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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주제강의 사강 메시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1-07-06 00:00:00
조회수 : 1,036
2011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 2011. 7. 10.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말씀/마가복음 15:1-47
요절/마가복음 15:34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2000여 년 전 중동에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서 33세의 한 청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 인류역사는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청년은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신 예수님이십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이 고통스러운 죽음 뒤에 숨겨진 참 진리는 무엇인지를 여러분과 제가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체포당하시고 공회에서 철야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 죄로 몰아 십자가형을 언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로마 식민 통치하에 있었으므로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의 법을 빌어 예수님을 죽이고자 새벽에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1). 유대인들만의 공회에서는 예수님을 신성모독 죄로 정죄했으나, 로마의 정식법정에서는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하면서 공공연하게 로마 황제에게 반역한다는 정치적인 명목을 내세워 고소했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 질문은 유대인들의 고소가 사실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네 말이 옳도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을 비롯한 온 공회에서 자신이 유대인의 메시야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 대답에 대재사장들이 격분하여 예수님을 율법을 어기고, 백성들을 미혹케하며, 나아가 로마 황제께 바치는 세금을 금하였다는 반역의 죄까지 몰아갔습니다. 빌라도는 다시 예수님께 묻습니다. 저들이 말하는 게 모두 사실인가? 그러나 예수님은 이번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혹독한 형틀에 달리기까지 오직 내가 너희 인류를 구원하러 온 메시야라는 분명한 진리의 말씀만을 선포하셨습니다.

빌라도는 또다시 예수님께 변론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4~5절 말씀을 보십시오. 빌라도는 예수님께 뭐라고 좀 말해보라! 저기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돌이킬 수 없이 큰 죄를 지었다고 하는 구나! 뭐라 좀 변명을 해 보아라! 그러나 예수님은 이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예수님의 태도를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이 때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해 이미 많이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고소하는 사건은 굳이 로마법정에서 다룰 정도로 큰 문제라기보다 유대인들만의 종교적인 문제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유대의 기득권층이 백성들에게 민심을 얻은 신응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꾸민 사건정도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유대인의 종교적이며, 그들만의 정치적 이슈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좋은 아이디어를 하나 냈습니다.

당시에는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구하는 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이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석방코자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최근 민란을 꾸미고, 민란 중에 살인한 바라바를 무리 앞에 세우고, “자! 이 둘 중에 누구를 놓아주랴?”라고 무리들에게 물었습니다. 빌라도는 민란을 주도하고 사람까지 죽인 바라바를 죽이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빌라도의 예상과는 달리 온 무리들은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이미 백성의 민심이 예수님께 향하고 있음을 감지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허울뿐인 자신들의 입지가 드러나 모든 기득권을 잃어버릴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따라서 대제사장들은 궁중들을 충동하고 매수하여 민란의 수괴인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외치게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이런 군중의 의외에 반응에 놀랐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는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으냐?” 그러자 충동된 군중들은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죽여라, 죽여!” 노도와 같은 군중들의 외침 소리로 인해 빌라도에게 두려움이 엄습하였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한 번 더 군중을 설득하였습니다. “여기 서있는 예수가 도대체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죽이기까지 하느냐?” 이제 이만하고 풀어줍시다”라고 군중에게 동의를 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매수된 군중들은 더욱 소리를 높여 “십자가에 못 박아라! 못 박아!”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습니다. 별거 아닌 일로 생각하고 대충 마무리하려고 했던 일이 민란까지 일어날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로 흐르자, 뒤로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래서 물을 가져오게 해서 군중들 앞에서 손을 씻은 후,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나는 무죄하니 이제로부터 하는 모든 일은 너희에 몫이다!”라고 한 후 바라바는 석방하고, 예수님은 채찍질을 한 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성난 군중에게 예수님을 넘겨주었습니다.(마 27:24) 빌라도의 법정 판결자로서의 양심의 소리는 예수님이 죄가 없으니 방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 총독으로써 민란을 다스려야하는 임무 앞에서 한 생명 정도는 쉽게 맞바꿀 수 있었던 무자비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얄팍하게도 양심의 가책을 벗어나고자 예수님의 피는 자신과 상관없다고 선언하는 비겁한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군병들에 이끌려 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로마 군병들의 채찍은 여섯 가닥 정도의 가죽 띠를 묶은 것으로서 가죽 끝에는 날카로운 쇳덩이나 뼛조각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채찍에 맞으면 피가 튀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고, 심지어는 채찍에 맞다가 갈비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파열되어 죽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채찍을 수십 번이나 맞으셨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나무틀에 묶었습니다. 군병 두 사람이 양쪽에서 무자비하게 채찍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채찍이 허공을 가르며 예수님의 등을 후려쳤습니다. 고통스런 신음 소리와 함께 예수님의 등에 골이 패이고 피가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피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채찍이 등을 할퀴고 지나갔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유혈이 낭자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질의 고통과 충격 때문에 잠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러면 군병들은 물을 끼얹어서 정신을 차리게 한 후 더 세게 채찍질하였습니다. 군병들은 채찍질이 끝나자 이제는 예수님을 희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왕이 입는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면류관을 씌웠습니다. 그리고 갈대로 내리 쳤습니다. 그러자 날카로운 가시가 예수님의 이마를 뚫고 들어갔습니다. 고개 숙인 예수님의 얼굴에는 한줄기 두 줄기 피가 흘려 내렸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찌어다.” 라고 조롱하며 머리를 치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꿇어 엎드려 절하며 히히덕거렸습니다.

예수님은 만신창이가 된 몸에 이제는 십자가를 져야 했습니다. 죄수들은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경계가 되도록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70kg이나 되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하셨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뼈마디가 쑤시고, 어깨는 으스러지는 듯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마에서는 피와 땀이 뒤섞여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비틀거리며 언덕을 오르시다가 쓰러지셨습니다. 그러면 군병들의 채찍이 예수님의 등을 내리쳤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일어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 쓰러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몇 번이나 일어나 쓰러지고 또 쓰러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 그 길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이었습니다. 골고다의 거친 언덕 길, 그 길은 예수님의 피와 땀과 눈물이 얼룩진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 주시길 그렇게도 원하셨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수없이 쓰러지신 후 더 이상 일어설 기력조차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군병들은 옆에 있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끌어다 대신 십자가를 지게 하였습니다. 그는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이로 인해 후에 그와 그 집안이 다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쓰임 받는 놀라운 은혜를 덧입게 되었습니다.(롬16:13) 마침내 예수님은 해골이라는 골고다 언덕에 이르렀습니다. 군병들은 마취제인 몰약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다 받고자 하셨습니다.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마침내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형은 인류가 만들어 낸 형벌 중에서 가장 악독한 것입니다. 로마의 역사가인 타키투스 조차도 십자가형이야말로 가장 야비한 형벌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 당장에 죽지 않고 처절한 고통을 맛보다가 피를 다 쏟고 기아와 갈증으로 죽게 됩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죽기까지 수없이 까무러친다고 합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양 손과 두 발에 길이가 18cm, 둘레가 7cm나 되는 굵은 대못을 박았습니다. ''''쾅! 쾅! 쾅!'''' 망치 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 쳤습니다. 손목과 발목에는 모든 신경과 혈관이 모여 있기 때문에 신체 중 가장 예민한 곳입니다. 대못이 예수님의 손목을 관통하여 나무에 박힐 때 혈관이 터져 피가 쏟아졌습니다. 신경들이 자극을 받자 온몸이 전율하였습니다. 몸에서 피와 물이 빠져나가자 갈증 때문에 입천장이 갈라지고 목구멍이 바싹 바싹 타서 숨쉬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그 고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습니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시22:14,15).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고, 참 생명과 자유와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 모든 고통을 다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좌우편에는 강도들이 함께 못 박혔습니다. 예수님은 흉악한 강도 중 하나 같이 여김을 받으셨습니다.



29절~32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번엔 지나가던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모욕하였습니다.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시편 22:6절 말씀은 조롱 받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벌레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성한 벌레가 아니라 피투성이 벌레가 되었습니다. 대제사장들도 예수님을 모욕하였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를 구원할 수 없도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를 보고 믿게 할찌어다.” 이것은 예수님의 감정을 건드려서 십자가를 지지 못하도록 하는 사단의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33절~34절 말씀을 보십시오. 제 6시 곧 낮 12시가 되자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9시 곧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하늘도 슬퍼하고 땅도 슬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여섯 시간 동안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당하신 후 큰 소리로 절규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은 빌라도의 내가 유대인의 왕이냐? 라는 질문에 “네 말이 옳도다“라는 짤막한 대답만을 남기시고, 그 어려운 고통의 순간을 겸허히 맞이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 직전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짧지만 처절한 한마디를 남기셨습니다. 버림받는 것처럼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과 사랑으로 섬긴 이들에게 버림받으셨습니다. 이기적인 빌라도와 군병으로부터 또 시기심에 눈 먼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버림받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저 버림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버림받는 것이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버림을 받으셨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고난 받으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죄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으십니다. 바로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입니다. 죄가 있으면 버림받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때는 사단이 우리와 함께 합니다. 우리의 삶이 비참하고 슬픈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고 사단이 우리와 함께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하는 일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슬프게 하며 결국은 우리의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죄 짐을 담당하시고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버림 받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자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참 자유와 평안과 기쁨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았을 때 저의 삶도 버림받은 인생과 같았습니다. 저는 1971년 전북 임실에서 2남 5녀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하지만 성실한 농부이신 부모님과 형제들의 사랑 속에서 문제없이 자랐지만 중학교 철이 들 무렵에는 고생하시는 부모님에 대한 연민과 장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로 ‘성공’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꼭 성공하여 부모님의 인생도 보상해드리고 행복한 인생 살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수재’ 소리도 듣고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고학년이 될수록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은 삼수 끝에 숭실대 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입학의 기쁨도 잠시, 대학의 낭만은 뒤로하고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건설잡부, 독서실 총무 등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했습니다. 또 안정된 삶과 인생의 성공을 위해 ‘행정고시’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준비하기 위해 행정학과로 전과하였습니다. 그러나 첫 시험을 본 후 이는 내가 오르지 못할 나무임을 깨끗이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끊임없이 독려하고 통제하며 열심히 달려왔지만 내면은 상대적인 박탈감과 외로움, 내가 꿈꿔 왔던 삶을 이루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절망으로 고통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은 과 조교를 통해 찾아 오셨습니다. 교회에 처음 가게 되었고 말할 수 없는 위로와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한일서 416)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사람의 사랑에 갈급하였고 저를 인도한 과 조교를 좋아하였고 결혼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목표인 ‘성공’은 뒤로하고 자매의 사랑을 얻고 잘 보이고자 애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가진 것이 없고 믿음도 약한 제가 자매의 결혼 상대가 될 수가 없었습니다. 졸업 할 즈음에는 imf로 취업도 불투명하였습니다. 결국 자매에게 거절 당하자 말할 수 없는 절망감과 배신감이 밀려왔고 결국 교회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자매로부터 세상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자신은 이제 혼자였습니다. 또 다시 성공과 인생 역전을 꿈꾸어야 했습니다.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주식투자였습니다. 시작한지 6개월만에 2억을 벌고 기고 만장해져 ‘새 차’를 뽑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1년도 안되어 수천만 원이 넘는 빚으로 되돌아 왔고 당시 벤처기업에 다니던 저로썬 감당할 수 없는 무게였습니다. 또다시 모든 것을 잃고 희망 없는 상태가 되자, 쓰디쓴 절망의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어느새 결혼 할 나이가 되었지만 있는 것은 감당키 어려운 빚과 옥탑방에서의 비참하고 외로운 삶 뿐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이런 저도 이해하고 받아 줄 믿음 좋은 자매를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의 절박한 기도를 들으셨고 기적적으로 안성센터의 장미영 목자님을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던 제게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사랑스럽고 예쁜 두 딸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이런 것이 구나 날마다 감사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동역자에게는 결혼후 주식을 절대로 다시 하지 않기로 약속하였지만 계속 주식을 하였고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가장으로서 강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꼈던 저는 더욱 주식에 몰두 하였습니다. 주가가 오를 때는 집에서 고기 파티가 벌어졌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살림을 못한다고 동역자에게 짜증을 내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연년생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쁜 동역자는 그런 저의 내면을 알지도 못했고 제가 주가를 살피기위해 회사에 일찍가면 열심히 일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둘째가 태어날 즈음 친정 근처로 이사할 즈음에는 동역자 몰래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전세금을 주식에 올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가는 오르기는 커녕 마이너스로 떨어지기만 했습니다. 그 당시 아이들이 2살에서 4살 한참 재롱을 부리고 예쁠 때였으나 저의 내면은 떨어지는 주가처럼 죄의식과 불안감으로 한없이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와 가정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때에 안성센터로 인도하셨습니다. 뭔가 불안함을 느꼈는지 말씀에 갈급했던 동역자는 안성센터로 가자고 다시 사명을 좇아 살고자 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 이사 조차 할 수 없었던 저는 져주는 척 집값이 싸고 안성에서 가까운 평택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서울로 출근하려면 두시간 가까이 걸렸지만 사방이 논과 밭으로 탁트인 전망과 전원생활이 복잡한 저의 내면을 위로하고 안정을 주었습니다. 영적인 환경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느날 주가를 살피던 저를 동역자가 발견하였고 추궁하였습니다. 솔직히 토로할 수 밖에 없었고 동역자는 힘들어 하였습니다. 그리고 2009년 여름수양회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말씀을 섬기며 자신의 잘못된 물질관을 인정하고 회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요한 목자님은 주식을 정말 끊었냐 몇 번이고 물어보셨고 그렇다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저는 주식을 끊지 않았습니다. 동역자에게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오천이 넘는 빚을 직장 월급으로 도저히 감당히 안 될 것 같았고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믿음 없는 죄인은 감히 수양회때 하나님 앞에서 또 동역자들 앞에서 거짓으로 회개하는 척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작년 2월 동역자를 통해 다시 드러내셨습니다. 동역자는 배신감으로 놀라고 힘들어 하였습니다. 저는 회개하기보다 센터 동역자들에게 말하면 센터에 나가지 않겠다고 협박하였습니다. 죄인이 참으로 파렴치한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반복하여 십자가에 못박고 희롱한 군병과도 같았습니다. 거짓과 자기 성실과 의로 예수님을 욕보인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힘든 죄인도 오래참고 인내하셨습니다. 때마다 말씀으로 돕고 감당하여 주셨습니다. 동역자를 통해 말씀을 주시고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모든 것이 탄로난 죄인은 삶의 동반자 같았던 주식을 끊고 동역자의 말을 듣고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동역자를 통해 마태복음 6: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을 주시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사명을 앞세우도록 또 믿음으로 열심히 일하도록 도우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축복하시기 시작하였습니다. 2년만에 오천이 넘는 빚을 갚고 생각지도 못하게 작년엔 좋은 아파트로 이사하였습니다.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일을 잘 감당케하셔서 올 초엔 직장에서 ‘최우수 사원’으로 뽑히기도 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여러 사업의 기회를 주시고 물질의 축복을 주고 계십니다. 요즘엔 차고도 넘치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감사케 됩니다. 뿐만아니라 영적으로도 풍성히 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케 됩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죄인을 특송으로 대표기도로 하나님 역사를 섬기게 하시고 또 푸른초장 요회 목자로 세우시고 동역자와 함께 김용훈 은정태 정다현 양들을 섬기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2009학번 김용훈 형제님은 아쉽게도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갔지만 무디 목자님과 동역자에게 자주 전화를 하고 휴가때마다 센터에 와 함께 예배드리고 믿음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군 제대 6개월 전부터는 담배를 끊고자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 부담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형제님이 계속하여 말씀과 사랑으로 변화되고 에수님의 제자요 중대에 캠퍼스 목자로 성장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로인해 힘들고 절망스런 삶을 살던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에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속하신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자기 의와 성실, 정욕과 거짓으로 버림받을 인생을 예수님께서 버림받으시고 찢기시고 피흘리심으로 죄인에게 새생명과 새 인생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자유와 평안을 얻게 하시고 실패를 승리로 바꾸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인도 남은 인생을 과거 저와 같이 죄로 방황하며 힘들게 사는 캠퍼스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며 말씀으로 돕고 섬기는 목자의 인생을 살겠습니다.

결론: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롬5:8)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아가 죄 짐을 벗어 버리고 죄 사함의 은혜를 덧입고 자유와 평강이 넘치는 복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일생 십자가의 증인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가복음 15장 34절 : “제 구 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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