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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요한복음 10장 강해 이부 예수님의 착한 양(22-47)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7-03-14 00:00:00
조회수 : 2,780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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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 강해 2부 예수님의 착한 양

말씀 요한복음 1022-요한복음 1042

요절 요한복음 1027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우리는 지난 주에 예수님이 선한 목자이심을 배웠습니다. 목자도 선한 목자가 있고 삯꾼이 있습니다. 선한 목자와 삯꾼은 평상시에는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이리가 오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목숨을 걸고 양들을 보호합니다. 그러나 삯꾼은 양도 자기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양들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그러면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헤칩니다. 선한 목자와 삯꾼의 가장 큰 차이는 이기적이냐 아니면 희생적이냐는 것입니다. 책임이 있느냐 무책임하냐는 것입니다. 순수하냐 이득을 바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 밑에 있는 양들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삯꾼 밑에 있는 양들은 불행합니다. 우리는 목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양들의 선한 목자가 되어야합니다.

 

(착한 양)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의 착한 양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선한 목자 밑에 있는 양들 중에도 착한 양이 있고 나쁜 양인 염소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를 구분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양들에게 복받은 자여, 예비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라고 합니다. 염소들은 저주받은 자여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염소가 되지 말고 예수님의 착한 양이 되어야 합니다. 착한 양은 염소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착한 양들이 받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착한 양이 될 수 있습니까?

 

(수전절)

 

22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렀는데 때는 겨울이었습니다. 외경에 의하면 주전 170년경에 시리아 왕인 안티우쿠스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에 와서 8만 명을 죽였습니다. 그는 율법책을 불살라 없앴습니다. 자녀에게 할례를 하는 어머니들을 다 죽였습니다. 이스라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갖다놓고 돼지를 잡아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말살하고자 하였습니다. 에피파네스의 학정을 견디다 못해서 주전 164년에 유다 마카비와 그 형제들이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되찾고 성전을 깨끗하게 청소하였습니다. 이 날을 기념하는 날이 수전절입니다. 우리 달력으로는 12월쯤으로 겨울입니다. 그들은 성전을 되찾은 것을 너무 감사하여 처마에 등을 달았습니다. 그래서 수전절을 빛의 절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성전의 파멸)

 

2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예수님께서 수전절에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거닐며 성전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카비 형제들이 찾은 이 성전도 주후 70년 디도 장군에 의해서 멸망 받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전에는 선한 목자와 착한 양이 있어야합니다. 그러나 목자와 양들이 타락하여 성전이 망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삯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자신들의 폭리를 추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에 도장을 찍어주고 비싸게 받게 하고 커미션을 취하였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강도의 소굴과 같이 만들었습니다.

양들은 염소같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많은 표적을 보이시고 말씀을 전했는데도 교만하여져서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판단하고 정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하나님은 이들의 죄악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멸망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멸망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런 심판을 피하려면 양들의 선한 목자가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의 착한 양이 되어야합니다. 그들은 수전절날 회개하고 선한 목자가 되고 착한 양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선한 목자 착한 양이 되어 다시 성전을 잃는 일이 없기를 바랐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유)

 

24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유대인들이 성전에 계시는 예수님을 에워싸고 물었습니다. “당신이 언제까지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분명히 말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왜 그리스도인지 불분명하게 말씀하셔서 우리를 햇갈리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직접 내가 그리스도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그리스도임을 깨닫도록 도우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그리스도라는 분이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예배에 대해서 말씀하실 것이라고 하자 네가 말하는 내가 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경된 자가 인자를 믿고자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보았고 너와 말하는 자가 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직접 내가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지 않았지만 상대방의 말을 통하여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시인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시자 예수님은 이를 네게 알게 하신 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셨어도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예수님에게서 찾았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문제를 예수님에게서 찾습니다. 교회에서 찾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예수님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증거하심)

 

2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이미 말씀하셨다고 하십니다.

첫째, 예수님이 말씀으로도 그리스도임을 증거하였습니다. 에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다. 라고 하시는 말씀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앞서 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고백을 통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무엇을 더 요구하느냐는 것입니다.

 

(행하시는 일로 증거하심)

 

둘째,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여섯 가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말씀으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시고, 38년된 병자를 고치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물위를 걸으시고,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이런 표적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어떤 학자가 예수님을 부정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는 먼저 분석하고자 하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에 대해서 연구를 하여보니 한 가지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분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은 미친 사람이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미친 사람은 엄청나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완전히 희생적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은 적어도 미친 사람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분석하여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학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기 위해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저자 요한이 요한복음을 쓴 목적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이 시간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라는 것을 고백하여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나 ( )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양이 아닌 자)

 

26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은 분명히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믿지 않는 이유가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양이 아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목자로 모시지 않았다는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목자로 모시고 그 말을 들으며 산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 대신에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목자로 모시고, 돈을 목자로 모셨습니다. 이런 것을 목자로 모신 것을 회개해야 예수님을 목자로 모실 수 있습니다. 요즘도 마찬가집니다.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텔레비전의 양이고, 돈의 양이고, 쾌락의 양이고 자기라는 우상의 양입니다. 돈이 되는 말은 아주 귀에 잘 들립니다. 돈의 양으로 사는 자들은 돈이 된다고 하면 그곳으로 우루루 몰려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양이 아닌 다른 것의 양으로 사는 것을 회개하고 예수님의 양이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의 양이 되어야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자)

 

27절을 보십시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예수님은 예수님의 양들이 갖는 두 가지 특징을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양들은 무기가 없습니다.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발톱도 없습니다. 앞발이 짧아서 빨리 도망가지도 못합니다. 넘어지면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위대한 장점이 있습니다. 무엇이라고 하였죠? , 귀가 발달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자)

 

요한복음 9장에 나온 소경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경은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이 자신을 사랑하는 음성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인자 곧 그리스도로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는 사람은 예수님의 양입니다. 38년 병이 들었다가 나은 사람이 한 한 가지는 바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그는 살아났습니다.

성경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게 느껴지는 사람이 예수님의 양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음성이 들립니다. 우리는 주일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목자를 신뢰하고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주위 사람들의 말을 통하여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타인의 음성을 들으면 도망가야 합니다. 절도나 강도의 말을 들으면 도망가야 합니다. 이단이 하는 말을 듣지 말아야 합니다. 죄를 짓자는 세상 친구의 말을 듣지 말아야합니다. 불신의 말을 하는 사람의 말은 듣지 말아야합니다.

 

(목자를 따르는 자)

 

둘째, 착한 양은 목자를 따라갑니다. 착한 양은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목자를 깊이 신뢰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나 따라갑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양은 그 기질이 착하여 순종하기를 좋아하고 청종에 익숙합니다. 목에다 칼을 대는데도 조금도 반항하지 않고 울음소리도 내지 않고 말없이 순종합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잠잠하였다고 하신 말씀은 이것을 두고 하신 것입니다.

양을 치다 보면 양과 염소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겉은 양인데 속은 염소들이 있습니다. 염소는 불순종과 반역의 기질이 강합니다. 성경에서 염소는 반역의 상징으로 그려집니다. 외모도 다릅니다. 양은 뿔이 없습니다. 있어도 아주 작게 퇴화되어 있습니다. 염소는 뿔이 있습니다. 양은 목자에게 대적하지 않으나 염소는 뿔로 목자를 들이 받습니다. 양은 숫양도 수염이 없습니다. 그러나 염소는 수염이 있습니다. 수염이 뻣뻣하고 길고 질깁니다. 수염은 권위를 나타냅니다. 염소는 교만합니다. 항상 대적합니다. 그러나 양들은 유순하게 말을 잘 듣습니다. 우리는 염소가 되지 말고 양이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잘 듣고 목자의 음성을 잘 들어야합니다.

 

(착한 양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은 하나님의 착한 양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든지 항상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외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까지 순종하였습니다. 베드로와 12제자도 좋은 양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나를 좇으라고 하시자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부활 후에는 어떤 분이 오셔서 배오른 편에 던지라고 하자 그대로 순종하여 그물을 배오른 편에 던졌습니다.

그러나 염소 같은 양들도 있습니다. 고라와 유명한 자 250명이 반역을 하였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사건건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습니다. 이들은 양과 같지만 염소 같은 자들입니다.

 

(영생을 주심).

 

28,29절은 예수님께서 양들에게 주시는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첫째, 예수님은 영생을 주십니다. 우리 마음 속에 성령을 주십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은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마음에 성령 안에서 자유와 기쁨과 평화를 맛보며 살아갑니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하나님 나라입니다. 행복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영생을 받은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경쟁 사회에 살면서 망할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님이십니다. 영원 무궁히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목자로 모시고 있다면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미래는 점점 번성하고 강성해지고 왕성해집니다.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습니다. 예수님의 양은 누구도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에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갑니다. 우리의 목자 예수님은 강하므로 예수님이 주신 생명을 아무도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행복하게 살아도 이 세상의 삶은 이러나저러나 한 세상입니다. 뉴스 위크지에 보면 22세기에는 우리의 신체를 바꾸는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눈이 나쁘면 눈을 빼고 다시 다시 끼울 수 있다고 합니다. 위가 좋지 않으면 위를 다시 끼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장기를 사용하겠느냐는 질문에 오십 프로만 찬성했다고 합니다. 젊어서도 하지 않은 고생을 왜 늙어서까지 하겠느냐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아니라 죽은 후에 새로운 생명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새로운 몸, 썩지 않는 몸으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양은 이런 생명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29절을 보십시오.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때로는 도둑과 강도가 양들에게 옵니다. 때로는 늑대와 여우가 옵니다. 이들은 양들의 생명을 멸망시키고자 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손에서 양들을 빼앗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만물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크고 강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능력의 손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만물보다 크시며 예수님도 만물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누구도 예수님이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사단도 사망과 죄도 우리를 예수님에게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호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결코 놓지 않으십니다.

 

(한경직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이 북한에서 목회할 때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목회를 하다가 너무 낙심이 되어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목회를 그만 두어야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기도하다가 엎어졌습니다. 그는 황량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힘들어 오른쪽으로 쓰러졌습니다. 그러자 어디서 큰 손이 나타나서 자신을 일으켰습니다. 또 한참을 가다가 왼쪽으로 넘어졌습니다. 그러자 다시 큰 손이 나타나서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또 한참을 가다가 앞으로 고꾸라졌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두 손이 나타나서 그를 일으켰습니다. 그는 깨어나 보니 생시도 아니고 꿈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는 이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보호해주시는 속에서 목회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손으로 자신을 보호하시는 것을 깨닫고 믿음으로 훌륭한 목회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양들을 보호하여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잘 따르기만 하면 아무도 우리를 헤칠 수 없습니다. 문을 잠그지 않아도 평안하게 잘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

 

30절을 보십시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삼위일체 사상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석가도 공자도 마호멧도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돌로 치는 자들)

 

31,32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예수님이 자신과 하나님이 하나라고 하자 유대인들은 다시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많이 하였는데 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선한 일 때문에 돌로 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사람으로서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말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사람인데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신성 도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많은 표적을 통해서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므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신성모독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야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율법에서 신이라고 한 사람들)

 

33-3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예수님은 구약 말씀에 기초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시편 826절의 말씀에 기초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재판장은 전능자와 같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6장에서도 보면 셋의 아들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인의 아들들을 사람의 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바로에게 하나님과 같이 높여주셨습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받고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하나님이라고 하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높여주셨습니다. 이사야의 기도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바리새인들도 자신들의 아버지는 귀신이 아니고 아브라함이고 하나님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36절을 보십시오.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여 보내신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자신을 영접한 자는 하나님이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모두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로 높여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높여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양들을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십니다.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됩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다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불교나 천도교는 인내천이라고 하여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완전히 부패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양자의 영을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해주십니다.

 

(예수님 양의 특권)

 

우리가 예수님의 양이 되면 왜 이렇게 좋은 데 예수님의 양이 되지 않고자 하십니까? 예수님은 다시 한번 예수님의 양이 되도록 유대인들을 초청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양이 될 수 있는가 말씀하습니까?

 

(아버지의 일을 행하신 예수님)

 

37-39절을 보십시오.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으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아버지의 일을 하면 말을 통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해도 그 일은 믿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썩어서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보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것을 믿으면 우리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믿으면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계시고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신 것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많은 표적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서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손을 벗어나서 나가셨습니다.

 

(요한의 영향력)

 

40-42절을 보십시오.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예수님은 다시 요단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주던 곳에 가서 거기 거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이 가르켜 말한 예수님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한 사람 세례요한의 영향력으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빌리그래힘이나 조용기 목사 이사무엘 선교사의 증거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증거하시는 그 증거자를 통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수 있습니다.

 

(착한 양이 되자)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축복을 얻으려면 우리는 예수님의 착한 양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양이 되어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예수님의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생을 주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아멘1

요한복음 10장 강해 2부 예수님의 착한 양

말씀 요한복음 1022-요한복음 1042

요절 요한복음 1027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한복음 10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37 [요한복음] 요한복음 12장 강해 이삼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12-26) 오요한 2007-07-16
36 [요한복음] 요한복음 12장 강해 일부 사랑의 허비 (1-11) 오요한 2007-06-22
35 [요한복음] 요한복음 11장 강해 이삼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보리라(28-57) 오요한 2007-03-14
34 [요한복음] 요한복음 11장 강해 1 부 죽음은 잠이다 오요한 2007-03-14
33 [요한복음] 요한복음 10장 강해 이부 예수님의 착한 양(22-47) 오요한 2007-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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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요한복음] 요한복음 8장 강해 이부 세상의 빛 예수님(12-30) 오요한 200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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