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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바로의 완악함을 중심으로

작성자 : john444
작성일 : 2009-08-21 00:00:00
조회수 : 1,271
출애굽기 바로의 완악함을 중심으로 한 리포트

4: 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지팡이로 모든 이적을 행해도 모세를 보내 주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바로는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 않습니다.

7장 3절입니다. “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말씀을 전하는데 바로가 마음이 완악하여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모세는 바로에게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도록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로는 욕심과 교만으로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습니다.

7장 13절입니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바로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바로의 지팡이를 삼키는 것을 보고도 완악해져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저자는 13절에서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로가 많은 재앙을 만나도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바로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바로는 회개하지 않을 것으로 결정되었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비극적인 예언은 자기 실현을 부정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요나가 사십 후에 니느웨가 망한다고 하였지만 회개했을 때 망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을 것이라고 하였지만 눈물로 기도하였을 때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기를 바라고 말씀하셨지만 바로는 그렇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담긴 말씀입니다.

7장 22절입니다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바로는 물을 피로 바꾸는 요술사들을 보면서 마음에 더욱 완악해져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재앙을 더욱 크게 했을 뿐 재앙을 없애지 못하였습니다. 재앙을 만나도 회개하지 않고 마음이 더 완악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불신자들만 재앙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재앙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급성 간염에 걸리고 실직을 당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물론 신자도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신자는 재앙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을 더 잘 믿으라는 채찍으로 받아 들입니다. 알곡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 더욱 하나님께로 가까이 갑니다. 내면이 더욱 성숙합니다. 따라서 신자에게는 환난을 재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징계라고 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 더욱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재앙이 아니라 우연이라고 합니다. 우연으로 생각하면 재앙을 맞으면서도 점점 더 완악해집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의 모든 일에는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과 섭리로 하시는 일입니다. 모든 재앙에는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재앙을 만날 대 하나님이 이 재앙으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지 귀담아 들어야합니다.

8장 19절입니다.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마술사들은 자신의 한계를 알자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면서도 믿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작은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재력가가 되면 하나님을 인정할 것이라고 합니다. 나를 높여 주시면 믿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을 높여주셔도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자리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우리에게 축복과 풍요와 편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미약한 자리에서도 믿고자 하는 자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더 높아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는 미천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우리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9장 12절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지자 내버려 두셨다고 해석합니다.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진 것은 바로의 책임이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고 하면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진 것이 누구 책임입니까? 하나님 책임입니다. 아들이 도둑질을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내가 아들을 도둑으로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내가 평상시에 아들을 교육시키지 못하여 아들이 도둑을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도둑질을 시켰다는 말이 아니라 아들이 도둑이 된 것도 아버지 책임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자 하나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가 완악해지는 것도 하나님의 책임이니 하나님이 바로를 책임지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먼저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의 말씀입니다. 바로는 하나님이 책임질 테니 이스라엘은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친히 바로에게서 구원하십니다. 뿐만아니라 바로에게도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바로가 완악하게 된 데는 내 책임도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악함을 보시고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자 합니다. 바로에게마져도 너도 내 피조물이라고 말하십니다. 그가 회개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33정 11절에 보면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한다고 하셨습니다. 돌이키며 돌이키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구걸할 정도로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엄청난 하나님의 인내 앞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회개해야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바로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이렇게 회개치 않는 것에도 책임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자신의 외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모든 책임을 다 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외아들을 죽게 하심으로 인간의 죄악에 대해서 모든 책임을 지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는 자는 어떤 악인도 구원 받습니다
9장 34절입니다.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 바로는 다시 완악해졌습니다. 하나님은 바로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완악하게 된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십니다.

10장 20절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우리는 지난번에 이 말씀에 대해서 여호와께서 책임을 지고자 하는 표현이라고 배웠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절대주권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런 표현을 알아야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가 완악해졌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바로를 완악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바로가 완악해졌을지라도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선하신 주권을 알아야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완악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완악함을 사용하여서도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11장 10절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은 바로에게 아홉 가지 재앙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완악해져도 그 가운데 절대적인 주권으로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저자는 이것을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완악해진 바로에게 한 가지 기적을 더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열 번째 장자 재앙을 내리십니다. 결국 바로가 완악해진 것은 하나님의 기적을 더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오히려 선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양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도 마음이 완악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서도 회개치 않는 사람을 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때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어야합니다. 우리는 이때 하나님의 능력이 더하여질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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