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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누가복음 9부 강해 10부 예수님 제자의 포용력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9-12-24 00:00:00
조회수 : 375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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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ubf 10,1 주일 메시지 예수님 제자의 포용력
누가복음 9장 10부 강해 예수님 제자의 포용력
말씀 누가복음 9장 49-56
요절 누가복음 9장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마음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넓을까요? 좁을까요? 당연히 넓었으면 좋겠죠? 그런데 실상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좁다는 말을 듣습니다. 재판하시는 판사 목자님은 판사들이 기독교인들 끼리의 재판을 기피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끝까지 화해를 하지 않고 싸운다고 합니다. 마음이 좁은 사람을 흔히 좁쌀 영감이라고 합니다. 좁쌀 크리스천이 많다는 말입니다. 이들이 끝까지 싸우려는 이유는 진리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 크리스천은 진리를 위해서 목숨을 내걸고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진리 아닌 이해관계를 때문에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이 마음이 좁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제자들의 넓은 포용력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다른 모임에 있어도 예수 믿는 자는 우리 편이다

“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이름권세를 믿고 그를 행하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실한 성도요 능력 있는 목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제자의 공동체에는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왜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을까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는 전임사역자가 아니라 평신도로 살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전임사역자로 부르지 않으셨지만 그는 평신도로서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고 있었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은 좋지만 예수님의 제자 중에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서 따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마태 같은 세리나 가룟유다와 같은 이기적인 자나 시몬과 같은 열혈당원이 싫어서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에 속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제자 공동체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아주 제자답게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자 요한은 그가 우리를 따르지 않아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가 귀신을 쫓는 것을 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제자 공동체에 대한 자긍심이 매우 컸습니다. 자긍심이 지나쳐서 독선적이고 배타적이 되었습니다. 그는 귀신 쫓는 것을 제자공동체에 속한 자신들만의 할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모임 중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 쫓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하면서 제자 공동체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제자들 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자의 편이라는 것은 적극 지지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첫째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고 모임을 중심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자신의 모임에 대한 자긍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긍심이 지나쳐서 자신의 모임만이 최고이고 다른 모임에 속한 사람은 형편없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른 모임에 속한 사람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본질적인 것에 충실하다면 그 외에 것에 대해서는 포용력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교단, 선교단체도 우리 편이라는 것을 알고 포용해야 합니다. 여러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선교단체도 다양합니다. 우리 ubf는 말씀을 공부하고 소감을 씁니다. 마라나타 선교회는 찬양을 중시합니다. 예수전도단은 성령을 중시합니다. 씨씨씨는 제자양육을 중시합니다. ivf는 성도 간에 교제를 중시합니다.
교단도 다양합니다. 순복음은 성령을 구하고 방언을 중시합니다. 우리가 속한 장로교도 교단에 따라서 다릅니다. 고신 측에는 주일날은 절대 공부하지 않고자 합니다. 합동측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성을 갖고자 합니다. 그들은 동성애와 같은 세상 죄와 절대 타협치 않고자 합니다. 통합측은 예수님 안에서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습니다. 침례교회는 성경을 강조하고 평신도를 중시하고 여러 형식에 대해서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감리교는 성령 충만과 현실 참여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본질적인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이들 모든 교단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우리 교회를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다 우리 편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 한 가지를 중시한다면 서로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만 옳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본질을 가지고 있고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실제 천국에 가면 그들은 우리의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들을 넓은 마음으로 포용해야 합니다.
둘째는 제자들은 자신들만이 귀신쫓는 것을 독점하고자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것에 대해서 자신들이 독점하고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도록 민주화를 하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신부들이 성경을 독점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들만이 성경을 읽고 가르치고자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바비도라는 소설에 보면 성경을 자국어 성경을 읽는 바비도를 화형시켜 죽였습니다. 신부들은 자신들만이 제사장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제권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만인사제주의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말씀을 전하는 것은 목회자만이 독점합니다. 우리교회는 평신도나 학생들에게도 말씀 전하는 것을 열어 놓았습니다. 이것이 만인사제주의에 기초한 것입니다. 올해 우리교회에서 말씀 강사로 쓰임 받은 사람이 모두 11명입니다. 앞으로 세 명이 말씀 강사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평신도들이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은혜요 특권입니다. 힘들기도 하지만 큰 축복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귀히 여기고 이를 사모해야합니다. 사도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배는 존경하고 더 존경하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분명히 거듭났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2) 죽음을 앞두고 십자가를 지고자 굳게 결심하신 예수님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수님은 조금 후에 부활 승천하여 하늘나라에 갈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아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로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자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승천할 날이 가까운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이 가까이 올수록 십자가를 벗으려고 합니다. 좀더 편히 쉬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이 가까울수록 십자가를 지고자 굳게 결심해야합니다.
요즘에 백세 시대를 바라보면 노년의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돈을 준비해야한다고 합니다.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돈이 있고 건강해도 비참한 것은 노년이 되어도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노년이 가까이 올수록 새로운 할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질 수 있는 십자가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한 사람은 야곱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나이가 늙을수록 성령이 충만해졌고 할 일이 있었습니다. 노년에 애굽에 가서 바로를 축복해주고, 열두 아들을 축복하고, 두 손자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쳤습니다. 임종시에 그가 성령 충만하여 유언한 것이 성경 한 장에 기록되고 이스라엘의 역사의 흐름을 잡아 놓았습니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고 신앙의 연륜이 많아질수록 더욱 성령이 충만하여 나에게 맡기신 일을 깨닫고 그것을 끝까지 완수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가장 멋진 노년을 맞이하는 사람입니다.

(3) 지역 감정에 사로집힌 사마리아 사람들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예수님은 사자를 앞서 사마리아 마을에 보내어 여행에 필요한 것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음식과 물을 얻고 잠자리를 준비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사마리아 사람과 예루살렘 사람은 서로 상종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갈릴리에 계셨으면 영접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예루살렘에 올라가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 사람과 상종치 않은 이유는 지역감정 때문입니다. 이 지역 감정은 거의 6-700년 이어져 내려 온 뿌리 깊은 것입니다. bc722년에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사마리아는 혼혈족이 되고 혼합종교가 되었습니다. 유대인은 이들을 무시하였고 화가 난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영호남의 지역감정이 있습니다. 이것은 삼국시대부터 형성된 것입니다. 남북 분단된지 70년이 넘었습니다. 남북한 간의 갈등도 큽니다. 우리나라에 남성와 여성의 갈등, 기성세대와 신세대와 갈등,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갈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으로 교회 안에서 편을 가르고 서로를 배타적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는 누구나 서로 영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편을 가르지 말고 모든 사람을 내 편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4) 사마리아인을 심판하기 원하는 야고보와 요한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사마리아 사람들이 영접하지 않자 야고보와 요한은 불로 그들을 멸하여 심판할 것인가 물어 보았습니다. 그들은 엘리야가 자신을 잡으러온 오십부장을 두 번이나 불을 내려 죽인 것처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엘리야와의 경우는 다릅니다. 엘리야는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교만한 자를 자기 방어적인 차원에서 죽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아직 십자가의 복음이 완성되지 않은 구약적인 배경에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이 인간의 죄로 십자가를 지고자 오셨는데도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어 그들을 심판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지 않은 것은 분명히 잘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심판하는 권세가 없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초림 때에는 심판하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심판은 다시 오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때에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하는 일은 재림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영접지 않는 자들을 위해서 축복을 빌어야 합니다. 그들의 필요한 것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가 목마르거나 배가 고프면 마시고 먹을 것을 주어야합니다. 그들의 연약함과 죄를 감당해주어야 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영접지 않는 자에게도 복을 빌어야 합니다. 그들이 복을 받을 자격이 없으면 그 복은 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사람에게 복을 비는 사람입니다.

(5) 이 땅에 심판하지 않고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킹제임스흠정역 “55그분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56.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생명을 멸하러 오지 아니하고 구원하러 왔느니라, 하시니라. 그들이 다른 마을로 가니라.”

에수님은 심판하고자 하는 그들이 하나님의 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사탄의 영에 속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서로를 심판하는 것은 사탄이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성령님은 한 생명이라도 멸망에 이르지 않고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초림때에는 생명을 멸하러 오지 않고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떠나서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오랜 시간 무시를 받았기 때문에 충분히 예수님 일행을 영접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이해하셨습니다. 그들도 언젠가는 예수님을 믿을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영접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모욕하는 자들도 품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침을 뱉고 주먹으로 뺨을 치고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까지도 영접하시면서 아버지여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이 무지로 그렇게 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는 모든 죄인을 품고 영접하시고 감당하셨습니다. 그들이 변화될 것을 바라보셨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가 영접하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사랑해도 그 사랑을 영접지 않는 자들이 있으면 예수님을 다시 오실 때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께 맡겨 드려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힘써야합니다. 우리를 영접지 않는 자들의 삶을 그들 편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생각한다면 이해 못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동성애자도 이해할 수 있고 모슬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상황에서 자랐다면 우리도 그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넓은 내면으로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복을 빌어야 합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의 죄를 따라서 행하지 말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여름바다 같은 크리스천이 되자)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좁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좁쌀 영감이라고 하지요, 넓은 마음은 하해와 같다고 합니다. 하해는 여름바다를 말합니다. 여름바다에는 고래부터 피라미까지 모두 다 있습니다. 바다는 넓고 깊습니다. 우리는 여름 바다 같이 넓은 마음으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다 영접해야합니다. 심판은 재림 예수님에게 맡기고 다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산다면 그들을 다 우리 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주위에 너무나 좋은 크리스찬들이 있는 것을 인해서 감사드립니다. 특히 한국에 많은 믿음의 거장들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크게 감사드립니다. 요즘에는 신세대들 가운데도 믿음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다 우리 편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다 영접해야합니다. 우리 가족들, 우리 교회 공동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영접해야 합니다. 특히 자주 만나는 사람을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바다같이 넓은 마음을 가지려면 나 중심이나 우리 교회 중심으로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 중심으로 생각해야합니다. 나만이 잘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이 잘하는 것을 인정하고 배우고자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넓은 마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서로 간에 화목하고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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