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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욥기 8장 강해 긴 역사 속에서 보는 지혜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0-02-06 00:00:00
조회수 : 2,195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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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8장 강해 긴 역사 속에 보는 지혜

말씀 욥기 81-욥기 822

요절 욥기 87절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빌닷의 욥에 대한 첫 번째 변론입니다. 그는 공의로운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벌하시고 의인은 복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짧은 시간에서 공의의 하나님을 적용하는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우리는 좀더 긴 시간 속에서 우리를 보아야합니다. 공의는 영원 속에서 성취됩니다.

빌닷은 욥이 회개하면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다고 합니다. 회개해야한다는 말은 잘못되었지만 욥이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비전은 옳은 말입니다.

 

(고통을 공감하지 않는 사람)

 

1-2절을 보십시오.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

 

친구들은 욥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의 고통을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그가 잠을 못자고 침을 삼킬 순간조차 괴로워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연단이라는 말에 공감을 해주어야 합니다. 친구들은 그 연단이 하나님이 사랑해서 연단하는 것이므로 그 연단 후에 하나님이 크게 쓰신다고 소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수아 사람 빌닷은 욥의 말을 듣고 오히려 욥을 책망하였습니다. 언제까지 네가 그런 투로 말을 계속할 테냐? 네 입에서 나오는 말 거센 바람과도 같아서 걷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욥의 말을 제어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공의로운 단련)

 

3-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욥은 하나님이 죄없는 자신을 단련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빌닷은 죄없는 사람은 단련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죄없는 사람을 단련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의인이 고난 받는 것은 정의를 굽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빌닷은 욥의 자식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벌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빌닷은 욥의 자녀들과 욥이 죄를 지어서 주께서 죽음의 환난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살아 있는 욥이 회개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욥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간구하고 청결하고 정직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돌보실 것이라고 합니다. 주께서는 그의 경건한 가정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빌닷은 욥의 자녀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릅니다. 다만 욥의 자녀들이 죽는 재앙이 일어난 결과를 보고 그의 자녀들이 죄를 지었다고 단정합니다. 욥이 거짓되게 그 죄를 숨기고 회개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빌닷의 견해와 달리 죄없는 사람도 단련하십니다.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수준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더 큰 고난을 주어서 단련하십니다. 겸손과 믿음의 훈련을 위해서 단련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이 죄가 없어도 단련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단련하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단련합니다. 죄없는 사람을 단련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를 깨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자에게 더 큰 믿음을 주시고자 하는 것은 공의로운 것입니다.

 

(미약에서 창대함으로)

 

7절을 보십시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지금 욥은 미약합니다. 그러나 빌닷은 욥이 회개하면 그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이 심히 창대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빌닷의 말은 매우 은혜로운 말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니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서 액자에 써놓고 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바로 빌닷의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이 작은 씨로 시작되었으나 나중에는 큰 나무가 되고 새들이 깃듭니다. 복음 역사는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해집니다. 말구유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역사가 세계를 정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빌닷은 욥이 죄를 지어서 욥의 가정이 창대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욥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정직하지 않아서 창대하지 않다고 합니다. 빌닷은 짧은 시간 안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의인을 나중에 심히 창대하게 하신다는 것은 영원한 역사 속에서 맞습니다. 순간순간을 보면 의인은 창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굽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믿음으로 살아도 고난이 올 수 있습니다. 죄인도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 역사 속에서 보면 의인이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게 됩니다. 우리는 먼 역사적인 안목에서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영원한 역사 속에서 사람을 전체적으로 보아야합니다. 하늘나라의 완성 속에서 현실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의인은 잠시 고난을 당하더라도 반드시 창대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나중은 창대하게 될 것을 믿고, 현재의 고난을 감당해야합니다. 욥도 전체적으로 보면 심히 창대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빌닷은 너무 짧은 시간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사가랴는 의롭고 흠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년까지 자식없는 수치를 당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산 사도 야고보는 일찍 순교하였습니다. 어느 제한된 시점으로 볼 때 그들을 고난의 연속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들을 삶을 영원한 역사 속에서 볼 때 심히 창대해졌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근시안적인 눈으로 평가하지 말아야합니다. 좀더 넓은 안목으로 평가해야합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당대에 호강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들을 심히 창대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늘나라에서 불과 유황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역사에서 배우는 지혜)

 

8-12을 보십시오. “청하건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조상들이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우리는 아는 것이 없으며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 그들이 네게 가르쳐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하지 아니하겠느냐? 왕골이 진펄 아닌 데서 크게 자라겠으며 갈대가 물 없는 데서 크게 자라겠느냐? 이런 것은 새 순이 돋아 아직 뜯을 때가 되기 전에 다른 풀보다 일찍이 마르느니라

 

빌닷은 역사를 통해서 욥을 훈계합니다. 우리는 하루살이 같은 존재입니다. 아는 것도 없고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역사 속에서 배우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옛시대 사람들에게 묻고 조상들이 터득한 일을 배워야합니다. 역사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은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정작 역사 속에서 배워야할 존재는 욥이 아니라 바로 빌닷입니다. 왕골이나 갈대는 물이 있는데서 자랍니다. 물이 없는데서 자라는 것은 일찍 마를 뿐입니다. 여기서 왕골은 의인을 의미하고 물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의인이 흥하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의인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합니다. 다만 우리는 영원한 역사 속에서 그러하다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악인은 망함)

 

13-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저속한 자의 희망은 무너지리니 그가 믿는 것이 끊어지고 그가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즉 그 집을 의지할지라도 집이 서지 못하고 굳게 붙잡아 주어도 집이 보존되지 못하리라. 그는 햇빛을 받고 물이 올라 그 가지가 동산에 뻗으며 그 뿌리가 돌무더기에 서리어서 돌 가운데로 들어갔을지라도 그 곳에서 뽑히면 그 자리도 모르는 체하고 이르기를 내가 너를 보지 못하였다 하리니 그 길의 기쁨은 이와 같고 그 후에 다른 것이 흙에서 나리라.”

 

하나님을 잊는 모든 사람의 앞길이 물없는 데서 자란 왕골 같습니다. 믿음을 저버린 사람의 소망도 물없는 데서 자란 갈대와 같습니다. 물이 없는 왕골과 갈대와 같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의 믿는 것은 끊어질 줄에 지나지 않으며, 의지하는 것은 거미줄에 지나지 않습니다. 언젠가 줄이 끊어져 수치를 당합니다. 그가 기대어 살고 있는 집도 오래 서 있지 못하며, 굳게 잡고 있는 집도 버티고 서 있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과 같고 우리는 식물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는 물을 떠난 식물입니다. 그들은 무너지고 끊어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는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빌닷은 욥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현재 욥의 재산 자녀 건강을 다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가 망한다는 빌닷의 말은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는 시편 일편의 말씀과 같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시냇가의 심은 나무와 같이 번성합니다. 이 진리는 오랜 역사 속에서 검증된 진리입니다.

그러나 빌닷은 지금 욥의 현재 당장만을 보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얼마 후에 욥이 회복될 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욥이 얼마나 존경 받는 인물이 되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빌닷은 역사를 배웠지만 너무나 짧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만 판단하고 있습니다. 짧은 역사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배우되 우리는 긴 역사의식을 가져야합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긴 강물의 흐름 속에서 현재를 볼 수 있어야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임신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모욕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성모로서 만세에 복이 있는 자로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당장은 저주 받은 여인입니다. 예수님이 죽을 때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만세에서 보면 마리아는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는 비록 햇빛 속에서 싱싱한 식물과 같이 동산마다 그 가지를 뻗으며, 돌무더기 위에까지 그 뿌리가 엉키어서 돌 사이에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뿌리가 뽑히면, 서 있던 자리마저 본 일이 없다고 모르는 체할 것입니다. 식물이 살아서 누리던 즐거움은 이렇게 빨리 지나가고, 그 흙에서는 또 다른 식물이 돋아납니다.

빌닷의 말은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는 시편 말씀을 연상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는 잠시 동안에 햇빛을 받고 물이 올라 가지가 동산에 뻗습니다. 그 뿌리가 돌무더기에 서리어서 돌 가운데 들어갑니다. 악인은 아무리 번성해도 결국은 망합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뽑아서 그 자리도 없어지게 합니다. 악인의 길에 기쁨은 이와 같이 일시적입니다. 그 후에 다른 사람이 그곳에 살아갑니다.

빌닷은 욥을 악인으로 평가하지만 욥은 악인이 아닙니다. 욥은 성경에 나오는 삼대 의인 중에 하나입니다.

 

(의인은 번성함)

 

20-2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므로 웃음을 네 입에, 즐거운 소리를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

 

그러나 믿음으로 순전한 자는 버리지 않고 붙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십니다. 악인의 장막은 끊어지나 의인은 번성합니다. 악인은 부끄러움을 당하고 없어지나 믿음으로 사는 의인은 영광을 얻고 영원히 번성합니다. 빌닷은 공의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욥은 공의로 망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욥은 빌닷이 보는 것과 같이 악인이 아니라 의인입니다. 욥은 성경에 기록되어 영원히 번성하고 있습니다.

 

(긴 역사 속에서 보는 자세)

 

빌닷은 악인은 망하고 의인은 번성한다는 옳은 소리를 했지만 조금도 욥에게 위로를 주지 못합니다. 만약 빌닷이 욥에게 너는 믿음으로 사는 순전한 사람이야, 그러니 하나님은 반드시 너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실 것이야, 그러니 잠시의 어려움을 참고 견디기 바라네, 나중은 심히 창대할 줄을 믿네,”라고 하였다면 얼마나 은혜롭습니까? 만세의 역사 속에서 욥은 복받은 사람이야라고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빌닷은 욥이 악인이라는 전제를 깔고 말합니다. 욥이 현재 고난을 당하니 악인이라고 말합니다. 빌닷이 의인도 잠시는 고난을 당할 수도 있다라는 것을 인정하였다면 그는 욥의 좋은 위로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빌닷이 하나님의 말씀은 긴 역사속에서 진실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욥의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영원 속에서 바라보아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공의로운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산다면 우리가 지금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욥기 8장 강해 긴 역사 속에 보는 지혜

말씀 욥기 81-욥기 822

요절 욥기 87절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 8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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