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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민수기 21장 강해 놋뱀에 나타난 복음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5-21 00:00:00
조회수 : 3,604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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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1장 강해 놋뱀에 나타난 복음

말씀 민수기 211-민수기 2135

요절 민수기 219절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저는 구약 말씀을 공부하며 복음을 깨닫는 감격을 느낍니다. 구약 말씀 속에 복음이 꿀처럼 들어 있습니다. 지난 번 므리바의 물말씀 속에서도 하나님이 계시고, 반석되시는 예수님이 계시고, 그곳에서 솟아나는 물 곧 성령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구약 말씀을 통해서 이런 복음을 배울 때 우리가 사는 생활이 더 풍성하고 은혜로워집니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 속에 복음의 풍성한 젖과 꿀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세 시대에 십자가의 복음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죄와 저주와 죽음 가운데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는지 하나님은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 통해서 놋뱀을 통해서 나타난 복음을 배우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은 아랏을 다 멸하였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은지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

 

이스라엘은 이제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다림 길로 통해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아다림은 정탐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탐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알고 가나안 사람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을 쳐서 몇 사람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적의 기습 공격을 받고 당황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주께서 이 백성을 우리의 손에 넘기시면 그 성읍을 다 멸하겠다고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가나안 아랏을 그들의 순에 붙이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가나안 사람을 진멸하시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아랏을 그들의 손에 붙이시면 다 진멸하겠다고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원을 기억하고 이들을 진멸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진멸하다는 뜻의 호르마라고 하였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손종하고 이곳의 가나안 땅을 공격하다가 진멸당하고 호르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반전이 되어 이곳을 진멸하고 호르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진멸하겠다고 서원하였으면 온전히 서원을 갚아서 진멸해야 합니다. 진멸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진멸하는 것이 이익이 아니라 손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서 진멸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갚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진멸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길로 말미암아 원망한 백성들)

 

4,5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이스라엘 백성이 호르산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본래 에돔 땅을 지나서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돔왕이 길을 비켜주지 않아서 우회하여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형제간에 우애를 지키기 위해서 먼 길로 가는 고생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에서에게 주신 기업을 존중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보면 하나님은 목표의 성취보다 형제 간의 화목을 중시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인정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형제의 마음에 상처를 주더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목표만 달성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목표를 천천히 이루더라도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화목을 위하여 양들의 성장을 더디게 하십니다. 가족의 화목을 위하여 경제적인 성장을 더디게 하십니다. 가는 길이 험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는 길은 양쪽에 가파른 산이 벽을 이루고 좁고 험하였습니다. 주위에는 화강암과 돌무더기만 보이고 모래 폭풍이 일어나는 황량한 광야길입니다.

이스라엘은 가까이 갈 수 있는 길로 못 가고 험한 길을 돌아서 가니 또 불평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전에는 모세와 아론에게만 원망하였는데 이제는 하나님께도 원망하였습니다. 그들은 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원망했습니다. 이곳은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찮은 만나를 싫어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민수기를 잘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물이 없어 목말라 죽은 사람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하늘에서 때를 따라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바위에서 샘물을 내어주셨습니다. 광야 사십년 동안 입을 것도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하찮게 여겼습니다.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조금만 힘들면 불평불만을 쏟아 놓았습니다.

 

(불뱀으로 물게 하신 하나님)

 

6,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망을 들으시고 그들이 원하시는 것을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하면 먹을 것을 주시고 마실 것이 없다고 원망하면 마실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길을 돌아가는 것을 원망하는 것은 그들에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이제 가나안 땅을 들어갈 찰라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의 죄를 징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불뱀들을 보내어 원망하는 백성을 물게 하셨습니다. 아마 코부라를 보내어 물게 하신 모양입니다. 사막에 있는 코부라들이 여기저기에서 튀어 나왔습니다. 땅꾼들을 다 동원하여 뱀을 잡으려고 하여도 역부족이었습니다. 많은 백성이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백성들은 이 뱀이 하나님이 주시는 심판임을 알았습니다. 그제서야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그들은 화목을 위하여 돌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영접지 않은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주신 은혜를 감사하지 않은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그들은 범죄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을 떠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위하여 이들에게서 뱀을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구원은 자신의 잘못을 알고 회개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문제고 모세가 문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벌을 통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알지 못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놋뱀을 보면 살리라)

 

8,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보면 산다고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불뱀을 쫓아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불뱀을 쫓아주실 뿐만 아니라 불뱀에 물린 자들이 살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보면 산다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보면 산다는 것은 비논리적입니다. 비합리적입니다. 의학적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과 모세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구원의 길을 예비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믿고 순종하여 놋뱀을 만들었습니다. 대장장이를 부르고 뱀의 주형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 불을 때서 놋을 빨갛게 녹여서 부었습니다. 그 뱀을 장대 위에 달았습니다. 이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놋뱀을 만드는 동안은 뱀과 싸울 수 없었습니다. 뱀에 물린 자를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고 놋뱀을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놋뱀이 만들졌습니다.

모세는 놋뱀을 장대에 높이 달았습니다. 모세는 다니면서 크게 외쳤습니다. “놋뱀을 보시오. 그러면 삽니다.” 이는 정말 믿기지 않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놋뱀을 보지 않았습니다. “정말 웃기는 쇼를 하는군. 쇼를 해

 

(쳐다본즉 살았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모세를 신뢰하고 장대를 보았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 독기가 빠져나갔습니다. 뱀에 물린 부기가 가라앉았습니다. 고통도 사라졌습니다.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너무 기뻐서 외쳤습니다. “놋뱀을 보니까 나았습니다. 낫았단 말씀이요! 여러분도 보세요.” 그 말을 듣고 하나 둘씩 놋뱀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누워서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밥을 먹다가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보았습니다. 그들이 한 것은 놋뱀을 본 것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살아났습니다. 그래도 믿지 않고 악한 마음으로 놋뱀을 보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이들을 사랑하여 놋뱀을 주셨을지라도 결국은 죽었습니다.

 

(놋뱀에 나타난 복음)

 

이 말씀은 복음을 아주 잘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이용하여 복음을 말씀하였습니다. 요한복음 314-16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뱀에 물린 이스라엘 사람들과 우리의 상황은 유사합니다. 지난 주 나는 두 분의 상가집에 다녀왔습니다. 허영 자매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루디아 사모의 동생이 작고하였습니다. 한 분은 연세가 드셨지만 한 분은 젊은 나이입니다. 나는 두 분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면서 우리의 실존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은 한 번 죽는다는 단순한 진리입니다.

우리 인간은 마치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듯이 낭떠러지에서 칡넝쿨을 잡고 매달려 있는 존재입니다. 위에서는 꿀이 떨어집니다. 흰 쥐와 검은 쥐가 그 칡넝클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인간은 뱀에 물린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는 코부라를 비롯한 많은 뱀들이 우굴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독기가 퍼지면 떨어져 죽어야합니다. 인간은 죄의 뱀에 물려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기심의 뱀, 불평의 뱀, 불신의 뱀, 정욕의 뱀, 교만의 뱀에 물려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독이 온 몸에 서서히 퍼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어야합니다.

그렇다고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은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 후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서 살아날 수 있습니까?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 독생자를 십자가에 높이 달았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게 하셨습니다. 대신하여 질고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대신하여 가난의 저주를 받게 하셨습니다.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이 땅에서도 성령을 받고 죽은 후에는 부활의 새생명을 얻어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대신 저주 받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질고를 받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됩니다. 나를 대신하여 가난을 짊어지신 예수님을 믿으면 부요하게 됩니다. 이 예수님을 쳐다보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데는 대학을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박사학위도 필요 없습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 아무 구별도 없습니다. 다만 믿음으로 보면 됩니다. 누워서 봐도 됩니다. 엎어져서 봐도 됩니다. 어떻게 바라보기만 하면 치료가 되느냐? 묻지 마세요. 어떻게 영생을 얻느냐? 묻지 마세요. 그냥 믿으면 됩니다. 그 후에 체험하면 됩니다. 믿음은 이론이 아닙니다. 체험입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은 어디서 옵니까? 많은 사람이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맞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들음에서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쳐다보는 데서도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심기 위해서 바라봄의 법칙을 많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롯이 떠난 후에 땅을 주신다는 약속을 심으시기 위해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자손을 주신다는 약속을 심기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보라고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심기 위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믿음이 생깁니다. 무엇을 바라보아야합니까? 우리가 세상을 보십시오. 지도자들은 무능하여 실수를 연발합니다. 국민들은 매일 시위로 짜증나게 합니다. 우리는 이들을 보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납니다.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자신의 무능으로 자책하게 됩니다. 아니면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나르시즘에 빠져 쏘핫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보다 예수님을 보아야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아야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구원이 있습니다. 치료가 있습니다. 성령을 주시고 새생명을 얻습니다. 모세는 말합니다. 쳐다본즉 살리라 우리가 예수님을 봄으로 모두 생명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바라보고 구원받았습니다. 당시에 나는 십여년 된 만성 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나의 마음에는 죄책감으로 고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대신하여 저주 받으신 예수님을 그냥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한 시간 이상을 울게 하시면서 나의 고름을 다 씻어주셨습니다. 나를 다시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우리를 위해서 저주 받으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르논 강 저편에서)

 

10-15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을 떠나 오봇에 진을 쳤고 오봇을 떠나 모압 앞쪽 해 돋는 쪽 광야 이예아바림에 진을 쳤고 거기를 떠나 세렛 골짜기에 진을 쳤고 거기를 떠나 아모리인의 영토에서 흘러 나와서 광야에 이른 아르논 강 건너편에 진을 쳤으니 아르논은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서 모압의 경계가 된 곳이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전쟁기에 일렀으되 수바의 와헙과 아르논 골짜기와 모든 골짜기의 비탈은 아르 고을을 향하여 기울어지고 모압의 경계에 닿았도다 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에돔 땅을 떠나 오봇에 진을 쳤고 오봇을 떠나 광야 이예아바림에 진을 쳤고 거기를 떠나 세렛 골짜기에 진을 쳤고 거기를 떠나 아르논 강 건너편에 진을 쳤습니다. 아로논 골짜기에서 브엘에 이르렀습니다. 이로논강은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서 모압과 국경을 이루는 곳에 흐르는 강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전쟁사기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수바에 있는 와헙 마을의 개울들, 그리고 아르논강은 아르 지방을 스쳐 굽이굽이 계곡을 따라 모압 국경을 끼고 흐른다."

이스라엘은 브엘에 이르기 전에 광야을 지나고 골짜기를 지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성숙하였습니다. 그들은 험한 곳을 지나면서도 이제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브엘의 우물)

 

16절을 보십시오. “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하나님은 그곳에서 친히 이스라엘에게 샘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필요를 따라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들의 부족함을 아시고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는 자에게 필요한 샘물을 주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규로 판 우물물)

 

17,18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그들은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

 

이스라엘은 우물이 솟아나자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큰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들은 규와 지팡이로 파서 물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규와 지팡이로 어떻게 물을 팝니까? 규는 통치지가 가진 홀입니다. 지휘봉입니다. 홀과 지팡이로 사막에서 물을 판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들이 홀과 지팡이로 물을 팠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홀과 지팡이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면 우리에게 필요한 물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먹을 것이 마실 것 입을 것 살 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왕이요, 아버지로 모시면 우리의 필요를 때를 따라서 채워주십니다.

 

(비스가 산 꼭대기)

 

19,20절을 보십시오. ‘맛다나에서 나할리엘에 이르렀고 나할리엘에서 바못에 이르렀고 바못에서 모압 들에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렀더라

 

이스라엘은 맛다나에서 나할리엘,. 나할리엘에서 바못, 바못에서 모압 들에 있는 골짜기, 그곳에서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은 그곳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가나안 정복의 소망을 가졌습니다. 비스가는 뾰족한 곳’, ‘높은 곳’, ‘꼭대기란 뜻. 요단 동편과 사해를 바라볼 수 있는 아바림 산맥 북동쪽 기슭의 높은 봉우리입니다. 아바림 산맥에 속한 느보 산 서편의 산 혹은 비스가의 정상을 느보로 보기도 합니다(32:49-52).

이곳은 술사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기 위해 일곱 제단을 쌓은 곳이기도 합니다(23:14).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 산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았으며(3:27 34:1-4)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최후를 마쳤습니다(34:5-6). 르우벤과 갓 지파의 경계 지대였습니다(3:16-17 4:49 12:3 13:20).

 

(바산 왕 옥을 침)

 

21-26a절에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리이다 하나 시혼이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그의 백성을 다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치므로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들을 쳐서 무찌르고 그 땅을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 점령하여 암몬 자손에게까지 미치니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하더라 이스라엘이 이같이 그 모든 성읍을 빼앗고 그 아모리인의 모든 성읍 헤스본과 그 모든 촌락에 거주하였으니 헤스본은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도성이라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을 물리치는 사건입니다. 모세는 아모리 왕 시혼에게 정중하게 길을 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물도 포도도 먹지 않고 큰 길로만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모리 왕 시혼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공격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칼날로 쳐서 물리쳤습니다. 아르논에서 얍복 강까지 물리쳤습니다. 아모리의 수도 헤스본도 빼앗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약속으로 땅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대적하는 자는 공격하여 빼앗아도 됩니다.

 

(아모리 왕 시혼을 물리침)

 

26b-32절을 보십시오. “시혼이 그 전 모압 왕을 치고 그의 모든 땅을 아르논까지 그의 손에서 빼앗았더라 그러므로 시인이 읊어 이르되 너희는 헤스본으로 올지어다 시혼의 성을 세워 견고히 할지어다 헤스본에서 불이 나오며 시혼의 성에서 화염이 나와서 모압의 아르를 삼키며 아르논 높은 곳의 주인을 멸하였도다 모압아 네가 화를 당하였도다 그모스의 백성아 네가 멸망하였도다 그가 그의 아들들을 도망하게 하였고 그의 딸들을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포로가 되게 하였도다 우리가 그들을 쏘아서 헤스본을 디본까지 멸하였고 메드바에 가까운 노바까지 황폐하게 하였도다 하였더라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의 땅에 거주하였더니 모세가 또 사람을 보내어 야셀을 정탐하게 하고 그 촌락들을 빼앗고 그 곳에 있던 아모리인을 몰아 내었더라

 

아모리왕 시혼은 모압 족속을 쫓아내고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이것은 시인의 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모압의 수도는 헤스본이고 그 왕은 시혼이고 그 신은 그모스입니다. 시혼의 성 곧 헤스본에서 불이 나와서 모압의 아르를 멸하였습니다.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입니다. 이스라엘은 롯의 후손이 빼앗긴 땅을 다시 차지하였습니다. 이곳에 이스라엘 사람이 거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대적하는 자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기업을 늘려 주셨습니다.

 

(바산왕 옥을 물리침)

 

33-3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돌이켜 바산 길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의 백성을 다 거느리고 나와서 그들을 맞아 에드레이에서 싸우려 하는지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나니 너는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그에게도 행할지니라. 이에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백성을 다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그의 땅을 점령하였더라.”

 

여기는 바산와 옥을 물리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산왕 옥도 그의 백성을 다 거느리고 나와서 이스라엘과 싸우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바산왕 옥을 두려워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모리왕 시혼을 붙이신 것처럼 바산왕 옥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바산왕 옥을 전멸하였습니다.

 

(은혜로 주신 땅)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은 본래 점령하고자 하지 않고 그냥 통과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대적하여 진멸당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곳은 점령하고자 하지 않았지만 이들의 대적으로 이곳도 이스라엘 땅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르우벤, 베냐민, 므낫세 반 지파의 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적의 공격을 통하여 오히려 땅을 넓히게 하셨습니다. 이들을 통하여 가나안 땅도 정복할 수 있다는 소망을 심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공격하는 사단을 통해서 꿀을 취하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과 치료와 승리를 얻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민수기 21장 강해 놋뱀에 나타난 복음

말씀 민수기 211-민수기 2135

요절 민수기 219절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민수기 21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24 [민수기] 민수기 26장 강해 이스라엘의 두번째 인구조사 오요한 2008-06-12
23 [민수기] 민수기 25장 강해 복을 위한 질투 오요한 2008-06-10
22 [민수기] 민수기 24장 강해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오요한 2008-05-31
21 [민수기] 민수기 23장 강해 축복하라 하시는 명을 받았다 오요한 2008-05-31
20 [민수기] 민수기 22장 강해 미혹된 발람 오요한 2008-05-29
19 [민수기] 민수기 21장 강해 놋뱀에 나타난 복음 오요한 2008-05-21
18 [민수기] 민수기 20 장 강해 므리바의 물 오요한 2008-05-20
17 [민수기] 민수기 19장 강해 붉은 암송아지의 재 오요한 2008-05-20
16 [민수기] 민수기 18장 강해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 오요한 2008-05-20
15 [민수기] 민주기 17장 강해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오요한 200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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