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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스가랴 9장 강해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 지어다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11-28 00:00:00
조회수 : 6,283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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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9장 강해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말씀 스가랴 9장 1-17
요절 스가랴 9장 9절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메리크리스마스! 성탄절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어제 호서대에 가보았더니 도서관 앞에 커다란 추리를 만들어놓았습니다. 호서 산장 앞에도 큰 추리를 만들었습니다. 케롤송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크게 기뻐할 일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기 약 500년 전에 스가랴는 예수님의 오심을 바라보고 크게 기뻐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태어나신지 2010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도 스가랴의 마음에 동참하여 크게 기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사람들이 여호와를 우러러 본다)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하드락 땅에 내리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봄이니라. 그 접경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에도 임하리니 그들이 매우 지혜로움이니라.” 주께서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여기 "말씀"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맛사니 짐(burden)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이 예언의 상대자가 아주 망하게 될 것을 가리키는 무거운 경고의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이 하드락 땅에 내리고, 다마스쿠스에 머뭅니다. 하드락은 수리아의 지명 혹은 수리아 나라를 가리킵니다. 다메섹도 역시 수리아에 속합니다. 이 경고가 거기에 머무른다 함은, 수리아 나라가 아주 망하기까지 그 경고의 내용이 실시될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 나오는 하드락과 다메섹과 하맛과 두로와 시돈은 이스라엘 북부 지방에 있는 도시입니다. 하드락과 다메섹과 하맛은 지금 시리아의 도시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 북부 지방에 임합니다. 이들은 매우 지혜롭다고 교만하게 함으로 하나님이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그 날에는 이방 사람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이 다 겸손하게 되어 주를 바라볼 것입니다. 이방 사람들도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주의 소유입니다. 수리아와 같은 이스라엘의 적국들이 멸망하는 동시에 장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어 이방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교만한 자를 심판하신다)

3,4절을 보십시오.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요새를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도다. 주께서 그를 정복하시며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시리니 그가 불에 삼켜질지라.” 두로와 시돈은 해안도시입니다. 이곳은 매우 지혜로웠습니다. 두로는 자신을 위해서 아주 견고한 요새를 건축하여 적이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두로는, 비록 작은 섬이지만 150척이나 되는 높은 성으로 방위되어 있어서 앗수로의 살만에셀왕이 5년 동안 아무 성공도 없이 포위하였던 일이 있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13년을 공격하였어도 무너지지 못한 섬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해안 도시로 무역이 발달하여 매우 풍요로웠습니다. 그들은 돈을 버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은이 티끌과 같고 금이 거리의 진흙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곳은 금은방이 따로 필요 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바다에 쳐 넣으시고 불로 태우신다고 하였습니다. 두로가 멸망할 때에(알렉산더로 말미암아) 6,7천명이 학살당했고, 2천명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3만명이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들이 자신의 지혜와 부를 믿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셔서 이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게 하십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후에 겸손하여졌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갈급하여졌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였을 때 두로와 시돈에서 허다한 무리가 말씀을 듣고자 나왔습니다. 여자 중에 최고의 믿음을 가진 여인으로 칭찬을 받은 수로보니게 여인이 두로와 시돈출신입니다.(마15:21,22)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목적은 그들이 겸손하여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블레셋은 소망이 수치가 된다)

5절을 보십시오.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어질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주민이 없을 것이며” 아스글론이 그것을 보고 두려워할 것이며, 가사도 무서워서 벌벌 떨 것이며, 에그론도 희망을 잃고 떨 것입니다. 가사에서는, 왕의 대가 끊길 것이고 아스글론에는 사는 사람이 없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의 남부지방에도 임합니다. 아스글론과 에그론과 아스돗과 에그론은 불레셋의 오대 성읍 중에 하나입니다. 이들도 매우 교만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처럼 행사했습니다. 그들은 두로와 시돈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다곤 신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들은 다곤신을 섬기고 다곤에게 바친 우상의 제물인 가증한 것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십니다. 그들은 두로와 시돈의 멸망을 보고 실상 순망치한의 위험을 느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공포심을 가졌던 것과 같이 사실상 멸망의 자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어 질 정도였습니다. 과연 후일에 알렉산더 대왕이 불레셋을 칠 때에 가사에 있었던 임금을 사로잡아 갔고 백성들을 많이 치워버리고 다른 나라사람들을 그곳으로 이민하였습니다.

(불레셋을 유대의 지도자로 삼으신다)

6,7절을 보십십시오.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주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그의 입에서 그의 피를, 그의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거하리니 그들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아스돗은 낯선 외국인들이 차지할 것입니다. 여기 이른바 잡족이라는 말은, 타국인을 의미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 예언과 같이 타국인들을 불레셋에 많이 이주시켰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가 블레셋의 교만을 꺾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사람들로 하여금 그 복음을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먼저 그들의 교만을 꺾으십니다. 여호와가 그들의 입에 묻은 희생제물의 피를 닦아 주고, 그들이 씹는 역겨운 제물을 그 입에서 꺼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입에서 그 피를...제한다 함은, 다른 민족을 착취하는 죄를 다시 범치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 잇사이에서 그 가중한 것을 제함은, 가중스러운 우상의 제물 같은 것을 먹는 악습을 버리도록 함입니다. 그들 가운데서 남은 자들은, 하나님 백성이 되어서 유다와 한 가족처럼 되며,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처럼 될 것입니다. 블레셋 지방이 유다의 한 지도자와 같고 여부스 사람과 같게 하십니다. 유다의 한 두목 같이 된다는 것은, 그들이 복음을 믿어 유다의 어떤 높은 지도자처럼 하나님의 총애를 받을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여부스 사람 같이 된다 함은 그들이 복음을 믿어 하나님 백성 가운데 참여하기를 옛날에 다윗의 정복을 당한 여부스 사람들이 이스라엘 나라에 귀화한 것 같이 될 것을 예언합니다(삼하 24:16 대상 21:15). 여부스 사람은 예루살렘에 살던 불레셋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에 그곳 거주민인 여부스 사람들이 유대인과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족속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에 헤롯대왕이 이곳 출신이라고 말을 합니다. 지금 팔레스틴이 불레셋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이들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스가랴의 예언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점령하므로 이루어졌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헬라 문화를 이곳에 전하고 헬라어를 쓰도록 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가장 큰 장벽은 문화와 그 중에서도 언어입니다. 하나님은 알렉산더 대왕을 통하여 이런 장벽을 제거하고 헬라어로 언어를 통일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이곳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이들은 현재 유대인보다 크리스찬이 더 많다고 합니다. 기독교인구가 8%나 된다고 합니다. 항상 유대인의 공격을 받은 이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복음을 듣게 하기 위해서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의 침략을 받고 한국 동란을 치렀습니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통하여 우리나라를 겸손하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받을 준비를 하게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국제 금융위기로 경제가 많이 어렵습니다. 신종 인플렌자로 고통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것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어떠하였습니까? 하나님을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셨습니다. 현재도 혹시 어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를 통하여 우리가 마음을 가난하게 하고 더욱 예수님을 사모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8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가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 여호와가 하나님의 집에 진을 둘러쳐서, 적군이 오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여기 내 집이라는 것은, 하나님 백성 곧, 이스라엘 나라를 의미합니다. 여호와가 지켜보고 있으니, 압제자가 당신의 백성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열국으로 말미암아 받은 억울함을 친히 보셨기 때문에 이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이 수리아나 불레셋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적군과 포학자에게서 보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실제로 알렉산더 대왕의 침략하던 때에 유대 나라만은 그 침략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요세푸스 사기에 말하기를, 알렉산더 대왕이 예루살렘 부근에 침입할 때에, 대제사장은 예복을 입고 많은 제사장 앞에서 알렉산더를 표시하 는 예언을 왕에게 들려주므로 왕은 감동되어 예루살렘을 침해하지 않고 유대인에게 특전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예언은 알렉산더 대왕의 한 일로 말미암아 성취된 것 이 분명합니다. 더 나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눈동자같이 지키심을 말씀하십니다.

(성탄을 크게 기뻐함)

9절을 보십시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메시야가 오실 준비를 하신 후에 때가 되면 메시야가 오십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크게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시온의 딸은 딸 같은 시온 곧, 약소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의 딸이라는 말도 역시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은 시온에게 즐거움으로 외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왕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왕은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태어나니 크게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성탄절은 큰 기쁨의 날입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11월 말부터 성탄 축제 분위기입니다. 성탄절에는 우리나라 추석이나 설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일주일에서 이주일을 쉽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탄을 크게 기뻐합니다. 성탄절은 전세계적으로 축제의 날입니다. 이들은 성탄절이 되면 장사가 잘 되므로 기뻐합니다. 연인들이 사랑을 하므로 기뻐합니다. 가족끼지 여행을 즐길 수 있어서 기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탄절을 진정 기뻐해야하는 이유는 왕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많은 사람들이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고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하며 예수님을 환영하였습니다. 시편 118편에 24,25절에는 예수님이 오시는 날에 기뻐하고 찬양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 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호산나입니다. 그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구원자로 오시는 메시야를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기뻐하자 바리새인들은 이들이 찬양하는 것을 만류하라고 예수님께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이 찬양하지 않으면 돌들이 찬양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사람들뿐 아니라 돌과 산과 바다와 개와 소까지도 다 기뻐할 일이라는 말입니다. 전우주적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해야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이렇게 기뻐해야하는 이유는 구원자 하나님이 나귀새끼를 타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왕은 어떤 분이십니까?

(공의로우신 왕이 오심)

첫째 예수님은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십니다. 예수님은 공의로시며 구원을 베푸십니다. 예수님은 공의로우시며 심판을 하지 않고 구원을 하십니다.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님이 마태복음 12장 20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인간은 상한 갈대와 같고 꺼지가는 심지와 같습니다.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고 참새만 앉아도 꺾어집니다. 꺼져가는 심지는 기름이 다하여 심지가 타들어가고 연기가 납니다. 인간은 갈대와 같이 연약합니다. 감기만 걸려도 힘들어하고 다른 사람의 말 한 마디에 잠을 자지 못하고 합니다. 꺼져가는 심지와 같이 점점 병들고 늙어가다가 언젠가는 죽어야합니다. 우리는 상한 갈대를 보면 그냥 꺾어버리고 싶습니다. 꺼져가는 심지는 심지가 타지 않게 빨리 끄고자 합니다. 적자생존법칙에 의하면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자들은 자연 도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건강한 갈대를 키우고 활활 타는 심지를 더 잘 타게 하는 것이 세상의 원칙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우시는 공의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건강한 갈대로 만들어주십니다. 꺼져가는 심지를 활활 타오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상한 갈대같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창에 찔리고 못에 박히시며 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상하셔서 우리를 건강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꺼져가는 심지처럼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가셨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셔서 우리의 생명이 활활 타오르게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건강한 갈대로 만드시고 활활 타오르는 등불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공의가 이기게 하십니다. 예수님 안에는 겸손한 약자 승리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우리는 과거 상한 갈대와 같고 상한 심지와 같았습니다. 상처받고 절망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건강한 사람 소망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오신 것을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겸손의 왕 예수님)

둘째 예수님은 겸손하신 왕이십니다. 왕이 겸손하여 나귀를 타십니다. 나귀 새끼를 타십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바람을 타고 구름을 타고 불 가운데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왕들처럼 백마를 타고 칼을 차고 입성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은 나귀새끼를 끌어다가 나귀 위에 겉옷을 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섬기셨습니다. 당시에 앗시라아나 바벨론 왕은 백마를 타고 큰 칼을 차고 입성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권세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을 말발굽으로 짓밟고 칼로서 가차 없이 쳐서 죽였습니다. 무력으로 통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귀가 있는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왕이 되고자 나귀 그것도 새끼를 타셨습니다. 온 땅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이 나귀새끼를 타셨습니다. 예수님은 칼을 차지 않으시고 맨손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자신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을 어떻게 합니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였지만 그들은 후에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욕하고 조롱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이들을 다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칼로 종의 귀를 떨어뜨리자 칼을 꽂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오래참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그들을 감당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이 왕을 죽인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부활하여 온 땅의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들의 마음에 다시 왕으로 임하십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그들의 왕으로 오시면 하나님 나라가 그 들 마음에 이루어집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마음에 가정에 학교에 교회에 큰 기쁨이 임합니다. 여려분들은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며 마음에 큰 기쁨이 있습니까?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였을 때는 크게 기뻤지만 지금은 그 기쁨을 잃어버린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나의 마음에 왕 위에서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에는 쿠테타와 반란이 일어납니다. 드라마 선덕 여왕을 보면 미실과 김유신의 가야 세력과 귀족들의 비담세력이 항상 쿠테타를 일으키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했지만 우리 마음의 나라에 쿠테타가 일어납니다. 돈이, 사람이, 쾌락이, 내가 왕이 되어 예수님을 몰아냅니다. 우리가 이번 성탄절에 이런 쿠테타의 세력을 몰아내고 살아계신 예수님을 다시 나의 왕으로 모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성탄절에 기뻐하지 않으면 근광목동님 집에 있는 강아지 몽이가 기뻐서 소리치며 찬양할 것입니다. 교회에 있는 나무들이 호산나 하며 찬양할 것입니다.

(평화의 왕 예수님)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셋째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에브라임에서 병거를 없애고,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십니다. 전쟁할 때에 쓰는 활도 꺾으려 하십니다. 그 왕은 이방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할 것이며, 그의 다스림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유프라테스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를 것입니다. 메시야는 오셔서 병거를 끊고 싸우는 말을 없애고 활을 없앱니다. 메시야는 평화의 왕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땅 끝까지 평화로 다스립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폭력으로 성립될 것이 아니고 다만 고요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 갈 것입니다. 그 나라는 어떤 한 민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세계적이고, 또 무궁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분쟁이 있습니다. 부부싸움을 비롯하여 부모와 자녀사이에도 싸움이 있고 지역 간 계층 간에도 싸움이 있습니다. 국가와 국가, 종교와 종교 간에도 분쟁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이런 싸움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과 싸우지 않고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면 마음에 평화를 주십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른 잔잔한 평화가 임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원수 간에 화해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국가 간에도 지역 간에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가족도 교회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주러 오신 예수님을 인하여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부인이 아파서 예배를 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남편은 예배시간에 항상 뒷자리에 앉아서 졸다가 오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남편에게 간절히 부탁하였습니다. 오늘은 앞자리에 앉아서 말씀을 잘듣고 나에게 얘기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예배에 다녀온 남편은 요리하는 아내를 평생 뒤에서 꼭 안아 주며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평생 처음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무슨 말씀에 은혜를 받고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원수같은 부부도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구원의 왕이요. 겸손의 왕이요. 평화의 왕이 되심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구원과 평화를 주실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언약의 피 예수님)

11,12절을 보십시오.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특별히 피로 맺은 언약이 있습니다. 너라는 말은 유대 백성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는 복음이 세계에 전파될 것을 결론으로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부터는 유대 나라에게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하여 특별히 말하고 있습니다.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을 상대로 계약하신 사실을 염두에 둔 말씀입니다. 십계명의 언약을 세우시며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언약은 장차 올 신약시대의 새 언약의 예표라고도 할 수 있고, 유대 민족에게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을 여호와가 물 없는 구덩이에서 건져 낼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사로잡혔어도 언약을 믿음으로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소망을 품은 이라는 말은 바벨론에서 유대로 돌아올 소망을 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요새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요새는 실상은 하나님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유대는 말할 수없이 빈약한 사정하에 있었으나. 유대를 요새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께서 계신 까닭입니다.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는 것은, 앞으로 유대인들에게 주실 축복이 풍부할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두 배로 갚아 주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모든 축복은 언약의 피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성만찬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포도주 잔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8절입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죄사함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감옥에 갇히듯이 물없는 구덩이 곧 지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지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옥에 갇힌 우리를 위해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믿기지 않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다 치러주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보며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없는 구덩이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지옥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갈 수 있습니다.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고 크게 기뻐 외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활로 삼으시는 하나님)

13,14절을 보십시오. “내가 유다를 당긴 활로 삼고 에브라임을 끼운 화살로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여호와께서 그들 위에 나타나서 그들의 화살을 번개 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게 하시며 남방 회오리바람을 타고 가실 것이라.” 유다는 여호와가 당긴 활입니다. 에브라임은 여호와가 먹인 화살입니다. 여호와는 시온의 자식을 불러 세워서, 그리스의 자식을 치게 하십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용사의 칼로 삼으십니다. 주께서 그의 백성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화살을 번개처럼 쏘실 것입니다. 주 하나님이 나팔을 부시며, 남쪽에서 회리바람을 일으키며 진군하십니다. 앞에서 하나님은 활이나 화살을 다 태워 없앴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유다를 활로 삼고 에브라임을 화살로 삼아서 그리스 자식들을 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부터는 앞과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의 재림 때를 예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다와 에브라임은 구원의 왕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새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헬라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지 않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을 왕으로 삼으셔서 예수님을 영접지 않은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은 처음에는 나귀를 타고 오셨지만 나팔을 불며 회오리바람을 타시고 강림하십니다. 처음에는 초라한 모습으로 나귀가 있는 구유에 오셨지만 이제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오십니다. 예수님을 영접지 않은 자들은 그날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예루살렘이 받을 심판을 생각하며 우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큰 기쁨이 넘치지만 예수님을 영접지 않을 자는 엄청나게 큰 고통을 당합니다. 현실에도 고통을 당하지만 나중에 심판의 날에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려면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나의 왕이요. 그리스도로 영접해야합니다.

(이스라엘을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

15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맷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여기는 예수님을 그리스도 영접한 자들을 얼마나 영화롭게 하는지 나옵니다. 만군의 주께서 백성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그 백성이 원수를 섬멸하여 무릿매 돌 던지는 자들을 짓밟을 것입니다. 백성은 그들의 피를 포도주처럼 마실 것이며, 그들은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로 흠뻑 젖은 제단 뿔과도 같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믿음으로 산 자들을 호위하십니다. 그들은 큰 승리를 얻게 하십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곡식은 청년을, 새 포도주는 처녀를 강건하게 하리라.” 그 날에 주 그들의 하나님이 백성을 양 떼같이 여기시고 구원하셔서, 그들을 주의 땅에 심으십니다. 그러면 그들은 왕관에 박힌 보석같이 빛날 것입니다. 아, 그들이 얼마나 좋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총각들은 햇곡식으로 튼튼해지고 처녀들은 새 포도주로 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자신의 백성의 양떼같이 구원하여주십니다. 그들은 왕관의 보석과 같이 하나님의 땅에서 빛납니다. 남자들은 모든 일에서 형통합니다. 여자들은 너무나 아름답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왕관의 보석과 같이 만들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주 귀하고 값지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어주십니다. 부활하여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들을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십니다.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

다시 한번 요절인 9잘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 2009년 성탄절에 크게 기뻐합시다. 우리가 이런 기쁨을 얻기 위해서 먼저 나의 마음에 내가 왕이 된 것을 포기해야합니다. 내 생각과 내 뜻대로 살려고하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나의 지혜와 능력을 포기해야합니다. 성령님을 왕으로 모시고 성령의 뜻에 따라서 순종하며 살아야합니다.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여 살아야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큰 기쁨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큰 승리를 주시고 우리를 영화롭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지 않은 자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아멘!
스가랴 9장 강해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말씀 스가랴 9장 1-17
요절 스가랴 9장 9절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스가랴 9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14 [스가랴] 스가랴 14장 강해 천하의 왕 만군의 여호와 오요한 2009-11-28
13 [스가랴] 스가랴 13장 강해 더러움을 씻는 샘물 오요한 2009-11-28
12 [스가랴] 스가랴 12장 강해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오요한 2009-11-28
11 [스가랴] 스가랴 11장 강해 은 삽십개를 달아서 오요한 2009-11-28
10 [스가랴] 스가랴 10장 강해 모퉁이 돌이 그에게서 오요한 2009-11-28
9 [스가랴] 스가랴 9장 강해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 지어다 오요한 2009-11-28
8 [스가랴] 스가랴 8장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오요한 2009-11-28
7 [스가랴] 스가랴 7장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오요한 2008-12-06
6 [스가랴] 스가랴 6장 강해 싹이 돋아나서 오요한 2008-12-01
5 [스가랴] 스가랴 5장 강해 악을 제거하는 두루마리와 에바 오요한 200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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