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욥기 16장 강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0-02-15 00:00:00
조회수 : 2,441

문제지풀이(2)

    icon1.hwp  (14.50KB)

    icon2.hwp  (15.00KB)

욥기 16장 강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중재하기를 원하노니

말씀 욥기 161-욥기 1622

요절 욥기 1621절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엘리바스은 첫째 변론에서 욥이 죄 때문에 형벌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변론에서는 욥이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말이 교만하다고 꼬투리를 잡아서 공격하였습니다. 욥이 뇌물까지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욥은 엘리바스의 공격에 대해서 두 번째로 변론합니다. 욥은 이런 공격을 받으며 답답하였습니다. 욥은 중재자가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그리고 자신과 사람 사이를 중재해주기를 원합니다.

 

(욥이 친구라면 위로를 해주었을 것이다)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헛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네가 무엇에 자극을 받아 이같이 대답하는가? 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나니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 하자. 나도 그럴 듯한 말로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 그래도 입으로 너희를 강하게 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의 근심을 풀었으리라.”(1-5)

 

욥이 엘리바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욥은 엘리바스가 공격하는 말은 전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엘리바스는 악인이 하나님의 징계를 면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욥은 그의 친구들이 그를 악하다고 단정하고 비판하는 변론을 여러 차례 들은 바 있습니다.

욥을 위로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친구들은 하나같이 욥을 괴롭힐 뿐입니다. 욥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친구들은 욥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해주기는 커녕 도리어 해를 끼치는 악인들이라고 말합니다. 친구들은 이런 헛된 소리를 끝도 없이 계속한다고 합니다.

엘리바스가 욥을 비판하는 말은 헛된 소리라고 합니다. 엘리바스는 무엇에 홀려서 말끝마다 욥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처음에 찾아왔을 때에는 욥과 함께 슬퍼하고 위로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정작 입을 열었을 때에는 위로와 동정의 말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경험, 전통을 근거로 욥을 정죄하기에 급급하였습니다.

욥은 그들이 돌이키고 잠잠하기를 원하였고, 지금도 잠잠하기를 원합니다. 친구들이 욥에게 한 위로는 오히려 욥에게 재난을 주었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욥의 처지가 되면, 욥도 그들처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욥도 그들에게 마구 말을 퍼부으며, 가엾다는 듯이 머리를 내저을 것입니다.

앞에서 엘리바스는 자신이 욥의 처지에 있다면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을 찾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욥의 고난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욥은 친구들과 입장을 뒤바꾸어 말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재난을 당했을 경우 욥 자신도 그들 못지않게 적당한 미사여구나 정연한 논리를 동원시켜 그들을 공박해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욥은 적어도 자신은 위로와 동정을 잃지 않겠다고 합니다. 머리를 흔든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정죄하며 조롱, 조소하는 것을 암시합니다. 욥이 입을 열어 여러 가지 말로 그들을 격려하며, 입에 발린 말로 그들을 위로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욥이 그들이라면 욥은 그들을 강하게 하며 근심을 풀어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은 근심이 풀리지 않는다)

 

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고 잠잠하여도 내 아픔이 줄어들지 않으리라. 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나의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6-8)

 

욥은 아무리 말을 해도, 이 고통 줄어들지 않습니다. 입을 다물어 보아도 이 아픔이 떠나가지 않습니다. 욥은 말을 하든지 안 하든지 자신에게 닥친 고통은 여전히 존속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욥은 이제 하나님을 향한 절망 섞인 탄식을 합니다. 당시 욥으로서는 친구들과 변론을 주고받기보다는 차라리 독백조의 탄식을 하는 편이 한결 나았습니다. 욥은 말을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욥을 기진맥진하게 하시고, 욥이 거느리고 있던 자식들을 죽이셨습니다. 이제 욥은 친구들에 대한 반박을 멈추고 그의 내밀(內密)한 고통을 독백 형식으로 토로합니다.

욥이 그나마 호소할 데라고는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가족들을 치사 멸망케 하셨습니다. 주께서 욥을 체포하시고, 주께서 욥의 적이 되셨습니다. 욥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피골이 상접한 앙상한 모습뿐입니다. 욥이 질병과 고난을 당함으로 온몸이 일그러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께서 욥을 치신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피골이 상접한 욥의 모습을 보고, 욥은 지은 죄로 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욥은 자신이 병들고 고난당하는 것이 그의 범죄에 대한 공정한 징벌이 아니라 오히려 무죄한 자의 고통이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욥 자신은 이런 징계를 받아야 할 만한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임한 극한적인 재난은 자신의 죄악을 증거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욥은 이제 자신이 친구들에게 결백을 호소해 봐야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욥의 파리해진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욥을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욥을 과녁 삼으셨다)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원수가 되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시고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나를 모욕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 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나를 부숴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 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9-13)

 

하나님은 욥에게 진노하셔서 사자처럼 욥을 찢고 적대시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욥의 묘사는 8절의 2인칭에서 이제는 3인칭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무시무시한 대적자로 묘사한 것은 욥의 고통이 그만큼 극심하였음을 반증합니다. 구박하는 것은 미워하고 박해하는 것입니다. 이를 가는 것은 아주 극단적인 원수 관계에 처해있는 자를 향한 미움, 분노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향하여 이를 갈고 원수가 되셨습니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보십니다.

무리들은 욥을 항하여 모욕하며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대적하였습니다. 욥은 육신의 고통은 물론이고 모든 친지들로부터 버림과 모욕을 당하는 사면초가와도 같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무리들은 고난당하는 욥을 멸시했던 일반 대중이나 친지나 세 친구들을 가리킵니다. 입을 벌리는 것은 일종의 모욕 또는 조롱의 행위를 암시합니다. 뺨을 치는 것은 모독하며 적대적인 행위를 취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시편 22편의 다윗의 상황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받을 고난을 예표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욥을 악인에게 넘기셨습니다.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습니다. 욥은 어린아이처럼 철없고 무지한 자들에게조차 경멸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욥이 자신에게 닥친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욥은 비록 그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지 못해 고뇌하기는 했지만 궁극적으로 고난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평안한 욥의 목을 부숴뜨리셨습니다. 욥을 세워 과녁으로 삼으셨습니다. 사방에서 욥을 향하여 화살이 날라왔습니다. 마치 철천지 원수가 자신을 공격하여 철저히 때려부수는 듯한 신랄한 표현을 통해, 욥은 참기 어려운 고난에 직면한 자의 참담한 심경을 생생하게 나타냅니다. 특히 여기서 욥은 한때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평안하게 되었음을 토로함으로써, 행복했던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꺾으시는 것은 산산히 부수는 것입니다. 욥의 콩팥을 꿰뚫고 쓸개가 흘러나왔습니다. 12절에 이어 13절에서도 욥은 섬뜩할 정도의 표현을 통해 자신의 곤경을 적나라하게 토로합니다. 하나님의 징벌을 화살에 빗대어 표현한 것은, 엘리바스의 첫 번째 변론에 대한 반론에도 나옵니다. 성경에서 살을 쏘는 것은 대개 하나님의 징계의 표현으로서 진노하시고 징벌을 내리심을 암시합니다. 쓸개는 신장을 가리킵니다. 쓸개를 사람의 사고와 감정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중심을 화살로 꿰뚫으셔서 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원수 같이 여기십니다)

 

그가 나를 치고 다시 치며 용사 같이 내게 달려드시니 내가 굵은 베를 꿰매어 내 피부에 덮고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 내 얼굴은 울음으로 붉었고 내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구나.”(14-16)

 

하나님이 욥을 갈기갈기 찢고 또 찢으시려고 용사처럼 그에게 달려드십니다. 꺾는 것은 큰 돌로 성벽을 파괴하여 커다란 구멍을 뚫거나 허물어뜨리는 것입니다. 성벽을 파괴하고 그 안으로 달려드는 용사같이 하나님이 욥을 징계하시고 패망케 하십니다. 욥이 맨살에 베옷을 걸치고 통곡합니다. 굵은 베를 입는다는 것은 비참하고 낮아진 처지를 애도하며 나타내는 외형적인 표현입니다. 욥의 위세를 먼지 속에 묻고, 여기 이렇게 시궁창에 앉아 있습니다. 뿔은 일반적으로 힘, 권능, 능력을 의미합니다.

욥이 극도의 재난에 직면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사회적인 힘, 명성, 권능 등이 온전히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이 표현은 마치 상처받은 황소가 그 뿔을 흙 속에 파묻으려 하는 것에 빗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도 울어서, 얼굴마저 핏빛이 되었고,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덮여 있습니다. 욥의 피부는 굵은 베로 덮고 욥의 뿔은 티끌에 더럽혔습니다. 욥의 얼굴은 울음으로 붉었고 그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습니다.

이 울음은 너무도 큰 고통 때문에 욥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며 통탄한 것을 연상케 합니다. 욥은 극심한 환난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단지 병든 환자의 눈 주위에 어린 음울한 기색을 뜻하는 다크서클이 생겼습니다. 영역본들도 이를 깊은 그늘(NIV, deep shadows), 깊은 어두움(RSV, deep darkness)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전조로서 눈 주위에 드리우는 어두운 그늘이 생겼습니다. 욥에게 하나님은 원수와 같이 사정없이 공격하는 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욥의 모습은 십자가의 예수님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에게 원수 같은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욥을 신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욥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욥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시험을 주시고 피할 길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사랑하시고 깊이 신뢰하였지만 욥은 그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욥 사이에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습니다.

 

(중보자는 높은데 계신다)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17-19)

 

그러나 욥은 포학이 없고 정결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욥은 땅과 하늘을 증인 삼아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욥이 현재 고난과 징계를 받고 있지마는 여전히 무죄하다고 주장합니다. 욥 자신이 고난받는 것은 그의 친구들의 비난처럼 자신의 특정한 범죄 때문이 아니라 영문 모를 하나님의 징계 의지로 말미암은 것일 뿐입니다.

아울러 욥은 무죄한 자신이 징계를 받고 있는 이유를 하나님께 진지하고도 열렬하게 아뢰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피가 자신의 무죄성을 증명하고 보증할 수 있도록 땅으로 하여금 덮지 말도록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하소연은 창세기 4장에서 불의한 가인이 의로운 아벨을 죽였을 때 그 아벨의 피가 땅에서 하나님께 호소함으로 하나님이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 피에 대한 보복으로서 가인을 심판하신 사실과 관련됩니다. 고난당하는 욥의 흘린 피가 그의 무죄성을 증명하고 나타낼 수 있도록 멈추지 않고 계속 부르짖게 해달라는 호소입니다.

욥은 하늘에 있는 중보자를 찾아서 하나님 앞에서 억울함을 풀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자신의 처지와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중재자가 멀리 하늘에 계심으로 중재를 못하고 계십니다. 증인은 옹호자(advocate), RSV는 증인이 되는 보증하는 자(he that vouches)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말은 증인과 동의어로 사용되어 의미를 강조합니다.

중재자는 1925절에서 언급되는 구속자와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욥은 앞에서 자신의 무죄성을 하나님께 계속 하소연해 왔습니다. 그의 피로 하여금 무죄한 중에 고난 받는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증명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한 바 있습니다. 욥은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하나님 앞에 판단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는 욥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공정하심 등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욥은 중재자가 이 땅에 오시기를 기대한다)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20-22)

 

욥은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친구들의 조롱을 받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욥의 참되신 해석자(변호사)로서 욥의 무죄성을 드러내고 욥의 사정을 밝혀주시리라는 기대를 갖습니다.

둘째는 욥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하나님 사이에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영역본대로 해석할 경우에는(NIV, onbehalf of a man he peads with God as a man pleads for his friend) 욥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열망하고 있다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개역 성경에서처럼 번역할 경우에는 친구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깨어져 버린 듯한 욥의 절박한 위기 의식이 강조됩니다.

어쨌든 본문은 19, 20절과 계속 연관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욥의 증인, 증거자로서 그의 무죄성과 온전함을 증명해 달라고 하는 또는 증명해 줄 것이라는 염원과 확신이 깃든 말입니다. 중보자가 올바르게 잡아주고 논증하고 변론해주기를 원합니다. 그는 조롱을 받고 억울하여 눈물을 흘립니다. 중보자가 하나님과 욥 사이를, 그리고 욥과 사람 사링를 중재하기를 기도합니다. 욥은, 얼마 안 있으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음부의 길로 가므로 그 전에, 그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의 무죄성과 깨끗함을 변론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해할 경우에는 욥이 이 세상에서 공정한 판결을 받기를 포기하고 내세에 가서야 비로소 모든 문제를 해결받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하나님도 안타까움을 갖고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욥 사이는 중재자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신 중재자다)

 

하나님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보자로 하늘에 계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자신의 외아들을 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여주셨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하여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소망을 갖습니다. 우리가 이 고난을 잘 참고 견뎌서 인격의 변화를 이루면 더 좋은 믿음의 열매를 맺을 것을 확신합니다. 중재자의 부활을 통하여 영광의 확신을 갖습니다. 고난이 클수록 더욱 큰 영광이 올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극심한 시험 가운데서도 감사함으로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여러 가지 시험 속에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바울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어떤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 중재자 예수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고난 중에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에게 한 목자의 정신병은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나는 이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한복음 316절 말씀을 통하여 중보자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이것이 나에게나 그 목자에게 사랑하여 주신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나에게는 복음을 알게 하셨고, 그 목자에게는 하나님만을 사랑하도록 강권하는 것입니다. 아멘!

욥기 16장 강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중재하기를 원하노니

말씀 욥기 161-욥기 1622

요절 욥기 1621

욥기 16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21 [욥기] 욥기 21장 강해 누가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 오요한 2010-04-04
20 [욥기] 욥기 20장 강해 무서운 사람, 소발 오요한 2010-02-18
19 [욥기] 욥기 19장 강해 변신에서 대속자를 갈망함 오요한 2010-02-18
18 [욥기] 욥기 18장 강해 빌닷의 강한 확신에서 오는 교만 오요한 2010-02-16
17 [욥기] 욥기 17장 강해 이부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오요한 2010-02-16
16 [욥기] 욥기 16장 강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라 오요한 2010-02-15
15 [욥기] 욥기 15장 강해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않는가? 오요한 2010-02-13
14 [욥기] 욥기 14장 강해 욥의 부활신앙 오요한 2010-02-13
13 [욥기] 욥기 13장 강해 변호인이 없는 욥의 안타까움 오요한 2010-02-13
12 [욥기] 욥기 12장 강해 하나님의 세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오요한 2010-02-11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