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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이사야 36장 강해 앗수르의 침략이 하나님의 뜻인가?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9-23 00:00:00
조회수 : 5,547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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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6장 강해 앗수르의 침략이 하나님의 뜻인가?

말씀 이사야 361-이사야 3622

요절 이사야 3621절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

 

히스기야는 아하스와 아비에서 태어나 25세에 등극하여 29년을 치리합니다. 히스기야가 종교개혁을 합니다. 그는 산당들 돌기둥과 아세라 목상과 모세의 놋뱀과 우상 제거합니다.

북이스라엘은 히스기야 3년에 앗스르왕의 공격을 받기 시작하여 3년 후에 함락됩니다. 유다왕 히스기야는 정치적으로 앗스르왕을 배격하였습니다. 군사적으로 가사와 온 국경선까지 망대와 요새화된 성읍까지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히스기야의 종교적인 개혁과 군사적인 승리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몇 가지 중대한 위기가 히스기야와 유대왕국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때는 앗스르왕이 이스라엘을 이차 침입하였을 때입니다. 왕하 1813-2019절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

 

(산헤렙의 공격)

 

1절을 보십시오. “히스기야 왕 십사 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앗수르왕 산헤렙이 유다를 점령하였습니다. 산헤렙은 예루살렘을 포위합니다. 예루살렘이 지형적으로 방어하기에 유리하므로 쳐들어오지는 못하고 협박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분열왕국 시대에 남방 유다 역사에서 가장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왕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의 29년의 통치기간 중 제14년 즈음에 크게 어려운 일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앗수르 왕의 침략이고 둘째는 죽을 병에 걸린 것이었습니다(38:1).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중에 발생한 일입니다. 히스기야 왕 제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들을 쳐서 취하였습니다.

주전 701년부터 4년간을 제위한 산헤립은 유다의 주요 도성을 점령하고 포위하였습니다. 유다의 46개 도성을 침략하였습니다. 조롱 속의 새처럼 예루살렘을 봉쇄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한지 오 년만에 다시 유다를 공격하였습니다. 산헤렙이 공격한 이유는 히스기야가 앗스르왕을 배척하였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달란트를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침공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다의 마지막 요새인 라기스를 점령하였습니다. 그곳을 앗스르 군의 중요 주둔지로 삼았습니다. 산헤립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관직명입니다. 유다는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있습니다.

 

(히스기야에게 랍사게를 보냄)

 

2,3절을 보십시오.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부터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되 대군을 거느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매 그가 윗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밭 큰 길에 서매 힐기야의 아들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아가니라

 

앗수르 왕은 라기스에서부터 군대장군 랍사게에게 대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의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였습니다. 랍사게는 총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앗수르왕은 장기적인 소모전보다는 히스기야의 빠른 항복을 바랐습니다. 앗스르왕은 라기스에서 랍사게를 대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 히스기야 왕에게로 보냈습니다. 그는 윗못 수도 곁에 세탁자의 밭 큰 길가에 섰습니다. 이사야가 아하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한 곳입니다. 왕궁 맡은 엘리야 김과 서기관 셉나와 사관 요이가 랍사게에게로 나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모였습니다. 군인들이 간 것이 아니라 외교관들이 갔습니다.

 

(앗수르에 대한 유다의 반역을 책망함)

 

4-5절을 보십시오.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내가 말하노니 네가 족히 싸울 계략과 용맹이 있노라 함은 입술에 붙은 말뿐이니라 네가 이제 누구를 믿고 나를 반역하느냐

 

랍사게가 온 것은 정치적인 타협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히스기야에게 최후 통첩을 위해서 온 것입니다. 항복이냐 몰살이냐는 것입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에게 전하라고 합니다. 히스기야에게 무엇을 의지하느냐고 합니다. 히스기야가 무슨 힘이 있어서 앗스르를 반역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의지합니다. 자신의 지혜를 의지합니다. 히스기야는 참모도 없고 군대도 없다고 합니다.

랍사게는 앗수르 왕의 글을 통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와 그 백성을 두렵게 하고 낙망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는 히스기야가 싸울 전략과 용맹이 없다고 말하며 그와 유다 백성을 두렵게 하고 힘을 빼며 낙망케 하려 하였습니다.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

 

6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에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히스기야에게 강대국을 의지하느냐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을 지팡이처럼 믿는다고 하지만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애굽을 의지하다가 손만 베일뿐입니다. 당시 애굽에 대한 앗스르의 승리를 말합니다. 유다 관리들 중에는 친애굽파가 있었는데, 앗수르 왕은 그들을 낙망시키려 하였습니다. 친애굽파는 애굽을 의지하여 사신을 보내고 뇌물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강대국을 의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권력을 있는 사람을 의지하려고 하다가 뇌물 사건이 터집니다. 남을 의지하다 보니 밍크코트도 나오고 돈 사과 궤짝도 나옵니다. 원치 않는 웃음을 팔기도 합니다. 높은 사람 자녀가 결혼하면 바쁜 중에 와서 악수하고 갑니다. 결혼식에는 참석하지도 않고 갑니다. 상당한 뇌물성이 있습니다. 원치 않는 교제를 하고 친한 척합니다. 애굽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딸을 팔아먹습니다. 정략 결혼을 시킵니다. 네가 그 집에 시집만 가면 두 집이 합쳐서 큰 집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의지하여 교만한 사람, 남을 의자하여 힘을 빌려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웃의 강대국을 의지한다는 것은 실상 헛된 일입니다.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랍사게의 말은 이사야의 말과 유사합니다.(19:14-16) 이사야도 강대국을 의지하는 것은 거짓과 사망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말라)

 

7-9절을 보십시오. “혹시 네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노라 하리라마는 그는 그의 산당과 제단을 히스기야가 제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던 그 신이 아니냐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내가 네게 말 이천 필을 주어도 너는 그 탈 자를 능히 내지 못하리라 그런즉 네가 어찌 내 주의 종 가운데 극히 작은 총독 한 사람인들 물리칠 수 있으랴 어찌 애굽을 믿고 병거와 기병을 얻으려 하느냐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군사력이 부족하였습니다. 말을 탈 사람이 없습니다. 자신의 도리를 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신앙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일을 다 못하니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은 열심히 하는데 공부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는 종교 개혁을 잘 하지만 왕의 도리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불신을 심었습니다. 앗수르 왕은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헛되다고 말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그와 유다 백성의 믿음을 흔들어 놓으려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이 지방에서 바알을 섬기는 산당과 제단을 제하고 예루살렘에서 하나님만 섬기게 하였습니다. 산헤립은 이것을 히스기야가 각자의 지방에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한 것으로 오해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왕과 백성을 이간질시킵니다.

랍사게는 히스가가 하는 개혁신앙에 대해서 불신을 심었습니다. 그가 개혁하였으나 앗스르가 유다의 중요 성읍을 점령하였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구하기로 하였더라면 앗스르의 침공 자체를 못하게 하였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무능했다고 말합니다. 이제 앗스르는 유다를 침공하여 주요 성읍을 점령하였습니다. 이제 예루살렘 성문까지 진격하여 있습니다. 랍사게의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죄악된 유다를 연단시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은 매우 약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약하여 말 이천 필을 주어도 탈자가 없을 정도로 약하다고 합니다. 탱크를 주거나 전투기를 주어도 사용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앗스르의 극히 작은 총독 한 사람도 물리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산헤립은 교만하여 이스라엘을 무시하였습니다. 애굽을 의지하여 병거와 마병의 도움을 받는 것이 헛되다고 말합니다. 그는 히스기야의 군대의 장군들과 그 군사력을 조롱하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군사력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군사력도 키워야 합니다.

 

(앗수르 침략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함)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제 올라와서 이 땅을 멸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없음이겠느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올라가 그 땅을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앗수르왕은 자신이 쳐들어온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교만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군종 목사가 있는데 군종 참모는 스님입니다. 사단장이 불교 신자입니다. 군목이 기도문을 쓰고 스님이 기도문을 읽습니다. 스님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술잔뜩 먹고 메리크리스마스 하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산헤립은 하나님이 유다를 치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 앗수르 침략에 대한 신학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런 말은 매우 설득력이 있는 말입니다. 그들은 정당성을 가지고 이기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들이 유다를 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바벨론이 유다를 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하여 포로로 끌려가라고 합니다. 사단은 교묘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죄로 인하여 실패하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회개할 회개제목입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보아야합니다.

 

(유다 방언으로 말하지 말라)

 

11절을 보십시오. “이에 엘리아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아람 방언을 아오니 청하건대 그 방언으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하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에서 우리에게 유다 방언으로 말하지 마소서 하니

 

앗스르왕은 18만 오천 명이 쳐들어왔습니다. 당시에 예루살렘은 오만 정도였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는 물도 없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수로도 막았습니다. 예루살렘은 바위를 뚫고 수도공사를 합니다. 산헤립은 히브리말로 예루살렘을 모욕합니다. 아주 심한 말을 합니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는 히스기야를 대신하여 나옵니다.

그들은 랍세게에게 아람방언으로 말하라고 합니다. 지도자들은 아람 방언을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듣는데서 유다 방언으로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왕의 체면을 세워달라고 합니다. 백성들이 듣는다면 크게 동요하였을 것입니다.

랍사게는 앗수르의 문화가 유다의 문화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유다 사람들의 자존심을 무시합니다.

 

(이스라엘로 소변과 대변을 먹게 하고자 함)

 

12절을 보십시오. “랍사게가 이르되 내 주께서 이 일을 네 주와 네게만 말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으며 자기의 소변을 마실 성 위에 앉은 사람들에게도 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냐 하더라

 

랍세게는 산헤립 왕이 자신을 보낸 것은 이스라엘 지도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랍사게를 보낸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어서 자신의 소변을 먹게 하고, 밥이 없어서 자신의 똥을 먹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을 모욕합니다. 이스라엘의 명예와 자존심을 짓밟습니다. 적어도 인격적인 존중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다 방언으로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말하겠다고 합니다.

 

(히스기야에게 불신을 심음)

 

13-14절을 보십시오. "이에 랍사게가 일어서서 유다 방언으로 크게 외쳐 이르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왕의 말씀에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미혹되지 말라 그가 능히 너희를 건지지 못할 것이니라 "

 

랍사게는 유다 방언으로 계속하여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히스기야에 대한 불신을 심습니다. 히스기야에게 미혹되지 말라고 합니다. 히스기야는 능히 유다를 건지지 못한다고 합니다. 말 이천 필을 주어도 탈 사람을 내보낼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왕이 큰 소리 치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심음)

 

15-16a절을 보십시오.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신뢰하게 하려는 것을 따르지 말라 그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시리니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할지라도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나를 믿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랍사게는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신뢰하면 앗스르왕에서 건지리라고 말했는데 그것을 신뢰하지 말라고 합니다.

히스기야는 유다의 구원은 예루살렘 성전을 신뢰하지 않고 여호와를 신뢰하는데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자고 합니다. 백성은 누구를 의지해야합니까?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산헤렙은 군사들을 데리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히스기야의 하나님을 믿고 히스기야를 신뢰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자는 히스기야의 말은 얼마나 맞는 말입니까?

그러나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도 듣지 말라고 합니다. 유다의 아름다운 미래는 하나님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히스기야와 이사야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도 도전합니다. 히스기야는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니 미혹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불신을 심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건질 수 있다는 말도 믿지 말라고 합니다. 히스기야가 제시한 구원의 소망을 포기하도록 말합니다.

그는 마치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이 백성을 미혹하는 거짓된 말인 것처럼 선전하며 유다 왕을 모독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지도자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심습니다. ‘듣지 말라’ ‘따르지 말라’ ‘미혹되지 말라’ ‘속지 말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거짓 희망을 심는 랍사게)

 

16b,17절을 보십시오. “앗수르 왕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자기의 우물 물을 마실 것이요 내가 와서 너희를 너희 본토와 같이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이 있는 땅에 옮기기까지 하리라

 

유다 사람들에게 앗스르에게 항복하면 포도와 무화과와 자기 우물을 마실 것이라고 합니다.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이 있는 땅에 옮겨서 정착하여 살게 하겠다고 합니다. 유다가 앗수르에게 항복하면 그들에게 축복을 약속하여 줍니다. 히스기야만 빼고는 행복을 주겠다고 합니다. 우리와 조약을 맺고 화평을 누리자고 합니다.

사단은 자신의 말을 들으면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브에게도 사단은 자신의 말을 들으면 하나님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앗스르왕이 노리는 것은 전쟁을 하지 않고 심리전으로 항복을 받고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힘을 빼고 무력화시키려는 심리적 전술이었습니다. 그들을 자신의 속국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현실에 근거한 합리적인 불신)

 

18-20절을 보십시오. “혹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할지라도 속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자기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스발와임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이 열방의 신들 중에 어떤 신이 자기의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냈기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하니라

 

랍사게는 여러 가지 경험을 들어서 하나님께 불신을 심습니다. 히스기야가 여호와가 건진다고 하여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주의 종에 불신을 심습니다. 앗스르 왕의 손에서 건진 신은 없다고 합니다. 하맛(720)과 아르밧(740)과 스발와임과 사마리아의 어느 신도 앗스르왕의 신에서 건지지 못핬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민족마다 자신의 신이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 것은 왕과 왕이 싸우고 신과 신이 싸우는 것입니다. 로마가 이기면 로마의 신이 이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 나라의 신이 무릎을 꿇었듯이 여호와도 그럴 것이라고 합니다. 우상과 여호와를 동일시합니다. 하나님을 우상화합니다. 랍사게는 여호와도 열국의 신들 중에 하나와 같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앗수르 왕은 하나님을 자기와 비교하며 하나님의 이름과 권위와 능력을 발로 밟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모독한 큰 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 성전을 지을 때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은 성전을 버리십니다. 하나님은 우상이 아닙니다.

앗수르 왕의 말은 마귀와 말과 같았습니다. 마귀는 성도들에게 절망을 안겨줍니다. 그는 세상적 방편이 아무것도 없음을 말하며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성도를 절망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데 성도에게 무슨 절망이 있습니까? 마귀는 성도에게 두려움, 의심, 불신을 조장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으려 합니다. 마귀는 오늘날 교회들과 주의 종된 목사들과 심지어 하나님까지 모독합니다. 그는 항상 교회를 어지럽히고 파괴시키려 합니다. 이런 말은 현실의 경험을 근거로 한 것으로 설득력 있습니다.

그러나 산헤립은 그 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습니다. 유다가 죄악이 있을 때 징벌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쓰셔서 역사를 이룬 것을 그는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히스기야는 하나님만을 믿도록 계혁을 하여서 다른 나라와 다릅니다. 산헤립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를 짓고 18만 오천명이 하루 아침에 죽음을 당합니다.

 

(왕에게 순종하여 잠잠한 유다 사람들)

 

21 22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 그 때에 힐기야의 아들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자기의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그에게 전하니라

 

유다 사람들은 히스기야를 신뢰하고 한 마디도 대답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조용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우면 아이고 합니다. 중국말로 나는 고통스럽다는 말입니다. 백성들은 떠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의 말에 순종하였습니다. 백성들이 히스기야를 믿어주었습니다. 히스기야을 중심으로 신앙적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모욕을 받으면서도 침묵하였습니다. 그들은 왕을 신뢰하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극적이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굴욕을 당할 때 신앙적으로 조용해야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앞두고 독안에 든 쥐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히스기야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백성의 입장에서 히스기야는 무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왕을 신뢰하였습니다. 조용과 침묵 속에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히스기야에 미혹되지 말라고 하여도 그들의 말에 미혹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옷을 찢고 슬퍼하며 분노하였습니다. 그들은 히스기야에게 이 모든 것을 전하였습니다.

사단의 말에는 반응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말씀과 기도로 사단을 대적해야합니다. 유다 백성은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왕이 그들에게 명하여 대답지 말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장난과 위협과 모독적 말에도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에 힐기야의 아들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 옷을 찢고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고하였습니다.

한국 교회는 변화 안 된다고 퍠배주의 냉소주의를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걸려들면 안 됩니다. 예수 믿어야 소용없다고 합니다. 잘해도 변화 안 된다고 합니다.

 

(이사야 36장의 교훈)

 

이사야 36장은 경건한 히스기야 왕의 통치기간에 유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닥친 것을 증거합니다. 성도가 어려운 일을 만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할 때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생각지 말아야합니다.

성도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섭리의 손 안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합니다. 또 전쟁의 승패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과 징벌로 주시는 전쟁이 있습니다.

유다가 죄를 회개치 않으면 유다는 패배할 것입니다. 유다 멸망시 바벨론의 침공 같은 전쟁이 그러했습니다. 그때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권면대로, 적군에게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전쟁이나 정당방위적인 전쟁 같은 정당한 전쟁이 있습니다. 그 전쟁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도우실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원수들 곧 하나님의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자기 백성을 지키실 것입니다. 성도는 고난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며 믿음과 의를 지켜야 합니다.

불경건과 죄는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을 가져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유황불비로 멸망을 당했습니다(18:32). 또 후에 예루살렘 성은 의인 한 명이 없어서 결국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며 의만 붙들어야 합니다. 이사야 36장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는 랍사게의 말 속에서 증거된 히스기야의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그 어려운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고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사야 371은 그가 여호와의 전으로 갔다고 증거합니다. 그것이 해답입니다. 거기에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며 믿음과 의를 지켜야합니다. 그러면 어떤 고난의 현실도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 36장 강해 앗수르의 침략이 하나님의 뜻인가?

말씀 이사야 361-이사야 3622

요절 이사야 3621

이사야 36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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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이사야] 이사야 33장 강해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인 이유 오요한 2008-09-22
35 [이사야] 이사야 32장 강해 의로 통치할 왕이 오시면 오요한 2008-09-22
34 [이사야] 이사야 31장 강해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는가 오요한 2008-09-22
33 [이사야] 이사야 30장 강해 기다리는 자는 복되도다 오요한 2008-09-22
32 [이사야] 이사야 29장 강해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음이라 오요한 2008-09-22
31 [이사야] 이사야 28장 강해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오요한 2008-08-08
30 [이사야] 이사야 27장 강해 포도원의 노래 오요한 2008-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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