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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12장 강해 일부 사랑의 허비 (1-11)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7-06-22 00:00:00
조회수 : 2,147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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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장 강해 일부 사랑의 낭비

말씀 요한복음 121-요한복음 26

요절 요한복음 124,5절을 보십시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조류 중 모성애가 가장 뜨거운 것은 펠리컨입니다. 펠리컨은 크게 늘어난 목주머니를 가진 새입니다. 새끼들이 먹을 것이 없으면 자신의 가슴살을 뜯어 먹입니다. 병에 걸려 죽어가는 새끼에게 자신의 핏줄을 터뜨려 그 피를 입에 넣어줍니다. 어미 펠리컨은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새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칩니다. 사랑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허비하는 새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이런 펠리컨과 유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피를 쏟아 부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과 같이 예수님을 위하여 사랑의 허비를 하는 한 여인이 나옵니다. 1-11장은 공생애 마지막입니다. 11장까 7대 표적이 나옵니다. 12장부터는 죽으시고 살아나시는 사건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기름 부으십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병들고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예수를 위한 잔치)

 

1,2절을 보십시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유월절 엿새 전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하루 전날 돌아가시니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오일 전입니다. 12,13장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관됩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사랑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에 이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인류를 위해서 죽으시고자 결심하셨지만 위로가 필요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변화산에서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친히 말씀으로 예수님을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도 나타나 예수님을 위로해주었습니다.

인간 가운데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이 예수님을 위로해주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은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위해서 잔치하지 않았습니다.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하였습니다. 우리는 생일날 태어난 사람을 위하여 잔치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그날은 우리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위해서 잔치해야합니다.

예수님께 은혜를 많이 받았지만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가정은 감사하여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하였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주빈석에 앉았습니다. 열두제자가 그곳에 있었고 많은 손님들이 예수님과 나사로를 보기 위해서 왔습니다. 마르다는 잔치를 준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섬긴다는 뜻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이 잔치에는 적어도 50명 이상은 왔을 것입니다. 손님이 많을수록 잔치는 준비할 일이 많습니다. 고기를 굽고 국을 끓이고 전을 붙이고 식혜를 담그고 설거지까지 합니다. 마르다는 몸으로 섬기는 일을 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에수님도 제자들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전에는 마리아가 예수님 가까이서 말씀을 들었는데 마리아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향유을 부은 마리아)

 

3절을 보십시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예수님이 앉아 있는 곳에 마리아가 나타났습니다. 마리아는 선물을 싸고 편지를 써서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향유병이 들려 있었습니다. 대부분 손님이 오면 머리 위에 향유를 한 두 방을 떨어뜨리는 것이 예의입니다. 사람들은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한두 방울 떨어뜨려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향유를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발에 한꺼번에 부어드렸습니다. 지극히 비싼 3백데라니온의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향유를 부음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마리아가 실수로 향유를 엎질렀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실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는 땅 바닥에 주저앉아 긴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머리털은 여자의 영광입니다. 발은 더러운 곳입니다. 마리아는 영광의 머리털로 발을 씻어서 예수님께 최고의 존경을 표시하였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씻어드린 것은 의도적인 것입니다.

 

(전폭적인 헌신)

 

일반적으로 향유는 여자들이 결혼지참금으로 모았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돈을 벌어서 향유를 한두 방울씩 모았습니다. 향유를 모을수록 결혼에 대한 꿈과 소망도 커져갔습니다. 향유에는 마리아의 결혼에 대한 꿈과 소망이 들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남편을 위해서 자신의 일생을 헌신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이 진정한 자신의 경배의 대상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남편은 여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지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사랑할 대상은 아닙니다. 남편도 같은 피조물이요. 죄인입니다.

마리아는 그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썩어서 냄새나는 오빠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마리아는 나사로가 살아난 것이 너무 기뻐서 잔치한 것이 아닙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여 잔치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부활의 주님,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나사로에게 뿐 아니라 마리아에게 새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음에 슬픔을 없애주시고 기쁨을 주셨습니다. 원망을 감사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녀의 삶을 루저에서 위너로 바꾸어주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난 후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예수님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드려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남편을 위해서 모은 향유를 예수님께 드리고자 결단하였습니다. 그녀는 한 번에 향유를 예수님께 다 부어드렸습니다. 그녀는 삶의 일부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전부를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여 주님께 헌신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서 머리털로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행복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가득한 향유냄새)

 

저자 요한은 미리아가 향유를 부었을 때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아름다운 향기가 진동합니다. 좋은 영향력이 나타납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있는 곳에는 악취가 진동합니다. 사람들은 이기적인 사람이 있는 곳에 가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희생적인 사람이 있는 곳에 사람들은 모입니다. 사람들은 희생하는 사람들 곁에 행복해 합니다.

 

(허비로 본 가룟유다)

 

4,5절을 보십시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팔 자입니다. 그는 마리아가 향유를 붓는 것을 보니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곳에 비닐이라도 깔고 부어서 나중에 다시 담게 해야지 그냥 부어서 다 허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가룟유다는 향유를 보는 순간에 그 가격을 계산하였습니다. 그는 향유의 가격이 삽백데나리온이라고 말합니다. 노동자의 일년 연봉으로 삼천만 원 정도의 가격입니다. 북한 사람 한 사람이 평생을 먹고 살 수 있는 돈입니다. 가룟유다는 그 돈을 다 허비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가룟유다의 말은 맞습니다. 그는 매우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낭비로 생각하는 사람들)

 

가룟유다의 생각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헌신을 허비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돈으로 평가합니다. 이삭 기혁 성희 목자님이 인턴 목자 기간에 돈을 벌었으면 얼마나 벌었을 것인가 생각합니다. 주님께 지금까지 드린 헌금을 드리지 않고 모았으면 적어도 아파트 전세는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드리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간에 돈을 벌었으면 적어도 모닝차는 한 대 더 뽑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아내는 남편이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비판적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아내가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을 보고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 속에 주님을 더 사랑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사랑하면 아깝지 않은 헌금)

 

나는 과거 직장을 잡지 못해서 일년 동안 고통했습니다. 나는 직장을 잡지 못하고 평생 실업자로 살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로 직장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였습니다. 나는 주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에게 크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전하며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과거 자살하고자 하던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크신 은혜로 살려주시고 덤으로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주님께 무엇을 조금 드리고 그 결과를 따졌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식은 것입니다. 사랑은 따지지 않습니다. 무조건 희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을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여 자신의 아들도 희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쁨으로 이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물질과 생명을 남김없이 드리고 희생하기를 기도합니다.

 

(이기적인 가룟유다)

 

6절입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가룟유다가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것은 순수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돈궤를 맡고 얼마의 돈을 훔쳐갔습니다. 저자 요한은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자신을 생각하여 그 말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가룟유다는 옳은 소리를 하는 것 같았지만 그 마음 속에 이기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없는 구제는 순수하지 못합니다. 구제를 하면서 자신의 유익을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구합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자기 만족을 얻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는 사람만이 순수하게 다른 사람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은 마리아)

 

마리아는 향유를 부어드릴 때 사람들의 비난 받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사람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의식하면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만을 의식하며 행동합니다.

 

(십자가의 허비)

 

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사람이 죽어 장사할 때 시체에 향유를 발라줍니다. 예수님은 오일 후면 죽어야합니다. 예수님은 여인이 향유를 부은 것이 장사할 날을 준비한 것으로 받아주셨습니다. 죽음을 앞둔 예수님을 위로해주신 것으로 받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여인이 향유를 부은 사건을 장례를 예비한 사건으로 본 것은 여인이 향유를 부은 사건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사건과 유사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위해서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자신의 물질과 시간과 정성과 꿈을 부어드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피를 쏟아 부어주셨습니다. 자신의 몸을 찔려서 물과 피를 쏟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를 위해서 다 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전폭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생명을 다하여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듯이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과 마음이 통하였습니다.

 

(장례식을 예비함)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를 생각하며 향유를 부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장사지내는데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헌신과 수고를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 않고 받아주십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여인의 아름다운 일을 복음이 전하여지는 곳마다 기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향유를 부은 마리아로 인하여 깊이 감동받으시고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드린 시간과 물질을 다 받으시고 구원 역사에 사용하여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주안에서 하는 수고가 헛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순수한 마음으로 드린 것에 대해서 주님은 감동하십니다.

 

(다윗의 헌신)

 

다윗은 하나님의 처소가 장막에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안타까워하였습니다. 자신은 백향목 궁에 거하지만 하나님은 텐트에 거하는 것을 옳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성전을 짓고자 결심하였습니다. 지은 것도 아니고 짓고자 결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밤에 다윗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언제 너희에게 나의 집을 건축하게 하라고 한 적이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네가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하고자 하니 내가 너의 후손을 영원히 왕으로 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손 가운데서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얻고자 합니다. 부를 얻고 건강을 얻고 명예를 얻고자 합니다. 신앙이 어린 단계에서는 이런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축복하셔서 건강도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명예도 주십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얻었으면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순수하게 사랑해야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일 지키고 헌금하면 복을 주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이런 것 때문에 신앙 생활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 자체가 행복하기 때문에 헌신합니다. 주님을 통하여 축복을 받을 때 기쁜 것이 아니고 주님을 위해서 헌신할 때 기쁨을 누립니다. 주님이 주신 양들을 위해서 자신을 허비할 때 행복을 누립니다.

 

(사도 바울의 허비)

 

물질을 쓰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가룟유다는 자신만을 위해서 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돈을 씁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역사를 위해서 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고후 12:15).” 바울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고린도 성도들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물질을 허비하고 자신까지 허비하였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허비하고도 피해의식이 들지 않았습니다. 행복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실한 사랑입니다. 선교사님들은 공통점이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쏟아부었습니다.

 

(사랑의 낭비)

 

오늘 말씀의 제목이 사랑의 낭비입니다. 사랑에는 낭비의 성격이 있습니다. 이해타산이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이것을 했을 때 어떤 유익을 얻을까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순수한 마음으로 헌신하고 희생합니다. 이런 희생을 하고 피해의식이 들면 사랑이 아닙니다. 그냥 희생한 것으로 행복해 합니다. 그 사람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해드릴까?)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나 생각하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라는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성숙한 신앙인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실까 생각하기 전에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드릴까를 고민해야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리셨습니다. 피를 쏟아주셨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주님이 무슨 축복을 주실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를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보고 감동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귀하게 사용하여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는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가난한 자보다 예수를 위하여)

 

8절을 보십시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복음역사에 헌신이 구제역사보다 우선한다고 말합니다. 복음역사는 일회적입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하는 일은 지금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것은 언제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가난한 자가 항상 있습니다. 교회는 구제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중심적으로 해야할 일은 구제가 아닙니다. 복음역사가 중심입니다. 복음역사는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생명 살리는 일은 시급합니다. 일회적입니다. 지금 생명을 살리지 않으면 살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역사를 섬기고 그 다음으로 구제역사를 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가 종말론적으로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구제하였다고 그 사람이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복음을 영접한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적으로 복음역사를 섬겨야합니다.

svm 운동의 역사는 복음 역사를 중심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복음역사보다 구제역사에 힘을 쓰기 시작합니다. 수양회도 말씀 중심으로 하지 않고 세미나 중심으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의 내면에 성령의 불이 꺼집니다. 그러면서 선교도 구제도 사라집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도 식어집니다. 요즘 svm 운동이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변화된 사람 나사로)

 

9-11절을 보십시오.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만 볼 뿐 아니라 예수님이 살리신 나사로도 보고자 왔습니다. 나사로는 부활의 증인입니다. 나사로는 썩어서 냄새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을 살아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합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을 통하여 변화되어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나사로는 앉아만 있어도 사람들이 나옵니다.

변화된 사람이 앉아만 있어도 교회가 부흥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이 사람이 어떻게 변화되었나 예수님 때문이지 하면 많은 사람이 옵니다. 썩어서 냄새나는 인격이 변화되어 향기가 나면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을 계기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시기심이 가득찬 대제사장은 예수님도 죽이고 나사로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증거를 인멸하고자 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은 가룟유다와 비슷합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볼 때 돈 삼삽 냥으로 보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볼 때 자신의 영광을 빼앗아가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둘 다 공통점은 이해관계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관계로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을 배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김없는 희생)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섬기는데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마리아처럼 남김없이 예수님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룟유다처럼 계산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구원역사에 귀히 쓰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나중에 예수님을 배신하고 목메 자살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가겠습니까?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께 허비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2장 강해 일부 사랑의 낭비

말씀 요한복음 121-요한복음 26

요절 요한복음 124,5절을 보십시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요한복음 12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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