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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누가복음 11장 강해 5부 나는 누구의 편인가?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9-12-30 00:00:00
조회수 : 390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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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강해 5부 나는 누구의 편인가?

누가복음 1123-26

요절 누가복음 1123.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우리가 누구의 편이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편을 든 사람이 있고 탈레반 편을 든 사람이 있습니다. 미군이 있을 때는 미국 편을 든 사람들이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미군이 철수하고 탈레반이 카블을 점령하자 미국편을 들던 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는 하나님의 편과 사탄의 편 두 가지뿐이 없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 편을 들 것 같지요? 하나님 편을 드는 것이 쉬울 것 같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탄이 다스리는 세상에서는 하나님 편에 선 사람들이 사탄에게 고난을 당합니다. 우리의 육신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어렵습니다.

우리는 힘든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편에 설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서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이 말씀의 배경은 예수님이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낸 후에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손을 힘입어 말을 못하게 하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사람들은 귀신을 쫓아내면 이제 모든 것이 다 된 줄 생각합니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귀신을 쫓아낸 후에 방어가 중요합니다. 쫓겨난 사탄은 다시 그 사람을 점령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다시 쳐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마치 한국동란 때 백마고지 싸움과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백마고지를 낮에 점령하면 밤에는 북한군의 공격이 있어서 백마고지를 점령했다고 합니다. 고지의 주인이 바뀌기를 24차례, 쏟아 부은 포탄은 30만 발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고지가 나무나 풀이 없이 민둥산이 되고 포탄 자국으로 패여서 흰 말이 누운 형상이 되었다고 백마고지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우리 국군은 34백여 명, 중국군은 1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났습니다. 이 전투를 승리하여 우리는 넓은 철원 평야, 철의 삼각지 일대를 우리의 영역으로 확보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요인은 전장에서 목숨 걸고 싸운 우리 장병들의 각오와, 백마고지 전투를 지휘한 당시 제9사단장 김종오 장군의 리더십, UN군의 적절한 지원, 미리 적의 대공세를 예측하고 준비한 점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백마고지를 영화로 만든 것이 바로 고지전입니다.

쫓겨난 북한군이 백마고지를 노리고 다시 쳐들어오듯이 쫓겨나간 귀신은 반드시 우리 몸을 다시 차지하고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으면 어떻게 방어를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 편에 분명히 서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이 서면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강한 사탄보다 더 강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 되시면 사탄이 다시 쳐들어오지 못합니다. 사탄이 들어오려고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갈 것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크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 편에 설 것 같지요? 당연히 그래야할 것 같지만 서론에서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 편에 분명히 서지 못합니다. 은혜 받은 자가 왜 하나님 편에 서지 못할까요? 하나님 편에 서면 고난이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죽을 것 같습니다. 사탄이 이런 두려움을 우리에게 심어서 하나님 편에 서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고도 하나님 편에 서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사탄에게 다시 점령을 당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면 망할 것 같지만, 망하지 않고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편에 섰을 때 십자가의 고난을 받았지만 부활하여 승리하셨듯이 우리는 잠시 고난을 받지만 그 고난 후에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각오하면 하나님 편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각오하고 하나님 편에 서서 사탄을 대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은혜를 받은 후에 예수님 편에 서지 않으면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역사를 흩어놓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은혜 받은 후에 예수님과 함께 죽어가는 영혼을 모으는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구원 받은 후에도 사람들과 싸우기 싫어서 그냥 편히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냥 가만히 있다 보면 결국은 사탄 편이 됩니다. 우리가 지옥에 가는 방법은 아주 쉽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물 흐르는 데로 세상 조류를 따라서 살아가면 됩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영적인 투쟁을 해야 합니다. 고난을 각오하고 심지어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도와주십니다. 사탄이 얼씬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 편에 서지 않은 자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24-26절을 보십시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우리 안에서 더러운 귀신이 나간 후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쉴 곳을 구하다 얻지 못하고 다시 옛날 집을 그리워하여 돌아옵니다. 귀신이 집에 와보니 그 마음의 집에는 예수님도 성령님도 없습니다. 집은 깨끗이 청소된 상태로 있습니다. 귀신은 너무 좋아서 자기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와서 거합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 믿기 전에는 마음의 집에 귀신 한 마리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타락하니 이제는 더 악한 귀신 일곱 마리가 들어와 그 사람 형편이 더 심하게 되었습니다. 병이 재발하면 더 심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병이 재발되면 치료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예수 믿고 타락한 사람이 예수 믿지 않고 타락한 사람보다 더 악해집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보다 더 악해집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로마사람들이 아닙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두고자 세 번이나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나를 너희에게 넘겨둔 유대인의 죄가 너의 죄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보다 더 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셨으면 이기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욕심을 따라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교만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을 주인으로 모셔 들이고 성령님을 경외하며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고난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은혜 받은 후에 예수님을 위해서 살 수 있을까요?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 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말못하는 귀신을 쫓아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이 은혜를 기억하면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 편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믿음 위에 믿음이 더하여져서 은혜 위에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 것입니다. 복에 복을 받게 됩니다. 더욱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 더 좋아질 수도 있고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이 두 번 나옵니다.

예수님은 38년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38년 동안 누웠있던 사람이 일어난 것은 얼마나 은혜가 큽니까? 이제 그는 예수님 편에 서서 은혜를 감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 편에 서면 유대인의 핍박이 있었습니다. 안식일날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고 핍박을 받습니다. 그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병 나은 사람을 만나서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예수님 편에 서서 핍박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에게 가서 안식일을 어기게 한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고발하였습니다. 그는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핍박 받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핍박을 받지 않는 대신에 예수님이 핍박 받았습니다. 그는 38년된 병이 걸리기 전보다 더 심하게 되어 일곱 귀신이 그 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육신의 병은 나았지만 영적으로 더 심하게 되어 지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죄를 사하여주시고 한 마디 하셨습니다.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다시 죄를 짓는다면 그는 간음하고 잡혔을 때보다 더 심한 것이 생깁니다. 그에게 일곱 귀신이 들어갑니다. 그는 지옥에 갑니다. 그러므로 그는 죄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마음에서까지 죄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성령을 따라서 죄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를 더 풍성하게 누리게 됩니다. 그 여인은 용서 받은 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38년된 병자와 대조적으로 병이 나은 후에 더 심한 것이 생긴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이 생긴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병 나은 사람에게 예수님이 안식일 병을 고쳤으므로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예수님이 눈을 뜨게 해주신 한 가지 은혜를 기억하고 끝까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편에 섰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사람을 유대사회에서 출교시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를 찾아가서 그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도우셨습니다. 그는 비록 유대교 사회에서 출교를 당하였지만 영생을 얻었고 하나님 나라를 얻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하나님을 믿고 타락하여 일곱 귀신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일곱귀신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 믿고 타락한 사람은 다시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일곱 귀신도 쫓아내십니다. 다만 일곱 귀신을 쫓아낸 후에 또 다시 타락하면 이제는 정말 군단귀신이 들어옵니다. 점점 더 심하게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나간 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신 은혜를 기억하고 주님 편에 서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리고 머리털로 발을 닦아드렸습니다. 십자가의 증인이 되었고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구원을 받은 후에 막달라 마리아처럼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이 일곱 배로 임하고 은혜가 장맛비처럼 임할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야합니다)

 

서론에 말했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어느 편에 서야할까요? 그것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이 강하다고 미국 편에 섰는데 미국이 떠나면 큰 낭패를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면 많은 핍박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분명히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성령을 따라서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 자신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점점 더 좋아지게 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은 후 사탄에 편에 선 자와 하나님 편에 선 자의 예를 들어주고 마치고자 합니다. 저는 십자군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놀랐습니다. 십자군 전쟁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한다고 하였지만 그곳은 사람들의 욕심이 가득찬 전쟁이었습니다. 영주는 땅을 넓히고자 하였고 교황은 자신의 교권을 넓히고자 하였고 기사와 상인들은 자신의 이득을 취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7차의 십자가군 전쟁을 통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수많은 약탈을 자행하고 무죄한 사람을 죽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믿은 후에 더 악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지속적으로 하나님 편에 선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는 고난을 각오하고 하나님 편에 선 사람들입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면 사자 굴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 편에 서서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 편에서 서서 금신산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을 사랑하여 바벨론에서도 훈련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를 풀무불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바벨론에 높이 드려내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자긍심을 심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그들을 사자굴과 풀무불에서 구원하지 않고 그들이 순교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좋은 영향력을 끼쳤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 것으로 바벨론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그들을 보면 용기를 얻어 순교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후에 은혜를 기억하고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 편에 분명히 서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점점 더 좋아지게 하실 것입니다.

제가 분명히 간증할 수 있는 것은 제가 분명히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살할 자를 구원하시고 살려주셔서 쓰시는 은혜를 기억하고 고난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은 후에 점점 더 좋아지고 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가정, 우리의 교회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20대보다는 30대가 더 좋았고 30대보다는 40대가 더 좋았고 40대보다는 50대가 더 좋았고 50대보다는 60대가 더 좋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분명히 서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누가복음 11장 강해 5부 나는 누구의 편인가?

누가복음 1123-26

요절 누가복음 1123.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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