안타까움 오요한 2010-02-13
12 [욥기] 욥기 12장 강해 하나님의 세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오요한 2010-02-11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