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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주제 일강 메시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1-07-05 00:00:00
조회수 : 1,047
여름수양회 주제 1강 메시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요한복음 8:1~11(11)

전에 한 형제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목자님도 MT 가 보셨어요?” 당연히 저도 대학 다닐 때 MT를 가본 적이 있어서 “그럼요 몇 번 가봤죠.”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형제는 실실 웃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도 MT 안 가면 바보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MT가 제가 생각했던 Membership Training이 아니라 MoTel의 약자였습니다. 깜짝 놀라자 뭐 그런 것 같고 그러냐며 오히려 저를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았습니다. 요즘 주변에 남친 여친 생기면 모텔 가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분들은 아직도 MT가 그 약자인 줄 몰랐나?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요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시대가 음란하고 우리 가운데 죄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말씀에서는 간음죄를 지은 한 여인이 나옵니다. 그녀는 죄인이었지만 흠없이 깨끗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함부로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우리 안에 있는 죄 문제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죄사함의 확신을 갖길 기도합니다.

제일장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당시 배경은 초막절 행사가 끝난 직 후입니다. 초막절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장막생활을 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한 유대인의 명절입니다. 사람들은 초막절 분위기에 취해 마음껏 즐기다가 명절이 끝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소 습관처럼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쉬기도 하시고 기도하시며 힘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던 산이기도 합니다. 아침이 되어 예수님은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셔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명절 축제 후 사람들은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고 공허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말씀만이 마음의 기근을 채울 수 있습니다. 참 만족을 줍니다. 이른 아침부터 말씀을 들으러 나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꿀처럼 달콤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 때 이 좋은 분위기를 깨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등장했습니다.

3절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항상 예수님을 주시하고 죽이고자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누군가를 하나 더 데리고 왔습니다. 바로 음행 중에 잡힌 여자였습니다. 여자의 모습은 비참했습니다. 죄를 짓다가 잡혀서 얼굴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옷도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고 함께 죄를 지은 남자는 도망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찾기 위해 그 미끼로 밤새 죄 짓는 사람을 찾아 다녔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부지런 한 것 같기도 합니다. 밤새 잠도 안자고 눈에 불을 켜고 죄인을 찾아 다녔으니 말입니다. 결국 이 여자를 끌고 와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신성한 성전 한 가운데에 세웠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말씀을 전하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사람을 미끼로 삼는 악한 모습입니다.

4~5절입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간음죄는 하나님께서도 분명히 구별하신 심각한 죄였습니다. 십계명 중 7계명에서 간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레위기 20장 10절을 보면 간음한 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한 의도가 무엇입니까?

6절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 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땅에 쓰시니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돌로 치지 말라고 하면 간음한 자를 돌로 쳐서 죽이라는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꼬투리로 예수님이 십계명을 어겼다고 체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돌로 치라고 하면 예수님이 사랑 없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평소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죄인을 돌로 치면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과 어긋나게 행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유대인은 사형집행권이 없었습니다. 유대인인 예수님이 사람을 죽이라고 했다며 살인 교사죄로 체포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도 저렇게 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정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지혜를 이용해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악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최고 계명은 사랑이지만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도 않았고 사랑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죄에 눈이 멀면 사단의 자식이 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의외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대적하거나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아무 동요도 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이 상황 앞에 매우 감정이 격앙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하실지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간음한 여자를 수군수군 욕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라도 떨어지면 당장 간음한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고자 흥분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잠잠히 행동하시니 사람들도 감정이 좀 가라앉았습니다.
저는 어린이집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과 있다보면 정말 나도 몰랐던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튀어 나올 것처럼 감정이 격해 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여러 번 제 안에 제가 나올 뻔 했습니다) 그럴 때 “선생님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지!”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면 아이들도 같이 흥분을 합니다. 오히려 물을 한 잔 마시고 잠깐 창 밖을 바라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감정도 조절됩니다. 예수님은 땅에 글씨를 쓰심으로 그들이 군중심리에 흥분하지 않고 이성을 가지고 생각할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땅에 무슨 내용을 쓰셨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학자들의 추측에 따르면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썼거나 성경 말씀을 썼다고도 합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죄목을 하나하나 쓰셨다고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는 것에 궁금증이 생겼고 서로 보고자 하였습니다.

7~8절입니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사람들은 예수님이 대답을 안 하시자 묻기를 마지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실지 궁금해서 참지를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땅에 쓰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을 주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라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분명히 분노해야 합니다. 책망도 해야 합니다. 여인은 분명히 크고 악한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간음한 자는 십계명과 레위기 말씀을 통해 돌로 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간음이 심각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간음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부부가 아닌 모든 성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혼을 했어도 결혼 전에 성관계를 맺으면 간음입니다. 말씀에 나오는 여자도 분명 간음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죄를 지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초막절 축제 분위기로 마음이 들떠 있었습니다.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엄격하고 율법적인 사회여서 함부로 죄를 짓기 어려운 환경 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죽음을 알면서도 죄의 쾌락과 본성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보통 대학 축제 때 술을 마시고 즐기다 보면 그 분위기로 인해 죄를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은 영상매체의 영향이나 문화로 죄를 짓기도 합니다.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려고 클릭 했는데 뉴스는 가운데에 몇 줄만 나오고 양 사이드로 민망한 사진들이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듭니다. 메일을 열면 정작 중요한 메일은 몇 개 없고 오빠 나 오늘 준비 끝났어요~지금바로 클릭~같은 스팸 메일이 잔뜩 들어와 있습니다. 거리를 나가면 자매님들의 일명 하의 실종 패션이 시선을 자극합니다. 형제들은 특히나 시각에 약한데 걱정이 됩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호기심이나 본성적인 욕구로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번 죄와 타협하면 죄에 사로잡힙니다. 빠져 나오고 싶어도 빠져 나올 수가 없을 만큼 강렬하여 나중에는 죄가 우리를 끌고 다닙니다.

또한 간음죄는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사회적으로는 가정이 파괴되고 자녀들은 상처를 받습니다. 낙태와 같이 생명을 죽이는 일이 생깁니다. 교회 안에서 간음죄가 일어나면 교회 공동체가 파괴되고 성도들이 흩어집니다. 학생들은 간음죄 이후에 죄의 소욕으로 지혜를 빼앗기고 분별력을 상실합니다.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사람이 무기력해집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간음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6장 19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은 하나님의 전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죄가 있으면 성령께서 떠나시게 됩니다. 간음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형상을 잃게 하고 성령을 소멸시킵니다. 구약 말씀을 보면 비느하스는 간음한 남녀를 창으로 찔러 백성들에게 내려진 염병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로 인해 불과 유황으로 심판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성적으로 타락하면 반드시 심판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서는 음행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죄 없는 자만이 돌로 여자를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 있는 인간이 죄인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 중에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모든 죄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여자처럼 간음을 하고 행위로 지은 죄만 죄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 28절에서 예수님은 마음에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입니다. 죄인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면 자신도 정죄 받습니다.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자신을 죄 없는 자로 여기는 교만입니다. 우리는 정죄하고 판단하기보다 사랑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물론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 편에서 분명히 책망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알게 모르게 서로를 정죄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교회 다녀도 다 똑같던데 뭐..라는 말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 하나님 믿는 사람도 다른 사람 헐뜯고 비방하고 싸우는 것은 다 똑같다는 말입니다.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이 그런 것이 싫어서 자기는 교회 안나간다고 합니다. 전에 회사에 다닐 때 과장님은 자기는 죽어도 절대 교회에 나가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치를 떨었습니다. 그 이유는 어린 시절 주일 학교를 다닐 때 심한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돈이 없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다 그 과장님을 의심했고 목사님마저도 어린 애가 벌써부터 돈을 훔치냐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었습니다. 큰 상처를 받아서 그 때부터 교회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보니 그 돈은 다른 사람이 가져간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싸움이 있고 서로를 헐뜯고 비판하는 모습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나를 살펴보면 나도 똑같은 죄인입니다. 나는 그래도 좀 낫지..라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큰 죄든 작은 죄든 하나님 앞에서는 어차피 다 죄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면 나도 언젠가 그렇게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죄하기보다 죄에 대해서는 분명히 회개하도록 돕고 용서와 사랑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제이장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9절입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꼈습니다.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그 자리를 나갔습니다. 말씀을 듣자 얼어 있던 그들의 양심이 되살아났습니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군중심리에 사로 잡혀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말씀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좌우로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자리 잡고 있던 죄에 정확히 명중하였습니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도 항상 말씀 앞에서 나를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죄를 짓고자 하는 죄성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겉으로는 경건하고 율법대로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속으로는 한번이라도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달을 때 함부로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10절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예수님은 여자에게 너를 고발하고 정죄하던 자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죄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 앞에서의 문제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깨지는 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숨기면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같은 죄인인 사람들은 그 누구도 여인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발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11절 전반부를 보십시오.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으시므로 여자를 정죄하실 수 있습니다. 너를 지옥 불에 던져 넣겠다 말씀하셔도, 여자에게 돌을 던지셔도 아무 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선포는 죄를 눈감아 주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간음죄를 지은 자는 벌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것도 같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 하실 수 있는 것은 여자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이요, 굴욕이요, 수치입니다. 하지만 여자를 사랑하셔서, 죄악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가십니다. 내가 어떤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이라도 다 용서하십니다.
이사야 43장 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묻지도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어떤 죄라도 다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제삼장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11장 후반절 입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님은 죄사함 후에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새 삶을 살도록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한번에 죄의 습관을 끊어 버리기는 힘듭니다. 시대가 음란하고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욕의 죄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지을 수 있습니다. 젊은 청년들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이 되고 목자가 되어도 죄의 소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죄를 짓지 않도록 더욱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같은 죄를 반복하는 것은 또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입니다.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 죄를 범하면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또한 경건에 이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여자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과거의 여자는 죽고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힘들고 한계가 느껴집니다. 죄사함 받았다고 곧바로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시편 119편 9절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죄 앞에서 한 걸음 멈추어 뒤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다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만듭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죄의 소욕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1983년 9월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7살 때까지 부산에서 살다가 천안으로 오면서 어머니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전에 안하던 농사일로 매일이 고단하고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인해 하루하루가 지옥 같이 변했습니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기 시작하면 도끼와 낫을 들고 어머니와 저를 죽이겠다고 &#51922아 다녔습니다. 밤에는 잠을 못 자게 해서 밖에서 동생과 쪼그려 자다가 그대로 아침을 맞기도 했습니다. 점차 동생과 저는 작은 소리에도 쉽게 놀라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예민해졌습니다. 또한 저는 굉장히 이중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어머니와 선생님 앞에서는 정말 착하고 성실하고 완벽한 딸이었지만 속은 바리새인과 같이 썩어서 냄새가 났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빨리 아버지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주무시는 아버지를 보며 죽이는 상상도 했습니다. 학교에 가면 작은 일에도 신경질을 내며 거친 욕을 했습니다. 빨리 돈을 벌어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엄마와 동생을 데리고 나가겠다는 생각으로 고3때 취업을 했습니다. 회사에서도 저는 어리고 착하고 순진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상사들을 비웃고 욕했습니다. 항상 제 안에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내 환경에 대한 불만이 뒤엉켜 우울하고 슬픈 생각이 가득 했습니다.
이런 저를 어렸을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란 동생이 ubf 예배에 데리고 왔습니다. 처음에는 아는 선배 오빠를 소개 시켜준다고 소개팅을 제안하더니 곧바로 예배에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UBF에 빠르게 적응해가며 목동이 되고 회사를 그만 둔 후 백석대 유아교육과에 입학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대학 내내 장학금을 주시며 많은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졸업 후 4년 동안 일하다가 작년 한 해 휴직을 하고 센터에 살며 인턴 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는 해결되지 않은 죄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아버지를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꿈속에서 여전히 아버지는 혈기 왕성한 30대의 모습으로 나를 죽이겠다고 &#51922아 다녔습니다. 악몽을 꾸면 또 다시 아버지가 밉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인턴을 하며 많은 것들을 보게 되면서 판단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주의 종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지고 함부로 그 분들을 정죄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중적이고 가식적인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자책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셔서 기도하는 가운데 깊은 위로를 주시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아버지와 목자님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 마치 간음한 여자를 가운데 두고 돌 던질 준비를 하는 내 모습 같았습니다. 겉은 깨끗해 보이지만 나도 간음한 여자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가 되었습니다. 사단은 아버지를 통해 제 마음 가운데 운명주의를 심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가 힘든 환경에서 자란 것이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는 깊은 사랑이었음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와 주권 가운데 이루어진 것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아버지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 동역자들에 대한 사랑이 전보다 더 깊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인턴 마지막 무렵 한참 시크릿가든 이라는 드라마가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며 이슈가 될 때가 있었습니다. 우연히 드라마를 보았는데 현빈이 참 멋있어 보였습니다. 한번은 꿈을 꾸었는데 현빈이 제 남자친구로 나온 것 까지는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제가 의식적으로 꿈을 깼습니다. 꿈이지만 제 마음 가운데 정욕적인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대로라면 저도 죄인입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다 용서하고 죄를 묻지 않으십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음란하고 정욕 문제가 만연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믿음의 중심을 지키고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욕의 죄는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신 분명한 죄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죄사함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은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 받은 죄 사함의 은혜를 지키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뿌리 깊은 나의 죄인된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하며 죄사함의 확신을 갖고 소망이 넘치는 삶 살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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