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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누가복음 10장 강해 6부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9-12-25 00:00:00
조회수 : 43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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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장 강해 6부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누가복음 10장 29-37
요절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한 율법교사가 와서 영생을 얻는 길이 무엇인가 물어보았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얻는 길을 물어본 것이죠. 예수님은 율법교사에게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기록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율법교사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말이 맞다고 하셨습니다. 그에게 그와 같이 행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얻는 길입니다. 그러자 율법교사가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우리의 이웃은 누구인가)

29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율법교사는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이 옳게 보이려고 질문하는 것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율법교사는 항상 옳은 것을 추구하는 자입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옳게 보이기를 원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인 이런 그의 모습을 깊이 이해하시고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가 가르쳐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지 발견하고 우리가 선한 이웃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그냥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

30-32절을 보십시오.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우리가 많이 들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갔습니다. 이 길은 다른 곳보다 지대가 낮은 곳으로 길이 험하여 강도들이 많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에게서 돈과 물건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원하는 만큼의 돈이 나오지 않자 옷까지 다 벗기고 흠신 두들겨 패 주었습니다. 그는 누가 돌보지 않으면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갔습니다. 제사장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그를 돌보다가 시간과 물질을 손해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를 돌보다가 자신도 강도를 만날 위험에 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었으면 시체를 만졌으므로 제사도 지낼 수 없습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그냥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보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비방을 받을 염려도 없었습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급한 걸음으로 지나갔습니다.
다음에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제사장처럼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직장을 가지지 않고 전임으로 하나님의 일만 하는 자들입니다. 돈을 받으며 불쌍한 양들을 도우라고 하나님이 세우신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그렇게 살라고 가르치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삯군 목자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한 양에 대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살았습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면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형식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사를 드려야한다는 형식에 매여서 마음에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강도 만난 자를 도운 선한 사마리아인)

33-35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다음에는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여행 중에 거기 이르렀습니다. 그는 혼혈족이라고 무시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이르러 강도 만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는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치료해 주었습니다.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는 이튿날 떠날 날이 되자 주막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며 치료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돈이 더 들면 그 치료비까지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강도 만난 자를 도와주고 조금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주막집에 알려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이름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선행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사장도 레위인도 아니었지만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불쌍한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자의 이웃이 되라)

36,37절을 보십시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비유의 말씀을 하시고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서기관은 자비를 베푼 자라고 말했습니다. 서기관은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웃과 처지를 바꾸어 놓고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인간관계의 황금률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내가 강도 만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주기를 바랄까요? 내 자녀가 강도 만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이웃 사랑이 무엇인가 배울 수 다섯 가지로 배울 수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자를 불쌍히 여기라)

첫째는 도움이 필요한 자를 불쌍히 여기야 합니다. 사랑이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 동참하는 동정심입니다. 사람을 도우려면 그 사람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녀가 아프면 아빠는 잠을 잘 자는데 엄마는 같이 아파하고 잠을 못잡니다. 엄마의 마음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불쌍히 여기셨고 며칠 굶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하는 소경을 불쌍히 여기사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외아들이 죽은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고 오빠 나사로가 죽어서 눈물을 흘리는 마리아의 슬픔에 동참하여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고통에 동참하시고 고통하셨습니다. 이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예수님 마음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길 수 있습니다.

(죽어가는 자를 살리는 것)

둘째, 사랑은 죽어가는 자를 살리는 것입니다. 병든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을 받을수록 사람이 더욱 약해지고 점점 더 병들어 가게 하는 것은 병든 사랑입니다. 물론 우리는 동정심을 갖고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값싼 동정심에 의해서 그를 일방적으로 도와주기면 하고 자립하도록 돕지 못할 때 그 사람은 도움 받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안 도와주면 불평합니다. 그는 영원한 거지가 됩니다. 예수님 없는 인본주의적이 사랑이 이런 사랑입니다. 우리는 실제적인 것을 도와주고 무엇보다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주어서 자립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오스트리아에서 내가 전임으로 시작할 때 천안에 물질을 삼년간 도와주었습니다. 그것을 끊었을 때 잠시 서운 했지만 지금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좋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가 우리를 잘 도와준 것입니다.

(상대방을 중심으로 하는 것)

셋째, 사랑은 상대방을 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사랑할만한 사람을 찾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가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싫어하는 사람을 방치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것은 좋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고 사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요즘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결혼하는 데 이혼을 합니다. 이들은 내가 희생해야할 때 이혼합니다. 이들은 좋아서 결혼한 것이지 사랑해서 결혼 것이 아닙니다. 사랑해서 결혼하면 그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더 사랑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아프면 버리지 않고 더 마음이 가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그 사람의 부족함을 채워주고자 하기 때문에 그가 문제가 생길수록 더욱 사랑의 관계성이 깊어집니다.

(행함이 있는 것)

넷째, 사랑에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희생과 섬김이 따르는 것입니다. 사랑은 집에서 잠이라도 재워주고 라면 한 그릇이라도 끓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행하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진실한 사랑은 행하는 것입니다.
서기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는 영생의 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행해야 살 수 있습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함입니다. 행함이 없는 사랑은 죽은 사랑입니다. 아무 가치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이라도 행해야 합니다. 지금 즉시 행해야합니다.

(도와 주고 요구하지 않는 것)

다섯째, 사랑은 도와주고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자를 도와주고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요구하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이것은 변질된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도와 주고 그 자체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도와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팔을 불며 광고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고 나서 나는 너를 위해서 그렇게 해주었는데 너는 뭐가 부족해서 공부를 못하느냐고 말하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해준 것은 해준 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와주고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라져야합니다. 우리가 양들을 섬기고 나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다만 양들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그들에게 명예심을 빼앗고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그에게 조금 희생을 하더라도 그에게 명예심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웃이 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도 예전에 강도 만난 자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예수님이 우리를 돌보아주어서 우리는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할 때 우리도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도 언젠가는 강도 만난 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강도 만난 자를 돕는 것은 바로 나를 돕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돕는 마음으로 강도 만난 자를 도와야합니다. 나의 아들딸을 돕는 마음으로 그를 돕는 것입니다. 내가 교통사고 나서 쓰러져 있을 때 어떤 분이 나를 병원으로 인도하여주었습니다. 나는 그분의 이름도 모릅니다. 그분이 진정한 나의 이웃입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응급환자로 병원에 실려왔습니다. 의사는 그가 누군지 모르고 보호자도 없다는 이유로 병원비를 받을 수 없어 그를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바로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아들딸을 돕는 마음으로 우리의 불행한 이웃을 도와야 합니다. 예수님이 강도 만난 자의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것을 알고 도와주아야 합니다. 그때 도와주는 우리도 영생이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가운데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누가복음 10장 강해 6부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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