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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욥기 14장 강해 욥의 부활신앙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0-02-13 00:00:00
조회수 : 3,48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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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4장 강해 욥의 부활신앙

말씀 욥기 141-욥기 1422

요절 욥기 1415절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면 죽음을 인식합니다. 질병의 고통이 크고 오래될수록 더욱 죽음을 가까이 인식합니다. 욥은 그런 죽음을 인식하며,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부활신앙으로 현재 열심히 살고자 합니다.

 

(시든 꽃과 같은 인생에 긍휼을 베푸소서)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여겨 보시나이까? 나를 주 앞으로 이끌어서 재판하시나이까?”(1-3)

 

욥이 1인칭이 아닌 3인칭을 들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합니다. 욥은 고난에 관한 질문을 해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자 그 내용을 3인칭으로 바꾸어 간접적인 방식으로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욥은 보편적으로 모든 인간이 죄의 결과로 죽게 되고 이 세상 가운데서 사는 동안에도 죄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람이 고생하며 근심하게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애가 3:33) 인간의 타락으로 자초된 바입니다.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합니다. 인간은 꽃과 같고 그림자같이 일시적입니다. 인간이 꽃과 같이 피었다가 쉽게 지고 마는 존재입니다.

흔히 성경에서 죄인된 인간의 생애를 쉽게 피고 지는 꽃으로 비유했습니다. 인생은 무상하고, 헛되이 쉬 지나갑니다. 그림자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는 것 역시 인생이 허무하고 무상한 존재임을 드러냅니다.

욥은 이런 일시적인 인간을 왜 재판하여 죄를 들추어 내시냐고 질문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욥에게서 죄악과 허물을 찾으시어 징계 하신다고 말합니다. 욥은 욥 자신과 같이 헛되고 무상한 존재(1, 2)를 그토록 심각한 눈으로 주시하시며 살피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하소연합니다. 나를 법적인 판결(선고)을 위해서 당신 앞으로 이끄나이까 호소합니다. 인간의 체질을 아시는 하나님이 일시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잠시라도 인생을 즐겁게 하소서)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가 품꾼 같이 그의 날을 마칠 때까지 그를 홀로 있게 하옵소서.”(4-6)

 

더러운데서 태어난 인간이 어떻게 깨끗할 수 있는가 반문합니다. 욥은 인간의 원죄를 갖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모든 인간은 부정하기 때문에 그에게서 난 자 또한 깨끗할 수가 없습니다. 다윗이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15)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 상태의 인간의 한계성과 죄성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욥은 여기에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보편적인 인간의 죄악성과 연약성을 들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일시적이고 죄악될 수밖에 없는 인간을 왜 재판하느냐고 묻습니다. 인생의 날은 정해진 품삯과 같으니 날이 마칠 때까지라도 편히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한계적인 인간에게 긍휼을 베풀어서 편히 쉬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욥은 연약한 인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습니다. 욥은 품꾼같이 그의 날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일꾼으로 고용된 품꾼이 하루 해가 지나고 일을 마친 후 그 일한 삯을 받고 즐거워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를 감시하시거나 죄악으로 인해 징계치 마시고 연약한 그를 놓아 자유케 하사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의 짧은 인생을(5)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늘이 없어지면 인간은 소생합니다.)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뻗어서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장정이라도 죽으면 소멸되나니 인생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 있느냐? 물이 바다에서 줄어들고 강물이 잦아서 마름 같이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7-12)

 

나무는 찍혀도 싹이 나고 뿌리에서 움이 돋아납니다. 나무를 자를지라도 그 그루터기 밑줄기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납니다. 상수리 나무나 특히 스페인 밤나무 등은 나무를 자를지라도 그 후 그 그루터기에서 곧바로 새로운 싹이 돋아납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오래된 나뭇가지를 자르고 새 가지 싹이 나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주로 포도나무나, 무화과 나무, 석류나무, 호도나무 등입니다. 죽은 나무는 나무가 오래도록 자라 고목(古木)이 된 것을 말합니다. 요단 동부 지역, 특히 다메섹 지역 등에서는 다 죽어가는 나무라 할지라도 그 줄기의 밑둥지를 자르면 그 다음 해에는 그 그루터기에서 많은 새싹이 돋아 열매를 맺습니다. 혹자는 나무의 움이 물기운에 돋는 점에서 이 나무를 물가에서 자라는 종려나무(대추야자나무)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나무와 달리 죽으면 소멸됩니다. 사람은 숨을 거두면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장정은 용사, 용감한 사람을 뜻합니다. 용감한 사람도 죽으면 소멸됩니다. 일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용감하고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단 죽으면 소멸되어 버리는 연약하고 가련한 존재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인생의 죽음에 대해서 인간의 몸은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간다고(전도서 320, 21 하였습니다. 인간은 나무보다 못한 존재입니다.

11절은 하나의 비유문으로서 이 내용이 암시하는 결구는 12절입니다. 욥은 실지로 큰 강(예를 들어 유프라테스 강이나 티그리스강)의 지면이 상류에서 흘러 내려오는 침전물에 의해 점점 얕아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큰 기근에 의해 마른다고 말합니다. 하수()가 가뭄으로 인해 마르게 됩니다. 물이 바다에서 줄고 하수가 잦아서 말라 그대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같이 사람이 한번 죽으면 다시 깨어나지 못합니다. 사람이 눕는 것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시편 133 예레미야 5139). 하늘이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존속한다는 가정에 근거하여 하늘이 없어지기까지는 역설적인 말입니다. 하늘이 결코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인간이 한번 죽으면 결코 깨지 못함을 강조합니다.

하늘이 없어지지 않을 때까지는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소생하는 일이 없으나 하나님께서 하늘을 없어지게 하시는 때에는 하나님을 믿고 그 안에서 죽은 성도들은 다시 소생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나무보다 낫습니다. 시체가 썩어서 냄새가 나는 곳에서 부활의 새 몸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대답하겠나이다)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13-15)

 

욥은 하나님 안에서 부활을 소망합니다. 욥은 잠시 자신을 스올에 숨겼다가 때가 되면 기억해달라고 합니다. 음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올은 구약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가는 사후 중간기 처소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우주가 하늘과 땅 그리고 땅밑 이렇게 세 부분으로 되었다고 봅니다.

이 음부는 땅 및 지하에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히브리인들의 이 음부의 장소 구분이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으나 후기에는 그 장소가 구분되어 나타납니다. 이 음부는 히브리인들에게는 흑암의 장소, 잊음의 땅, 적막의 장소, 일이나 계획, 지식, 지혜가 없는 장소 등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욥 자신도 이 음부를 빛이 없는 어둡고 그늘진 곳으로 묘사하였습니다(1021,22).

신약 성경에서 헬라어 하데스(음부)는 지옥 곧 게엔나와는 달리 악한 죄인들이 죽은 후 최후 백보좌 심판을 받기 전까지 거하는 사후 중간기 처소로 봅니다. 이 음부도 최후 하나님의 대심판 때에는 멸망받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 말씀은 욥의 내세에 대한 생각을 나타냅니다. 욥은 현재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하나님의 진노를 지하 세계(음부)에서나마 피할 수 있고, 후에 자신에게 새로운 긍휼이 주어진다면 현재의 불행을 기꺼이 감수할 것이라고 합니다. 믿음 안에서 기꺼이 죽음으로 내려가고자 하는 욥의 마음이 나타납니다. 그는 음부를 부활을 기다리는 잠시 대기소로 인식합니다. 그는 음부를 하나의 일시적인 피난처로 바라봅니다. 비록 당시 욥이 오늘날과 같은 음부 개념을 갖지는 못했다고 하더라고 나름대로 내세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부활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돌이키다는 돌아가다, 물러가다, 지나가다의 뜻입니다. 욥이 하나님의 진노가 영원한 것이 아닌 일시적인 것, 곧 지나갈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다시 하나님 앞에 온전히 회복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장정이라도 살지 못하지만 자신은 하나님이 자신을 다시 살려줄 것을 기다립니다. 70인역은 사람이 죽으면 그가 다시 살리리이다라고 번역하여 욥의 개인적 부활 소망을 나타낸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크뢰제(J.H. Kroeze)같은 학자도 본문을 욥 자신의 개인적 부활 소망을 소망한 것으로 봅니다. 다시(again)란 말을 문장 속에서 명백히 나타나 있지 않지만 함축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욥은 문자적으로는 나는 다가오는 나의 해방(소생)의 때까지 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그는 부활의 변화, 구원, 해방을 소망합니다. 욥 자신이 병사나 노예 등이 전쟁이나 고역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처럼 그의 시련들로부터 해방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자신을 부르시면 자신은 대답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잘, 잘못의 판결을 위해서 부르시고 욥은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자신의 무죄를 변호할 것입니다. 더 깊은 의미로는 하나님이 부활의 때에 욥을 음부에서 부활케 하시기 위해 욥의 이름을 부르실 것이고 욥은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욥은 소생할 것라고 합니다. 14절과의 문맥적 관계를 고려해 볼 때 부활의 주님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 날을 기다리는 것은 욥만이 아닙니다. 주님도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주님도 피조물이 부활할 날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부르시는데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만드신 바 피조물을 갈망하시고 아끼시므로 그것을 버려 방치해 두시지 않고 부르십니다. 욥은 얼굴이 창백한 색으로 변할 정도로 간절하게 바라거나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을 다시 살릴 날을 아주 간절히 바라십니다.

 

(내 허물을 용서하소서)

 

그러하온데 이제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 나의 죄를 감찰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주는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 무너지는 산은 반드시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가고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나이다.”(16-19)

 

그런데 지금 주님은 욥의 걸음을 세시고 죄를 감찰하십니다. 욥은 부활의 모습과 달리 현재 그렇지 못한 상황을 대조적으로 묘사합니다. 욥의 앞절들에서 고통을 피하기 위해 음부에 숨게 하시고 훗날 부활 소망 가운데서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바랐지만, 현재에는 하나님이 계속 그의 죄를 살피시며 징계하시고 소망을 잃게 하십니다.

그는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주머니에 봉하시고 싸매어 용서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훗날 욥을 되돌아 보실 때, 즉 그를 새롭게 소생시키실 때 그의 죄를 되돌아보시지 않고 감추어 두시길 소망합니다.

미래의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볼 경우, 17절은 하나님께서 욥의 허물과 죄악을 싸매시고 감추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6, 27절의 욥의 현재 상황을 지적하는 것으로 볼 경우는 하나님께서 욥의 허물과 죄악을 없애거나 잊어버리시지 않고 주머니에 봉하시고 싸매셨다가 심판 때에 그것들을 판결하시려 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허물을 봉하는 주머니란 일반적으로 어떤 것을 감추거나 잊게 하기 위해 사용되기보다는 잘 보존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왜 주님께서 산이나 바위가 옮겨지고 물이 사라지듯이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냐고 반문합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산과 바위는 영원함과 견고함 등을 상징적으로 암시합니다. 본문에서 산이 흩어지고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간다는 것은 그토록 견고한 것들도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는 티끌같이 흩어지는 만큼, 욥 자신의 소망이 하나님의 징계하심으로 견디지 못하고 온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암시합니다(19). 하나님의 징계하심으로 욥의 소망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욥은 부활의 날을 소망하며 지금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조금 이 땅에 더 살게 하소서)

 

주께서 사람을 영원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보내시오니 그의 아들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그가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 다만 그의 살이 아프고 그의 영혼이 애곡할 뿐이니이다.”(20-22)

 

현재 주님께서 사람을 끝까지 억누르시면, 사람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주님 앞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로 말미암아 멸망에 처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암시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 그의 얼굴에 생명의 빛이 없어지고 창백해집니다. 사람이 죽음으로 이 세상과의 모든 연관을 끊게 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자녀들이 영광을 당하는지 욕을 당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후손들이 잘되든지 비천하게 되든지 알지 못합니다.(21) 사람은 죽으면 다만 고통 가운데 애곡할 뿐입니다. 우선은 사람이 죽기 직전에 느끼는 고통과 슬픔을 말합니다.

욥은 자신이 현재 느끼는 고난과 고통을 피하기 위하여 음부로 가게 해달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 바(13), 차라리 음부에서는 이와 같은 육체의 고통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니면 죽어 음부에 내려간 자의 고통과 슬픔을 말한 것입니다. 앞 문맥과의 연결된 관점에서 볼 때 음부로 내려간 자의 고통과 슬픔을 말합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육체가 썩으며 그 영혼이 광명이 없고 음울한 음부에서 거하는 슬픔을 당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욥을 이기셔서 죽음을 향하여 가게하고 있다고 합니다. 욥은 부활을 소망하면서 현재에서 조금더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욥은 부활신앙으로 현재의 고통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이기는 길은 바로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절망을 극하게 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는 현재를 더 힘있게 살아갑니다.

욥기 14장 강해 욥의 부활신앙

말씀 욥기 141-욥기 1422

요절 욥기 1415절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욥기 14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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