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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욥기 6장 강해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0-02-03 00:00:00
조회수 : 2,355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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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6장 강해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말씀 욥기 61-욥기 630

요절 욥기 625절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우리는 고난 받는 자에게 너무 옳은 소리를 잘 합니다. 그러나 고난 받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옳은 소리보다 사랑입니다. 깊은 관심과 이해와 배려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옳은 소리는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우리가 옳은 소리를 하기 전에 사랑을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에 기초하여 옳은 소리를 해야합니다.

엘비바스는 이해와 사랑이 없이 옳은 소리를 하였습니다. 욥은 그 말을 듣고 더 심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욥은 생일을 저주한 것을 반성한다)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1-3)

 

욥은 자신의 괴로움울 저울에 달아보면 바다의 모래보다 무거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은 바다의 모래보다 많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욥은 그런 고통을 못이겨서 자신이 말을 경솔하게 하였다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욥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한 것은 경솔하게 말한 것입니다. 결국 생일을 저주하는 것은 자신을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께 간접적으로 원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가운데도 자신의 태어난 것을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아무리 고통이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축복 속에 태어난 자들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 자들입니다. 우리의 생일을 축복하고 하나님을 축복해야합니다.

 

(욥에게 독화살을 날린 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4-7)

 

욥은 하나님에게서 화살을 맞은 기분입니다. 총맞은 것처럼 이란 유행가가 있었습니다. 연인을 잃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화살을 맞고 독이 퍼져서 고통스럽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두려움이 그를 엄습하였습니다. 욥은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고 피부병으로 고통하는 것이 하나님의 독화살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화살을 날린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가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기를 원합니다. 그를 고통스럽게 하고 독화살을 날리고 있는 것은 사단입니다. 하나님은 욥이 사단의 독화살을 맞고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을 아시고 사단에게 화살을 날리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지만 밑에서 일하는 사단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단의 역사를 보고 믿음의 방패로 사단의 화살을 막아야합니다.

들나귀나 소는 꼴이 없으면 웁니다. 소금 없는 반찬은 맛이 없어 먹기 어렵습니다. 노란자 없는 달걀은 영양가가 없습니다. 욥은 이런 것은 만지기도 싫어하고 꺼리는 것입니다. 욥은 풀이 없는 소처럼 먹을 것이 없어 고통스럽고, 먹을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소금이 없고 노른자가 없는 것과 같이 맛이 없는 것을 먹는 고통에 자신의 고통을 비유합니다. 사단이 욥의 먹을 것을 가져갔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돈이나 건강이나 자녀는 소금과 같고 피와 같은 것입니다. 필수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필수적인 것을 잃으면 고통합니다.

 

(하나님은 멸하기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다)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8,9)

 

욥은 하나님이 고통을 감해 달라는 욥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멸하기를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손을 들어 자신을 끊어버릴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욥을 멸하기를 기뻐하시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멸하기를 기뻐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신뢰하고 그의 믿음을 자랑스러워하십니다. 그를 고난 당하는 자의 본으로 삼기 위해서 그의 기도를 잠시 들어주지 못하고 계십니다. 고난 당하는 자들을 위로하는 자로 삼기 위해서 그의 고통을 참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욥이 영생을 얻고 번성하기를 바라십니다.

욥은 지금 사랑의 하나님을 알고 있지 못하여 하나님께 버림 받은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고통을 참는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욥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당할만한 힘을 주시고 계십니다.

 

(욥은 고통중에 말씀을 거역하지 않은 자긍심이 았습니다.)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10)

 

지금 욥은 삼중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우선 육신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람들에게 오해받는 고통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욥은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음을 기뻐합니다.

그는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는 건강을 잃고 재앙도 받아야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입술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잡고 말씀에 순종하고자 힘을 쓰고 있습니다. 고난을 받을수록 더 하나님 가까이 갔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지 않은 것을 기뻐할 만큼 자신의 신앙 생활에 자긍심이 컸습니다. 그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깊은 마음 속에서 자긍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커다란 자긍심을 갖고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순교자와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높은 자긍심을 갖을 때 우리는 어떤 고난 중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한 체질을 아십니다.)

 

내가 무슨 기력이 있기에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기에 그저 참겠느냐?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능력이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 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느니라.”(11-14)

 

욥의 몸은 돌이 아니고 놋쇠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흙으로 된 연약한 육신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매우 연약해 있었습니다. 그는 고통을 참기기 힘이 들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흙으로 된 우리 인간은 한없이 연약한 존재입니다. 고통을 참기에 너무 힘이 듭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아십니다. 우리는 훈련을 받을 때 고통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함께 고통하며 훈련하십니다.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고난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긍휼을 구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해야 우리는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친구는 이런 하나님의 긍휼로 고난당하는 자를 도와야합니다. 친구들은 친구가 어려울 때 이해하고 동정하는 자들입니다. 함께 고통하는 자들입니다 형제들은 변함없이 신실한 자들입니다. 친구의 위로로 고통은 반감되고 기쁨은 배가 됩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이해하고 동정하기보다 바른 소리만 하였습니다. 아픈 자에게 바른 소리는 위로를 주지 못합니다. 세상은 죄로 인하여 낙심하는 자라도 위로해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는 친구들은 욥을 위로해주지 못합니다. 그들은 옳은 것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사랑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시끄러운 꽹과리와 같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친구는 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합니다)

 

내 형제들은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그들은 개울의 물살 같이 지나가누나. 얼음이 녹으면 물이 검어지며 눈이 그 속에 감추어질지라도 따뜻하면 마르고 더우면 그 자리에서 아주 없어지나니 대상들은 그들의 길을 벗어나서 삭막한 들에 들어가 멸망하느니라. 데마의 떼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스바의 행인들도 그것을 사모하다가 거기 와서는 바라던 것을 부끄러워하고 낙심하느니라. 이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15-21)

 

친구들은 개울물과 같이 변덕스러웠습니다. 얼음이 녹아 흐르면 흙탕물이 되고 눈이 녹아 내리면 넘실거리다가도 사막에서 해가 뜨고 더워지면 곧 마르고 뜨거워지자 자취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상인의 무리가 길을 버리고 물을 찾아 광야로 나섰다가는 물은 흔적도 없어져 멸망합니다. 친구는 목마른 사람들에게 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친구는 갈증하는 사람들에게 물이 필요하듯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어야합니다 그래야 고통하는 친구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충만한 물이 되어주지 못하였습니다. 욥은 사라진 물과 같이 변덕이 심한 친구들로 인하여 멸망하고 있습니다. 데마의 상인들과 세바에서 온 길손들이 애를 태우며 물을 찾습니다. 하지만 물이 없자 그들은 어이없어하고 낙심합니다.

이와 같이 욥은 친구들에게서 위로와 사랑의 물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사랑과 동정심은 목마른 자에게 물과 같이 고난당하는 자를 시원하게 합니다. 생명을 줍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아무도 욥을 위로해주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변덕스러운 물과 같이 욥이 좋을 때는 사랑하고 함께 하였습니다. 그들은 욥이 고난을 당하자 그들은 사라지는 물처럼 차갑게 돌아섰습니다. 욥은 사막에서 물을 찾지 못한 상인과 같이 낙심하였습니다. 사랑이 없는 친구들은 욥에게 아무것도 아닌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난당하는 욥을 보니 오히려 겁이 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랑이 없으면 우리 마음 속에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사랑없는 옳은 말이 고통스럽게 합니다)

 

내가 언제 너희에게 무엇을 달라고 말했더냐?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을 선물로 달라고 하더냐? 내가 언제 말하기를 원수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폭군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22-25)”

 

욥은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선물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원수나 폭군의 손에서 구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욥을 책망하고 옳은 소리를 하였습니다. 욥의 고난을 보고 죄가 있다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래서 욥은 고통하고 있습니다.

욥은 나에게 어디, 알아듣게 말 좀 해 보라고 합니다. 내가 귀기울여 듣겠다고 합니다. 내 잘못이 무엇인지 말해 보라고 합니다. 바른 말은 힘이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엘리바스의 옳은 말이 욥을 매우 고통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정말 무엇을 책망하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옳은 소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옳은 소리는 고통당하는 자에게 줄 선물이 아닙니다. 그 고통을 들어주고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것이 진정한 선물입니다. 옳은 말을 해야하지만 때를 가려서 해야합니다. 상황에 맞게 해야합니다. 상대방이 옳은 것을 깨닫기까지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옳은 소리를 할 때는 사랑을 갖고 해야합니다. 은혜로 율법의 칼을 감싸야 율법이 사람을 수술하는 칼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깨닫지 못할 때 옳은 소리를 해야 합니다.

 

(친구들은 욥을 팔아넘기는 자입니다)

 

너희가 남의 말을 꾸짖을 생각을 하나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 넘기는구나.”(26,27)

 

너희는 남의 말 꼬투리나 잡으려는 것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절망에 빠뜨리는 친구들의 말이란, 바람과 같을 뿐이라고 합니다. 사랑과 위로가 없이 남을 책망하고 실망을 주는 말은 바람과 같이 허무합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친구들은, 고아라도 제비를 뽑아 노예로 넘기고, 이익을 챙길 일이라면 친구라도 서슴지 않고 팔아 넘길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욥에게 옳은 소리를 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악한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옳은 소리를 통하여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논리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자는 바리새인과 같이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죄악입니다. 그들은 고아를 제비뽑아 갖고자 하고 인신매매하는 자와 같이 악한 자들입니다. 인신매매범과 같이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나를 중심으로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욥은 친구들이 긍휼을 가지라고 합니다.)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내게로 얼굴을 돌리라. 내가 너희를 대면하여 결코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 말라. 아직도 나의 의가 건재하니 돌아오라.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속임을 분간하지 못하랴?”(28-30)

 

마지막으로 욥은 친구들이 마음을 돌이키기를 원합니다. 욥의 잘못을 책망하기보다 욥을 이해하고 위로해주기를 원합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당당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진실한 말, 의로운 말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친구들이 자신을 비판하는 죄를 짓고 있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말라고 권면합니다. 욥의 정직을 의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욥이 혀를 놀려서, 옳지 않은 말을 한 일이라도 있느냐고 묻습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고 있습니다. 욥은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고 건강을 잃어도 자신의 의로움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에서 나오는 의를 잃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산 욥은 참으로 멋진 사람입니다. 아멘!

 

(고통 중에 있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입니다)

 

욥은 고통중에도 신앙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마치 순교자와 같이 아름답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절개를 지킨 자로서 높은 자긍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고통 중에 말씀을 잡은 것이 그가 고통을 참고 견디는 힘이 되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옳은 말이 아니라 위로입니다. 위로는 사막에 생수와 같이 힘이 됩니다. 우리는 옳은 소리 하는 목자가 아니라 깊이 이해하는 목자가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감싼 옳은 소리를 해야합니다. 스스로 옳은 것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요 긍휼입니다. 아멘

욥기 6장 강해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말씀 욥기 61-욥기 630

요절 욥기 625절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욥기 6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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