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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로마서 15장 강해1 일부 연약한 자를 담당하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3-02-08 00:00:00
조회수 : 3,51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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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5장 강해 일부.
연약한 자를 담당하라
로마서 15장 1-로마서 15장 13
요절 로마서 15장 1절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동물의 세계에서는 강자와 약자가 있습니다. 동물들은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당연합니다. 약육강식을 통하여 생태계의 질서가 유지됩니다. 세상 사람의 세계에서도 강자와 약자가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동물의 세계처럼 강자는 약자를 밟고 올라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세계는 다릅니다. 강자가 약자를 오히려 감당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강자가 약자를 배려해야 공동체에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살아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힘 있게 전파됩니다. 바울은 약자를 감당하는 사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힘 있는 복음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생활을 말하면서 강자가 약자를 감당하라고 하십니다.

(연약함을 감당하는 자)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1)

예수님 안에서는 모두가 형제요 자매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형제자매로서 평등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평등합니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주인과 종이 평등합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자유를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덕을 세우는 데 힘을 써야 합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있고 약한 자가 있습니다. 강한 자에게도 약점이 있고 약한 자에게도 강점이 있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흔히 우리 주위를 보면 완벽주의자들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완벽하려고 하는 것뿐이지 전혀 완벽과 거리가 멉니다. 구체적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사람의 유형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첫째가 개혁자형입니다. 이것은 고도의 윤리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도덕적으로 완벽주의를 기하는 사람입니다. 아주 성실하고 정직합니다. 아시는 대로 이렇게 정직하고 성실한 것까지는 좋은데 이런 사람들은 대개 편협합니다. 그게 약점입니다. 자기 하나는 정직한데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하지를 못합니다.
둘째는 협조자형입니다. 이 사람은 감정이입이 잘되고 애끓는 마음과 감정이 풍부합니다. 이것은 좋은데 이 사람은 너무 감정적이라서 의지가 약합니다. 또 때로는 지성적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셋째는 동기부여자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감이 있고 야심가이고 최고가 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최고가 되겠다는 그런 사람인데 고집이 셉니다. 그래서 또 힘듭니다.
넷째는 예술가형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직관적이고 동정심이 많고 개성이 강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울하기도 하고. 정서적으로 강한 대신에 이 사람은 쉽게 말해서 광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술가하고 살려면 광기를 받아 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가끔 미친 짓을 하는데 이걸 수용하지 못한다면 예술가와 살 수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천사 같고 어떤 때는 악마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불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 예술가와 사는 섭리이니깐 그건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안 될 것입니다.
다섯째는 사상가형이 있습니다. 이것을 탁월한 지각을 가졌고 탐색지능이 있습니다. 어느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역시 좀 괴벽하고 편집병적일 때가 있습니다.
여섯째는 충성가 형이 있습니다. 감정에 호소하고 사랑받는 사람이고 장난기도 있고 유머도 있고 환심도 사고 아주 좋은 형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너무 의존적입니다. 충성하는 그 이상은 뭐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충성만을 잘하는 사람, 큰일을 못 합니다.
일곱째는 만능선수형이 있습니다. 순발력이 강합니다. 신바람 나게 삽니다. 그러나 이런 만능선수형이라는 사람들은 확실히 즉흥적이고 광적일 때가 많고 지구력이 약합니다.
여덟째는 도전자형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일단 옳다고 생각하면 누구도 말리지 못합니다. 아주 의지형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대개 오만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아홉 번째가 중재자형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수용능력이 많습니다. 신뢰할 수 있고 느긋하고 낙천적입니다. 이런 중재자형은 참 덕망이 있다고 우리가 말합니다마는 이런 사람들은 유약하고 수동적입니다. 너무나 수동적이라서 무슨 큰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이렇게 아홉 가지 형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어느 것 하나 여러분 마음에 듭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완전한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강한 자는 이 약점이 다분한 연약한 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대개는 연약한 자들을 두고 판단하고 정죄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아주 보편화된 방법입니다. 아주 쉽게 선택할 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미미하거나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연약한 자는 스스로 그 약점을 고쳐 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말처럼 이론처럼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약점을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약점을 감당하는 것은 연약한 점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가 연약함으로 당하는 대가를 내가 대신 치러 주는 것입니다. 연약하여 잘 걷지 못하는 사람의 가방을 들어 주는 것입니다. 연약하여 자주 잊어버리는 실수를 범하는 사람을 챙겨 주고 잊어버린 것을 찾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약함을 극복하여 강한 사람이 되기까지 믿어 주고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면 약점을 담당할 수 없습니다. 약점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슬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자)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2)

우리가 이웃을 기쁘게 해야 약점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이웃을 기쁘게 해야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참고 감당할 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내가 슬프게 되는 것도 감수해야 합니다. 나의 기쁨을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래야 약한 사람들이 강한 자로 변화됩니다.
누가 정신적으로 강자입니까? 강한 자는 먼저 이해가 있어야 강자입니다. 내가 넉넉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도 이런 환경도 저런 것도 다 넉넉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를 못하고 조그마한 일에서 걸려서 넘어지고 오해가 되고 원수 맺고 울고 짜고 절망하고 이런 것은 약한 것입니다. 흔히들 속되게 말할 때 밴댕이 속 같다고 말합니다. 약해서 민감한 것입니다. 그만큼 만사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한 사람은 언제나 넉넉합니다. 놀랄 것도 없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좋은 사람도 사랑하고 못된 사람하고도 같이 지낼 수 있습니다.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는 이해심이 넉넉합니다. 이것이 강한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이해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어쩌고저쩌고 해도 어른은 어른스럽게 이해합니다.
그 다음에는 강한 자는 실천 능력이 있는 자입니다. 이 깨달은 바 진리를 자기생활 속에서 구체화할 줄 압니다. 오늘 여기서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다. 들으면서 바로 아 그렇다 그런고로 나는 이렇게 살아야겠다 하고 적응할 수 있고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감당할 능력이 있습니다. 강한 자는 그런 소화능력이 있는데 연약한 자는 이걸 못합니다.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하여 순종하는 것을 못합니다. 그 말씀은 좋은데 나와는 관계없다고 합니다. 진리는 진리대로 행위는 행위대로 성품은 성품대로 따로 따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약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강한 사람은 실천 지구력이 있습니다. 강한 사람은 사랑해야 하는 줄 알면서 사랑합니다. 용서해야 하는 줄 알면서 용서합니다. 기도해야 하는 줄 알면서 기도합니다. 순종해야 하는 줄 알면서 순종합니다.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줄 알면서 판단하지 않습니다. 교만하지 말아야 되는 줄 알면서 겸손합니다. 의지를 갖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감당하신 예수님)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강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강자가 되어서 약자들을 위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합니다. 연약한 자를 내가 대신 하는 것입니다. 누가 등 떠밀어서 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 자의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또 누군가 빚을 지고 있다면 대신해서 갚아 주는 것, 또 누군가 질병이 걸렸다면 함께 아파해 주는 것, 치료를 위해서 기도하고 약이라도 사다 주는 것입니다. 윽박지르고 소리치고 난리를 친다고 해서 그 약점이 없어지는 것 아닙니다. 더 주눅 들어 비관적인 결론만 가져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감당하려면 자기 기쁨을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나의 연약한 점을 감당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강한 자가 되어 우리도 연약한 자를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교회에서 문단속을 하지 않아 수도관이 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밥도 할 수 없고 씻을 수도 없고 먹을 물도 없고 또한 교회 형제 방은 악취까지 풍겨 잠을 잘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약자의 허물과 약점으로 인해 강자는 애매모호하게 희생을 받고 불편을 강요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약자를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랑하고 감당하였습니다. 악취가 나는 방에서 희생을 감수하며 잠을 잤었고 먹을 물이 없고 씻을 물이 없으면 다른 곳에 가서 먹고 씻는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

(슬픔의 사람이 되신 예수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3)

강자가 약자의 연약함을 감당한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강하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에서는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십자가에 죽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사랑은 자신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편의 기쁨을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상대방을 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자의 필요를 채워 주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과 레위인은 가신을 기쁘게 하고 그냥 갔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기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을 십자가에서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쁨 대신 슬픔의 사람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지만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피로 십자가에서 제사를 지내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들 잘 알고 있는 이사야 53장에 보시면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낳음을 입었도다.” 그가 대신 내가 맞을 것을 맞았습니다. 책임을 대신 지는 것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강하심으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을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로 제사 지내시고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많은 약점을 담당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십자가에서 감당하심으로 상한 갈대는 강하게 하시고 꺼져 가는 심지는 활활 타오르게 하셨습니다.

(인내와 위로를 주시는 예수님)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성경은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성경에 주를 비방하는 자들이 비방이 내게 미쳤다고 기록된 것은 우리를 위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비방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십자가의 예수님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비방을 대신 받아 주어야 합니다. 비방을 받으면서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비방을 감당하는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포기하지 말고 인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내로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었지만 나중에는 부활하여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비방을 참고 견디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비방을 참고 견디면 하나님이 예수님처럼 우리를 높여 주신다는 것을 알고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자를 감당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위로 받고 인내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연약한 자를 감당하는 것이 피곤하지만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당하면 연약한 그 사람이 변화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미리 연약함을 감당하신 예수님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본이 되신 예수님)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5)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를 믿어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 두 번째 단계가 뭐냐면 예수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본이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귀한 고백입니다. 베드로는 그 고백을 통하여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겠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앞서 가시면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셔서 자기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고 율법에 대해서, 성령에 대해서 모든 것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가르치는 분이요 동시에 가르치기만 하는 게 아니요 본을 보였습니다.
또한 본을 보일 뿐 아니라 살아 계신 그리스도로서 그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에게 행할 힘을 주십니다.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내할 힘을 주시고 격려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강자로서 약자를 감당하는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담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뜻이 같아집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감당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도가 하나 되게 하신 예수님)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6)

우리가 연약한 점을 감당할 때 공동체가 얻는 가장 큰 은혜는 한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연약함을 감당하지 않고 비판하면 공동체는 나누어지고 싸웁니다. 서로 간에 불평불만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교회를 보고 불평불만을 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연약함을 감당하면 교회는 하나 됩니다. 교회를 보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크리스천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

사도 바울은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이렇게 하나가 되어 찬양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십자가는 인내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감당하는 것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내하셨습니다. 인내는 내가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모세를 인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인내하셨습니다. 인내의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연약한 점을 감당해 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내한 자를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연약한 점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변화시키사 위로해 주십니다. 연약한 사람을 강하게 하사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인내하자 아브라함이 변화여 위로를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인내하시고 우리의 변화를 통해서 위로를 얻으셨습니다. 우리가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을 믿을 때 다른 사람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서로 환영하는 삶)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7)

예수님이 우리를 기쁘게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를 십자가에서 감당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나타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서로 영접하여야 합니다. 서로를 기쁘게 환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과 연약함을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이 나타나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

(할례자의 종이 되신 예수님)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8,9a)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자들의 추종자(a servant)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 가운데서 메시야가 오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을 통하여 세계만민의 구원을 이루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유대인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종이 되어 그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유대인을 받아서 그들을 통하여 세계 만민 구원의 약속을 이루신다는 약속을 견고케 하시고 세계만민의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진실하신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사 이방인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연약함을 감당하려면 종이 되어 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때 성경 말씀이 진실해지고 세계만민의 구원역사가 일어납니다.

(열방이 찬송하는 날)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9-12)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통해서 세계 구원역사를 이루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2장 43절에는 모세는 열방 중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한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모든 이방인들이 돌아와 하나님을 찬송할 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시편 117편 1절에서는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송하고 모든 백성들은 그를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하여 열방이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게 될 날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 11장 10절에는 예수님이 이새의 뿌리 곧 다윗의 후손에서 열방을 다스리는 왕으로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날에는 열방이 예수님께 소망을 두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연약한 자를 받으심으로 유대인과 세계만민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찬양이 일어나려면 누군가 희생하고 사랑을 해줘야 합니다. 공동생활을 할 때는 설거지를 안 하면 누가 설거지를 대신해 주어야 합니다. 연약함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지적은 아무나 할 수 없지만 감당하는 것은 사랑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당해 보십시오. 하나가 됩니다. 결혼한 성도님들은 아내와 남편의 약점을 감당해 보십시오. 그곳에 예수님의 평강과 기쁨이 생길 것입니다. 또한 세계선교가 일어나려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영접해야 합니다. 서로 영접하는 것이 세계선교의 지름길입니다

(열방이 변화될 소망)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3)

로마서 본론을 마치면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소망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열국의 아비로 소망을 두셨습니다. 베드로에게 교회의 반석으로 소망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복의 근원으로 소망 두셨습니다. 세계만민이 하나님을 믿을 소망을 두셨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질 때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소망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

강한 자가 연약한 자를 감당할 때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기쁨과 평강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그들에게 충만하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소망의 하나님을 믿을 때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멘!

로마서 15장 강해 일부. 연약한 자를 담당하라
로마서 15장 1-로마서 15장 13
요절 로마서 15장 1절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로마서 15장 강해 일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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