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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이사야 30장 강해 기다리는 자는 복되도다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9-22 00:00:00
조회수 : 5,962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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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0장 강해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말씀 이사야 301-이사야 3033

요절 이사야 3018절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어느 대기업에서 신입 사원을 뽑았습니다. 서류와 필기시험을 거쳐서 정말 좋은 사람을 뽑았습니다. 누구도 버릴 사람이 없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마지막 면접으로 뽑고자 하였습니다. 면접하는 날 모두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면접관이 정해진 시간이 되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몰래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평하는 사람, 짜증내는 사람, 불안해 하는 사람, 몸을 비비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두 시간 후에 면접관이 나와서 면접 끝이라고 하였습니다. 비디오를 분석하여 가장 침착하고 기쁨으로 기다린 사람을 뽑았다고 합니다. 회사는 신입사원의 믿음을 본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심한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잇수르의 침략으로 풍전등화의 위기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애굽을 의지하고 말타고 애굽으로 도망가고자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앗수르와 바벨론을 통하여 그들을 징계하십니다. 그들은 징계를 받으며 회개해야합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때를 기다려야합니다.

 

(애굽을 의지하는 자는 화가 있다)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은 미가서와 같이 봐야 합니다. 미가는 그 시대를 암울한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에 남 유다왕은 히스기야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왕은 호세아였습니다.(왕하 17) 북이스라엘이 망하기 십년쯤 전이었습니다. 호세아는 앗스르에게 조공을 바치다가 애굽왕에게 조공을 바치고 앗스르를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앗스르에서 애굽으로 조공을 옮긴 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과 상의하며 하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도우시려고 성전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상의 없이 자신의 생각대로 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자신들끼리 밀실에서 회의를 하고 결정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바로의 세력을 의지하고 애굽의 그늘에 피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애굽을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들은 패역한 자식들입니다. 패역한자는 완고한, 반역적인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죄에 죄를 더하였습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략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런 공격을 받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여건이 좋은 지구의 남쪽 나라는 대체로 못 삽니다. 여건이 좋지 않은 인구나 국토가 적은 스위스나 스웨덴이 오히려 잘 삽니다. 이 나라는 자원도 부족합니다. 이스라엘이 나라가 작아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 똑바로 의지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징계의 막대기입니다. 그들은 매를 맞으면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강대국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들은 매를 맞으면서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막대기를 손을 들고 있는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남유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하였으나 유다 방백은 애굽을 의지하고자 합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도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당하면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들은 애굽성향적인 체질입니다. 그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애굽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우상을 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술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술 생각을 못합니다. 그러나 지난 날에 술에 취했던 사람은 예수님을 삼십년 믿었어도 어려울 때 포장마차가 생각이 납니다. 무당을 섬기던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면 무당에게 물어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는 날을 잡아서 이사하지 않아서 사고났나 하는 생각이 납니다. 무당에게서 가서 결혼 날짜와 시간을 잡아옵니다. 그 속셈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깊은 곳에 그 죄의 뿌리가 있습니다.

브라질에는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입니다. 백인끼리 결혼해도 까만 아이가 나온다고 합니다. 까만 피부끼리 결혼했는데 하얀 사람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 조상들 가운데 흑인과 백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뼈속 깊이 애굽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애굽을 생각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을 불러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지향적인 세계관을 갖지 않으면 물질지향적인 세계관을 갖고 살아갑니다. 물질의 가치보다 영적인 가치관을 크게 생각해야합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놓고 볼 때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을 중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이 보이지 않자 그들은 송아지 우상을 만듭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애굽군대는 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극대화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크게 보이면 앗수르 군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불신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그들의 뜻대로 하였습니다.

어떤 처녀가 결혼 프로프즈를 받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수양관에 가서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하고 성경 보면서 결정합니다. 중요한 일일수록 기도하고 결정해야합니다. 바쁜 일이 있을수록 기도해야합니다.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 기도하고 만나야 합니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기도하고 결정해야합니다.

 

(애굽을 의지하는 자는 수치를 받는다)

 

3-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그 고관들이 소안에 있고 그 사신들이 하네스에 이르렀으나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민족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 네겝 짐승들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들의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들의 보물을 낙타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이스라엘이 자신의 생각대로 애굽을 의지한 결과는 어떠합니까? 애굽을 의지한 이스라엘은 수치와 모욕을 당합니다. 소안은 애굽의 옛 수도 라암셋을 가리킵니다(12:37). 그들이 의지한 애굽 왕 바로의 세력은 그들에게 수치와 수욕이 될 것입니다. 애굽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과 유익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을 보호해주지 못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수치와 모욕이라는 단어를 다섯 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결국 10년 후에 앗수르에 의해서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이나 강대국을 의지하면 반드시 수치를 당합니다.

6절에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남방의 혹은 남방으로 가는 짐승들의 무거운 짐이라는 뜻입니다. ‘무거운 짐이라는 말은 이사야서에서 경고, 하나님의 말씀(oracle)’이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13:1 15:1 17:1 ). 본문은 문맥적으로 남방으로 가는 짐승들의 무거운 짐이라는 뜻도 되고, ‘남방으로 가는 짐승들에 대한 경고라는 뜻도 됩니다. 여기에 남방은 애굽을 가리킵니다(11).

본문은 유대의 지도자들이 어린 나귀 등에 많은 보물을 싣고 광야를 지나 애굽에 내려가 도움을 청하였으나 그들의 수고는 헛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애굽은 가만히 앉은 라합이 될 것입니다. ‘라합바다짐승을 가리킵니다. 폭풍이라는 뜻입니다. 가만히 앉은 용은 종이 호랑이와 같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애굽 델타 삼각주에 있는 소안과 지금의 수도인 카이로로(하데스) 사신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어린 나귀에 보물을 싣고 재물을 싣고 갔습니다. 사자와 불뱀이 나오는 네게브 지방을 지나서 애굽으로 갔습니다. 강대국을 의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 가는 길에 어려움도 있습니다. 앗수르에 발각되면 큰 일 납니다. 그들은 어렵게 애굽의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애굽은 가만히 앉은 라합 곧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도와준다고 하고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뇌물만 챙겼습니다. 앗수르와 산헤립이 협박할 때 애굽은 썩은 막대기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도 말아야합니다. 돈을 의지하지도 말아야합니다. 이런 것은 다 무익하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우리가 수치를 당하고 싶지 않지요?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싫어하는 자들)

 

8-11절을 보십시오.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에 대해서 다른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쓰라고 하였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영원히 보게 하라고 합니다. 책의 필요성과 유용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 쓰게 하셔서 후대의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의지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심령은 심히 부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비뚤어져 있었고 반역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잘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선견자의 말을 듣기를 거절합니다. 선지자의 강한 메시지를 거절합니다. 죄를 짓는 것이 죄요, 반복하는 것이 죄요, 회개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죄는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더 마음이 악해집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더 악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말씀이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말씀의 능력을 배척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거절합니다. 그들은 악해져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가장 무서운 죄가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에 반항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나와서 은혜를 못받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고 받아 들이지 않고 의심하면 반항심이 생깁니다.

그들은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라는 말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바른 말을 하기보다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부드러운 말을 하고 거짓된 말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귀를 긁어달라는 자들입니다. 디모데후서에 좋은 말만 듣고 진실한 말씀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말씀에 대해서 비판한 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주부들이 음식을 갖다 놓으면 맛있게 먹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밥투정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비판적인 말만 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와 선견자, 즉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세우신 설교자에게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말하며 정직한 말을 하지 말고 부드러운 말, 즉 그들의 귀에 듣기 좋은 말, 아첨하는 말을 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이 왜 거짓된가 보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또 선지자에게 정로(正路) 즉 바른 길, 바른 노선을 버리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그들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듣기 싫어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은 설교자의 설교내용까지 간섭하고 비평하고 판단하고 반대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대단히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암 말기 환자와 같습니다. 환자가 의사에게 암이라는 말도 하지 말고 수술도 하지 말고 약물 투여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의사에게 잘될 것이다.’ ‘건강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만 하라고 합니다. 이들이 어떻게 됩니까? 결국 좋은 말만 듣다가 암으로 죽게 됩니다. 암 환자는 힘들어도 암을 인정하고 수술해야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곪아 터져 있어서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구원을 받습니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은 귀가 가려워서 귀를 긁어줄 스승만 둔다고 하였습니다. 말세에는 듣기 좋은 메시지만 전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나 예수님만을 믿어야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란 말을 쓰지도 않습니다. 다른 종교의 신자들이나 무신론자가 들어도 전혀 귀에 거슬리지 않는 말만 합니다. 그들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같은 보편적인 단어만 씁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라 믿어주라 소망을 가지라고 합니다. 꼭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들은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죄를 회개하라는 말을 하지 않고 죄를 책망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져야한다는 부담스러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대표적인 목사가 긍정의 힘을 쓴 조엘 오스틴입니다. 이들은 결국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는 무너진다)

 

12-14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을 의지하니 이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 하셨은즉 그가 이 나라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 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고 굽고 어긋난 애굽을 믿어 의지하려 합니다. 이스라엘은 행한 잘못의 결과로 그들은 마치 막 쓰러지려 하는 갈라진 성벽과 같습니다. 높은 성벽의 배가 불쑥 터져 갑자기 와르르 무너짐 같습니다. 마치 오지항아리가 산산조각으로 깨진 것과 같습니다. 아궁이의 불씨를 담아낼 조각 하나 남지 아니하고 웅덩이의 물을 퍼낼 조각 하나 남지 아니함과 같습니다. 산산조각납니다.

하나님과 진리가 없다는 것은 집에 금이 간 것과 같습니다. 금이 간 집은 점점 금이 커져 갑니다. 그러다 어느 날 집이 순식간에 무너져 많은 피해를 봅니다. 마치 산사태가 나서 집이 무너져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도리어 압박과 간교함을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에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높은 담이 갑자기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과 같고, 토기장이가 그릇을 아낌없이 부숨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철저히 부서졌는지 깨진 조각 중에 아궁이에서 불을 취하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만한 조각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가 토기를 부수듯이 이들을 부수십니다.

토기장이가 자신의 의도대로 토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 토기를 부술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서로 사랑하며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사명을 떠나면 이들은 존재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잘못 만들어진 토기를 시멘트 바닥에 던져서 깨뜨리듯이 이들을 깨뜨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잠잠히 신뢰해야)

 

15-17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 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돌이켜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애굽을 의지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잠잠히 하나님을 신뢰해야 힘을 얻고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연어가 물로 돌아가듯이 애굽에 돌아가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안연히 거해야합니다. 그것이 겸손한 것입니다. 징계가 와도 겸손히 받고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때리면 감사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회개를 받으시고 구원을 베푸시면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징계도 구원도 안연히 받습니다.

하나님에게 이렇게 해주세요 그렇게 해주세요해서는 안 됩니다 왜 때립니까? 하나님 살아계십니까? 왜 이러십니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합니다.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면 은혜를 주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 번 기회를 주셨고, 그들에게 죄에서 돌이키고 조용히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요청을 거절하였고 그의 경고를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다 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을 타고 애굽으로 도망가야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나 하나만 빠져 나가겠다고 개인주의를 갖지 말아야합니다. 나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이기적인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 하나만 편히 살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힘들면 우리도 힘들게 살아야합니다 다른 사람이 배고플 때는 우리도 배고프게 살아야합니다. 우리 집만 쌀이 있다고 풍요롭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남들이 어려울 때는 어려운 척이라고 해야 합니다. 나는 아니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계획대로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이 가득차서 도망갔습니다. 대적이 단 한 사람이 꾸짖었는데 천 사람이 도망가고 다섯 사람이 꾸짖었는데 이스라엘은 다 도망갔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한 사람이 천 사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담대하여 천명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면 천 명이 한 명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다리시는 하나님)

 

18-19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오늘의 요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은헤를 베풀려고 기다리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엇을 기다릴까요? 15,16에 애굽을 의지하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기다리십니다. 19절에 보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들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경고되어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개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를 시행하시는 것이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예레미야 애가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하십니다. 그들을 돌보아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18).

시온에서 추방되었던 그 백성이 다시 시온에 거하게 되고 통곡하던 백성이 다시는 통곡하지 않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고난 중에서 회개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긍휼히 여기기를 원하십니다.

정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기를 기다리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심판하시고 은혜 베풀기를 기다리십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들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기다립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빨리 달라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크기를 기다렸습니다. 요셉은 빨리 총리가 되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그가 겸손한 사람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다윗은 빨리 왕이 되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다윗이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내가 처갓집에 갈 때마다 마음이 아픈 일이 하나 있습니다. 둘째 며느리가 시댁에 오지 않습니다. 한번 둘째가 집을 사는데 시부모가 가진 모든 재산을 팔아서 도와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장인 장모는 노후를 생각하고 도와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발길을 끊었다고 합니다. 시아버지는 지금 91살이 넘었습니다.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아버지는 둘째 며느리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그 말 속에는 둘째 며느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집나간 탕자를 기다리듯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기다려야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왔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고 부르짖어 기도하였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기다려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은혜 베푸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려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다려야합니다. 성령께서 일하실 때를 기다려야합니다.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시기를 원하십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자녀를 달라고 기도한 후에 이십오 년을 기다렸습니다. 이삭은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나서 아들을 낳기까지 이십 년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구원하고자 결심하고 사십 년을 기다렸습니다. 사가랴는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늙기까지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모두 기다리는 자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합니다. 기다릴 때 우리의 인격이 형성됩니다.

우리가 농구나 축구를 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공을 줄 때를 기다려야합니다. 항상 내가 공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잘 넘겨주고 받기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운동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공을 넘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공을 넘겼으면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기까지 오래참고 기다려야합니다. 공을 받을 준비를 하고 기다려야합니다. 조급해서는 안 됩니다. 빨리 빨리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망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참고 기다려야합니다. 오도방정을 떨지 말고 기다려야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받은 공을 우리에게 넘겨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 교육할 때 기다리는 훈련을 시켜야합니다. 자녀들이 아무리 떼를 써도 주지 말아야합니다. 내일 주기로 약속하였으면 내일 주어야 합니다. 이틀 후에 주겠다고 하였으면 이틀 후에 주어야합니다. 한 달 후에, 일 년 후에 주겠다고 하였으면 자녀가 그 약속을 잊었어도 그때 주어야합니다. 떼만 쓰면 주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민법이나 형법 위에 헌법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헌법 위에 떼법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의 응답을 세 가지로 하십니다. 첫째는 즉시 응답하십니다. 둘째는 잘못된 소원을 깨닫게 하십니다. 셋째는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다리라고 할 때 인내하며 기다실 수 있어야합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

 

20-22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주님은 기다리는 동안 때로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십니다. 기다리는 기간은 고통스럽습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떡이요 물입니다. 환난과 고생이 떡과 물과 같습니다. 잠시는 고통스럽지만 우리의 영혼을 살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시면 스승을 보내십니다. 스승은 지금까지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스승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스승은 우리에게 예수님이시오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스승은 우리에게 네비게이션처럼 길을 안내하십니다. ‘전방 오십 미터 앞에서 좌회전하십시오.’ ‘전방에 위험지역이니 속도에 조십시오.’ ‘전방에는 급한 커부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네비게이션과 같이 친절하게 우리의 길을 인도하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은혜는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으로 증거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린 사람이 복이 있었습니다. 많은 왕과 선지자가 예수님을 보고자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메시야가 오신다는 예언은 아브라함부터 이천년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더딘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이나 안나는 이천 년이 지나도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25절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을 위로하실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다림을 축복하셔서 그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대로 그리스도를 보고 죽게 하셨습니다.

안나는 남편과 칠년을 살다가 과부가 되어 84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속량하실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그녀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야를 전하였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그런 분은 그리스도를 만날 때까지 기다려야합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내가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은 드디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성령님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합니다. 성령님은 친히 우리의 길을 인도해주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만난 후에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지금 성령님도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길이 되십니다. 요한복음 1613절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진리의 성령님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주십니다. 우리는 성령님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서도 안 됩니다. 아니면 성령님보다 더 느리게 움직여도 안 됩니다. 성령님을 기다리면서 성령님이 머물면 머물고 성령님이 떠나면 떠나야 합니다.

이런 성령님의 인도함을 잘 보여주는 것이 민수기 9장에 잘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 사십년을 지날 때 하나님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여주셨습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나면 이스라엘은 행진하였습니다. 구름이 머물면 이스라엘이 진을 쳤습니다. 어떤 때는 하루만에 구름이 떠났습니다. 어떤 때는 한 달이나 일 년이나 머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때는 한 달이나 일 년을 죽치고 기다려야합니다. 이것이 성령님을 기다리는 삶입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려야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복)

 

(돌아온 자에게 주시는 은혜)

 

23-26절을 보십시오.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고산마다 준령마다 그 뒤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23절부터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질 일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과 성령을 기다리고 만난 자에게 축복을 약속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뿌린 종자에 비를 주사 땅이 곡식을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십니다. 가축은 푸른 초장에서 맛있는 먹이를 먹게 됩니다. 선지자는 회복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본문에서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적절한 비를 주셔서 그들에게 추수할 곡식과 양식이 풍성케 하실 것입니다. 밭가는 소와 나귀까지도 겨를 까부른 곡식을 먹을 것입니다.

24절에 맛있게 한 먹이소금으로 간을 한 여물이라는 뜻입니다. “달짝지근한 여물은 약대들에게 빵과 같고 간을 한 여물은 과자와 같다는 아랍 속담이 있습니다. 또 앗수르와 바벨론이 멸망하는 날, 곧 그 망대들이 무너질 때, 높은 산들과 언덕들에도 시냇물들이 흘러 땅들이 비옥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자는 망대가 무너져서 심판을 받는 반면 하나님을 믿고 기다린 자에게는 고산과 준령마다 시냇물이 넘쳐흐르게 하십니다. 백성들의 상처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치료하여 주십니다. 그날에는 햇빛이 일곱 배가 밝게 되듯이 우리의 내면에 모든 어둠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것은 장차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을 가리킵니다.(21:23). 우리 마음에 돋는 해가 임하여 생명력이 충만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믿고 기다린 자에게 넘치도록 축복하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소망과 사랑을 약속하십니다. 이런 사랑에 기초하여 이스라엘은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열방을 심판을 노래하는 이스라엘)

 

27-29절을 보십시오.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붙듯 하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 하며 그의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의 혀는 맹렬한 불 같으며 그의 호흡은 마치 창일하여 목에까지 미치는 하수 같은즉 그가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며 여러 민족의 입에 미혹하는 재갈을 물리시리니 너희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 하듯이 노래할 것이며 피리를 불며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에게로 나아가는 자 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열방을 심판하십니다. 앗수르를 몽둥이로 쓰시고 버리십니다. 하나님은 불붙듯이 연기가 일어나듯이 진노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창일한 하수와 같은 힘으로 밀을 까부르는 키와 같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열방을 까부르십니다. 본문은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묘사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온다는 표현은 장소적으로도 멀리, 파사로부터, 아니 하늘로부터입니다. 시간적으로도 멀리, 아직 상당한 후의 일임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붙듯하시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하실 것입니다.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차셨고 그 혀는 태워 삼키는 불 같으실 것입니다. 그는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실 것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 노래하듯이 노래할 것입니다. 피리를 불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나가듯이 즐거워할 것입니다. 앗수르의 멸망은 이스라엘에게 기쁨과 구원과 해방이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사탄의 멸망은 성도들에게 기쁨과 평안이 될 것입니다. 그때 성도들은 기뻐하며 노래할 것입니다 이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여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를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구원의 날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자는 이스라엘이 유월절 밤의 축제를 즐겼듯이 축제를 즐깁니다. 우리가 크리스마스 이브날 크리스마스를 즐기듯이 즐겁게 보냅니다.

 

(하나님의 심판)

 

30-3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의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의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소고를 치며 수금을 탈 것이며 그는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 대저 도벳은 이미 세워졌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

 

하나님은 계속하여 앗스르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앗스르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맹렬한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치십니다. 앗스르를 막대기로 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장엄한 목소리, 혁혁한 진노, 그 팔의 치심, 맹렬한, 태워 삼키는 불, 폭풍과 폭우와 우박 등으로 묘사합니다.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라고 앗수르를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앗수르에 대한 심판은 예정하신 몽둥이예정하신 형벌의 몽둥이로 치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앗수르를 치시려고 예비하신 그 몽둥이를 그들에게 휘두르실 때에, 하나님의 백성은 소고 소리와 수금 소리로 장단을 맞출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앗시리아 사람들과 싸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위하여 도벳을 넓고 크게 만드셨습니다. 그곳에는 나무가 많고 유황불이 타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을 태우실 것입니다. 도벳은 음부나 지옥을 말합니다. 그곳은 불이 타오르고 구더기도 죽지 않는 무서운 곳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그곳에서 영원히 고통할 것입니다. 33절의 도벳힌놈의 아들들의 골짜기라는 곳으로 우상숭배자들이 자기 아들들을 몰렉에게 제물로 불태워 바친 가증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지옥을 상징하였습니다. 본문은 도벳이 이미 설립되었다고 말합니다. 지옥은 만세 전에 작정된 곳입니다. 그곳은 앗수르 왕을 위해 예비된 곳입니다. 앗수르 왕은 사탄의 표상입니다. 그곳은 깊고 넓은 곳입니다. 지옥은 깊고 넓은 장소입니다.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고 여호와의 호흡은 유황 개천 같아서 그것을 사를 것입니다. 지옥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입니다. 예수께서는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대해 밝히 말씀하셨고,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9:43-48).

 

(우리의 기다림)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려야합니다. 그날은 불신자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우리에게는 구원의 날입니다. 베드로 후서 312절에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어디 있느냐 만물이 처음 때와 같이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같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더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구원 받기를 기다리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휴거를 당하여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 복락하며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과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가운데 복 받는 성탄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이사야 30장 강해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말씀 이사야 301-이사야 3033

요절 이사야 3018절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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