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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8장 강해 삼사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라라(31-59)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06-11 00:00:00
조회수 : 4,221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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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강해 3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 요한복음 8장31-요한복음 8장 36
요절 요한복음 8장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타이타닉 영화의 명장면 중에 하나는 케이트 윈슬렛이 배 끝머리에서 두 팔을 벌리고 있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허리를 잡고 있는 장면일 것입니다. 케이트 원슬릿은 어머니의 강요에 의해서 부자와 약혼하고 그것이 싫어 탈출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디카프리오를 만나며 참 사랑과 자유를 찾게 됩니다. 참 자유를 가장 잘 나타낸 부분이 바로 그 명장면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유를 갈망합니다.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의 독립전쟁, 우리나라의 사일구 혁명에서 사람들은 정치적인 자유를 위해서 목숨을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경제적인 자유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돈이 있어야 병원도 가고 학교도 다니고 문화생활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돈이 있는 만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왜 공부합니까? 아는 것만큼 자유를 누리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누가 더 자유롭습니까? 생선의 무는 먹지 말아야합니다. 삼계탕의 대추는 먹지 말아야합니다. 물을 마신 후 커피를 마셔야합니다. 이런 지식은 건강의 자유를 줍니다. 의학이 발달하며 건강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러나 이것이 온전한 자유는 아닙니다. 요즘에 그리스는 정치적인 자유가 자나쳐 수십만 명이 데모를 하고 은행에 방화를 하여 3명이 죽었습니다. 자유가 혼란이 되었습니다. 돈을 열심히 벌었는데 돈의 노예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이 아는데 아는 것이 병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구속된 자유가 아닌 진정한 자유를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 말에 거하면)

3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믿은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말씀에 지속적으로 거하여 순종해야합니다. 그들이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하면 참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은 모든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초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큰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제자가 되려면 말씀에 거해야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32절을 보십시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말씀에 거하면 진리를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진리는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진리는 보편타당한 것입니다. 진리는 인생의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이론과 내용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명실상부한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영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주십니다. 죄와 죽음과 심판에서 자유를 줍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말씀에 거하면 진리 되신 예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들이 진리를 알게 되면 그들은 진리를 아는 만큼 자유를 얻게 됩니다. 거짓에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사탄이 주는 미혹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정신적인 자유)

3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무슨 자유를 주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들은 당시 로마 식민지 아래 있었습니다. 비씨 586년 바벨론에 의해서 남유다가 망했습니다. 그 후에 비씨 445년에 느헤미야에 의해서 이스라엘은 회복됩니다. 하지만 다시 그리스 시리아 로마에 의해서 점령을 당합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당시도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이때는 바벨론 시대처럼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고 자치 정부는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정부는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자유는 인정하여 주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분명히 다른 나라의 종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이 된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식민지였지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강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마음만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런 선민의식으로 정신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유는 이런 정치적인 자유나 정신적인 자유가 아닙니다.

(죄의 종)

3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여기서부터 유대교와 분깃점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도 행위로 의로워지려고 합니다. 그들은 죄인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죄로부터 얻는 자유를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죄의 본성이 있습니다. 교만하여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합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지 않지만 죄가 원해서 죄를 짓습니다. 담배에 중독된 자가 담배의 노예가 된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고자 하지만 선을 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내랴 사람이 죄를 범하면 죄의 종입니다.
뿐만 아니라 죄는 하나님 외에 우리를 구속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구속하는 것은 우리의 우상입니다. 담배는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거구의 인간에게 너, 피워라고 명령합니다. 인간은 꼼짝 못하고 자신은 원하지 않아도 담배를 피웁니다. 작은 소주 잔의 술이 명령합니다. 마셔. 인간은 이제 그만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십니다. 인간은 담배의 노예요. 술의 노예입니다. 사람들은 겜의 노예, 돈의 노예 쾌락의 노예, 자기 명예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이런 데서 자유를 얻으려면 이런 것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지만 다시 죄를 짓지 않으려면 더 큰 힘이 필요합니다.

(죄책감)

죄를 짓고 나면 죄가 주는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죄로 인하여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항상 인과응보적인 생각에 시달립니다. 죄로 인하여 죽고 심판을 받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갑니다. 죄를 지은 자는 자유가 없습니다. 창세기 통해서 요셉의 형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간첩으로 몰리고 그들이 가지고 간 자루에서 돈이 나옵니다. 요셉이 자신들을 대접하려고 집으로 초청합니다. 이런 모든 상황에서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과거에 요셉을 팔고 거짓말한 죄의식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사함을 받으면 은혜의 세계에 들어갑니다. 고난이 닥치면 고난을 정금같이 연단시키는 도구로 생각합니다. 빛나고 밝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들이 주는 자유)

35,36절을 보십시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종은 하나님 아버지 집에 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 집에 영원히 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버지 집에 거하려면 아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 종이 종을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아들은 종을 자유케 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실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피흘려 치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죄사함의 권세가 있으므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우리가 일제 식민지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보다 더 강한 연합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부활하여 죽음의 권세를 깨뜨렸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술과 담배와 쾌락에서 자유케 하시는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죄를 짓지 않게 하여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죄보다 더 큰 권세가 있으십니다.

(구속이 주는 자유)

우리가 자유를 얻은 후가 중요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이십니다. 창조주의 영이십니다. 영이 있는 곳에 자유롭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우리를 구속합니다. 피조물은 어떤 것이든 사람을 구속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려면 우리는 역설적으로 구속을 받아야합니다. 예수님 말씀에 구속을 받아야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거해야합니다. 거한다는 말은 지속적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연이 구속을 받아야 멀리 높이 날 수 있습니다. 고기가 물의 구속을 받아야 자유로워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예수그리스도의 귀뚫은 종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자원하여 예수님께 영원한 종이 죄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원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아멘!
요한복음 8장 강해 3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 요한복음 8장31-요한복음 8장 36
요절 요한복음 8장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강해 3부 끝입니다.


요한복음 8장 강해 사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말씀 요한복음 8장 37-요한복음 8장 59
요절 요한복음 8장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예수님을 핍박하는 유대인들에게 계속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음은 그들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이 시간 예수님을 우리의 그리스도로 믿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내 말에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37,38절을 보십시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유대인들은 계속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손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그들이 육신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지 않았습니다. 그들 안에 예수님이 거할 공간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속에는 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본 것을 말하고 아버지께 들은 것을 행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나님이 마음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영접지 않는 자들은 마음에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사단이 거하였습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자녀가 아니다)

39-41a을 보십시오.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그들은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의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서 사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이스마엘이나 에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취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자취를 따른 이삭과 야곱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어서 피해의식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 원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그를 의롭다고 여기십니다. 그 후에도 그는 이스마엘을 낳기 위해서 첩을 얻고 사고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자유를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대로 이삭을 주십니다. 그 후에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은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 외의 것은 포기할 수 있어야 자유로운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죽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말한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회개를 촉구하는 예수님을 죽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아브라함이 아닌 그들의 아버지 사단을 따라서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41b-43절을 보십시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유대인들은 음란한 데서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생아가 아니라고 합니다. 우상의 자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아버지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내셔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손이라면 그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유대인은 마귀의 자녀다)

44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예수님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도 아니고 하나님의 자손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은 마귀의 자손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마귀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어떤 점에서 마귀의 자녀입니까?

(욕심장이)

첫째, 마귀는 욕심장이입니다. 마귀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자극합니다. 유대인들도 욕심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명예욕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명예를 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보다 더 인정을 받자 그들은 시기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의 노예가 된 사람은 마귀의 종입니다. 그들은 물질에 집착하였습니다. 지나친 욕심에 매인 사람도 마귀의 종입니다. 먹는 것이나 사람들의 인정이나 쾌락적인 데 지나치게 집착하면 마귀의 종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 살면 자유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자)

둘째로 마귀는 사람을 죽이는 자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아담과 이브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도록 미운 사람이 있습니다. 행동 하나 하나가 미운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귀의 종입니다.

(거짓말쟁이)

셋째, 마귀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마귀는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과 달리 인간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도 예수님께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수호자처럼 거룩하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속으로 미움과 시기심이 가득한 자들이었습니다. 양의 옷을 입었으나 속은 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위선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거짓되었습니다.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의 모습과 하나님 앞에서의 모습이 다른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위선적인 자들은 마귀의 종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런 욕심과 미움과 거짓말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마귀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까?

(유대인은 진리를 말하는 데도 믿지 않는다)

45-46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진리 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깁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깁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참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하는데도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보다 거짓된 세상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진리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책임이 예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있습니다. 그들이 죄악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

4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끄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생각지 않으면 인간 편에서 생각합니다. 육신적인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사단의 말을 듣고 불신에 빠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하나님 편이냐 인간 편이냐, 성령 편이냐 육신 편이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 편에 서고자 결단해야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이 생기고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마음에 욕심이 사라집니다. 마음에 참 만족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다른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우리 마음에 사랑의 강물이 흐릅니다. 믿음이 생기면 우리는 진실해집니다.

(예수님에게 귀신들렸다고 합니다)

48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사마리아 사람이라 귀신들렸다고 욕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심한 욕입니다. 우리나라의 개XX라는 욕과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심하게 무시하였습니다.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49,5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예수님은 그들이 모욕해도 감정적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므로 사람들의 비난에서 자유로웠습니다. 사람들의 무시해도 화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판단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자유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 사람들의 인정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욕을 해도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칭찬을 해도 교만해지지 않는 사람이 자유인입니다.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51절을 보십시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두 번이나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면 진리를 알고 자유를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번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오빠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슬퍼 울었습니다. 예수님이 오빠를 고쳐주지 않으셨다고 원망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고 하자 두려워하였습니다. 이렇게 슬픔과 두려움은 죽음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이런 죽음을 맛보지 않습니다. 죽음의 권세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평안과 기쁨을 맛봅니다.

(예수님에게 아브라함보다 크냐고 물음)

52-53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죽고 모세도 죽고 모든 선지자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은 영원히 죽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믿는 자까지도 죽지 않는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크냐고 물어봅니다.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가 있다)

54,5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예수님은 자신을 증거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을 생각하고 사람들의 비난에서 자유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부르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면 예수님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증거는 참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는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증거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어떻게 죽음에서 자유를 주십니까?

(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느니라)

56-59절을 보십시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아브라함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즐거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오실 예수님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오십도 안 되었는데 어떻게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물어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온 진실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실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전부터 계신 창조주이십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계신 분이시므로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예수님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우리를 죽음에서 자유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죽어도 부활합니다.
우리가 살아서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습니다. 스데판처럼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마음에는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 넘칩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이 넘칩니다. 열두제자가 요한만 빼고 모두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순교할 수 있었습니끼? 그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죽음을 맛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59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신성 모독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성전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도 자유로운 참 자유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비난에서도 자유하였습니다.

(말씀의 노예가 되어야)

다시 3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죄에서 자유를 주십니다. 죄를 반복하여 짓지 않게 하십니다. 죄책감에서 자유를 주십니다. 마귀에서 자유를 주십니다. 우리를 마귀에서 자유를 주십니다. 욕심과 미움과 거짓말에서 자유를 주십니다. 죽음에서 자유를 주십니다. 슬픔과 두려움에서 자유를 주십니다. 다시 죄를 짓지 않게 하십니다.
누가 이 자유를 누린다고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입니다. 말씀에 노예가 되고 예수님께 노예가 되는 자입니다. 자유의 역설입니다. 자유는 예수님의 노예가 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마치 연이 끈에 매였을 때 자유로운 것과 같습니다. 마치 고기가 물에 있을 때 자유로운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아내 다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컴퓨터입니다. 거기에는 나의 모든 성경공부 자료들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요한이를 통하여 노트북을 선물로 받은 것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그런 컴퓨터를 도둑이 가져갔습니다. 그러나 그를 통하여 예수님을 더 사랑하였을 때 마음에는 자유함이 넘쳤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8장 강해 사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말씀 요한복음 8장 37-요한복음 8장 59
요절 요한복음 8장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8장 강해 사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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