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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9장 강해 일부 운명은 없다(1-11)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07-09 00:00:00
조회수 : 2,861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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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9장 강해 일부 운명은 없다.
말씀 요한복음 9장1-요한복음 9징 11
요절 요한복음 9장 5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노라"(5)

스코틀랜드 어느 시골에 부모를 잃은 한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가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사흘을 굶었습니다. 그 옆집에는 아주 양이 많은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형제들은 이렇게 굶어죽느니 양 한 마리를 도둑질해서 먹고 죽자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밤에 몰래 담을 넘어 들어가서 양 한 마리를 도둑질해다 그 밤에 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그런데 서툰 도둑질이 발견된다고 그들은 옆집 할아버지에게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심성이 고약하였던 것 같습니다. 매를 심하게 때리고 이마에 st라는 낙인을 새겼습니다. (sheep thief)양도둑이라는 말이죠?
형은 할아버지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는 양 도둑이라는 것을 숨기려고 이곳저곳 이사 가서 살았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 낙인의 의미를 물어보았겠죠? 그러면 다시 양도둑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그럼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이렇게 하다가 그는 홧병으로 죽었습니다.
반면에 동생은 양 도둑을 양 도둑이라고 하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이것을 계기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st라고 새겨진 것은 자신과 같이 양을 도둑질할 수밖에 없는 불우한 고아들을 위해서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영접하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는 노년에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노년에는 어린아이들을 불러서 이야기도 해주고 잔치도 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은 할아버지를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한 어린아이가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저 할아버지는 참 좋으신 분인데 그 st라는 글자가 무슨 뜻에요. 할아버지는 말씀하십니다. saint라는 영어도 모르는 분이나 성자라는 것이란다.
두 형제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한 사람은 사람을 원망하며 과거에 매여 산 것입니다. 한 사람은 자신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열심히 산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자신의 불행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의 일곱 번째 표적 중에서 여섯 번째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 되십니다.

(날 때부터 맹인)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예수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8절에 보면 그는 소경 거지였습니다. 그는 길가에 앉아서 땟국물이 흐르는 옷을 입고 검은 안경을 쓰고 지팡이를 옆에 두고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라는 노래를 하모니카로 부르며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파리 떼가 그에게 달라들었습니다. 여러분들 캄캄한 밤에 방안에 들어가서 일을 해보셨나요? 안대를 하고 하루라도 활동하여 보셨나요? 밤에 불이 들어오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요?
소경의 삶은 바로 이런 삶입니다. 소경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합니다. 날 때부터 소경은 꿈을 꾸어도 모양이 보이지 않습니다. 소경은 꿈도 소리로 꾸어야 합니다. 소경은 우리가 맛보는 음식맛을 그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음식 맛을 느끼는 것은 입맛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의해서 보는 동안에 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는 눈만 어두운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도 어두웠습니다.
그는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벌써 인생의 많은 부분이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의 어둠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는 운명의 어둠,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는 조물주에 대한 원망의 어둠이 있습니다. 그는 아무 일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어둠이 있습니다. 자폐증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고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승원 목자도 두 자녀가 자폐입니다. 어떤 분은 세 자녀가 자폐 다운증후군 장애인입니다. 윤정희 사모는 장애아만 10명을 입양하였습니다. 하나는 아이큐가 부족했는데 아이큐가 좋아졌습니다. 하나는 안짱자리인데 쇼트트렉 선수가 되었습니다.

(누구의 죄인가)

2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제자들은 이 소경을 보자 심각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첫째는 이 사람의 불행이 어떤 사람의 죄로 인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둘째는 죄라면 그 사람의 죄냐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 사람의 죄가 아니라면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불행의 원인을 죄에서 찾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불행하게 산다고 생각합니다. 죄 때문에 소경의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니 자신의 죄 때문에 불행하게 산다고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죄가 아니라면 부모의 죄 때문인가 질문을 했습니다. 부모의 죄도 아니라면 그 조상의 죄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실패작인가 하나님께 그 책임을 돌리는 질문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쫓기는 자신들의 처지가 처량하여 이런 질문을 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쫓기는 것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우리도 불행을 보면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남북분단은 누구의 죄입니까? 취업이 안 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몸에 병이 많은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부부싸움은 누구의 죄입니까? 결혼을 못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죄로 인한 불행)

우리 주위에 불행이 죄 때문에 생긴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고 부모나 조상들의 죄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인류의 조상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범하자 그도 고통을 당하였고 그 후손에게도 가난과 질병과 두려움과 원망과 죽음이 왔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도망가다가 자신도 큰 풍랑을 만나고 그 배에 있는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다윗이 범죄하자 그는 집안의 분란과 국가의 내란에 시달렸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고통하였습니다.

(죄 때문이라면)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소경은 과연 죄 때문에 생긴 것입니까? 이 사람이 자신의 죄 때문에 소경이 되었다면 엄마 뱃속에서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엄마 뱃속에서 무슨 죄를 지었겠습니까? 발로 엄마 배를 차는 죄를 지었을 수도 있고 엄마가 주는 영양분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불평을 한 죄도 지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소경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너무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불교식으로 전생의 죄를 지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전생의 업보에 따라서 이생에서 행불행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과거의 죄 때문에 현재의 고난을 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삶은 운명적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자학합니다. 그 사람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그 부모가 죄를 범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어머니가 성병이 있는 상태에서 아기를 낳아 눈에 바이러스가 감염되어 소경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면 뇌의 구조가 잘못되든지 부모가 약물을 과다 복용하든지 돌연변이에 의해서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부모나 사회에서 소경이 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소경은 부모나 사회에서 원인을 찾으면 원망하고 저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원망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하면 하나님께 불신이 생깁니다. 모든 우리의 삶이 전생에 결정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생에서는 불행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죄없는 고난)

또한 우리 주위에는 죄를 짓지 않았는데 고난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욥은 아무 죄를 짓지 않았지만 큰 고난을 받았습니다. 아벨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 죽었습니다. 열두 제자도 죄를 짓지 않았는데 순교 당했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이나 조상들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더라고 누구의 죄 때문에 불행이 왔느냐고 질문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죄냐 누구의 책임이냐를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심각한 질문 앞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섭리)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예수님은 그 불행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불행의 원인을 사람에게서 찾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불행에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래의 선을 이루기 위한 좋은 뜻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죄수가 과거의 죄 때문에 감옥에서 형벌을 받는 그런 불행이 아닙니다.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학생들이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공부하는 고난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축구 선수가 미래의 영광을 위해서 훈련 받는 고난을 받은 것과 같은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소경이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고난을 받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한 차원 높은 생각으로 보십니다. 물론 그 사람이나 부모가 죄를 범해서 불행하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곳에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인정할 때 그 사람이나 부모가 죄를 지은 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불행 속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이 생깁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요셉에게 주신 섭리)

요셉은 분명히 형들이 자신을 팔아서 애굽에 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을 애굽에 보낸 것은 형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보내셨다고 요셉은 하나님의 크신 섭리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편에서 보았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형들이나 보디발의 처를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노예로서도 열심히 일하여 가정 총무가 되었고 죄수로도 열심히 일하여 죄수들의 총무가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것이 요셉에게는 영광이 되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대통령은 모두가 교도소에 다녀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교도소에 다녀오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조용기 목사나 김삼환 목사나 한경직 목사는 폐병을 앓은 사람들입니다. 폐병을 앓은 사람들이 훌륭한 목회자가 되니 목회자가 되려면 폐병을 앓아보아야 한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고난이 그들에게 고통이 아니라 영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

하나님은 인간의 불행을 통해서 선한 일을 하시기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시기 원하시는 선하신 일이란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소경된 자가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불행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불행하지 않았으면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불행이 예수님을 믿게 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불행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생명의 역사에 쓰임받는 일)

둘째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에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행을 사용하셔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자신과 같이 어둔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자로 살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소망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든 것을 통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많은 생명을 살렸습니다. 애굽의 많은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그는 애굽에 있는 야곱의 자녀를 살려서 구원역사를 계승하게 하였습니다. 세계만민을 구원하였습니다.

(아름다운 그림)

우리의 인생을 하나하나 보면 고난이나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는 아름다운 그림을 이룹니다. 모자이크가 하나하나 보면 아무 의미없는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아름다움 그림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고난을 통해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다. 베에토벤은 아홉째 아들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매독에 걸렸고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입니다. 그의 형들은 귀머거리 장님 정신지체아들이었습니다. 베토벤도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행한 조건 가운데 태어난 베에토벤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케 하셨습니다.

(마이클조선교사)

지난 주에 마이클 조 선교사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뇌성마비였습니다. 어머니는 소아마비였습니다. 큰 아버지와 어머니도 죽어서 그 집 식구들까지 같이 살아야 했습니다. 서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배제대에 들어가서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군대가서 자살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위해서 항상 기도해주고 계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원망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나를 병이 나서 죽게라도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비염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세 번이나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는 치료 받는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도전하여 시사영어사 토익 시험에서 일등을 하고 서울노량진에서 오억의 연봉을 받는 영어강사였고 현제는 대전과 천안 시사영어 학원 이사장이 되었습니다. 선교사로 국내 곳곳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크고 작은 질병을 앓는 분이 있습니다. 열심히 돕던 양들이 어려워진 분도 있습니다. 사업이 잘 안 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면 어둔 생각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하고자 하십니다. 우리의 불행을 은혜의 샘터로 만들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친히 어떻게 운명을 극복하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낮에는 일해야 한다)

4절을 보십시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때가 낮입니다. 낮은 예수님이 오신 때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때입니다. 하나님도 낮에는 열심히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쉬셨습니다. 우리도 낮에는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낮은 우리가 젊을 때입니다. 우리에게 건강이 있을 때이고 돈이 있을 때이고 우리에게 사명이 있을 때입니다. 우리는 늙고 죽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날이 저물고 저녁이 오듯이 반드시 죽음은 옵니다. 축구경기가 끝날 때가 있듯이 우리의 인생도 끝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심판의 때는 반드시 옵니다. 어둠과 죽음이 덮치는 때가 옵니다. 우리는 그 전에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adhd환자는 한 가지를 잘 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하게 해야 합니다.

(역전의 인생)

사람들에게 2002 월드컵 경기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경기가 어느 경기였는가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이탈리아와의 경기라고 했습니다. 왜그렇습니까? 저도 단대에서 보았지만 종료 삼분을 남기고 박지성이 역전골을 넣고 또한 연장전 몇분을 남겨놓고 안정환이 골든 골을 넣었는데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역전시키는 드라마는 참으로 멋이 있습니다.
우리는 선수가 힘써 경기를 해야 하듯이 힘써 인생에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셨을 때는 할 일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사명을 마치기까지 최선을 다하여 일해야 합니다.

(세상의 빛)

5절을 보십시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우리가 어떤 불행한 조건 가운데서도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빛 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어둡습니다. 세상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간적인 노력과 지혜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을 밝히는 빛이 되십니다. 세상에 예수님의 빛이 비추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하시는 빛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운명의 어둠을 몰아내는 섭리의 빛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는 사랑의 빛입니다. 절망하는 자에게 소망을 주는 소망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원망의 어둠을 몰아내는 감사의 빛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운명의 빛을 섭리의 빛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인생은 밝아집니다. 우리가 빛되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 어떤 상황 어떤 조건 가운데서도 힘써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빛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이 말씀을 하시고 일하는 것에 본을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까?

(진흙을 이겨 일하신 예수님)

6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소경을 고치실 수 있었습니다. "소경아 눈아 떠져라!"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고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일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을 하고자 했으나 일을 할 수 있는 도구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수술 도구도 없었고 병원에 입원시킬 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땅에는 진흙이 있었고 입에는 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침을 뱉었습니다. 갈증 나는 때라 침도 조금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조금 나온 그 침으로 진흙을 이겼습니다. 진흙도 아주 조그만 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진흙을 소경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그리고 소경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진흙만 있으면)

일을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낮에 진흙과 침만 있으면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데 악보를 모두 외워서 지휘합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눈이 나쁩니다. 그는 원래 첼로니스트인데 자기 파트를 다 외우고 남의 파트까지 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지휘자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토스카니니가 대신 지휘를 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유명한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고난이 그를 유명한 지휘자로 만들었습니다.

(말씀의 진흙, 사랑의 침)

유비에프 초기 역사에 사실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돈도 없었고 지식도 없었고 신학교 졸업장도 없었고 언어 실력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배들은 심정이 있었습니다. 어찌하든지 하는 정신이 있었습니다. 이런 심정을 가지고 기도의 진흙을 이기고 말씀의 침을 뱉었습니다. 일대일의 진흙을 이기고 사랑의 침을 뱉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진심을 받으셨습니다. 이는 마치 야곱이 알룩진 양의 새끼를 얻기 위해서 신풍나무 껍질을 벗겨 양들이 교미하는 데 세워놓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심정을 받으시고 유비에프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진흙과 말씀의 침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이겨서 양들의 눈에 바를 때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순종을 통한 기적)

7절을 보십시오. "이에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소경은 청각이나 촉각이 발달하여 있습니다. 그는 침 뱉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진흙이 눈에 붙여지는 것도 느꼈습니다. 눈에는 티도 들어가지 말아야하는데 진흙과 침까지 넣는 것을 알았습니다. 소경은 이것으로 인하여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였습니다. 그는 자존심이 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렇게 일하는가 불평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보내신 사명을 영접하고 실로암으로 갔습니다. 그는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과 주권을 믿고 신뢰했습니다. 온전히 예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함께 하시고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나아만 군대장관은 온전히 순종하자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김선택 원장은 맹인이며 실로암 안과 원장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개안 수술을 해주었습니다.

(내가 그다)

8-11절을 보십시오.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눈먼 자가 눈을 뜨자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전에 그 사람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눈을 뜬 자는 자신이 바로 소경에서 눈을 뜬 자임을 분명히 증거하였습니다. 자신의 눈을 뜨게 하신 빛되신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는 세상의 빛으로 살았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물을 때 예수님이 내가 그라고 증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법)

결론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운명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첫째는 우리의 슬픈 운명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빛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아야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진흙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친히 함께 하셔서 우리의 운명을 극복케 도우십니다. 우리의 불행이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의 샘터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의 불행이 복음을 전하는 생명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우리 가운데 기도의 침의 있고 말씀의 진흙이 있습니다. 이를 힘써 이겨서 생명의 역사를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9장 강해 일부 운명은 없다.
말씀 요한복음 9장1-요한복음 9징 11
요절 요한복음 9장 5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노라"(5)
요한복음 9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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