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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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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66권강해서

욥기 7장 강해 욥을 순간마다 단련하시는 하나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0-02-04 00:00:00
조회수 : 3,473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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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7장 강해 욥을 순간마다 단련하시는 하나님

말씀 욥기 71-욥기 721

요절 욥기 718절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오늘 말씀은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두 번째 답변입니다. 욥은 여러 달째 피부병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는 고통 중에 순간마다 자신을 사랑하시고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있습니다. 침을 삼킬 동안도 놓지 않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고통 중에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 달 밤에도 고통하는 욥)

 

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그의 날이 품꾼의 날과 같지 아니하겠느냐? 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1-6)

 

욥은 자신의 삶을 힘든 노동자나 품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의 현 상황은 군인이 강제적으로 힘든 고역을 수행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난을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욥은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고용되어 하루의 노동량을 묵묵히 감당해야만 하는 품군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종은 쉴 수 있는 저녁 그늘을 바라고, 품꾼은 삯을 기다립니다. 고대 히브리 사회에 있어서 품꾼의 노동 시간은 엄격히 규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해가 뜰 때 일을 시작하여 해질 무렵에 그것을 끝냈습니다. 품꾼에게 있어서 해가 저무는 것은 고역스러운 노동에서 해방되어 안식과 평화가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노동자는 저녁이 오면 쉬지만 욥은 저녁이 와도 쉬지 못하고 밤새 일하는 품꾼과 같습니다. 욥은 고난의 때가 속히 끝나기를 소망합니다. 욥은 쉴 수 있는 건강한 날을 기다립니다. 품꾼이 삯을 받듯이 하나님의 상급 받을 날을 기다렸습니다. 고난보다 더 많은 영광을 주실 날을 기다립니다.

욥은 재난이 자신에게 닥친 이후로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재산과 소유는 여전히 상실된 채로 있었으며, 자손 또한 다시 낳을 가능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육체의 질병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믿었던 친구들과의 관계마저 갈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욥은 이제 절망의 벽에 부딪혀 지나간 날들이 마치 열매 없는 나무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는 저녁이 없는 노동자와 같고, 삯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와 같았습니다. 그는 여러 달째 고통으로 밤이 고달팠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고통이 끝나고 주님의 상이 주어질 날을 기다립니다.

어떤 분은 일어날 때마다 새벽이 왜 그렇게 일찍 오느냐고 하지만 욥은 불면으로 밤이 길었습니다. 그는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였습니다. 전신에 퍼진 피부병으로 인해 전전반측하였습니다. 밤은 휴식과 평안의 시간이요, 잠은 하루 동안의 피로와 고통을 풀어주는 묘약입니다. 욥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시간들이 여느 사람보다 더욱 필요했을 것입니다. 욥은 대부분의 낮 시간 동안에 친구들과 변론함으로써 심신이 지쳐 있었습니다. 그는 추한 몰골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속히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밤은 더 큰 형극의 시간이었습니다. 여느 병과 마찬가지로 그의 몸의 질병은 밤에 더욱 기승을 부렸습니다. 이러한 육체적 고통 이외에도 욥은 자신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지 않나하는 영적 회의와 갈등도 있었습니다.

그의 살에는 구더기와 흙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습니다. 구더기는 흰 색의 길고 미끄러운 형태의 벌레로서, 욥의 피부가 곪은 데에서 기생하였습니다. 흙 조각은 몸의 때(공동번역), 피부로부터 나오는 흙덩이, ‘먼지(KJV, dust RSV, dirt), 상처의 딱지(NIV, `굳어진 꺼풀)등 다양하게 번역됩니다. 흙조각은 기와 조각으로 피부를 긁고, 종기가 나서 지저분하게 된 욥의 몸을 비유한 것입니다. 욥의 질병의 상태가 상당히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졌습니다. 피부가 어느 정도 아물었다가(hardens) 다시 터졌습니다. 욥은 자신의 몸에 피부병이 발병한 이래로 여러 달이 흐르는 동안 이러한 과정을 여러 차례 거쳤습니다.

본문을 원문에 따라 정확히 번역하면 나의 살갗이 깨어진다. 그리고 곪는다입니다. 종기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곪아 터지고 그 위에 새 살이 돋아나는 피부병의 일반적 증상을 말합니다. 날은 베틀처럼 허무하게 지나가고 그의 삶은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욥은 아무런 회복없이 보낸 지난 몇달이 자신에게는 전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절망과 무가치의 시간이었습니다. 언제 그는 자신의 고통이 끝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터널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욥)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스올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7-12)

 

욥은 눈을 하나님께 돌려서 기도합니다. 그는 바람과 같이 일시적인 존재임을 생각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호흡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아흐는 바람(KJV, wind) 공기, 영을 뜻합니다. 욥은 바람처럼 자신의 생이가 짧고 허무하고 덧없음을 말합니다. 욥은 자기 병이 치유 불가능하다고 예견했습니다. 그는 죽음만이 고통을 모면하는 유일한 방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제 죽음이 임박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는 다시는 지상에서 행복을 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의 질병이 완치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2:8, 9) 그의 건강, 소유, 자손 등이 이전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욥은 끝없는 절망의 심연에 빠졌습니다.

욥이 죽으면 지금까지 욥을 보았던 자들은 다시는 욥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이 다시 자신을 찾아도 이 세상에서 자신을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육체적 질고가 악화되어 가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신뢰도 희박해져 갑니다.

현재 욥은 영적. 육적 생명의 위급함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구름처럼 저승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다시 이승의 집으로, 이승의 자기 처소로 돌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고 합니다. 음부 세계와 현세와의 단절성을 의인법적 표현을 통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대 팔레스틴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생전에 그가 살던 집이나 아끼던 물건에 도로 돌아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애굽인들은 영혼이 육체에 돌아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영혼이 육체에 돌아온다고 믿어서 미이라를 만들어 무덤속에 보관했습니다. 욥은 이방 세계에 살았으나 그들의 이 같은 종말관과는 뚜렷이 구분되어 이승을 떠나 낙원으로 간다는 종말관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진흙으로 만든 토기와 같고 잠시 후에 걷는 장막과 같은 일시적인 존재입니다. 사람은 아침 안개 같고 이슬 같은 존재입니다. 흙으로 된 연약한 존재입니다. 욥은 연약한 자신을 긍휼히 여겨 달라고 구합니다. 욥은 아파서 영혼의 아픔과 마음의 괴로움을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욥이 현재 겪고 있는 고난의 심각성으로 인해 심중에 있는 불만을 기탄없이 하나님께 털어놓습니다. 이러한 욥의 기도는 얼핏 보기에 매우 경거망동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욥은 하나님의 주권과 유일성, 그리고 인격성에 대해 신뢰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에게 재난을 주셨던 분이 하나님이었듯이 그것을 거두어 줄 수 있는 분도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임을 인식했습니다. 하나님이 고난에 처한 인간의 소리를 들어 주시는 분으로 확신했습니다. 만일 이러한 확신이 없었다면 욥은 고난 중에 차라리 영원히 침묵해 버렸을 것입니다. 아니면 자살 등의 방법으로 고난을 종결시켜 버렸을 것입니다.

욥의 말들은 고통에 대한 불평과 비난이 아닙니다. 고난에 처한 한 인간의 진실한 기도입니다. 욥은 자신이 바다도 아니라고 합니다. 어떤 학자는 본문의 바다를 나일강으로 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팔레스틴 지역에서 흔히 발견되는 큰 강, 예를 들면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나일 강 등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관개 시설이 발전되지 않은 고대 사회에서 이들 강들은 우기 때에 삽시간에 흘러 넘쳐 주변 지역에 막대한 손실을 주었습니다. 특히, 상류 지역에 홍수가 날 때에는 강바닥이 패이고 강둑이 유실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우천시에 특별한 신경을 써서 강 수위를 관찰하고 그에 따른 대비책을 강구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흉용하고 격랑하는 바다를 지켜보는 것같이 욥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하나님으로부터 감찰 받고 있다고 토로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가 도리어 현재의 욥에게 있어서는 부당한 처사로 여겨졌습니다. 그는 바다와 같이 취급될 만한 하등의 잘못이 없었습니다. 강물이 흘러 넘쳐 인명과 재산에 손실을 주는 것과 같은 죄악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공의와 선행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는 바다와 같이 거칠고 제어할 수 없는 성향의 소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었으며, 더구나 바다와는 구별되는 이성적 피조물이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만한 죄악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욥은 현재 자기에게 가해지는 하나님의 행위는 부당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의심했습니다. 자신은 그 같은 행위를 흔쾌히 받아들이거나 끝까지 인내할 수 없다는 심경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괴물도 아니요. 한낱 흙으로 된 연약한 인간임을 기억해달라고 긍휼을 구합니다. 괴물은 고래KJV, a whale), 심연의 괴물(NIV, the monster of the deep), 악어, , 큰 짐승 등 다양하게 번역합니다. 여기서 용은 바다와 마찬가지로 그 성질이 난폭하고 거세어 인간이 제어하기 힘든 바다의 큰 생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욥은 어부가 큰 바다 괴물을 잡을때 그 시선을 집중하며, 때로는 매로 때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을 너무 혹독하고 부당하게 다루고 있다고 항변합니다. 나를 왜 이렇게 질병의 고통 중에서 죽지 않게 자신을 지키사 괴롭게 하시느냐고 불평합니다.

이러한 항변 속에서도 욥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지키시며 삶을 주관하고 계심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죽지 않게 지켜주시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불평을 깊이 생각해보면 그는 자신을 죽지 않게 하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단에게 그의 생명을 해하게 하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그는 조금씩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진흙으로 보시고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생명의 주관자 하나님을 믿는 욥)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잠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13,14)

 

욥은 극난의 고통 중에 잠시나마 잠을 자서 평안과 위로를 받고자 염원을 의인법으로 표현합니다. 그의 병은 발병한 지 이미 수개월이 지났습니다. 이 기간 동안 욥은 병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병이 회복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자신의 추한 모습을 세인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속히 밤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밤 역시 그가 갈구하던 평안을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전신에 퍼진 피부병이 밤중에 발작을 더 심하게 일으켜 그는 속히 날이 새기를 기다려야 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한 순간에도 영육의 평안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는 평안한 잠을 자지 못하고 꿈과 환상에 시달렸습니다. 심신의 질곡에 빠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수면과 평안입니다. 욥 역시 이러한 것을 얻기 위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것은 단잠과 휴식이 아닌 불쾌하고 무서운 꿈이었습니다. 이것은 욥의 병고로 인한 자연스런 후유증입니다.

일반적으로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 특히 정신적 갈등을 동반하는 병자에게는 악몽을 꾸고 환영이 자주 보여집니다. 어쨌든 욥은 병중에서 안식과 평안을 취하기 위해 잠을 청했으나 도리어 악몽으로 인해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꿈으로 찾아왔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잠자는 그 시간에도 욥을 죽지 않게 지키고 계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밤에도 자신을 죽지 않게 하시고 지키시는 것을 불평합니다. 그는 밤에도 뼈를 깎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욥이 오랜 질병으로 말미암아 몹시 수척해졌습니다.

그는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욥은 생명을 싫어하였습니다. 자신의 나날이 허무할 따름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생명은 문자적으로 목숨, 삶을 의미하기도 하며, 동시에 현재 처한 욥의 상황을 비유하기도 합니다. 욥은 질병의 악화, 정신적(신앙적) 고통의 심화, 회복의 가능성이 전무함로 자신의 생명을 혐오합니다. 욥은 하나님께 사람이 영원히 살 것도 아닌데, 제발 자신을 이 세상에서 떠나게 놓아 달라고 합니다.

욥은 자신의 현재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으며, 따라서 그것을 탈출할 수 있는 죽음의 방도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욥에게 삶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었듯이, 그에게 죽음을 허락할 수 있는 분도 역시 하나님이심을 확신했습니다. 욥이 생사의 주관자로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인정했음을 드러내 줍니다.

욥은 일찍이 그가 사단의 시련을 받았을 때부터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의 질병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이처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손길이 자신을 감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합니다.

 

(욥을 존귀한 자로 단련하시는 하나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17-19)

 

사람이 무엇이라고, 주께서 그를 대단하게 여기시느냐고 합니다. 어찌하여 사람을 마음에 두시느냐고 합니다. 크게 여기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창대케하다(12:2), 더 크게 하다(왕상 1:37), (명성, 지위 등을)존귀하게 하다(대상29:25), (키를)자라게 하다(44:14)등 다양하게 쓰였습니다. 여기서는 존귀하게 하다(magnify)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합니다.

인간은 벌레와 같이 작고(84), 메뚜기 같이 미천한 존재입니다.(90:10) 이런 인간이 이렇듯 존귀함을 받는 것이 인간의 무한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욥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도리어 불평과 원망의 요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믿음을 너무 높이 평가하여 고난을 준다고 합니다. 마음을 두시고는 히브리 관용법에 따르면 관심을 기울이다(pay heed to), 배려하다의 뜻입니다.

욥의 고백은 견딜 수 없는 고난 중에서 나온 것으로서 절망과 한탄조의 성격을 띱니다. 욥의 고백은 실로 비천한 존재인 인간을 지속적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19)에 대한 원망의 토로입니다.

물론 시편과 히브리서 기자는 인간을 존귀히 보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에 대해 기쁨과 감사를 표현합니다. 시편과 히브리서 가지는 실로 보잘 것 없는 인간을 마치 하늘의 천사보다도 더 특별히 여기사 권고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입니다. 그러나 욥에게 있어서는 현재 자신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관심과 눈길이 도리어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불화살과도 같았습니다. 현재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했으며, 그분의 눈길이 존속하는 한 그가 유일한 탈출구로 인식한 죽음마저도 불가능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귀하게 여기면 축복도 크게 주시지만 고난도 크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광을 바란다면 고난도 달게 받아야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사실 욥을 대단히 여기셔서 그가 고난 중에서도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욥은 계속되는 불평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고 자신을 마음에 두고 계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욥은 아침에 눈이 뜨면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순간순간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욥은 그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이 아침마다 자신을 권징하시고 단련하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욥에게 눈을 돌이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침을 삼킬 동안도 욥을 놓지 않으십니다. 침 삼킬동안은 식별할 수 없을 정도의 매우 짧은 시간을 뜻합니다. 눈깜짝할사이입니다. 매순간마다 고통을 당해야 하는 욥의 절규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침을 삼키는 그 순간도 하나님은 욥을 붙잡고 고통으로 단련하십니다.

그는 하나님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순간순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자신의 고통이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는 단련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질병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단련입니다. 하나님이 순간마다 오는 고통을 통하여 정금같이 그를 단련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고통이 없다면 성숙이 없습니다. 우리는 단련이 없으면 연약합니다. 하나님이 욥의 더욱 강하고 순수한 내면으로 성숙되기를 원하십니다. 은혜의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욥을 과녁 삼으시는 하나님)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20,21)

 

욥은 자신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아버지처럼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살펴보십니다.(27:3). 감찰한다는 이 표현이 성경에서는 지키는 자(25:10), 보호자(31:23), 포도원지기(27:3), 파숫군(31:6), 상직군(27:18)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공히 인간의 모든 행위와 사고를 지배하시고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욥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이 도리어 부담과 불평의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는 감찰하시는 주가 계시는 한 그는 자기의 뜻대로 죽음을 택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현재의 고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습니다. 욥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지속적인 감찰은 도리어 그의 불안과 고통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욥은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만약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 무슨 해가 되느냐고 묻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너무 높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철저히 경건 생활에 전력했던 욥이 그토록 큰 환난을 당한 데 대해 깊은 의구심을 나타냅니다.

그는 하나님이 왜 자신을 활를 쏘는 과녁을 삼으시냐고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과녁 삼으셔서 죄인들에게 쏘는 활을 쏨으로 자신에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비방의 표적이 된 것가 같이 욥은 비방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는 십자가 위의 예수님처럼 질병으로 무거운 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허물과 죄악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죄성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제 자신은 죽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흙에 눕다는 표현은 자다, 흙으로 돌아가다(3:19)는 표현과 더불어 인간의 죽음을 나타내는 히브리 관용 어법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사람을 살펴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고통을 하소연합니다.

하나님이 욥을 과녁 삼으신 것은 다른 애매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위로를 삼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욥이 고통 중에도 원망하지 않는 하나님의 자랑스런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고난 속에 있는 자들이 욥을 통하여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고난 중에 신앙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제 그를 찾으셔도 그는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때가 늦기 전에 자신을 살려달라고 하십니다. 욥은 지금, 현재의 하나님의 구원을 대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는 욥에게 주어진 시련이 아직 끝나지 않은 고로 그 구원을 베푸실 수 없습니다. 욥에게 주어진 사단의 시험이 온전히 성취된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욥의 신앙은 긴장 상태에 놓여있었습니다. 욥은 계속하여 자신이 고난받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침묵 속에 그를 섭리하고 계시며, 구원을 준비하고 있음을 깨달아야합니다.

욥기 7장 강해 욥을 순간마다 단련하시는 하나님

말씀 욥기 71-욥기 721

요절 욥기 718절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욥기 7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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