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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전서 16장강해 일부 연보에 대해서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5-10-27 00:00:00
조회수 : 2,250
고린도전서 16장 강해 일부 연보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6장 1-고린도전서 16장 12
요절 고린도전서 16장 1절

(편지의 추신)

지금까지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왔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분쟁 문제, 음란 문제,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 교회의 무질서 문제를 도왔습니다. 바울은 무엇보다 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 십자가의 사랑에 있음을 가르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많은 문제를 만납니다. 이 모든 문제의 해결은 십자가의 사랑 안에 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사랑을 가르치고 마지막으로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는 분은 바로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오늘 공부하는 고린도 전서 16장은 편지의 추신 부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작정한 연보 문제를 돕습니다. 바울의 앞으로의 계획을 말합니다.

(약속한 헌금)

1절을 보십시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에 대한 구제 헌금을 하도록 도왔습니다. 예루살렘에 큰 흉년이 일어났습니다. 예루살렘에 크리스찬들이 핍박을 받아 물질적으로 힘들었습니다. 바울은 이방 교회들에게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헌금하도록 도왔습니다. 먼저 고린도 교회가 헌금을 한다고 하자 다른 교회들도 열심히 헌금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일차 전도여행 때 개척한 갈라디아의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이고니온 교회도 열심히 헌금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말만 무성하고 실제로 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약속한 것같이 헌금을 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방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헌금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애을 보여주고 더 나가서 인류애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헌금을 통하여 이방인 신자와 유대인 신자가 하나가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연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연보는 헌금과 다릅니다. 연보는 collection이고 헌금은 offering입니다. 연보는 선교나 구제나 건축을 위하여 목적을 가지고 모금하는 것입니다. 헌금은 내가 임의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드리는 것입니다. 쓰임도 내가 간섭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도록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헌금의 대표적인 예가 십일조입니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를 가지고 가난한 시골 교회를 돕고자 합니다. 괜찮은가요? 이런 목적을 가지고 드리는 것은 헌금이 아니라 연보입니다. 헌금을 내는 것은 깨끗한 동기에서 드려야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연보를 헌금이라고 말합니다.

(준비된 헌금)

2절을 보십시오.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헌금은 매주 첫날에 드려야합니다. 매 주일 예배 때마다 드려야합니다. 주일 헌금을 언제 내야할까요? 말씀을 듣기 전에 드려야할까요? 말씀을 듣고 나서 드려야할까요? 직장을 가진 자녀가 늙으신 부모에게 세배를 드릴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아들이 부모님께 세뱃돈을 드립니다. 이때 먼저 물질을 드리고 아버지의 말씀을 듣나요? 아니면 말씀을 들은 후에 물질을 드려야하나요? 물질을 드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먼저 물질을 드리고 나서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대부분 교회에서는 예배 중에 메시지를 듣고 나서 헌금바구니를 돌립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드려야 더 많은 물질이 나옵니다. 그러나 예배 정신에 의하면 말씀을 듣기 전에 미리 헌금을 드리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그러면 모든 예배 때마다 헌금을 드려야하나요? 그렇게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보면 매주 첫날 드리라 하였으니 주일 한번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누가 헌금을 하나요? 헌금은 너희 각 사람(each one of you)이 하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헌금을 드려야합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다 드려야합니다. 십일조헌금을 내야할 경우는 부부 두 사람의 이름으로 드려야합니다. 생일 감사헌금 같은 것은 혼자의 이름으로 드려야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용돈에서 헌금을 드려야합니다. 얼마를 드려야할까요? 너희 각 사람이 이익(利益)을 얻은 대로 드려야합니다. 수입에 비례하여 드려야합니다.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율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수입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도 먹고 삽니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도 십일조를 드려야합니다. 과부의 두 렙돈을 드려야합니다. 바울은 특히 가난한 자를 위한 연보를 소득대로 드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소득에서 가난한 자를 생각해야합니다. 이것이 구약에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과일을 딸 때는 과일의 얼마를 남겨둡니다. 우리나라 까치밥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곡식을 추수할 때는 곡식을 일부러 흘리며 추수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소득에서 가난한 자와 짐승들까지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예전에 밥을 먹을 때 한 사람마다 한 숟가락씩 쌀을 떠 놓게 하였습니다. 이것을 성미라고 하여서 목사님 댁에 식사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가난한 한 자를 위하여 조금씩 떼어 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소득이 있을 때 먼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다음에는 가난한 자를 생각하고 드려야합니다. 헌금은 허겁지겁하지 말고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소득이 있을 때 집에서부터 떼어 놓아야 합니다. 집에서부터 준비하여 가지고 미리 내어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호주머니에 돈이 얼마나 있는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집히는 대로 드려서는 안 됩니다.

(은혜의 헌금)

3,4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바울은 헌금 관리에 대해서 말합니다. 바울은 헌금을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물질을 주셔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생겨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물질을 은혜로 주셔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은혜입니다. 헌금 관리는 교인들이 인정한 사람들이 해야 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관리해야 합니다. 바울도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합당하면 인정된 사람과 함께 헌금을 가지고 가겠다고 합니다. 혼자서 관리하지 말고 둘 이상이 관리해야합니다. 헌금은 항상 공개적이어야 합니다. 헌금은 골방에서 비밀리에 쓰면 습기찬 곳에 병원균이 자라듯이 비리가 자랄 가능성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물질 문제 때문에 시험에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물질 문제가 일원 하나도 틀림이 없이 깨끗하게 사용해야합니다. 물질 문제만큼은 털어서 먼지 하나 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

5-7절을 보십시오.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들렀다가 마게도냐를 다녀 돌아올 때에 고린도 교회를 다시 들를 예정이라고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여정을 취소하고 마게도냐(유럽 지방)를 갔다가 고린도에 가고자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가서 겨울 동안 머물고자 하였습니다. 그 후에 고린도 교회의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현재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로 인정해 주기를 원합니다. 또한 바울은 다른 곳으로 지나는 도중에 고린도 교회가 거쳐가는 곳이 되지 않기를 원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다른 목적의 수단이 되지 않기를 원하였습니다.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는 유일한 목적이 되기를 원하고 소중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에, 결혼한 이종사촌형이 형이 우리 집에 방문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분이 우리 집에 오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분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우리 집 윗동네에 그분의 처갓집이 있었는데 처갓집에 가는 도중에 우리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선물을 많이 가져옵니다. 그러나 그 선물의 대부분은 처갓집에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 중에 얼마만을 우리 집에 놓고 갑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도 그를 유일한 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훌륭한 일을 한 사람으로서 명예를 주어야 합니다.

(에베소에서 열린 전도의 문)

8,9절을 보십시오.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다는 것은 전도의 문이 열렸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에 어마어마한 전도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큰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강력하게 임하여 바울의 손수건만 얹어도 병이 나았습니다. 많은 죄인들이 회개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성장하여 아시아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에베소에는 큰 성령의 역사가 있자 대적도 많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대적이 많다고 대적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싸우며 복음을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목회자를 업신여기지 말라)

10,11절을 보십시오.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바울은 자신을 대신하여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 아들 같은 제자였습니다. 바울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고린도에 도착하기 전에 편지를 보내 고린도 교인들이 디모데를 영접하도록 돕습니다. 고린도에는 여러 은사를 체험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회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력자도 있고 재벌도 있습니다. 디모데는 나이가 어립니다. 그는 내성적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디모데를 무시하고 업신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인들이 디모데를 업신여기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자신처럼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접하기를 원합니다. 주의 일을 힘쓰는 주의 종으로 대접하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조심하여 대하라고 합니다. 조심하라는 말은 돌보아주라는 뜻입니다. 디모데가 두려움 없이 일하도록 디모데를 신뢰하고 존중하라고 합니다. 옛날에 육군 장군이 있었습니다. 군부 독재 시절에 육군 장군은 지금보다 휠씬 권세가 막강했습니다. 많은 군인들 심지어 군인들의 가족들까지 장군 집에 와서 굽신거립니다. 주위 사람들도 장군에게 깍듯이 인사합니다. 그 집 아들이 학교에 갔습니다. 아들이 학교 선생을 보니 자신의 아버지보다 못한 것 같아 업신여겼습니다. 아버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선생님을 집에 초청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선생님께 부탁하여 아들이 있는 곳에서 자신을 책망하여달라고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학생 집에 초청받아 장군 아버지를 책망하였습니다. 자녀가 선생을 무시하도록 가정 교육을 시키면 어떻게 하느냐고 심하게 책망하였습니다. 대장은 쩔쩔맵니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학생은 선생님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학생이 선생님을 귀하게 여기고 높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학생은 공부를 잘하여 좋은 대학가고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학생이 선생님을 업신여기면 배우지 못합니다. 교인이 교회의 목자를 무시하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화목의 본)

12절을 보십시오.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아볼로는 성경에 능한 학자입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브리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에게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그 후에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에 가서 고린도 교회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의 목자가 되자 고린도 교회에는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에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과, 아볼로에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가서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로 나뉘었습니다.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볼로는 자신이 현직 목자라는 것을 이용하여 바울 파를 몰아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울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아볼로는 이런 교회의 분열이 있자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이 있는 에베소로 교회로 왔습니다. 바울과 아볼로가 싸우지 않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목자는 무엇보다 화목의 본을 보여야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화목의 본을 보여야합니다. 목자들은 양들에게 화목의 본을 보여야합니다. 아볼로는 바울과 화목의 본을 보이고 좀 더 후에 고린도에 가고자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연보는 준비된 것이어야 합니다. 매주 드려야하고 마음으로 드려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드려야합니다. 상대방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합니다. 전도의 문이 열렸을 때 힘써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주의 종을 그리스도와 같이 존중히 여겨야합니다.
고린도전서 16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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