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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욥기 13장 강해 변호인이 없는 욥의 안타까움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0-02-13 00:00:00
조회수 : 2,77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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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3장 강해 변호인이 없는 욥의 안타까움

말씀 욥기 131-욥기 1328

요절 욥기 1323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은 피고인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은 자신에게 죄를 자백하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친구들은 욥을 더욱 죄인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백할 죄가 없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욥은 답답했습니다. 욥은 누군가 자신을 변호해주기를 갈망하며 자신의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돌팔이 의사인 친구들)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이니라. 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1-5)

 

욥은 친구들이 아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욥은 진부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친구들로 인하여 괴로워하며 계속 그들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욥은 개인적인 관찰을 통하여 알고(8:9, 16, 17), 현자들이 말한 진리를 받아들여서 알고 있습니다.(12:11). 욥은 이미 조상들의 전승을 들었고 이해했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현재와 과거 세대 현자들의 지혜를 피력한 반면에 욥은 그 자신의 관찰과 현자들의 지혜에 대한 자신의 평가 위에서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는 인칭 대명사 나를 굳이 첨가시켜 욥 자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지혜가 친구들의 지혜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말합니다. 친구들의 지식은 전통적인 것이거나 원칙론에 입각해 있었지만 욥은 자신에게 직접 부딪친 실제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씨름하면서, 단순한 원칙이나 논리의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뜻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욥은 더 깊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욥은 사람들과 이야기 하지 않고, 이제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하나님께 토로하고자 합니다. 욥은 재판관이신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욥은 꾸짖음이나 논쟁에서의 승리하기보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풂으로써 화해에 이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1:18) 욥은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공의로우심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통하여 관계성을 회복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거짓말장이고 쓸모없는 의원이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대로 직역하면 그들은 거짓을 회칠하는 자들입니다. 친구들이 거짓으로 그의 죄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잘못 지어진 벽을 회칠함으로써 강하고 안전하게 보이도록 하듯이, 친구들은 진실을 거짓으로 회칠하고 있습니다. 결국 친구들이 진부한 신학적 내용을 반복함으로써 스스로 현자인 체하며 욥을 책망한 친구들에 대한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돌팔이 의사와 같았습니다.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우리는 종종 그 어려움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대신에, 관념적인 설명으로 그것을 이해하려고 시도합니다. 욥의 친구들이 이런 태도입니다. 욥의 눈에는 욥의 잘못된 신학을 바로 잡아 주는 해결책으로 생각했던 친구들의 말이 매우 어리석게 보였습니다. 욥은 차라리 그들이 침묵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속으로 곪은 상처를 보지 못하고 표피의 상처만 문제시하는 무능력한 의사와 같았습니다.

돌팔이 의사는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돌팔이 의사가 사람을 잡습니다. 나의 큰 형은 심장 판막에 박테리아가 들어가서 열이 났습니다. 그러나 어느 지방의 대학 병원에서는 애매하게 간에서 문제를 찾았습니다. 사람이 더 죽게 되엇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잠잠한 것이 나았습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정확히 원인을 찾아서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의사는 정확히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해야 합니다. 모르면 차라리 모른다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 편만 드는 친구들)

 

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 보라. 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를 말하려느냐? 그를 위하여 속임을 말하려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따르려느냐? 그를 위하여 변론하려느냐?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 같이 그를 속이려느냐?”(6-9)

 

욥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항변도 좀 들어 보라고 합니다. 욥이 자신의 사정을 호소하는 동안, 귀를 좀 기울여 달라고 합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너희는 제발 나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변명은 생활 속에서 일어난 싸움(21:18), 분쟁 당사자 간에 교환하는 논쟁(31:36), 혹은 피고와 원고가 재판장 앞에서 논쟁하는 소송 그 자체등을 가리킵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왜 허튼 소리를 하느냐고 합니다. 친구들은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을 빌미삼아 알맹이도 없는 말을 하느냐고 합니다. 7절부터 11절까지에서 욥은 논쟁의 전형적 특색을 보여주는 일련의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7절에서 욥은 친구들이 욥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변호한다는 명목으로 진실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욥은 친구들을 하나님 앞에서 돕고 있습니다. 욥이 볼 때 친구들이 문제가 많았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하나님 앞에서 불의하다고 합니다. 거짓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펴보기를 원하였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법정에서 하나님을 변호할 셈이냐고 묻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얼굴을 들려고 하느냐? 묻습니다. 왜 편파적으로 하나님 편만 드느냐고 합니다. 욥은 자칭 하나님 편에 선다고 하면서 일방적으로 욥을 공박하는 친구들의 매정함을 나무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변호하려고 논쟁을 할 셈이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세히 조사하셔도 좋겠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이 단순히 바라보거나 살피는 것의 의미를 넘어 자세히 헤아려 감추어진 것을 찾아내도 좋으냐고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욥을 정죄하고 있는 친구들을 주시하시어 그들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찾아내시게 되면 어떻게 하려느냐 묻습니다.

친구들은 욥을 고발하였지만 도리어 하나님 앞에 심문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사람을 속이듯, 그렇게 하나님을 속일 수 있을 것 같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을 속이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이 욥이 악하여 벌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들 자신이 먼저 죄를 깨달아야합니다. 누구든지 남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자는 하나님을 속이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있습니다. 이런 죄를 고백해야 그들은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편도 들었지만 사람의 편도 들어서 중재자가 되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무죄를 주장하는 욥)

 

만일 너희가 몰래 낯을 따를진대 그가 반드시 책망하시리니 그의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의 두려움이 너희 위에 임하지 않겠느냐? 너희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가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10-16)

 

친구들이 하나님께 아첨이나 하려는 엉큼한 생각을 품었다가는 호되게 꾸중이나 들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쪽을 편파적으로 편들어서는 안 됩니다. 욥은 친구들이 자신들의 인위적인 뜻과 주장에 따라 비진리와 불의 가운데서 무조건 하나님의 편을 드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고 책망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시며 불의를 배척하시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친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두려워하게 되고 하나님이 무서워 부들부들 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탁월하심, 하나님의 의와 거룩, 영광 등의 높으심과 탁월하심 앞에서 떨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영 앞에서 친구들의 거짓과 불의를 드러나게 마련이며 이때 그들은 두려워 떨 수밖에 없으리라고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두렵고 크신 위엄과 권능이 패역한 성읍이나 국가에 징벌하실 때, 사람들이 두려움 가운데 떨었던 사례가 많습니다. 실제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친구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보아야합니다. 친구들의 좌우명은 티끌 위에 쓴 격언입니다. 친구들의 답변은 흙벽돌에 쓴 답변입니다. 격언은 누구나가 쉽게 기억할 수 있고 간결하여 민간에 떠도는 말등을 의미합니다. 속담은 잠언 11 처럼 비유나 유사한 사실들을 들어 교훈해 주는 말을 의미합니다. 친구들의 말은 생명력이 없는, 전혀 무가치한 교훈임을 암시합니다. 토성이란 진흙을 의미합니다. 토성은 쉽게 무너지고 부숴지기 쉬운 것을 비유적으로 지칭합니다. 욥의 친구들의 변론 특히 욥의 주장에 대한 반증이 허술하고 빈약하며 사실에 맞지 않아서 쉽게 반박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욥은 그들이 잠잠해 주기를 바랍니다. 욥이 말좀하겠다고 합니다. 욥은 무슨 일이 닥치든지 당하겠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죽음이라도 받을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너희는 나에게서 잠잠하라고 합니다. 욥이 말할 수 있도록 그의 친구들이 잠잠하기를 요청합니다. 욥은 그의 뜻과 생각을 말함으로 인해 빚어지는 어떠한 일이든지 기꺼이 당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또한 모든 문제의 해결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하나님 안에서 처신되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욥이라고 해서 어찌 이를 악물고서라도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욥은 고통을 참기 위해 자기 살을 깨무는 것입니다.. 욥은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하고 싶은 말을 해보고자 하는 굳은 결심을 말합니다. 먹이를 물고 가는 짐승이 그것을 빼앗으려는 짐승을 만난다면 계속 먹이를 물고 있겠느냐는 뜻도 됩니다. 그는 처지가 너무도 위급하므로 하나님께 그 고통을 아뢰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욥은 생명을 돌보지 않고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겠다고 합니다. 어차피 그의 손에 죽을 몸, 아무 바랄 것도 없지만 욥의 걸어온 발자취를 그의 앞에 낱낱이 밝히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의 앞에 나설 수 있음이 자신의 구원일는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위선자 같은 친구들은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도 없습니다. 그는 이를 악물고라도 하나님께 자신의 진심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살을 이로 물고라도 말합니다. 그는 경건한 자로서 자신의 행위를 아뢰고 싶었습니다.

보라 하나님이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할(소망할)것이라고 합니다. 욥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특정한 죄악을 범치 않았는데 그분의 징계를 받아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합니다.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이를 악물고서라도 자신의 진심을 아뢰는 신하와 같습니다. 그는 강직하였습니다.

욥 자신이 의롭고, 하나님 앞에서 불경건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사곡한 자가 하나님 앞에 이르지 못함은 근복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불의나 죄와는 상관없는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11:44, 45).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변명하는 그의 행위의 무죄성 증명을 하는 것이 자신의 구원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결백을 주장합니다. 목숨을 걸고 죄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걸고라도 에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해야 합니다. 비진리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 앞에 떳떳한 욥)

 

너희들은 내 말을 분명히 들으라. 내가 너희 귀에 알려 줄 것이 있느니라. 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정의롭다 함을 얻을 줄 아노라.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17-19)

 

욥은 이제 친구들이 욥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합니다. 욥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라고 합니다. 욥이 그를 정죄하고 책망하는 세 친구들의 말을 막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피력한 것을 들으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욥의 탄원을 들으라고 합니다. 욥을 좀 보라고 합니다.

욥은 이제 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욥이 자신의 무죄성을 법적, 논리적으로 증거하고 변명하고자 합니다. 진술하는 것은 제단에 나무를 쌓거나(22:9), 상에 떡을 진설하는 것(23:5)등과 같이 어떤 사물을 잘 정돈하는 것, 특히 군대를 정돈하는 것 등을 뜻하는 말입니다(32:14). 욥이 그의 사정(변명)을 잘 정리하여 말한 것입니다. 욥에게는 자신이 죄가 없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과 그로 인한 세 친구들의 정죄와 책망 속에서도 계속 자신의 무죄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누가 나타나 자신의 죄를 입증한다면 자신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죽을 각오를 하겠다고 합니다. 욥은 공개적으로 변론하여 자신의 죄악성을 드러낼 자가 아무도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어느 누구도 결코 자신의 논리를 반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시 욥은 친구들을 향하여 말합니다. 그는 친구들이 자신의 죄를 입증하기를 원했습니다. 친구들은 자신을 죄인이라고 몰아붙이되 죄를 밝히지는 못하는 검사와 같았습니다. 욥은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였습니다.

목자는 때로 검사가 되어서 양들의 죄를 책망해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도록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야합니다. 그러나 그때도 정확하게 죄를 알고 깨닫게 해야지 네 죄를 네가 알렸다고 하며 옛날 원님처럼 무턱대고 회개하라고 호통만 쳐서는 안 됩니다.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회개의 메시지만 전하여서는 안 됩니다. 책망을 해도 그 안에서는 따뜻한 사랑이 있어야합니다.

 

(징계를 거두고 말로 하시기를 원하는 욥)

 

오직 내게 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니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시오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이니이다.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20-22)

 

욥이 하나님께 바라는 것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욥이 그를 정죄하고 책망하는 친구들을 반박하며 그의 무죄성을 강력히 내세우다가 갑자기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으로 바뀝니다. 이와 같은 욥의 태도는 이 세상 어디에나 의뢰할 자는 아무도 없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바라볼 뿐이며 그의 어려운 문제와 처지를 해결할 분도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시사합니다. 이와 같은 기도는 욥기에 여러 번 나타납니다(7:11-21102-22 13:20-28 17:3, 4).

그가 바라는 두 가지란 하나님의 징계의 손이 떠나시게 하는 것과 위엄으로 그를 두렵게 하시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들어주시면, 자신이 주님을 피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첫째는 자신을 치시는 그 손을 거두어 주시고, 둘째는 제발 자신이 이렇게 두려워 떨지 않게 해달고합니다. 욥은 하나님께 징계의 손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합니다.(6:4 7:12, 19 10:9).

성경에서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도움을 나타내기도 하나 때때로 하나님 당신이 징계하시는 수단으로 나옵니다.(32:4 1:25).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과 환난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징계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질병으로 힘을 행사하지 않으시고 먼저 말씀하시면, 자신이 대답하겠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시면 자신이 먼저 말씀드리게 해주시고, 주께서 내게 대답해 달라고 합니다.

욥이 자신의 무죄성을 하나님 앞에서 나타내고 증명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원합니다. 욥이 경건한 자가 되어 하나님께 먼저 부를 수 있도록 요청합니다. 그는 그의 무죄성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간구합니다.

후에 하나님은 욥에게 말하기 전에 욥을 아시고 당신께서 먼저 직접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절대적 주권과 위엄을 보여주십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고문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만 고문을 거두고 말을 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병이 나은 상태에서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고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깊이 신뢰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욥 사이에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알기 원하는 욥)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라게 하시며 마른 검불을 뒤쫓으시나이까?” (23-25)

 

욥은 자신이 지은 죄가 무엇이냐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고 묻습니다. 자신이 어떤 범죄에 연루되어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토록 심한 고난을 당해야 할 정도로 악한 죄를 저질렀는가를 알려 달라는 탄식입니다. 욥이 하나님께 그를 고난당하게 한 기소장을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불법과 죄와 허물의 세 가지 표현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욥은 자신의 고난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욥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 왜 벌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도 죄를 지은 자가 벌을 받는다는 사상에 젖어있습니다. 욥도 아직 은혜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주께서 욥을 피하시고 말씀하지 않으시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은혜와 도우심을 가리우시느냐고 묻습니다(27:9 42:5 105:4). 얼굴을 가리운 것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비우호적인 혹은 적대적인 뜻을 나타내는 관용구적 표현입니다(31:7 27:9 54:8). 어찌하여 주께서 나를 원수로 여기시냐고 묻습니다. 주께서는 줄곧 욥을 위협하십니다. 욥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같을 뿐입니다. 주께서는 지금 마른 지푸라기 같은 욥을 공격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과 같이 연약하고 마른 검불과 같이 가볍고 하찮은 자신을 그토록 징계하시느냐고 질문합니다. 날리는 낙엽이나 마른 검불은 하나님의 진노와 능력 앞에 전혀 대항할 수 없는 무기력하고 연약한 욥을 말합니다.(1:4 83:14 64:6).

욥은 마치 사냥개가 사냥물을 쫓듯이 하나님이 연약한 자신을 너무도 집요하게 추궁하며 징게하신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죄 때문에 고난을 주신다면 자신의 죄를 밝혀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주의 얼굴을 뵙기 원하였습니다. 왜 자신을 괴롭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왜 나의 죄를 낱낱이 조사하십니까?)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점검하시나이다. 나는 썩은 물건의 낡아짐 같으며 좀 먹은 의복 같으니이다.”(26-28)

 

주께서는 지금, 욥이 어릴 때에 한 일까지도 다 들추어 내시면서, 욥을 고발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법적인 언도나 선포, 판결 등을 기록하듯이 하십니다.(31:35 149:9 10:1) 욥이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욥에게 있어 가장 궁금한 것은 구체적인 죄를 지적해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은 당시 상황에서, 자신의 살아온 경건한 삶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무신론적 사고에 빠지지 않은 것만 해도 욥은 대단합니다. 어렸을 때에 지은 죄는 욥 또한 인간의 온전한 무죄성이나 완전성을 주장하지 않고 연약하여 실수하는 자임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욥은 여기에서 하나님이 어릴 적 죄를 기억하사 낱낱이 징계하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욥의 발에 차꼬를 채우시고, 욥이 가는 모든 길을 낱낱이 지켜 보시며, 발바닥 닿는 자국까지 다 조사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썩은 물건과도 같고, 좀먹은 의복과도 같다고 합니다. 욥이 자유를 완전히 상실했으며 모든 길에 있어서 하나님의 간섭과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욥을 죄인처럼 대하사 차꼬를 채워 자유롭게 행하지 못하게 묶으시었다고 합니다.(105:18 202 16:24). 하나님께서 욥의 모든 길을 면밀히 주시하시며 그의 발자국을 보고 계시다고 합니다. 욥이 앞절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고해도 하나님께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자 이제는 자신의 처지를 3인칭으로 바꾸어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가 썩은 물가의 후패함처럼 철저히 소모되어 쓸모없는 자가 되었으며 좀 먹은 의복처럼 무가치한 자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하나님은 자신의 옷에 모든 먼지를 터는 사람과 같았습니다. 욥도 자신의 징계가 죄로 말미암은 것으로 인식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징계는 죄가 아닌 전적인 은혜와 사랑으로 인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욥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중에 얼굴을 보여주십니다.

 

(중보자의 필요성)

 

욥은 재판장 하나님 앞에선 죄인처럼 서있습니다. 친구들은 검사처럼 서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무죄를 주장합니다.

욥이 하나님과 의사소통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중보자 예수님을 변호사로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을 보내사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탄식 가운데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변호인 예수님을 통하여 고난 중에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하고 훈련을 잘 받아야합니다.

욥기 13장 강해 변호인이 없는 욥의 안타까움

말씀 욥기 131-욥기 1328

요절 욥기 1323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기 13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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