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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욥기 11장 강해 회개가 좋다마는 사랑이 더욱 좋다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0-02-10 00:00:00
조회수 : 2,547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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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1장 강해 회개가 좋다마는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좋다

말씀 욥기 111-욥기 1120

요절 욥기 1113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엘리바스와 빌닷에 이어서 소발이 욥에게 권면합니다. 엘리바스는 죄로 인하여 벌주시는 율법적인 하나님을 말했습니다. 빌닷은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을 말했습니다. 나아마 사람 소발이 이들의 뒤를 이어 욥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나아마 사람은 북 아라비아의 헤자즈로 간주됩니다. 소발이란 수다떠는 자, 지저귀는 작은 새라는 뜻입니다. 욥의 세 친구 가운데 제일 나중에 변론하며 그것도 다른 두 친구들과는 달리 두 번만 변론한 것으로 보아 세 친구 중 제일 연소자인 것 같습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볼 때 성격이 가장 성급하며 열렬한 것으로 보이나. 그의 변론은 논리적이며 이성적이고 그 논리의 근거를 유대교의 정통성에 두고 있습니다.

 

(말이 많으면 죄가 많다)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네 말에 의하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 하는구나.”(1-4)

 

욥은 자신의 고통을 많은 말로 토로하였습니다. 욥은 자신이 정결하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발이 볼 때 욥이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것이 문제가 있었습니다. 말을 많이 하는 자는 의롭지 않다고 합니다. 소발은 죄 때문에 고난당한다고 주장하는 앞의 두 친구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욥을 책망하여 조롱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지혜서에서는 말이 많은 것을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10:19 52, 3), 소발은 욥을 말이 많은 자로 규정하여 그를 우둔한 자로 취급합니다. 입이 부푼 사람이란 문자적으로는 입술의 사람(man of lips)으로 말 많은 사람을 뜻합니다. 소발은 욥이 자신은 의롭다고 한 말(욥기 629 욥기 102)을 비판합니다. 소발은 자신이 욥의 죄를 지적하여 부끄럽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욥이 혼자서 큰소리로 떠들어도 우리는 대답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욥은 허풍, 잡담, 거짓말(16:6 48:30)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KJV, lies NIV, idle talk, RSV, babble). 소발이 자신의 무죄를 고집하는 욥의 말(6:24-30 10:2-11)을 헛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대에서 흔히 논쟁에서 잠잠하는 것은 상대방의 뜻에 동조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므로 소발은 잠잠하지 않고 말하겠다고 합니다. 욥이 친구들을 비웃어도, 내가 너를 책망하겠다고 말합니다. 욥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고 주님 보시기에 흠이 없다고 우기지만, 소발은 그의 죄를 지적하겠다고 합니다. 욥이 말하는 내 도를 70인역에서는 나의 행동으로 번역하고 지식, 학식, 교훈, 가르침 등을 뜻합니다(이사야 2924,).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하는 욥의 말에 대해서 소발은 반박하겠다는 것입니다.

 

(욥에 대한 고난의 신비는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지혜의 오묘함으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재판을 여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5-10)”

 

소발은 이제 하나님이 입을 여셔서 욥에게 말씀하시고, 지혜의 비밀을 욥에게 드러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욥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벌주시기를 원하신다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이 보이시는 비밀, 숨겨진 것등을 말한다고 하여 욥이 현재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말합니다.(15:2).

하나님의 지식은 광대하다고 합니다. 광대하심이라는 이중의, 두 배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보여지는 면과 보여지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소발은 현재 욥이 하나님의 지식의 보이지 않는 깊은 면을 알고 있지 못함을 은근히 나무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란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것입니다.

소발은 욥에게 하나님이 내리시는 벌이, 욥의 죄보다 가볍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벌을 주셔서 욥이 죄를 잊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욥의 불의를 모두 징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중 일부분에 대해서만 징벌하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소발이 하나님의 깊은 세계를 말하고자하는 것은 잘 한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욥의 죄와 연결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욥의 징계는 죄를 잊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욥이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다 알아낼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분의 무한하심을 다 측량할 수 없습니다. 오묘란 원어 상으로 깊은 사고, 깊은 것(RSV, the deep thing)등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오묘란 하나님의 깊은 마음 속에 감추어진 깊은 뜻을 말합니다. 측량하며는 발견하다(RSV, find out NASB, discover)의 뜻을 갖습니다.

소발은 욥과 같이 말이 많고(2) 어리석은 자가 결코 하나님의 깊은 뜻과 비밀들을 발견할 수도 깨달아 알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네가 전능자의 한계를 발견할 수 있겠느냐(RSV, Can you find out the limit of the Almighty)고 말합니다. 온전히 알겠느냐 측량하겠느냐는 동일 어휘의 반복을 통해 강조하여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늘보다 높으니 욥이 하나님께 미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올보다 깊으니 욥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늘보다 높고 스올보다 깊은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묘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소발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의식 속에 있었던, 우주를 구성하는 네 가지 영역(하늘, 음부, , 바다)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초월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NASB, RSV, NIV, What can you do)고 말합니다. 소발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지혜를 욥으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으리라고 말합니다. 흔히 피조 세계의 광대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네 개의 서로 다른 측량 단위가 사용되는데, 그것은 높이, 깊이, 길이, 넓이등입니다. 이중 높이와 깊이는 하늘과 음부와 관련되며,(139:8 10:6, 7), 길이와 넓이란 땅과 바다와 관련되어 쓰입니다(11:9 37:10 2:13). 크심이란 그 원형이 규모(measure)를 뜻합니다. 영역본들 중 대부분은 이 단어의 주어를 비인칭(NASB, RSV, Its)을 사용하여 그 주어는 하나님의 지혜, 또는 깊으신 뜻 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지혜의 초월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두루 지나다니시며, 죄인마다 쇠고랑을 채우고 재판을 여시면, 누구도 감히 하나님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이라고 하면 누구도 죄인입니다. 소발은 8,9절에 암시된 초월적이신 하나님께서 어떤 시공에 제한 받지 않으시고 땅 끝 이곳저곳을 다니시사 욥과 같이 어리석고 범죄한 자들을 잡아 심판하시고자 하신다고 합니다. 그 때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막거나 제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재판은 죄인들을 정죄 또는 심판 할 목적으로 회중을 모으다, 소집하다(NASB, calls an assembley NIV, convene a court)는 뜻입니다(5:14 16:40). 이와 같이 욥의 고난이 범죄에 대한 하나님이 심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이 욥에게 고난을 주신 것은 심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요 은혜의 손길이요 신뢰의 손길입니다. 소발이 크신 하나님의 지혜를 욥에게 알게 한 것은 잘 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다 측량할 수 없습니다. 의로운 욥에게 주신 고난의 의미를 이루 다 알 수 없습니다. 욥에게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뜻을 욥의 죄와 연관시킨 것은 잘못입니다. 현재 욥에게는 하나님의 크신 뜻으로 신뢰를 보이고 사랑을 보이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의 길이는 땅 끝까지의 길이보다 길고, 그 넓이는 바다보다 넓습니다.

 

(욥은 회개해야하는가??)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의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11-14)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십니다. 소발은 욥이 지각이 없는 허망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원문에 의하면 본문 서두에는 (RSV, NASB, KJV, NIV) Surely라는 연결사가 있습니다. 소발이 11, 12을 근거로 그의 주장을 강하게 변론하고 있습니다. 허망함은 헛된(NJV, vain), 아무것도 아닌(of nothingness)의 뜻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악한 사람을 허망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소발은 욥이 그 속에 지혜, 진리가 없고 거짓으로 가득찬 사람이라고 합니다. 허망한 욥은 꼭 들나귀 새끼 같이 무지하다고 합니다. 허망한 사람이 지각이 없게 될 것입니다(KJV, Vain man would be Wise RSV, a stupid man will get understanding NASB, an idiot will become interllingent)

영역 본 RSVNASB 등은 각각 이것을 `들나귀 새끼가 사람으로 태어나게 될 때(When a wild ass‘s colt is born an man. When the wild ass is born tame)란 뜻입니다. 소발은 들나귀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허망한 자가 지각이 있게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소발은 욥과 같이 어리석고 속이 빈 허망한 자는 결코 하나님의 오묘하신 깊은 뜻, 지혜를 깨달아 알게 될 수가 없으리라는 단정합니다. 소발은 욥이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 욥에게 죄를 멀리 버리고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회개하라고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대하여 확고히 하고 다른 길로 나아가지 말라고 합니다.(삼상 7:3). 과거의 죄악된 곁길에서 떠나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을 따르라고 합니다. 욥이 손을 들고 지난 과거의 죄악된 길에서 떠나 회개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간청하라고 말합니다.(28:2 63:4 134:2 141:2 1:15 2:19 3:41). 손이란 문자적으로는 손바닥을 의미하는데, 본문에서는 쫙 펴고 높이 든 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욥으로 하여금 죄악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새롭게 될 것을 촉구합니다. 죄악은 일반적으로 여러 죄악들을 포괄하며 특히 사회적 강자가 약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에 말하는 갑질을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회개할 때만 복을 주시는가?)

 

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기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네가 희망이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며 두루 살펴보고 평안히 쉬리라.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은혜를 구하리라.”(15-19)

 

소발은 욥이 회개하면 아무 부끄러움 없이 얼굴을 들 수 있다고 합니다. 욥의 마음이 편안해져서, 두려움이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소발은 욥이 죄 때문에 고난과 징벌을 받는다는 가정 하에 말하고 있습니다. 욥이 회개하면 이전에 가졌던 사회적 지위와 권위, 명성 등을(29:4-25) 회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고난받고 질병으로 시달리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나 회개하면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9:28) 괴로운 일을 다 잊게 되고, 그것을 마치 지나간 일처럼 회상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환난은 욥이 당하고 있는 고난과 시련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소발은 욥이 회개할 경우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과 고통에서 해방되어 새롭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문자적 의미는 흘러가 버린 물처럼 환난을 기억할 뿐일 것이라는 뜻입니다. 욥이 그의 당하는 바 고통과 고난에서 벗어나서 그 모든 고난을 아득한 옛일처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욥이 회개하면 그의 생활이 한낮보다 더 환해지고, 그 어둠은 아침같이 밝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생명은 장수의 측면에 강조점을 둔 단어입니다. 어떤 사람의 생애에 빛이 비췬다는 것은 그 생애에 따뜻함과 생기발랄함 혹은 풍요로움이 함께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소발은 욥이 그의 죄악을 회개하고 그 불의한 길에서 돌이킬 경우 그의 생애가 더욱 왕성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의 현재 처지가 암울하고 환난과 고통으로 가득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것들이 사라지고 밝고 활기찬 삶이 도래할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37:6)라고 노래한 싯귀를 연상시킵니다(58:10).

결국 소발은 여기서, 욥이 이전에 자신의 생애에 대해 암울한 상태로 부정적으로 말한 것을 염두에 두고 빗대어 말하고 있습니다.(10:21,22). 이제 욥에게 희망이 생기고, 욥은 확신마저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소발은 욥이 회개하면 장차 현재 당하는 고통과 고난에서 벗어나 온전하게 될 뿐만 아니라 왕성하고 풍요로운 장래를 누리게 되리라고 주장합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28:1)라는 말씀을 생각케 합니다.

소발은 욥이 회개하면 사방을 둘러보아도 걱정할 것이 없어서, 안심하고 자리에 누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욥이 누워서 쉬어도 욥을 깨워서 놀라게 할 사람이 없고, 많은 사람이 욥에게 잘 보이려고 할 것이라고 합니다. ‘누워는 주로 네 발 가진 짐승에게 적용됩니다(창세기 499 이사야 11:6 17:2. 상징적으로 사람이 편안히 누워 쉬는 것입니다.(23:2) 은혜를 구하리라는 얼굴을 기쁘게 할 것이다(Would make sweet your face), `쓰다듬어 얼굴을 부드럽게 하다(to make the face smooth through stroking)’는 의미를 지닙니다. 다른 사람이 욥에게 잘 대해 주다, 호의를 베풀고 달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주로 하나님께 대해 은혜를 구한다는 말이 쓰였으나(32:11 왕상 13:6 대하 33:12 26:9 8:21 1:9) 종종 사람에 대해서 언급되어지기도 합니다(45:12 19:6). 소발은 만약 욥이 그의 죄악을 회개하고 불의한 길에서 돌이킬 경우 예전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 권위를 회복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시 그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1529:2-25). 그러나 소발의 말과는 달리 욥은 회개할 것이 없고 계속 이어지는 고난과 질병으로 인하여 소망이 끊겨졌다고 탄식할 정도로 심각한 고통에 처하게 됩니다(13:15 14:17 17:13,15,16 19:10)

 

(욥은 회개치 않아 벌을 받는가?)

 

그러나 악한 자들은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들의 희망은 숨을 거두는 것이니라.”(20)

 

그러나 욥이 회개하지 않으면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은 죽음이라고 합니다. 소발은 악인의 비참한 최후를 묘사함으로 욥에 대하여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앞절들(15-19)에 묘사된 회개한 자의 형통과 대조를 이루어 말합니다.

소발은 크신 하나님 앞에서 욥이 의인이 아님을 말합니다. 욥은 정결하고 깨끗하지 않다고 합니다. 욥이 고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죄를 회개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그에게 빛이 비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하나님 앞에서 죄를 발견하고 회개해야하는 것은 맞습니다.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것도 맞습니다. 모든 선지서의 주제가 소발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욥에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욥은 죄인이지만 지금 질병과 죄와는 관련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면 복이 온다고 하지만 회개한다고 욥의 이 질병이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욥이 크신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뜻이 죄를 징벌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것입니다.

지금 욥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욥은 지금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이 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폭군처럼 생각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욥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고난을 참고 견디도록 돕는 것입니다. 가장 좋으신 하나님을 가르쳐야합니다. 어떤 시련가운데서도 좋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단이 노리는 것이 고난 중에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에게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섭리를 가르쳐야합니다.

친구들은 중보자가 되어서 하나님과 욥 사이를 중재해야합니다. 로마서 5장에서처럼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는 사실을 가르쳐야합니다. 하나님이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욥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주님이 욥에게 영광을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야합니다. 욥이 하나님의 훈련을 잘 받고 기다리면 그가 변화되어 하나님이 귀하게 쓰실 것을 가르쳐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소망을 가르쳐야합니다.

 

(회개도 사랑 안에서)

 

우리는 고난 중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도록 도와야지 죄를 회개하도록만 도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면 혹시 죄가 있다면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될 지도 모릅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하는 회개가 진정한 회개입니다.

욥기 11장 강해 회개가 좋다마는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좋다

말씀 욥기 111-욥기 1120

요절 욥기 1113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욥기 11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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