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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로마서 12장 강해 일부 산제사를 드리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3-01-18 00:00:00
조회수 : 3,482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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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장 강해 일부.
산 제사를 드리라
말씀 로마서 12장 1-로마서 12장 8
요절 로마서 12장 1절b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b)

우리 주위에는 많은 공동체들이 있습니다. 학교 공동체, 직장 공동체, 군대 공동체……. 그중에 교회 공동체가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이런 세상 공동체와 다른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세상 공동체와 달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모인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서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행복을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교회 공동체를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사랑의 권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1a)

‘그러므로’는 1-11장을 받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세계만민의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교리입니다. 사람의 뼈대와 같습니다. 바울은 이런 교리를 바탕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적용 편을 이야기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자비하심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언약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시는 사랑의 권면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 사랑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습니다. 자신이 유익하게 체험한 것을 주고 싶습니다. 저는 기도의 유익을 많이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 요한에게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권면은 율법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로 우리의 도덕적인 삶을 권하고 있습니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b)

사도 바울은 삶의 윤리를 가르치는 전제로 가장 먼저 예배를 권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물로 예배를 주셨습니다. 여기서 제사는 예배 혹은 제물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갈 수 있고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하면 교회에 나와서 찬양을 하고 말씀을 듣고 헌금을 하는 것 정도로 생각합니다. 구약에서 예배는 성전에 나와서 양이나 소를 잡아서 속죄제물이나 번제물이나 화목제물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물을 죽여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육적인 예배로 봅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산제물로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온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제물 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우리도 은혜 속에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예배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번역에는 합당한 예배라고 나옵니다.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의식적인 예배도 아닙니다. 육적인 예배가 아인 영적 예배입니다. 우리의 몸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몸을 드리는 영적인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먼저 드리고 구체적으로 눈 코 귀 입과 같은 우리의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을 예배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몸을 제물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요?

(순종의 예배)

히브리서 10장 5-7절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여기서 ‘나’는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않는 것을 아셨습니다. 전체로 드리는 속죄함과 번제함을 원치 않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몸을 드리기를 원하시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는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말씀은 달콤합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것은 쓰디쓴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온전히 양과 염소처럼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우리는 순종의 예배뿐 아니라, 회개의 예배, 감사의 예배, 사랑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날마다 죽는 삶)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본받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을 매일 하나님께 산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에 참석하여 말씀 듣고 찬송하기만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의 몸을 제물로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의 온 마음과 몸을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날마다 자신의 몸을 산제물로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제사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부활의 영광을 매일 매일 체험하게 도우십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매일 매일 나타나게 하십니다.
우리가 산제사로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나누는 이분법적인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몸을 나누는 이분법적인 것이 아닙니다. 매일 하나님의 일만 한다고 산제사 드리는 것이고 세상에서 맡기신 일을 하는 것이나 가정 일을 하는 것은 산제사로 드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산제사로 드리는 것은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자신의 뜻을 죽이며 순종하면서 일을 하면 산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삶)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2)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당시 로마 성도들은 로마 시대나 그리스 시대나 유대인 시대를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 세대는 힘을 중시하고 지혜를 중시하고 표적을 중시하였습니다. 이해관계를 중시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돈과 쾌락과 명예를 중시합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본받는다는 것은 그것을 모델로 두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본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왕은 사단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유행을 전혀 따르지 않아서 특출하게 보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물질적이고 음란한 가치나 자기를 왕으로 섬기는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을 따르지 말라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세상에서 인정받고 높임받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입니다. 풍요롭게 잘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본 받지 말고 거룩하고 의로우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따라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행하고자 노력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삶)

다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위에 모든 것은 낡아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도 어느 순간부터는 점점 늙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계도 계속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 시점부터 엔토로피 법칙에 의해서 점점 낡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워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님, 성령님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살아서 새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디도서 3장 5,6) 우리가 새로워지려면 성령님을 통해서 내면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성령님은 중생의 씻음을 통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받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 죄를 날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교만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경외하지 못하는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 숭배의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탐심을 회개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환영하여 높여 드리지 못한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성령님을 앞서 행하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런 죄를 씻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우리의 그리스도요 왕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님을 믿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령님 안에서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삶)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고 성령으로 새롭게 되면 우리는 변화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변화되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하십니다. 사단의 뜻은 악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잘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슬프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온전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지구가 태양을 돌듯이 정확하고 일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저녁기도 모임에 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아니면 그 시간에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내가 이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니면 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미국 선교사로 가야 합니까? 호주 선교사로 가야 합니까? 이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길이 무엇이며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하여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내 마음에 계신 성령님의 소원을 알 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새로운 믿음을 갖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변화를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주의 종이나 부모와 상의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뜻은 온 세계만민을 사랑하여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려 천국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를 통해서 나의 소원과 뜻과 맞지 않아도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산제사로 받으실 것입니다.
저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에 다녀와서 논술반을 개강했습니다. 고려학원에서 많이 광고를 했고 또 지금까지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에 학생들이 많이 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한 명도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조용히 쉬면서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제를 나누고 새롭게 저의 실력을 쌓기를 원하고 계셨습니다. 옛날 것을 가지고 계속 우려먹지 말고 새롭게 준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제가 이것을 알고 순종하니 기쁨이 있었습니다. 때가 되자 논술을 가르칠 학생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는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일을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제사를 기뻐 받으십니다.

(은혜로 하는 권면)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3a)

여기서부터 사도 바울은 교회의 공동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받은 은혜를 힘입어서 각 사람을 다시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권면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로 들어야 합니다. 율법적으로 들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사랑에 기초하여 권면을 들어야 합니다. 율법을 사랑으로 감싸면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하는 생각)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3b)

우리 각자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킹제임스에는 맑은 정신으로 건전하게 생각하라고 나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나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마가복음 9장 말씀에 의지하여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은사를 받은 믿음의 분량만큼 분수에 맞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탐욕에 기초하여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분량을 벗어나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과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분량을 알고 분량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눈이 눈의 일을 해야지 눈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에 의지하여 손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이는 믿음의 분량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남자가 하나님께 여자처럼 믿음으로 아기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또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학생회는 학생회대로 각자의 믿음의 분량이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자기 역할이 있습니다. 자신의 위치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알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믿음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생각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야 공동체가 조화롭게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지체의식)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4,5)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데 힘을 써야 합니다. 각 지체는 몸을 세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손이 손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존재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모든 활동은 몸을 세우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예수님은 머리가 되십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은 말씀하십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우리는 교회에서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교회의 주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다 신이 아닌 사람입니다. 사람은 모두가 부족한 죄인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예쁜 사람이라도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그 안에서 교제해야 합니다. 몸의 지체들처럼 서로 협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사람을 그리스도처럼 섬기고 사람에게서 만족을 얻고 사람 때문에 울고 웃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을 섬기고 그분 때문에 울고 웃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한 머리인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받은 은사의 다양함)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5a)

공동체는 통일성 안에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케스트라에는 여러 악기가 있습니다. 각자는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서 다양한 소리를 내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도 각자 서로를 인정하고 각자의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 안에서 여러 가지 은사를 설명합니다.
은혜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도 은혜로 받았습니다. 우리의 생명도 은혜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은혜 안에서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은사는 각각 사람에게 다르게 주시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말은 다양하다는 말입니다.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은사)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6b,7)

먼저 예언의 은사가 있습니다. 예언은 대언이라고도 합니다. 예언은 점쟁이가 점을 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언은 킹제임스 성경에는 대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한다는 말입니다. 예가 예금(預金)할 때 의탁할 예자입니다. 예언은 주로 미래적인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언의 주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계시로 미래의 방향을 잡는 예언의 은사가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자신에게 주신 믿음의 분수대로 예언을 해야 합니다.
섬기는 은사를 가진 사람도 있고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섬기는 은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사람을 성공하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실제 몸으로 섬기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청소나 음식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은사가 있습니다. 물질로 섬기며 행복을 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르치는 은사는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입니다. 자신도 가르치면서 기쁘고 가르침을 받는 사람을 변화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일대일로 가르치고 그룹으로 가르치고 예배시간에 가르쳐야 합니다. 섬기고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은 섬기면서 기쁨이 생기고 가르치면서 기쁨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역할에 충실하여 섬기면 됩니다.

(권위, 구제, 다스리는, 긍휼의 은사)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8)

권위하고 구제하고 다스리고 긍휼을 베푸는 은사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연약한 자, 절망하는 자를 권면하고 위로하는 권위의 은사를 가진 분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권위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바나바는 권위의 은사를 가졌습니다. 그는 권위의 은사로 바울을 세우고 마가를 세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자꾸 주고자 하는 구제의 은사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해야 합니다. 성실함은 단순한 마음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되돌려 받고자 하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밥퍼목사로 유명한 최일도 목사님과 같은 분이 섬기는 은사를 가진 분이십니다. 그는 성실하게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해서 퍼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임을 잘 인도하는 다스리는 지도자의 은사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헌신하도록 하는 사람입니다.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방향을 잘 잡고 나가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부지런함으로 해야 합니다. 부지런하다는 말은 빨리 하라는 말입니다. 다스리는 은사를 가진 사람은 예수님처럼 종이 되어 섬기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같이 마음을 아파하는 긍휼의 은사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기쁨으로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기쁨으로 주저 없이 신속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도움받는 사람을 마지못해서 도와주면 안 됩니다. 은사를 맡은 사람은 각자 그 맡은 일을 해야 합니다.

(현대 교회의 은사)

우리 교회에도 각자에게 은사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은사는 여기에 기록된 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성경에 나옵니다. 현대 사회에 맞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은사는 그것을 하면서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는 것입니다. 은사는 공동체를 세우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말씀을 보고 쓰고 읽으면 기쁨이 넘칩니다. 말씀을 깨닫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면서 나는 기쁨이 넘칩니다. 다른 사람도 은혜를 받습니다.
아내는 물건을 잘 찾는 은사가 있습니다. 어제도 처갓집에 가서 열쇠를 잃어버렸는데 쓰레기장에서 그것을 기막히게 찾아내었습니다. 한 목자를 보면 생활에 지혜의 은사가 있습니다. 한 목동은 미술의 은사가 있고 다른 목동은 문학에 은사가 있고 또 다른 목동은 공학에 은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은사로 자신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너는 나와 같은 은사가 없냐고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의 은사를 인정하고 협력하여 몸 되신 그리스도를 세워야 합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각자의 은사를 살려서 은사를 발휘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산 제사를 드리자)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여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아멘!

로마서 12장 강해 일부. 산제사를 드리라
말씀 로마서 12장 1-로마서 12장 8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b)
로마서 12장 강해 일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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