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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로마서 11장 강해 이삼부 은혜와 주권 신앙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3-01-17 00:00:00
조회수 : 3,09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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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장 강해 이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하라
로마서 11장 13-로마서 11장 24절
요절 로마서 11장 22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지금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남은 자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 이방인이 풍성하게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구원을 받은 이방인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방인은 이스라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넘어지지 않도록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이방인들도 교만하면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하나님이 가차 없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항상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13,14)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구원받으면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시기나서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이방인도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이 복음을 영접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되겠느냐고 할 것입니다. 마치 레아와 라헬이 한 남편 야곱을 두고 시기하여 더욱 사랑의 경쟁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사랑 경쟁을 통하여 열두지파를 낳았습니다. 이방인의 회개를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도 회개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은 이스라엘도 구원하여 한번 부르신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이스라엘의 구원을 바라보면 이방인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날)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15)

이스라엘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받으면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구원받는 날에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부활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방인 구원역사를 충만히 이루시고 공중재림을 하셔서 믿는 자들의 휴거를 이루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이들은 공중에 들림받아 예수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후에 대환난이 있고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지상재림하십니다. 이방인뿐 아니라 이스라엘까지 구원하셔서 만민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십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불신에 빠졌지만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더욱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스라엘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만민구원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은 둑을 막았지만 그 둑을 넘어서 복음이 이방인에게 퍼져 나갔습니다. 이방인에게 흐르는 물이 역류하여 다시 이스라엘에 흐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믿을 만한 분이십니다. 이는 나의 신앙 성장 과정이나 천안 ubf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베어스 3기들이 떠나는 일을 통해서 절대기도를 배우게 하셨고 한 목자의 질병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나의 죄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일제의 식민통치와 6.25 전쟁을 통해서 우리들의 마음을 가난하게 하시고 놀라운 복음의 진보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제가 오스트리아에 간 동안 학생회에 불신의 사단이 조금 역사했지만 하나님은 더욱 든든한 복음의 기초를 놓게 하셨습니다.

(이방인의 영적 현주소)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16,17)

사도바울은 이방인의 현주소를 말합니다. 이방인은 유대인들이 없었다면 구원을 받지 못할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잘 계승하였기 때문에 구원역사가 이루어지고 복음이 이방인에게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거룩한 떡이므로 이방인도 거룩한 떡이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관계를 감람나무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참감람나무의 뿌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원감람나무는 유대인입니다. 꺾인 가지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입니다. 접붙임을 받은 가지는 이방인입니다. 가지를 자라게 하는 것은 뿌리인 예수님에 달려 있습니다. 뿌리가 거룩하므로 유대인 가지도 거룩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가지 얼마가 꺾였는데 이방인인 돌감람나무가 그들 중에 접붙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은 뿌리 되신 예수님의 진액을 유대인들을 통해서 받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지탱하게 하며 이방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양분과 수분을 공급하십니다. 이방인은 유대인들을 통하여 유대인의 진액을 받고 있습니다. 유대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이 이를 알 때 유대인을 무시하지 않고 겸손할 수 있습니다.

(겸손해야 하는 이방인)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18)

이방인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실패를 보면서 그들을 무시하고 교만하기 쉽습니다. 높은 마음을 품기 쉽습니다. 실제 중세시대에 크리스천들은 복음을 영접하지 않은 유대인들을 무시하고 많이 죽였습니다. 그것이 십자군 전쟁입니다. 그들은 우리는 복음을 알고 굳게 섰는데 유대인인 너희는 복음을 모른다고 비웃었습니다. 복음을 영접하지 않아서 유대인들이 그렇게 역사 속에서 고생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 쉽습니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얼마의 크리스천들이 그에게 동조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이 유대인에 대해서 자긍해서는 안 됩니다.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이방인이 유대인을 보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이 이방인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19-20a)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선민인 이스라엘도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고 교만하여졌을 때 하나님이 심판하여 가지를 꺾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았을 때 버림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꺾으신 곳에 이방인들을 접붙여 주셨습니다. 그들은 불신으로 꺾이우고 이방인은 겸손히 믿음으로 접붙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자녀인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자녀가 떡을 먹지 않자 하나님은 개와 같은 이방인에게 자녀가 먹던 떡 부스러기를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유대 회당에서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영접하지 않자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유대인과 같이 불신에 빠지지 말고 지속적으로 믿음에 거해야 합니다. 불신에 절대 빠져서는 안 됩니다.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도 믿음을 가지면 다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교만한 이방인이 받는 심판)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20b,21)

이방인은 교만하게 유대인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유대인을 심판하신 하나님은 이방인도 죄를 지으면 가차 없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방인도 교만하면 그들도 버림받을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방인은 지속적으로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한 자를 심판하는 것은 역사의 진리입니다. 유대인의 교만함으로 가톨릭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이 부패하고 교만함으로 그들은 버림받고 개신교가 섰습니다. 개신교는 가톨릭에 대해서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개신교도 가톨릭처럼 부패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요즘에 종교개혁 500년이 지난 개신교를 보면 옛날의 가톨릭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 선배들이 넘어진 것을 봅니다. 아니면 신앙 선배들의 연약함을 봅니다. 학생들은 초기에 매우 은혜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졸업생들이 때로 헤매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높은 마음을 품기 쉽습니다. 학년은 선배인데 연약하여 말씀 공부 모임에도 오지 않는 것을 보고 정죄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나도 그와 같이 될 수 있습니다. 나도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엄위하심으로 나를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높이실 것입니다. 우리는 선배들을 인정하고 그분들의 말에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선배 사울왕을 존중함으로 대하여 좋은 본을 보였습니다. 사무엘은 제사장 엘리의 말에 순종함으로 선배를 경외하는 본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음으로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 개신교는 가톨릭에 대해서 겸손해야 하고 기독교는 유대교인에 대해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되고 먼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과 은혜 속에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이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까?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지 않으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22)

하나님은 두 가지 성품이 있습니다.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이 있습니다. 이방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그 안에서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에 기초하여 끊임없이 죄를 회개하며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고 유대인을 판단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도 판단하지 말고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이방인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도 마음에 행위를 의지하는 교만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믿고 있으면 하나님이 친히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믿음의 선배들의 사랑을 신뢰하고 겸손히 그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서로를 판단하지 말고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능력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어 친히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선배들을 판단하면 모두가 심판을 받아 찍혀 지옥 불에 던져집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시지만 또한 엄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하고 믿는 자에게는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교만하고 불신에 빠진 자에게는 엄위하신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면 엄위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불신하면 포도나무를 떠난 가지처럼 불에 태워 버려질 것입니다.

(교만한 자가 넘어지는 역사)

교만한 자가 떨어져 나가고 겸손히 믿는 자를 통하여 일하시는 것은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교만을 심판하시고 이방인의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가톨릭의 교만을 심판하시고 개신교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유럽에 가보면 그렇게 교회가 많은 것에 놀라게 됩니다. 잘츠부르크의 산 위에 가보면 정말 우리나라의 십자가가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십자가가 보이는 것에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그 교회에 들어가 보면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교회는 쇠사슬이 쳐져 들어갈 수 없거나 들어갈 수 있어도 그곳에는 촛불만 즐비하게 타고 있고 교회는 촛불을 켜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늙은이가 그릇을 놓고 동냥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에는 진실하게 신앙을 가졌지만 행위를 의지하고 교만해졌을 때 하나님의 찍힘을 받게 되었습니다. 구원역사는 다시 우리나라나 중국과 러시아 땅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가 영적인 강국이 되었다고 교만해질 때 우리는 찍힘을 받게 됩니다. 우리 ubf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ubf 교회가 다른 교회를 무시하고 우리 모임만 잘났다고 하면 하나님은 우리 모임을 흩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도 겸손하고 둘째도 셋째도 겸손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 모임을 크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선교사들에게서 현지목자들에게로 리더십이 이양되고 있습니다. 현지 목자들이 선교사들에게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역사성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다시 접붙이시는 하나님)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23,24)

이방인은 돌감람나무였습니다. 그들은 죄악된 본성과 다른 거룩한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돌감람나무가 접붙임을 받았다면 참감람나무 가지는 더 잘 접붙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원가지에서 찍혀 나간 이스라엘 사람들은 감람나무에 더 쉽게 접붙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접붙일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에도 접붙이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접붙이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오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겸손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인류구원의 비밀을 정리하여 말합니다.

로마서 11장 강해 이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하라
로마서 11장 13-로마서 11장 24절
요절 로마서 11장 22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로마서 11장 강해 이부 끝.


로마서 11장 강해 삼부.
은혜와 주권 신앙
로마서 11장 16-로마서 11장 36
로마서 요절 11장 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탄식하였습니다. 바울은 참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영접한 자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믿는 데 실패한 원인이 행위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하여 이방인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도 반드시 이루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와 절대주권 속에서 이스라엘과 세계만민 구원역사를 가르치십니다. 이 하나님을 생각하고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의 비밀)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25)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지혜를 깨닫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비밀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만민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로마교회의 사람들도 이것을 알기 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더러는 완악하여졌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하여 이방인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구원역사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시는 방법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이스라엘 구원하시겠다는 언약)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26,27)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돌아온 후에 온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얻을 것은 하나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27장 9절에 이런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원자가 시온에서 나오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다시 재림하십니다. 구원자 예수님은 지상에 다시 오셔서 야곱의 경건치 않은 자를 돌이키십니다. 그들의 죄악을 사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은 구약의 약속된 말씀에 기초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신실하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계시록에 보면 7년 대환난의 날에 이런 일이 이루어질 것이 예언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이스라엘)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28)

이스라엘은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음으로 복음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을 위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원수가 됨으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원수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이방인은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대해야 합니다. 이방인은 유대인을 통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손으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방인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감사함으로 대해야 합니다.

(실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29)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부르시고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이 불신에 빠짐으로 구원역사는 실패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는 구원역사의 실패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보다 더 크시고 높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선으로 바꾸어 이방인의 구원을 이루시고 나중에는 이스라엘의 구원도 또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하게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스라엘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0,31)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는 아브라함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긍휼함을 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겼습니다. 그때는 이방인들이 순종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순종치 아니함에 두신 것은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순종치 아니하는 그때에 이방인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순종치 않는 이방인에게 긍휼을 베풀었듯이 하나님은 이제 순종치 않는 유대인들에게도 다시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돌아오면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세계만민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세계 만민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32)

처음에는 이방인이 불순종할 때 이스라엘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이 불순종하자 불순종한 이방인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을 긍휼히 여기신 그 긍휼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도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든 사람을 불순종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신 이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방적인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에 기초하여 세계만민 구원역사를 친히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의 긍휼을 세계만민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세계 만민을 구원하시는 놀라운 섭리와 계획이 계시록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대환난 전에 이미 예수님을 믿은 사람을 하늘로 부르실 것입니다. 7년 동안의 대환난을 겪으며 많은 유대인들이 구원을 얻고 변화될 것입니다.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에 십사만 사천 명을 구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완전한 숫자를 구원하십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지상에 재림하여 천년왕국을 이루십니다. 마태복음에도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된 후에 끝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이 구원의 계획을 아는 신자들이 백투더 예루살렘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이 오기 전에 이스라엘의 구원역사를 이루겠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고 이스라엘 구원역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신 하나님)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33,34)

바울은 처음에 이스라엘의 불신을 생각하고 근심하고 깊은 탄식에 잠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비밀을 깨닫고 깊은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부요하십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너무나 깊어서 인간은 그의 판단을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루어 가시는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주님의 깊은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아무도 자신이 모사가 되어 자신의 지혜로 주님께 충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의 완전한 지혜로 일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만 보고 탄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부정적인 현상 뒤에 계시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지혜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주권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크고 좋으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35)

아무도 주님께 헌신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나의 헌신에 대해서 갚아 달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빚지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의 빚을 진 자들입니다.
이 말씀은 욥기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욥이 의롭게 살았다고 하나님께 축복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가 의롭게 살았는데 어떻게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느냐고 왜 복을 주시지 않느냐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가 의롭게 산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가 고난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일하십니다.
이스라엘을 택하고 지금까지 역사를 이루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들이 택하심을 받은 백성으로 율법을 지켰다고 그들은 하나님께 주장할 수 없습니다. 왜 이방인과 달리 특별대우를 하지 않느냐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의롭게 산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욥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그러나 욥을 배나 회복시켰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때에 이스라엘을 배나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경건으로 앉은뱅이를 고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앉은뱅이가 나은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36)

만물을 창조하신 분도 주님이시고 만물을 섭리하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만물을 마무리하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움직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참새 한 마리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을 가지고 만물을 친히 섭리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선하십니다. 완전하십니다. 정확하십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선하신 절대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절대주권자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생각하며 깊은 탄식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알고 나니까 마음에 감사와 찬양이 넘쳐 나고 있습니다. 은혜의 하나님을 배우고 나니까 감사가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함)

로마서 1장에서 8장까지는 개인구원을 다루었습니다. 개인구원의 주제는 로마서 1장 17절 말씀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제 로마서 9장에서 11장까지는 만민구원의 역사를 다루었습니다. 만민구원역사의 요절은 로마서 11장 36절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하나님은 시작과 중간과 끝을 섭리하시는 절대주권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천지를 섭리하시며 마지막에 이 땅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원시복음을 약속하셨고 그리고 복음역사를 이루사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사 복음을 완성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불순종할지라도 하나님은 줄기차게 복음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이고 만민 구원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마지막 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불순종하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ubf 역사를 시작하셨고 지금까지 쓰셨고 앞으로도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천안 ubf를 시작하셨고 지금까지 구원역사를 이루셨고 앞으로 더욱 놀라운 복음의 진보를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태어나게 하셨고 지금까지 나의 삶을 섭리해 오셨고 그리고 죽을 날까지 마무리 지으실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천안 ubf 개척 초기에 사단의 폭풍우가 칠 때 영접했습니다. 어린 학생자매가 떠나가고 그로 인해서 그 학생의 자매목자가 귀신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를 해결해 주시도록 불안과 염려 가운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하나님이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절대주권 가운데 우리 모임을 지키고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자매 목자는 지금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을 때 어떤 사단의 역사나 실패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은혜의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그치지 않는 고통과 근심을 그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역사의 절대주권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로마서 11장 강해 삼부. 은혜와 주권 신앙
로마서 11장 16-로마서 11장 36
로마서 요절 11장 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11장 강해 삼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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