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전서 14장 강해 이부 질서 있는 예배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01-13 00:00:00
조회수 : 2,941

문제지풀이(3)

    icon1.hwp  (34.50KB)

    icon2.hwp  (0.33MB)

    icon1.hwp  (28.00KB)

고린도전서 14장 강해 이부 질서 있는 예배

말씀 고린도전서 1418-고린도전서 1440

요절 고린도전서 1433

 

사도 바울은 계속하여 방언과 예언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예배 시간에 말씀을 전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말할 때 질서 있는 예배가 되게 하라는 대원칙에 기초하여 말씀하십니다.

 

(다섯마디의 깨달은 말)

 

18,1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사도 바울이 방언보다 예언을 하라고 하니 사도 바울이 방언을 하지 못하여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린도의 모든 성도들보다 방언을 더 잘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방언을 잘 함에도 불구하고 방언보다는 예언을 하라고 합니다. 일만 마디 방언을 하는 것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예언을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예언과 방언의 차이를 일만 마디와 다섯 마디로 대조하여 말합니다. 교회에서는 방언 일만 마디보다 예언 다섯 마디가 낫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알아 들을 수 있는 다섯 마디 말하는 것이 낫습니다. 예언은 깨달은 마음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언은 기도 중에 혹은 말씀을 묵상 중에 혹은 생활 중에 하나님이 나에게 깨우침을 준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는데 그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2008년 여름 수양회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주시기를 원하는가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여름수양회에서 누가복음 탕자의 비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요한복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말씀이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퍼듀 국제 여름수양회를 가보았더니 우리가 했던 여름수양회 말씀과 동일한 말씀이 여름수양회 말씀이라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이런 것도 성령께서 우리에게 깨우침을 주신 예언의 은사입니다.

 

(방언에 대한 하나님의 지혜)

 

20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바울은 장성한 사람처럼 지혜를 갖으라고 합니다. 악에는 어린아이같이 미련해야합니다. 그러나 자혜는 장성한 사람처럼 성장해야합니다. 우리는 방언에 대한 하나님의 지혜를 알아야합니다. 바울은 방언에 대한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칩니다.

 

(알아듣지 못하게 하는 방언)

 

21,22절을 보십시오.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바울은 이사야 2811,12절 말씀을 인용하여 방언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따라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정치를 똑바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바벨론 사람들을 보내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바벨론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알 수 없습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도록 주시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우리가 미국에 가서 화가 날 때 한국어로 그들에게 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못 알아듣는 말씀을 주십니다.

한번은 고와 사모님이 예전에 교회에서 합심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교회 목사님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 데 기도하는 그 말을 아무에게도 들리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고와 사모님께 방언기도를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기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악된 그들에 대한 심판으로 고와 사모에게 방언 기도를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방언은 사람들이 죄악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주시는 표적입니다. 방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믿지 않을 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언은 믿은 자들에게 알아듣도록 주시는 표적입니다. 우리가 다 믿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예언을 말히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도록 해야 합니다.

 

(방언 기도의 주의점)

 

2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모든 사람들이 방언으로 말하면 불신자들이 들어와서 미쳤다고 합니다. 방언 기도는 가능한 한 방언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초신자들이 왔을 때는 가능한 한 방언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방언 기도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광신자들이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특히 지성인들 복음화할 때는 방언기도를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방언 기도를 하지 못하는 신자들이 이질감이나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가능한 한 통역하지 않으면 방언기도는 공중에서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차라리 예언을 해야 합니다.

 

(죄를 깨우치는 예언)

 

24,2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사람들은 예언으로 죄의 책망을 받습니다. 그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판단을 받습니다. 마음에 숨은 일들을 드러내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들은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참으로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할 것입니다.

여기서 볼 때 예언은 사람들의 죄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예언은 미래를 말하는 것 같지만 항상 현재를 향하고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예언이 미래에 결정론적인 것이 아닙니다. 결정론적으로 말하는 것은 예언이 아니라 점쟁이입니다.

요나는 니느웨는 사심일 후에 망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니느웨가 회개하면 사십일 후에 망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부정적인 예언은 성취되지 않기를 바라는 아이러니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예언자는 현재 회개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이는 포로로 잡혀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너는 서울대 무슨 과를 가라’ ‘너는 의대를 가라’ ‘너는 목사가 되라이는 점쟁이지 예언이 아닌 것입니다. ‘너는 아파트로 이사갈 것이다.’ ‘앞으로 병이 날 것이다.’ 이런 식의 예언은 예언이 아닙니다. 이는 무당이 하는 점치는 일입니다.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말해주어야 예언입니다. 네가 열심히 일하면 아파트로 이사갈 것이다. 네가 지금처럼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면 너는 병이 날 것이다. 이것은 예언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현재에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질서 있는 예배)

 

26-28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당시에 예배를 드릴 때 찬송시도 있고 가르치는 말씀도 있고 계시의 말씀도 있고 방언도 있고 통역함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해서 하라고 하십니다.

방언을 할 때는 차례대로 해야 합니다.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 한 사람은 방언하고 다른 사람은 통역해야 합니다. 만약 통역할 사람이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집에 가서 하나님께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섬기는 일은 질서 있고 규모있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포항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장로님이 대표기도를 하는데 삼십분을 하였습니다. 목사님이 기도를 할 때 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잠에서 깨어나자 이제 예배 끝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축도를 하고 마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표기도는 새 신자를 생각하여 짧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표기도가 길어지면 새 신자들이 왔다가 다시는 이 교회에 오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말씀에 기초한 분별)

 

29-33a절을 보십시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예언하는 사람은 둘이나 셋이서 말하고, 다른 이들은 그것을 분별해야합니다. 그러나 앉아 있는 다른 사람에게 계시가 내리거든, 먼저 말하던 사람은 잠잠해야 합니다. 회중은 모두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예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배우고, 권면을 받게 됩니다. 예언하는 이들의 영은 예언하는 이들에게서 통제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언도 잘못된 예언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언에 분별력을 가져야합니다. 예언의 은사를 듣는 사람은 이것이 진정 예언의 은사인가 분별하고 예언의 은사가 아니면 말하지 못하게 제재해야합니다. 예언은 성경 말씀에 의해서 제재를 받습니다.

전에 이장림씨가 19921028일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재림하는 시기는 천사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른다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도사 시절에 기도원에 가서 은혜를 받고 총각으로 살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내려 오는데 빨간 투피스를 입은 아기씨를 봤는데 계속 그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한번은 기도원 원장님이 불러서 내려가다 빨간 투피스를 입은 아가씨를 보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내 딸인데 결혼하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좋다고 하고 결혼하여 자녀 낳고 목회를 잘 하였습니다.

다시 기도원에 갔는데 한 신령한 사람이 목사를 불렀습니다. 당신 미혼으로 살 것을 서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다고 하니 그런데 왜 결혼했느냐 이혼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예언입니까? 아니면 귀신이 한 것입니까? 성경에는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귀신이 한 것입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 목사님은 그 예언을 듣고 삼 년을 헤맸다고 합니다.

어떤 장로님이 물질 문제를 가지고 새벽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예언의 은사를 주었습니다. 산에 가서 태양에게 세 번 절하고 땅을 일곱 자 파라 그러면 돈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탄이 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들을 교회에서 세우는 문제 대해서)

 

33b-35절을 보십시오.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여자들은 공식적으로 예언이나 방언을 하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여자 목회자를 세우지 않는 교단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적용할 때는 신중하게 해야합니다. 이런 내용이 고린도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에서도 보편적으로 행해졌느나? 예수님도 하신 것이냐? 사도행전의 교회에도 나오는 것이냐? 는 것을 보아야합니다.

이 말씀은 고린도 교회의 특별한 상황에서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는 여권이 무시되어 공개적인 모임에서 여자들이 말을 못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여자들을 평등하게 대우하였습니다. 그러자 고린도 교회에서 여자들이 예배시간에 너무 시끄럽게 하여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을 적용할 때는 현재 자매들을 통한 실제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없느냐는 것을 따져 보아야합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에는 여자를 세우는 것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태의 족보에 보면 여자들이 등장합니다. 많은 여자들이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습니다. 드보라가 사사로 쓰임받습니다. 사도행전이나 서신서에도 브리스길라 뵈뵈 같은 많은 자매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은 자매들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또 실제적으로 자매들을 통하여 구원역사가 많이 일어납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자매들이라고 교회에서 말씀의 종으로 세우지 않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언을 사모하는 방법)

 

37-40절을 보십시오.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사도 바울은 예언과 방언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고 주님의 명령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방언도 금하지 말되 예언을 하고자 사모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언을 사모할 수 있습니까? 예언이 전술이라면 전략은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은 대원칙이고 예언은 시행세칙입니다. 전략 없는 전술은 위험합니다. 전술 없는 전략은 공허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예언자적인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우리가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려면 성경 말씀을 사모해야합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깊이 묵상하다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이 시대에 주시는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양들과 시대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합니다. 양들의 죄로 인하여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합니다. 예언자들은 시대의 죄문제를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자들입니다. 시대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이 있어야합니다. 세대를 마음에 품고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자에게 예언의 은사를 주십니다.

우리 천안 유비에프가 말씀 사랑교회입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사랑하며 기도에 힘쓸 때 에언의 은사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가운데 예언의 은사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14장 강해 이부 질서 있는 예배

말씀 고린도전서 1418-고린도전서 1440

요절 고린도전서 1433

고린도전서 14장 강해 이부 끝.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31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6장 강해 이부 이런 사람을 알아주라 오요한 2015-10-27
30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6장강해 일부 연보에 대해서 오요한 2015-10-27
29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5장 강해 6부 부활의 승리와 우리의 삶 오요한 2015-10-27
28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5장 강해 5부 부활의 방법과 형체 오요한 2015-10-27
27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5장 강해 사부 나는 날마다 죽노라 오요한 2015-04-03
26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5장 강해 삼부 부활의 원리와 순서 오요한 2015-04-03
25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5장 강해 이부 그리스도의 부활 성도의 부활 오요한 2009-01-28
24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5장 강해 일부 부활의 복음 오요한 2009-01-13
23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4장 강해 이부 질서 있는 예배 오요한 2009-01-13
22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4장 강해 일부 방언보다는 예언을 오요한 2009-01-11
1 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