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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가복음 12장 강해 삼부 산자의 하나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6-04-04 00:00:00
조회수 : 2,00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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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2장 강해 삼부 산자의 하나님
말씀 마가복음 12장 18- 마가복음 12장 27
요절 마가복음 12장 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여러분은 산 자 입니까? 물론 여러분은 산 자이시지요. 그러나 육신은 살았어도 영혼은 죽은 자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실례지만 죽은 자입니다. 이들은 꽃병에 꽃힌 꽃과 같습니다. 꽃병의 꽃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이미 뿌리로부터 끊어져 있는 죽은 자입니다. 산 자처럼 보여도 죽음의 그림자가 깃들고 있습니다. 젊은이가 패기를 잃고 늙은이처럼 살아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육신은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의 영혼이 살아납니다. 우리가 다시 우리의 생명의 뿌리인 예수님께 접붙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산 자의 하나님이 나옵니다. 산 자의 하나님은 죽은 우리를 산 자로 변화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시간 산 자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

18절을 보십시오.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사두개인들 하면 네 개의 머리를 가진 개같은 무리들처럼 들리지요?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사두개인들은 이스라엘 종교집단의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제사장 사독의 후예들입니다. 지금 읽은 말씀처럼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도행전에 보면 천사도 영도 믿지 않았습니다. 물론 영생도 하나님 나라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들처럼 하나님나라에 소망이 없는 자는 현세적이 되지요? 그렇습니다. 이들은 현세적인 되어서 이 세상에서 부와 명예를 추구했습니다. 이들은 기복신앙, 번영신학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산헤드린 회원이요 제사장 직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요즘으로 하면 32평 아파트에 멋진 가구와 침대, 대형 텔레비전을 드려 놓았습니다. 때마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맛을 즐겼습니다. 이들은 자식들에게 고액 과외를 시켜서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대물림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렇게 현세에서 즐기면서 죄를 지었습니다. 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믿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현재의 삶이 좀더 오래 지속되기만을 바랬습니다. 그들은 나아가서 부활을 부정하고자하였습니다. 부활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부활이 있다면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해서 심판을 받아야합니다. 그들은 부활을 부정하기 위해서 교묘한 이야기를 꾸며 내었습니다.

(모세의 수혼법)

19절을 보십시오.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거든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모세의 법에는 형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시동생이 형수와 살아서 상속자를 세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계승하게 하기 위해 만든 법입니다. 형수와 결혼한다고 해서 수혼법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유다의 첫째 아들 엘이 자식이 없이 죽었을 때 동생 오난이 형수 다말과 결혼하는 것이 나옵니다. 동생 오난도 죽자 유다는 셋째를 며느리에게 다말에게 주지 않습니다. 그러자 다말은 시아버지와 잠을 자서 후사를 잇습니다. 이것이 허락될 수 있었던 것은 수혼법에 근거한 것입니다. 모압여자 룻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죽고 시동생도 없습니다. 가까운 친척도 룻과 결혼을 거절합니다. 그러자 다음 친척인 보아스가 룻과 결혼하여 기업을 계승합니다. 이것도 수혼법입니다.

(기구한 여인의 이야기)

20-22절을 보십시오.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일곱이 다 후사가 없었고 취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부정하기 위해서 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느 집에 아들 일곱을 둔 다복한 집이 있었습니다. 맏이가 29살 쯤 되어서 결혼을 했습니다. 처음 결혼이라 이 집은 아주 성대하게 결혼식을 치루고 기쁨도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맏이는 어느날 갑자기 열이 나고 내려가지 않는다고 하더니 심장병으로 자식도 없이 죽어버렸습니다. 첫째 형이 죽자 모세의 법에 따라서 둘째가 형수와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어느날 직장에 간다고 가더니 마주 오는 차와 정면 충돌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셋째는 형수와 결혼하는 것에 때해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법에 순종하여 마지못해 결혼했습니다. 그는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더니 매일 술과 담배만 늘어났습니다. 골초가 되더니 급기야 간암과 폐암 두 가지 암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동생들은 어쩔 수 없이 결혼해야 하는구나 생각하며 체념적이 되었습니다. 넷째도 형수와 결혼했습니다. 넷째는 어느날 해외 출장을 갔는데 하필 그 비행기가 테러를 당해 쌍둥이 빌딩을 받아 죽었습니다. 이제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대놓고 욕을 했습니다. "저년이 서방 잡아 먹는 년여!" 여자도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한탄했습니다. "왜 이년의 팔자는 이렇게 억세단 말인가?" 다섯째는 성실했습니다. 또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다시 형수와 결혼했습니다. 다섯째는 하나님의 일과 직장 일을 너무나 열심히 하더니 어느날 과로사로 죽고 말았습니다. 어느새 여인도 삼십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여섯째와는 나이차가 열살은 났습니다. 여섯째는 결혼 전부터 벌써 죽음이 주는 두려움의 공포에 떨었습니다. 결국 결혼한 후에도 그는 죽음의 두려움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어느새 여섯 명을 잃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부모가 죽으면 천붕이라고 하여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라고 말을 합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는 여섯 명의 아들을 잃고 정신이상이 되어 헛소리를 하시다 결국은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부모의 유언은 마지막 일곱째는 형수와 결혼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인도 여섯명의 남편이요. 시동생을 잃고 나서 얼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여인은 스스로 저주 받은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에게 죽음의 귀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는 자신이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일곱째도 에스더와 같은 죽으면 죽으리다는 믿음으로 형수와 결혼하겠다고 했습니다. 여인도 이왕 이렇게 된 것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일곱째는 그의 믿음대로 어느날 하얀색 가루가 들어 있는 봉투를 받더니 탄저균에 감염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일곱 남편을 잃은 여인은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여인의 운명도 기구하고 남편들도 너무나 슬프고 부모도 슬픕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의 내면은 이렇게 슬픔이 가득합니다. 너무나 운명적입니다.

(부활의 때에는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3절을 보십시오.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을 당하여 저희가 살아날 때에 그 중에 뉘 아내가 디리이까?” 이들이 마지막 날 부활했습니다. 그러면 여인은 일곱 명의 남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사두개인은 물었습니다. 형제들끼리 아내 쟁탈전을 버려야 할까요? 아니면 한 아내가 일곱 남편 일처다부제를 해야할끼요? 살아서도 슬프게 살았는데 죽은 후에도 이렇게 슬프게 살아가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이라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사두개인들은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

우리는 사두개인들의 말들이 아니더라도 부활을 부정하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사람들이 죽으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떤 모습으로 다시 사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죽습니다. 몸이 찢어져 죽은 사람도 있고 몸이 으깨져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죽은 후에 화장해서 재가 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아도 죽어서 시체가 다 썩어 흙이 되어 있습니다. 어려서 죽은 사람도 있고 나이가 들어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살아나느냐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젊어서 죽고 손자는 늙어서 죽었다면 늙은 손자가 젊은 할아버지를 보고 할아버지라고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지요? 하여튼 우리 주위에는 부활을 부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는 살아서도 죽음의 권세에 지배를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두개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통해 사두개인들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슬프고 운명적인 사람들)

첫째,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은 슬프고 운명적입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나오는 여인은 얼마나 슬프고 운명적입니까? 여인은 사는 것 자체가 저주스런 삶이었습니다. 그 시부모들은 또 얼마나 많은 마음의 고생을 했습니까? 죽은 일곱명의 형제들은 또 얼마나 비극적입니까? 사두개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이 슬프고 운명적이고 한계적인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 사두개인들은 세상적인 부와 명예와 권세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지 않을 때 그 내면은 슬픔과 운명과 두려움에 지배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석가모니도 한나라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인생의 고통을 깨달았습니다. 그에게 살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 모두가 고통이었습니다. 동양의 하나님이 없는 문화는 인생무상이 깊게 깔려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인생의 허무와 무의미와 권태를 느낍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요즈음에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옛날보다 더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내면이 옛날보다 더 밝아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복지가 잘 된 나라 일수록 내면은 어둡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우리 주위에는 항상 문제가 많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여러 문제들이 터집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을수록 문제는 더 많이 일어납니다.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면 사단도 강력하게 일을 합니다. 부활 신앙이 없는 자들은 이런 문제를 만날 때마다 부정적이고 어두운 생각을 합니다. 어둠 속에 빛나는 별을 보지 못하고 어둠만이 크게 보이듯 성령의 역사는 보이지 않고, 사단의 역사만 크게 보입니다. 가을이 오고 낙엽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면, 마음에도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울적해 집니다.

(쾌락적이고 향락적인 사람들)

둘째, 사두개인들의 생각은 쾌락적이고 향락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최대의 관심은 결혼이었습니다. 이 세상 살면서도 결혼 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부활한 후에도 어떻게 결혼생활을 계속 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육신적인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더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이들은 대학생활 동안 어떻게 하면 씨씨를 만들어 장래에 배우자를 잘 선택할 것인가에 최대의 관심을 갖습니다. 졸업한 후에는 취업을 좋은 데 해서 물질적으로 넉넉한 삶을 사는 것에 관심을 갖습니다. 결혼한 후에는 아기를 갖고 자녀 교육에 온통 마음을 씁니다. 이들은 짐승의 삶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이들에게는 양을 치는 사명도 기도하고 말씀을 보는 영적인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을 알아야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함으로 오해함이 아니냐?" 예수님은 이들에게 부활의 확실성을 증거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부활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그들은 성경을 많이 읽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사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그들이 성경을 인간적인 지혜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으로 이해되는 것만 인정했습니다. 당시에 사두개인들은 지성인이고, 박사학위를 딴 학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합리주의자들이요, 지식 정보를 중요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은 다 빼버리고 합리적인 것만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부활도 믿을 수 없었고 사후의 세계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지성인들 가운데 사두개인들처럼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지적으로 해석하고 지성인답게 믿고 삽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믿지 않고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것만을 받아들입니다. 이들이 현대판 사두개인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성령의 감동으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어야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야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천지 창조만 인정한다면 부활도 믿을 수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시 부활시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마른지팡이에서 싹이 나게 하신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권능의 하나님입니다. 그들은 신앙의 기초가 잘못되었습니다. 우리가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안다면 우리의 부활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절대적이어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하나님의 능력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 3:21)

(차원이 다른 세계)

25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의 세계를 현 세계의 연장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의 세계가 현 세계의 연장이 아니라 전혀 다른 신령한 세계라고 말씀합니다. 새까맣고 작은 수박씨를 심으면 어린이 머리만큼 큰 수박이 열리고, 징그러운 애벌레가 부활하여 창공을 훨훨 날라다니는 나비가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활한 후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우리의 연약한 육신의 몸이 강한 영적인 몸으로 변화되고 우리의 볼품없는 모습이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되고 썩어질 없어질 우리의 몸이 썩지 않는 영원한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그곳에는 이곳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육적인 삶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러면 천국에 가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말을 합니다. 차라리 천국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육적인 기쁨과 전혀 다른 영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영적인 기쁨을 체험하셨죠? 또 우리가 말씀을 보거나 기도를 할때 영적인 기쁨을 누리고 있죠? 이러한 기쁨을 천국에서도 누리게 됩니다. 이런 기쁨은 육적인 쾌락과는 비교가 안되는 큰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 가서 집이 얼마나 크고, 또 무엇을 먹고 누구와 결혼하여 살 것인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면 천국이 좁아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이곳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세계를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행복보다 억만배는 더 큰 행복을 누리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26절을 보십시오.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다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을 핍박하는 애굽 사람을 쳐서 죽이고 미디안 땅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십년 간 처가살이를 하며 양을 치는 목자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과거 이집트 왕자로써 이집트 제국의 후계자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 부는 바람과 함께 그 모든 꿈은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꿈과 비전없이 현실에 안주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한번은 양을 치고 있는데 가시나무에서 불꽃이 일어났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불꽃은 퍼져나가지도 않고, 꺼지지도 않았습니다. 불꽃가운데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예수님은 모세를 부르신 이 말씀이 부활에 대해서 증거한다고 말씀합니다. 먼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부활신앙으로 산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 아이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사라도 잘 알다시피 경수가 끊어져 의학적으로는 아기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꿈을 꾸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은 잘 자라고 있는 이삭을 불에 태워 번제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서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더니 이제는 이삭을 불에 태워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산 자의 하나님을 믿고 이삭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는 그가 이삭을 죽이면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사 복의 근원 삼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삭도 부활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죽이고자 할 때 이삭이 순종하여 죽을 수 있었던 것은 이삭도 부활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그는 이 부활신앙으로 결혼한지 20년만에 쌍둥이 야곱과 에서를 낳을 수 있었습니다. 이 부활신앙으로 흉년의 때에 사명의 땅에 남아서 100배의 축복을 주는 부활의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삭의 부활신앙은 야곱에 까지 이어져 내려갑니다. 야곱도 처음에는 부활신앙이 없었습니다.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자기를 죽이려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망권세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심히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그는 밤이 맞도록 얍복 나루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생명을 달라고 떼를 피웠습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부활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부활의 하나님을 만났을 때 비록 에서가 칼을 차고 군인을 거느리고 왔을지라도 마음에는 평안과 기쁨이 넘쳤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살리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은 모두 현재형을 사용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다고 말하지 않고 나는 현재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00년 전에 아브라함은 죽었으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활시키셨습니다. 모세의 시대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살리신 부활의 하나님이십니다.

(모세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이제는 모세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당시에 모세는 죽은 자와 방불했습니다. 나는 입이 뻣뻣해서 말을 할 수 없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차라리 보낼 만한 자를 보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모세에게 부활의 능력을 주사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행하고 홍해 바다를 가르는 놀라운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가 죽은 후에는 모세를 살리셔서 엘리야와 함께 변화산에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모세의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는 꽃병에 꽂힌 꽃과 같이 살았으나 죽은 자와 방불한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도 모세와 같이 좌절과 절망과 한계의 밤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살리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에게 소망과 용기와 가능성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모세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 오요한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뿐만 아니라 임하진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유용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심룻의 하나님도 되시고 우리 마가팀들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죽은 자와 방불한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현재에도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주실 뿐 아니라 죽은 후에도 우리를 다시 살리사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하실 것입니다.

(산자의 하나님)

2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자는 부활신앙이 없는 사두개인들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사두개인들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두개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죽은 자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살리셨습니다. 산자의 하나님은 죽어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항상 살아있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분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항상 살아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살아계셔서 한 사람 한 사람과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주셨습니다. 또한 산자의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살아납니다. 살아서 믿으면 죽음의 권세에서 완전히 자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부활의 생명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6장 50절에 보면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죽은 자가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모든 자가 다 살아있는 자입니다.

(산자의 삶)

죽은 자들은 말이 죽어 있고 생각이 죽어있고 표정도 죽어있고 행동도 죽어 있습니다. 이들은 안 된다. 힘들다. 불가능하다. 해도 소용없다. 무의미하다. 절망적이다. 등의 단어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말을 해도 박력이 없고 모기소리처럼 말을 합니다. 항상 피곤하고 지쳐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산자의 하나님은 이들에게 생명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산자는 믿음의 생각, 믿음의 말, 믿음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나이가 들어도 항상 젊은이 처럼 패기와 박력이 넘칩니다. 눈동자가 살아있습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진정 살아있는 자가 됩니다. 육신만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도 살아있는 자로 변합니다. 꽃병의 꽃과 같이 시들시들 하던 자들이 이제 뿌리에서 생명력을 공급받아 항상 싱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산 자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마가복음 12장 강해 삼부 산자의 하나님
말씀 마가복음 12장 18- 마가복음 12장 27
요절 마가복음 12장 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마가복음 12장 강해 이부 산자의 하나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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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마가복음] 마가복음 11장 강해 사부 하늘로서 오는 예수님의 권세 오요한 2016-04-04
53 [마가복음] 마가복음 11장 강해 삼부 하나님을 믿으라 오요한 2016-04-04
52 [마가복음] 마가복음 11장 강해 이부 성전을 깨끗게 하신 예수님 오요한 2016-04-04
51 [마가복음] 마가복음 11장 강해 일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오요한 2016-04-04
50 [마가복음] 마가복음 10장 강해 육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오요한 2016-01-29
49 [마가복음] 마가복음 10장 강해 5부 섬기러 오신 예수님 오요한 2016-01-29
48 [마가복음] 마가복음 10장 강해 사부 은혜로 가는 하나님 나라 오요한 2016-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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